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에 지다 - 상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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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와 명예는 인간에게 어떤 가치를 지니는 것일까?  그것이 때로는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한 인간의 생과 주변의 모든 것을 생각하여 볼 때, 극단의 선택을 가능케 하는 숭고한 이유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일까 생각해본다. 


  사무라이가 활약하던 일본의 과거엔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대의란 무척 많이 존재했었던 듯 하다.  전장터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죽는 것을 포함하여 무사의 정신에 손상을 입히거나 더럽히면 할복이라는 방법으로 목숨을 내놓아야 했으니 소설 속의 내용대로 '목숨 날아갈까봐 뭐 하나 제대로 해볼 수 없을 지경'의 세상이었다.  무사가 스무살 즈음에 어떤 이유로든 죽어나가는 일이 많았으니 서른을 넘기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고보면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은 피어나자마자 꽃잎을 떨구고 죽는 벚꽃에 비유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무리 무사도정신을 강조한 일본의 과거라도 사람사는 세상이었다.  처자식이 있고 행여 가족들이 굶을까봐 걱정하는 아비가 있는 인간사회였다.  대의를 지키는 것이 가족과 자신을 충분히 먹여살리는 일이 아닌 이상, 무사 각자의 고민과 어려움은 생계와 직결될 수 밖에 없다.  칼을 휘두르는 이유가 내가 베지 않으면 상대가 나를 베기 때문임과 동시에, 칼을 휘두르고 인정을 받아야만 처자식을 먹여살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허한 대의보다는 이런 현실적인 이유를 대의로 활약한 상상의 무사 요시무라 간이치로(신센구미에 대한 기록에는 유시무라 간이치로라는 이름의 실제 무사가 등장하지만 그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소설속의 내용은 순전 작가의 상상이었으리라.)의 자취를 따라 나서는 여정이 이 소설의 내용이다.  문과 무에 있어 누구보다도 뛰어난 말단무사 요시무라 간이치로는 계급과 직위때문에 능력과 상관없이 가난의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염치나 체면을 포기하고 욕을 먹어가면서도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대의는 가족에게 있음을 은연중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런 그 앞에서 대의를 내세우고 조직을 이끌어야 하는 다른 무사들 역시 그를 무시할 수가 없다.  가끔씩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접하기도 하지만, 가족을 사랑하는 그의 대의 앞에서 어느 누구도 그것이 무사도정신에 어긋난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메이지유신은 일본사회를 급격하게 변화시켰고 그 변화에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포함된다.  무사도정신을 강조하던 사무라이시대에 쉽게 꺼낼 수 없는 이야기를 엮어나간 것도 메이지유신의 물결을 타고 변화한 시대에 과거의 사람들도 솔직한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칼을 멋있게 휘두르고 무사도정신을 강조하는 부리부리한 눈의 신센구미 사무라이 이야기들이 난무하던 시대에 아사다 지로가 보여주는 인자하고 가족적인 무사 간이치로의 이야기는 소설이거니와 주 흐름과는 조금 동떨어진 독특한 이야기일 수는 있겠으나, 어느 시대 어느 순간에도 사람들이 저마다 생각해야 하는 것은 다양하면서, 그 안에서 각자의 대의는 어디에든 둘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저마다 처한 현실상황이 각자의 대의를 만들게 할 수 있음도 보여준다.  벚꽃처럼 피자마자 떨어져 죽어야 했던 사무라이의 세상에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현실이 있고 그 현실을 헤쳐나가는 데, 무사도라는 대의는 많은 무사들에 있어 쉽게 거부할 수 없으면서도 생의 순간순간 거추장스럽기만 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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