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속살 4 - 정치 편 경제의 속살 4
이완배 지음 / 민중의소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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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룩셈부르크의 모든 것룩셈부르크는 뛰어난 이론가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뜨거운 실천가였다. 룩셈부르크와 실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한몸과 같았다. 민중들이 고통 받는 현장에 언제나룩셈부르크가 있었다.
룩셈부르크가 남긴 어록이 하나 있다. "움직이지 않는 자는 자기를 옭아맨 사슬을눈치채지 못한다(Those who do not move, do not notice their chains)"는 것이다.
앞장 미셸 푸코 편에서도 살펴봤지만 신자유주의는 민중들의 일생을 통제한다. 우리의 한평생은 사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슬에 묶인 삶과 비슷하다.
과장이 아니다. 우리는 청소년기와 청춘을 대학 입시와 취직 준비에 바친다. 취직을하면 해고되지 않기 위해 평생을 충성해야 한다. 내 가족들 머리 하나 편하게 뉘일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집을 한 채 장만했더니, 사실 그 집 주인은 내가 아니라 국민은행장이나 우리은행장이다. 30년짜리 주택담보대출을 갚기 위해 우리는 평생 허덕여야한다.
- P222

이게 사슬에 묶인 삶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삶을 마칠 때 우리 민중들은 과연
‘나의 일생이 참 아름다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이 사슬을 끊어야 한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사슬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다는 데있다. 많은 민중들이 구속된 삶을 고분고분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그게 사슬인지조차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룩셈부르크는 이야기한다. 가만히 있으면, 움직이지 않으면 사슬의 존재를알 수 없다고 말이다. 움직여야 사슬이 나를 옭아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다.
민중들의 운동은 바로 이 자각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룩셈부르크는 민중들의 자각을 돕기 위해 실로 끈질기게 실천했다. "움직여야 한다"는 룩셈부르크의 조언을 가장 열심히 실천한 이는 룩셈부르크 자신이었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가만히 있을 권리, 지칠 권리가 없다. 가만히 있으면 사슬에얽매여 주저앉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통스럽지만 한걸음을 더 내디더야 할 용기가 필요하다. 더 용기를 내라고, 절대 지치지 말라고, 100년 전 세상을 떠난 룩셈부르크가우리를 응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 P223

시장은 결코 만능이 아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국민이 힘들고 어려울 때 의지할 수있는 국민의 집과 같은 국가를 만들 수 있다. 그렇게 서로 사랑하고, 그렇게 서로 의지하는 사회는 장담컨대 시장이 지배하는 사회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다.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의 저자 찰스 아이젠스타인(Charles Eisenstein)은 이 차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가 필요치 않다‘는 느낌은 환상에서 비롯된 착각이며, 사실 우리는 서로를필요로 한다. (돈과 시장은 거주할 집에 대한 욕구는 채워주지만, 나 자신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가정에 대한 욕구는 채워줄 수 없다.
돈으로 사실상 어떤 도구도 살 수 있지만, 내가 알고 나를 아는 사람이 만들어준도구와 그에 얽힌 이야기는 살 수 없다. 돈으로 노래를 살수도 있지만, 누군가 나를 위해불러주는 노래를 살수는 없다.
밴드를 집에 불러 노래하게 할 수도 있지만, 당신이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해도 그들이 진심으로 나를 위해 노래한다는 보장은 없다. 어머니가 불러주는 자장가, 연인이 불러주는 세레나데가 얼마나 내면 깊숙한 욕구를 채워주는지 우리는 안다.

팔메는 1984년 탈상품화 이론을 스웨덴 사민당의 철학으로 공언했다. 이미 강력했던 스웨덴의 복지정책을 팔메가 더 강력하게 설계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1984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팔메가 한 연설은 상품이 아닌 인간의 가치에 대한 그의뜨거운 열망을 잘 나타낸다.
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이 잘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연대나 동정심 같은 감정을 억누르라고 가르친다. 사유재산과 계약의 자유, 자유경쟁 같은 이념을 더 확장해야 한다.
고 주장한다. 이것이 소위 그들이 말하는 시장의 마술이다.
하지만 나는 시장의 마술보다 ‘인간 온정의 마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사회의목적은 인간의 삶과 동떨어진그 어떤 것을 추구하는 이념이 아니다. 사회의 목적은인간을 넘어서서 멀찍이 있는 그 무엇도 아니다. 사회와 제도는 지금 이곳에 있는인간을 위한 것이다. 각자 삶의 목표를 성취해 가며 그들의 일상을 돕는 것이다. 사회와 연대의 목적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사회의 자원을 활용해 삶의 크고 작은 과제를 성추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복지사회의 출발점이자 목적이다.
- P234

