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국내에도 나온지 이미 오래된 이 동화를 나는 이제서야 읽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단지 책읽는 일 외의 다른 일에 바쁘거나 관심있거나 했던 내 과거의 한 때에 이 책이 번역되어 발간되었기 때문이다.  단지 노래로까지 인용되어 불리던 이 책의 이름정도는 듣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좋은 책을 뒤늦게 읽는다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에서 일말의 후회를 만드는 일이다.  하지만 이 책만큼은 조금 달랐다.  저자인 미하엘 엔데가 이야기하려 했던, 이 동화속에 배어있는 경제적 관념을 조금 이해하고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용이 아니라 내용에 담긴 의미를 조금 더 알고 이야기를 접한다는 일은 좀 더 깊은 이해에 다가가는 일이다.


  사람들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준다는 신비로운 아이 모모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바쁘기만 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왜 이렇게 바쁘기만 해야하는가를 반문하며 여유로움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권유한다.  자체만으로도 의미심장한 해석과 권유이지만, 이 책이 나오고 40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여유로움에 대한 생각은 커녕 더 바빠지기만 한 모습을 보고 있자면, 우리는 이 동화에서 교훈을 실천으로 이끌어내지는 못한 듯 하다.  의미해석이 너무 피상적이었던 탓은 아니었을까..


  엔데는 이 동화에 경제학적 관념을 녹여놓았다.  물론 주류경제학의 관념은 아니다.  엔데는 실비오 게젤과 루돌프 슈타이너의 경제관념을 말한다.  실비오 게젤은 '돈의 노화론'을 주창한 경제학자이다.  그는 돈으로 산 물건이 시간이 지나며 닿아 없어지거나 가치가 감소하듯, 돈도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감소해야 한다는 이론을 펼쳤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사상가로서 사회라는 유기체를 3분절로 나누어보는 사회삼층론을 세웠다.  그에 의하면 정신생활에서는 자유가, 법생활에서는 평등이, 경제에서는 상호부조의 힘이 기본이념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경제부문은 경쟁이 아니라, 우애의 원리와 사회연대를 기본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모모가 활약하는 세상을 경제학적으로 해석해보자면 주류경제학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일정서류만 만들어지는, 그러니까 실체는 없고 허상뿐인 돈과 그것을 부채로 빌려 갚을 때에는 이자를 붙여야만 하는 채무자들..  채무자들은 바로 우리들이다.  단순교환가치와 건전한 경제순환수단으로서 활용되었을 때, 돈에는 부채도 이자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러니까 모모와 싸우는 회색인간들은 이자들인 셈이고, 회색인간들이 사람들의 시간을 뺏어 훔쳐 자신들의 존재수단인 시간의 꽃으로 보관하는 것은 허상의 돈인 부채인 셈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가치를 혼란속에 오해하고 회색인간들이 만들어낸 부채의 경제순환속으로 빨려들어가 끊임없이 부채를 갚고 이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다.  그 모습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그것을 여유라는 개념으로 설명을 할 수 있었지만, 아무리 일하고 애써도 우리에겐 왜 여유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에는 접근할 수 없는 피상적인 설명일 뿐이었다.  엔데는 그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으로서 경제를 대입하고, 그가 생각하는 돈과 경제의 본질을 실비오 게젤과 루돌프 슈타이너의 이론에 대입하여 제시한 것이다.


  모모는 마이스터 호라 박사에게 질문한다. '만일 시간을 도둑질할 수 없게 된다면 회색인간들은 어떻게 되나요?'  호라박사는 대답한다.  '그러면 원래의 무로 돌아가 소멸되고 말아.'  이만큼 우리가 현재에 처한 경제시스템에 대한 명확한 비유가 있을까.  동시에 이 경제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적어도 매년 3%의 경제성장을 하지 않되면 안되는, 그래서 여유를 포기하고 일해야만 하는 우리의 삶은 그만큼의 댓가를 지불받고 있는 것일까?  허상을 위해 움직이고 결과는 필연적으로 불평등할 수 밖에 없어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의 심화를 낳기만 하는 이 시스템에서, 미하엘 엔데는 모모를 통해 경제관념을 담아 사회에 대해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아니 던졌다.  우리는 그의 질문을 이해했던 것일까?  지금의 사회를 돌이켜보면, 우리는 그렇게 똑똑하거나 용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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