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잡히는 구약 개론 손에 잡히는 구약.신약 개론
트렘퍼 롱맨 3세 지음, 김동혁 옮김 / IVP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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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하십니까? 박카스~! ^^ 이런 광고 방송 잘 아시죠? 자양강장이란 말은 영양을 보충하여 몸을 활성화시켜 에너지 곧 스테미나를 돕는다는 뜻입니다. 지내다보면 이런 자양강장제가 필요할 때가 있죠? 할 일은 많은데 체력은 떨어질 때, 이럴 때 자양강장제가 필요한 시점이죠~! 보통 인위적으로 자양강장제를 먹을 때 구론산이 들어있는 음료를 마시죠. 일종의 각성제 같은 효과를 내는 것 같습니다. 심리적인 효과는 있는 것 같구요. 어쨌든 박카스 하나 마시고 나면 좀 더 힘이 나는 듯하니까요~! ^^

...

이 책은 참 짧습니다. 구약은 분량이 방대합니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역사책, 이 책에서는 쓰는 말로 "신학적 역사"가 많습니다. 읽다보면 재미있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방대한 분량 때문에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기도 하지요. 그러나 <손에 잡히는 구약 개론>은 딱 손에 잡히도록 각 성경을 짧은 이야기로 너무도 잘 풀어주고 있습니다. 지혜문학의 대가인 구약성경학자 트렘퍼 롱맨3세의 이 책의 장점을 저는 무엇보다 각 책의 요약된 이야기라고 하겠습니다. <손에 잡히는 신약 개론>에서는 좀 인위적인 느낌, 그러니까 너무 논리적으로 반듯하게 잘라나서 읽는 맛이 안났는데... 이 책은 잘 씹힙니다. 꿀꺽꿀꺽 넘어갑니다. 그래서 제가 자양강장제라고 이름 붙여봤습니다. 그뿐 아니라 각 책에 누가, 언제, 장르, 복음과의 연관성을 너무도 짧지만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어 참 좋습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개인적으로는 <손에 잡히는 신약 개론>보다는 <손에 잡히는 구약 개론>이 낫네요~! ^^(구관이 명관입니까? ㅋㅋ)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하고 와서 읽는 구약은 더욱 재미가 납니다. 각 책들마다 최근의 연구까지도 적절하게 잘 조합해두고 있습니다. 아가서 같은 경우 여러 연애시들의 선집이라는 관점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입장이지만 이러한 다양한 관점까지도 제공해줍니다. 각 책을 볼 때 그 파트만 참고해도 좋습니다. 한 파트 읽는데는 10분 정도면 충분하니 이 얼마나 경제적입니까! 거기에 재미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자양강장제 아니겠습니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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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잡히는 신약 개론 손에 잡히는 구약.신약 개론
D. A. 카슨 & 더글러스 무 & 앤드류 나셀리 지음, 안세광 옮김 / IVP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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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표준전과, 동아전과 세대이다. 교과서에 있는 문제의 답을 알고자 할 때 필요했던 것이 전과이다. 그뿐 아니라 국어과목같은 경우에는 모르는 단어들에 대한 설명들이 있는 것도 전과였다. 그래서 전과 하나면 공부가 끝나는 지점이기도 했다. 그만큼 그 당시에는 전과가 중요했다.

 

여기 신약에 대한 좋은 참고서가 있다. 제목도 좋다. <손에 잡히는 신약 개론>이다. 공관복음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 양식비평이니 자료비평이, 편집비평이라는 말에 대한 설명부터 해서 각 복음서에 대한 개론을 다루고 있다. 무슨 내용이 있는지를 쉬운 말로 풀어주고 있으며, 최근의 연구까지 이르는 저자와 기록 연대, 대상, 동기, 가치 등을 다룬다. 서신서에 대한 전반적인 부분을 한 파트로, 사도 바울에 대한 부분 또한 한 파트로 옆에 두고 그 부분을 공부할 때 참고할만한 좋은 참고서이다. 이 책 하나면 최근의 연구에 대한 손쉬운 참고서를 가지는 셈이다. 책도 얇다. 두고두고 볼만한 참고서이다. 쉬운 말로 되어 있으며, 접근도 용이하다. 또한 저자들이 최근의 연구에 있어서 문제가 되는 부분 또한 짚어주며 이에 대한 입장도 표명한다. 분명히 초등학생을 위한 것은 아니다. 보다 깊이 알고자 할 때 입문용으로 좋은 대학생용 정도 되는 책이다. 깊이 있지만 한 손에 들어오는 신약에 대한 좋은 참고서 하나 가지고 싶다면 적극 추천이다. 그렇고 그런 참고서보다 제대로된 참고서이다. 깊이있게 성경을 보길 원하는 독자에겐 딱이다. 가격도 저렴하다. 11,000원. 저자도 신약에 있어서는 권위있는 D. A. 카슨.