세계화에 의해 파괴된 공동체2019년 신년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1997년의 외환위기는 우리 사회에 깊은상처를 남겼습니다. 사회안전망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맞은 경제위기는 공동체의 불안으로 덮쳐왔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 말처럼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에 깊숙이 개입된 우리 사회의 공동체는 심각하게 파괴됐다.
외환위기 전까지는 그래도 공동체 정신이라는 것이 있었다. TV를 켜면 시장 사람들〉, 〈전원일기〉, 〈한지붕 세 가족 같은 드라마가 우리의 마음을 따뜻이 녹였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TV는 "모두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카피에 점령됐다. 돈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세상이 되면서 우리는 라다크 주민들처럼 불행을 절감했다.
호지는 공동체 사회에서 "인간 자아의 뿌리는 공동체에 있다"고 지적한다. 글로벌자본이 진입하기 전 라다크 사람들의 자아는 매우 안정돼 있었다. 공동체 속에서 형성된 자아는 어지간해서는 불안해지지 않는다. 위기가 닥쳐도 공동체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세상의 자아는 돈에 의해 발전한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을 보라. 어려서부터 그들은 100% 자본에 의지해 성장한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의 자아는 자기를 보호해 줄 유일한 수단을 돈이라고 생각한다. 돈이 나를 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이 없으면 그들은 불안하고 불행해진다.
호지는 세계화의 대안으로 보살핌의 경제학을 제시한다. 착취와 경쟁이 아니라 서로를 보살피는 경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남을 보살필까? 우리가 공동체 속에 살고 있다는 인식을 가질 때 가능한 일이다. - P240

하지만 이 대목에서 나는 조지에 동의할 수 없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질타한 그의경제학은 위대했지만, 나머지가 주님의 뜻에 달려 있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부동산불로소득에서 해방된 세상, 그 누구도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주님의 몫이 아니라 우리 민중들의 몫이다.
강화된 종합부동산세건, 토지보유세건, 부유세건 어떤 이름도 좋다. 이 부당한 불로소득을 멈춰야 한다. 우리의 의지에 따라 그 세상은 30년 뒤 올 수도 있고, 10년 뒤올 수도 있다. 어쩌면 바로 내일 그 세상을 만들 수도 있다.
헨리 조지는 "지대는 과거에 대한 도둑질일 뿐만 아니라 현재에 대한 도둑질이며,
미래에 이 세상에 태어나는 어린이들의 타고난 권리를 빼앗는 사악한 절도이다"라고일갈했다. 매기는 조지의 이 외침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지주게임이라는 보드게임을통해 훌륭히 입증했다.

자본주의라는 경제시스템을 그냥 놔둔 상태에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게 가능한가? 절대 그렇지 않다. 1월1표제를 지지하는 자본가들은 정치에서도 자신들이 더 큰영향력을 가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서구 사회에서 일반화된 자본의 로비, 한국사회에서 압도적 힘을 가진 재벌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가 된다.
그들은 이미 돈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오래 전에 무너뜨렸다.
그래서 바루파키스는 "자본주의로부터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1원1표제에 의해 모든 권력은 자본가에게 집중될 것이다. 그들은1원1표제가 판치는 경제 시스템을 통해 민주주의를 파괴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바루파키스는 경제적 영역에도 민주주의를 과감히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1원1표제가 아닌 1인1표제가 경제 시스템에도 적용이 돼야 자본가들의 탐욕을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주의가 완벽한 제도는 아니지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임에는의심의 여지가 없다. "자본주의가 삼키고 있는 민주주의를 구해야 한다. 그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나서서 투쟁하는 것이다" 라는 바루파기스의 주장을 귀담아 들어야 하는이유가 여기에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심리학자들은 "사람의 뇌는 과거를 기억하는 일보다 미래를 상상하는 일에 덜 능숙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한다. 기억이라는 것은 왜곡되고 편집돼도, 결국 내가 겪은 일이다. 열심히 떠올리면 잘 기억해낼 수 있다.
하지만 가보지 않은 길을 상상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그래서 뇌는 그 일을 썩 근사하게 해내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나는 앞으로 별로 변하지 않을 거야" 라거나 "그냥 살아온 대로 살 거야" 라며 미래의 변화를 과소평가한다.
- P288

므두셀라 증후군, 즉 과거를 미화하는 우리의 습성은 보수의 무기가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역사의 종말 환상, 즉 미래의 변화를 과소평가하는 우리의 습성도 역시 진보를 가로막는다. 우리는 좀 더 뜨겁게 미래를 상상해야 한다. 10년 뒤 우리 민중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한 세상에서 살 권리가 있다.
10년 뒤, 혹은 20년 뒤,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나은 미래에서 만났으면좋겠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아름다울 것이다.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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