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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탐 - 길 내는 여자 서명숙 먹으멍 세상을 떠돌다
서명숙 지음 / 시사IN북 / 2012년 9월
평점 :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하루 세 끼 먹는 일로 연관짓자면, 시간을 흐르는 인생은 먹는 일과 연관짓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열심히 일하다가도 끼니때가 되면 저절로 울리는 배꼽시계에 민감해하고, 사람과의 만남을 먹는 일과 함께 하는 것도 무척 자연스럽다. 그것은 하나의 관계가 되고 삶의 모습이 되고 때로는 인간사회의 사건이 되기도 한다. 먹는 일은 그만큼 중요한 삶의 한 흐름이다. 먹는 일만으로도 한 사람의 인생은 과거의 추억에서 현재의 순간을 거쳐 미래의 바램으로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먹는 일은 좋든 싫든 간의 수많은 내 삶의 모습속에 담겨 있다. 부모님의 호된 꾸중에 눈물을 머금으며 밥술을 떠야만 했던 일이 있었던가 하면, 새로나온 컵라면을 먹어보겠다며 친구들과 온 시내를 반나절동안 돌아다니던 일도 있었다. 어른들의 집안싸움에 결국 엎어져버린 밥상을 보며 입맛을 싹 잃어버린 일도 있었던가 하면, 감기로 인한 신열에 들떠 기운을 차리지 못할 때, 어머니가 떠 주시던 뜨거운 물에 말아 신김치조각을 올려 떠먹여주던 밥술에 입맛을 온전히 되찾았던 일이 있었다. 먹는다는 것은 삶을 표현하고 느끼는 하나의 방법이자, 맛과는 별개로 마음을 차갑게 식히거나 뜨겁게 달구는 주관적이면서도 매력넘치는 행위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저자인 서명숙 올레이사장의 삶은, 그녀가 스스로 말했듯 풍만한 식탐이 함께했던 열정의 시간이다. 삶의 에너지가 요동칠때마다 그녀의 식탐은 언제 어디서건 시의적절하게 작동함으로서 에너지의 요동을 진정시키거나 고갈상태를 채워넣고 과열을 식혀주는 본능적 조절장치로 보여진다. 거기엔 누구나 맛있다는 맛집이야기나, 스스로 자랑할만한 맛있는 요리법이 있지 않다. 맛은 때마다의 상태를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위로하는 음식에 주어지는 평이었고, 요리법은 추억속에 살아있는 사람들의 흔적속에 남아있었다. 그러니까 식탐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맛집이나 맛있는 레시피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위로가 되는 음식과 추억속의 흔적이 주는 아련함이며, 한가지를 더하자면 내가 가진 삶의 재료속에서 최상의 조합을 만들어낼 영감을 제공하는 본능의 촉매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나름 맛집을 찾아 포스팅하는 맛집 블로거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입장에서, 맛에 대한 이야기의 진정성은 바로 이런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맛의 객관적 기준이라는 것이 모호하기도 하지만, 주관성에서도 너무 제각각인 면이 다분한지라, 맛집을 주제로 하는 나의 이야기가 과연 실질적인 무언가를 지니고 있을까 하는 고민이 무척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보니, 식탐이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난 책 안에서 제주의 맛집정보를 기대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내용은 미리 언질했듯이 그런 책이 아니었다. 먹는다는 행위로 표현하는 한 사람의 삶과 흐름, 그 굴곡마다 만난 진정성 어린 음식들.. 난 얼마나 어리석었는가 하는 자책과 맛에 대한 새록한 깨달음이 다가왔다.
'먹는다'는 일은 사람들이 지닌 추억속에 존재하는 비중있는 행위들 중 하나이지 않을까? 그만큼 가장 쉽게 떠올리며 가장 풍부한 감정과 감성으로 말할 수 있는 주제일 것이다. 그런 주제가 구수한 글솜씨를 만나 감칠맛나고 풍부한 삶을 이야기한다. 먹는 일과 연관한 글들은 무수히 많기도 했지만, 제주에 살아서 그런지 현무암 바위위로 부는 습한 바닷바람과 짭짤함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이 글이 더욱 정감있게 다가온다. 그래서 좀 더 정이 붙는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