 

이런 좋은 참고서는 옆에 하나 두고 있어야한다. 그저 내용만 정리된 것 말고, 좀 더 깊이있게 보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깊이있는 참고서. 말씀에 대한 깊이를 더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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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하나님의 주권 - 롬 9:1-11:36 복음주의 설교자 존 파이퍼의 로마서 강해 시리즈 5
존 파이퍼 지음, 주지현 옮김 / 좋은씨앗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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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장에 대한 강조는 아무리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로마서 9장부터 11장은 어떤가? 나는 이를 로마서 12장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정도의 역할로 이해했다. 그러나 존 파이퍼는 그러한 나의 이해를 사정없이 깨뜨려버렸다. 자신이 어떻게 신학자에서 목회자로 인도함을 받게 되었는지, 아니 목회의 길로 부르심을 확신하게 되었는지를 책 시작부터 알려준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의 간증은 나에게도 항복을 권유하는 권유로 들렸다. 하나님께 항복하라고 말이다. 협상하지 말고, 다른 것들과 같이 섬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항복하라고 말이다. 그러한 항복의 권유가 이 책에 알알이 박혀있다. 주의하라, 이 책은 당신을 항복시킬 것이다. 

첫째로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항복하라. “만물을 대하는 사고체계에 대반전을 겪고 사역으로의 인도하심을 받는 과정에서, 로마서 9장은 제게 가장 중요한 성경 본문이 되었습니다.”(13쪽), “'로마서 9장은 나 같은 자유의지주의자들을 집어삼키는 맹수와도 같다.’ 인간의 자율성과 의지를 향한 궁극적 자기 결정권과 함께했던 나의 애정 행각이 종결되는 시점이었습니다.”(15쪽) 그러면서 그는 그가 따르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기록 또한 인용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고백 또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구원과 멸망에 있어서, 적어도 가끔은 내 마음이 평안을 느끼고 내 눈으로 보는 것만큼이나 안심하게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공의를 받아들일 때다.”(18쪽), “경건한 자들이 하나님에 의해 최종적으로 버림받은 자들을 향해 품는 감정에 대해 말하자면, 하나님의 사랑이 이를 온전히 삼켜 버릴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것을 멈추게 할 것이다.” 이 속에서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구원, 곧 열방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삭을 통한 구원, 에서보다 야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의 교리'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이해하게 되는 도구입니다. “믿음은 칭의의 조건이지만 선택의 조건은 아닙니다. 선택은 무조건적입니다.”(91쪽), “우리 인생의 의미를 보증하는 최고의 확신은 하나님의 목적이 서게 되리라는 것입니다.”(93쪽),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인생은 열매 없이 끝나지 않습니다.”(135쪽)(개인적인 아멘~!, 이 부분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아멘이 나오더군요^^), “하나님의 의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에 대한 확고한 헌신입니다.”(105쪽)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한 이해, 그 무조건적 선택은 우리를 향하신 은혜이자, 이 땅에서 하나님만을 믿고 살도록 이끄시는 선물이죠. 그래서 저는 이 하나님의 절대주권 앞에 항복하게 됩니다. 저자가 인도에서 만나 설교를 통해 진리의 말씀에 감사하다던 한 젊은 여인(열네 살이 될 때까지 스물한 번의 수술을 받았고, 고등학생 때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며, 이후 결혼하고 네 번의 유산, 두번째 아이는 태어난 지 두 달만에 남편의 품에서 죽었다)의 편지는 나를 숙연케 합니다. “저는 인생을 걸어오면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 없이 일어나는 일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121쪽) 아멘. 

