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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향기 - 머무름의 기술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3월
평점 :
한없이 철학적인 책은 어렵기만 하다. 철학적 사유가 철학적으로만 깊고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말들로 넘쳐난다면, 철학은 스스로 소통을 거부한 꼴이 되는 것이 아닐까. 말의 장벽이 생기면 수없는 말들의 나열은 그 안에서 알아듣는 사람들끼리만의 주고받음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한병철의 책들이 그런 것은 아닐까 싶다. 물론 나의 이해수준이 부족한 탓일지도 모르지만, 그의 사유는 아무래도 일반의 사람들과 소통하기가 무척 어려워보인다. 나는 그의 사유를 이해하고 공유하고 싶지만, 쉽게 다가서기가 매우 어렵다. 처음 접한 피로사회는 사회과학서적들을 조금 읽어본 입장에서 그나마 이해가 가능했다. 하지만, 이 책은 내 머릿속을 뒤흔들다가 결국 거리를 두고 다른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다.
그럼에도 내가 그나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던 부분은 시간의 가속화에 대한 분석과 노동의 이해에 대한 역사적 변화부분이었다. 분주하기만 한 현대인들의 시간은 무척 빠르게 지나가며 축적되는 것 같지만, 지나온 시간의 흔적은 분절화되어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목적도 축적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번잡하게만 여기저기 밟고 지나온 모습들, 그것을 3자적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현대인의 모습은 시간이 존재하는 허공에서 빵빵한 풍선이 바람을 내뱉으며 정신없이 흩날리듯 방향을 상실한 채로 여기로저기로 날아가는 형국일 것이다. 우리가 바쁜 것은 우리 스스로의 보람으로 쌓이지 않는다. 모모가 살던 도시의 사람들이 시간을 절약하려 바쁘게 살지만 시간도둑의 계략으로 허무와 탈진만 남았듯, 우리의 현재도 무언가에 의해 허무와 탈진만 가득하다.
노동을 통하여 인간성의 실현이 가능하다는 말을 저자는 믿지 않는다. 하긴, 시간의 가속화로 허무와 탈진만 남아있는 우리가 그 시간에 하는 일이란 바로 노동이기도 하다. 고대의 인간들은 노동보다 사색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저자도 인간의 역사는 노동할때 발전하지 않았고, 사색을 통하여 발전했다 이야기한다. 노동의 가치를 최고로 만든 것은 프로테스탄티즘이었다. 노동을 통하여 부를 축적함은 하나의 축복으로 여겼으니 말이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를 변혁의 주체로 여기고 노동하는 사람에 혁명의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현재의 노동은 그 시절과는 다르게 스스로가 스스로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형태로 변했다. 저자가 노동에 대한 기존의 철학을 뒤짚고 비판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현재의 노동은 축복과 보람이 아닌 스스로에 대한 또는 누군가에 의한 착취와 예속이 되어버렸다.
휴식역시 그렇다. 휴식이 다음의 노동을 의식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휴식이 아니라 노동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일시적 쉼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에겐 노동을 멈추고 사색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주장한다. 움직임이 자기파괴의 형태를 취하고, 그것이 체계와 치밀함을 지닌다면 일단 멈추는 것이 옳은 것이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사회의 구조와 순환, 그 안에서 노동을 포함한 모든 행동의 의미가 점점 왜곡의 형태로 변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보람과 즐거움을 찾고자 내 스스로 벌여놓은 수많은 오지랖들.. 책을 읽고나니 내가 생각하고 내가 벌인 일들에 대해 다시금 뒤돌아보게 되었다. 사회구조 안에서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본질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일을 나는 현실을 이유로 방조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벌이는 일들이 누군가의 눈에는 바람빠지며 어수선하게 날리기만 하는 풍선의 모습은 아닐지.. 어려운 말들의 나열 속에서 가까스로 찾은 성찰의 순간이었다. 이 책이 피로사회보다 먼저 씌여진 책이라니 이해력이 좀 더 깊은 사람이라면 이 책 이후의 피로사회가 비교적 쉽게 다가올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