이러 사실은 곰곰 생각해보면 덜컥 겁이 날 만도 하다. 익숙한이정표가 도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방해가 되기 쉽다는 않시기깔려 있기 때문이다. 익숙한 이정표에 의존할 수 없다면 무엇에 의지해서 행동할 수 있을까? 이미 앞에서 살펴봤던 우리의 들쭉날한 측면과 상황 맥락별 기질을 감안할 때 경로의 원칙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의지처다. 우리가 올바른 길에 서 있는지를 판단할 유일한 방법은 그 길이 우리의 개개인성과 얼마나 잘 맞는지를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개개인성의 첫 번째 원칙이 가진 힘이다. 다르 사람들의 재능의 들쭉날쭉성, 즉 우리 아이들, 직원들 한새드의 들쭉날쭉한 측면을 인정할 줄 알게 되면 그들의미발굴된 잠재력을 알아보고 그런 강점을 제대로 활용하도록 이끌어주는 동시에 약점을 간파해 그 약점을 개선하도록 도와줄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평균주의는 우리의 사고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제한된 패턴에 따르도록 유도한다. 게다가 이런 패턴에 따른 견해가 너무 자명하고 이성적인 것처럼 보이기때문에 우리는 그런 제한된 패턴을 대체로 의식하지도 못한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우리에게 스스로를 수많은 평균에 비교해 평가하도록 조장하며, 아니 강요하며 우리에게 그 정당성을 끝도 없이 제시하고 있다.
평균의 시대를 특징짓는 2가지 가정은 무엇인가? 평균이 이상적이며 개개인은 오류라는 케틀레의 신념과 한 가지 일에 탁월한 사락은 대다수의 일에서 탁월성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골턴의 신념이다. 그러면 이번엔 개개인의 과학이 내세우는 주된 가정은 뭘까? 개개인성이 중요하다는 신념이다.
하지만 평균주의는 우리에게 대가를 치르게 했다. ‘노르마 닮은꼴 찾기 대회가 그러했듯 사회는 우리 모두에게 학교와 직장생활과 삶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특정의 편협한 기대치를 따라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 모두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되려고 기를 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우리 모두는 다른 모든사람들처럼 되되 더 뛰어나려고 기를 쓴다. 영재들이 영재로 불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