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속살 3 - 불평등 편 경제의 속살 3
이완배 지음 / 민중의소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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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닝과 크루거는 이 부조화에 대해 "무능력한 사람일수록 자기가 무능력하다는 사실을 몰라서 사태파악을 더 못하므로 더 무능력해진다. 반면에 유능한 사람들도 자기가 유능하다는 사실을 몰라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데 하지 못한다"라고 설명한다.
이 이론이 주는 의미는 실로 심오하다. 원래 세상은 유능한 사람과 무능한 사람이섞여서 사는 곳이다. 그런데 무능한 사람이 자신이 무능하다는 사실을 알면, 웬만하면 큰 사고를 치지 않는다. 인제 큰 사고가 나느냐? 무능한 사람이 자신이 무능하다는걸 모를 때 사고가 난다.
운전 거칠게 하는 사람들이 그런 거다. 차선 넘나들고, 신호 위반하고, 운전하면서욕설을 내뱉고…. 이건 운전을 잘 하는 게 아니다. 열라 못하는 거지!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운전을 매우 잘 한다고 착각을 한다. 그래서 거칠게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낸다.
더닝 교수는 이 연구 결과를 발표한 논문의 앞머리에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의 명언을 인용했다.

"이 시대의 아픔 중 하나는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무지한데, 상상력과 이해력이 있는 사람은 의심하고 주저한다는 것이다.
- P253

사실 GDP는 민중들의 삶이 불편해질수록 높아지는 경향마저 있다. 왜냐고? 출퇴근 거리가 멀어질수록 교통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늘어난 교통비는 모두 GDP에 잡힌다.
국민들의 건강이 악화돼도 병원과 제약회사 매출이 늘어 GDP가 좋아진다. 감기에걸리면 감기약 매출이 GDP를 높이고, 우울증 환자가 늘어나면 우울증 치료제 매출이또 GDP를 높인다.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가계부채도 GDP를 높이는 데 일조한다. 2018년 은행권이 사상 최대의 이자수익을 거둔 바 있는데, 이 수익도 모두 GDP에 잡혔다.
이 수치가 진정 민중들의 삶을 측정할 수 있다는 말인가? 웃기는 이야기다. 그래서스티글리츠 센피투시 위원회‘는 "GDP는 틀렸다"고 단언한다.
민중들에게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돌파는 사실 별 의미가 없다. 이명박은 GDP7% 성장을, 박근혜는 4% 성장을 공약으로 내걸고 그거 달성하겠다며 한국 경제에 오만 패악질을 부리고 떠났다. 하지만 다행히도 현 정부는 GDP 성장률에 집착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당연한 일이고 옳은 일이다. 스티글리츠-센피투시 위원회가 내린 담대한 결론처럼 결국 GDP는 틀렸기 때문이다.
- P260

텍사스 명사수의 오류

이처럼 언론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결론을 미리 정하고, 숫자를 끼워 맞추는 식으로 무슨 짓이든 해버린다. 기거렌처 박사는 이를 ‘텍사스 명사수의 오류‘라는 경제학용어로 설명한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텍사스에 사는 한 카우보이가 백발백중의 사격 솜씨를자랑했다고 한다. 그는 주로 자신의 사격 솜씨를 과시하기 위해 벽에다 대고 총을 쐈는데, 카우보이가 쏜 총알자국이 모두 동그란 과녁 중앙에 딱 박혀 있었다는 거다. 얼마나 사격 솜씨가 뛰어났으면 쏘는 족족 과녁 중앙에 맞췄을까?
그런데 어느 날 명사수의 비밀이 밝혀졌다. 동네 주민이 우연히 명사수의 사격 장면을 훔쳐봤는데 카우보이가 일단 벽에다 총을 한 발 갈기더란다. 그리고 총알이 벽 어디쯤 박히면 그제야 쪼르르 벽으로 뛰어가 총알이 박힌 곳에 동그란 과녁을 그리더란다.
이러니 백발백중일 수밖에 없다. 과녁을 그리고 총을 쏘는 게 아니라, 총을 먼저 쏘고 과녁을 그리는데 어떻게 안 맞을 수가 있나? 사실 이 카우보이는 명사수가 아니라그냥 사기꾼이었다는 이야기다.
〈조선일보>가 하는 짓이 바로 이런 거다. 이들은 통계를 보고 기사를 작성하지 않는다. 어떤 기사를 쓸지 결론을 낸 뒤 그에 맞는 통계를 끼워맞출 뿐이다. 그러니 통계가틀리지는 않는데, 그 기사는 진실과 영원히 결별한다.
- P284

"선생님들, 하나만 여쭤보겠습니다. 사람을 상품으로 사고파는 시장경제에서 선생님들께서 그토록 소중하게 대하는 아이들은 어떤 상품으로 취급받을까요. 잔인하게 이야기하자면, 불량품 취급을 받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게 온당합니까?‘라는 질문을 이 사회에 던져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정말로 불량품입니까?
하나만 더 여쭤보겠습니다. 선생님들께서는 말도 서툴고 몸도 불편한 아이들과 일일이눈을 맞추고 사랑으로 대화를 나눕니다. 그들의 마음을 읽고, 가슴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그러면 그 아름다운 노동은 얼마짜리입니까?
자본주의는 수요곡선과 공급곡선 두개 딸랑 그려놓고 우리의 노동을 돈으로 계산합니다. 그게 노동의 합당한 값어치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그런가요? 선생님들의 노동은 과연 선생님들의 연봉만큼만 값어치있는 노동인가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노동은, 우리가 나누는 눈빛은, 우리가 교환하는 마음은 수요와 공급곡선에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의 노동은 결코 연봉 몇천만원짜리가 아닙니다. 부디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선생님들의 노동은 자본주의가 감히 계산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고 우리가 결코 저버릴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너무나 큰 힐링을 받고 갑니다. 이 힐링은 수 억원을 주고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저에게 따뜻한 위로를 주신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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