두번째로 하나님의 영광에 항복하라. 조나단 에드워즈 전문가여서 그런지 존 파이퍼의 글을 읽다보면 마치 하늘의 영광에 사로잡힌 자가 그 영광을 우리의 언어로 풀어주는 듯한 황홀경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땅의 삶 가운데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새롭게 다짐하게 되죠. 그래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자 하는 마음, 그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고 싶은 욕심을 갖게 해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영광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저자는 이렇게 일러줍니다. “하나님을 깊이 개인적으로 알고 싶다면 그분의 방식대로 알아가야 합니다.”(291쪽), “모든 역사는 무한히 영화롭고 가장 신비로운 예술가의 손으로 그림이 그려진 캔버스입니다. 그림의 핵심은 하나님 영광의 계시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이것이 역사의 핵심입니다.”(294쪽) 그뿐 아니라 우리는 이를 전해야합니다. “어린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복음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자주 얘기해주고, 잘 얘기해주십시오. 인내하며 기도하십시오. 아멘.”(189쪽) 이러한 영광에의 항복은 현대의 기만적이며 오만한 태도를 꺾어버리며 우리의 구원이 전적인 은혜인 것을 다시 일러줍니다. “바울이 여기서 대비시키고 있는 것은 행위와 ‘은혜’지, 행위와 ‘믿음’이 아닙니다.”(309쪽) C. S. 루이스의 글을 인용하며 “하나님은 피고석에 앉아 계시다는 점”(325쪽)에 대해 그는 “무조건적 선택이란... 하나님의 의지입니다.”(318쪽)이라고 결론 짓습니다. 이방인의 구원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시기나도록 하며, 이방인 또한 이스라엘의 뿌리를 통한 구원으로 인한 겸손, 또한 이를 통한 이스라엘의 구원과 온 땅의 구원을 설파하면서 그가 전달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 앞에 항복함으로 갖는 겸손입니다. “무조건적인 선택으로 시작되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 교리를 보듬어안고 더불어 이 교리의 품에 깊숙히 안길 때 가장 먼저 급진적으고 위험을 감수하는 희생적 사랑이 나타납니다. 그러고 나면, 이 아름다움을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낸 것 아니고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진리를 깨닫고 기뻐할 줄 아는 겸손을 배우게 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328쪽) 나 역시 겸손을 배웁니다.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할렐루야~!

세번째로 하나님의 깊이에 항복하라.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롬11:33) 11장의 말미에 있는 이 구절이 여기에 있는 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구원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무조건적 선택 교리를 통해서 이르는 저수지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깊이였습니다. 저자는 이 깊도다의 의미를 1)말로 할 수 없는 은밀함 2)객관적 실체 3)궁극적 기초로 풀어줍니다. 그 자세한 내용은 책에서 경험해야할 것입니다. “지식이란 사실에 대한 인식이고, 지혜는 선한 목적을 위해 그 사실을 사용하는 방법에 관한 인식입니다.”(474쪽)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더 알아가야할 것입니다. 그런 이후에 하나님이 이루신 그 지혜 또한 깨달아야할 것입니다. 그 풍성함을 경험하게 되니까요. “결국 하나님의 지혜는 십자가에 못 박히고 다시 살아나 다스리시며, 유대인에게는 거치는 돌이요 이방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부름받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고전1:23-24).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길이요, 하나님의 진리요,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그분의 모든 것의 지혜로운 목표와 목적이십니다.”(476쪽) 저자의 깊이에 탄복하면서, 나의 연구의 미천함과 말씀 전함에 있어서 천박함에 맞닥뜨립니다. 그래서 더 하나님을 알아가고자 합니다. 그 하나님의 깊이를 더욱 알고 싶어집니다. 이 책은 나를 더 깊은 저주지로 인도해줍니다. 

갈릴리 앞바다가 바라다보이는 성지순례 일정 가운데 이 책은 내 마음을 뜨겁게 하는 또 다른 도구가 되었습니다. 내가 무엇에 항복하고 살지를 책의 뚜게만큼이나 묵직하게 일러주는 책입니다. 두 손들고 이 아침에 찬양을 돌리게 되네요~!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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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 10 - 자유로운 삶으로 초대하는 십계명 탐구
숀 글래딩 지음, 임고은 옮김 / 죠이선교회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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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때 일이다. 내가 출석하던 교회는 주일을 정확하게 잘 지키길 원하셨다. 그리고 실제로 주일이면 어느 부서든, 누구든 주일학교 간식을 사거나 허투로 돈을 쓰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토요일 밤 12시가 되면 공부하던 것도 멈추고, 주일 밤 12시가 되면 공부를 시작해야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였으니...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공부하는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가 공부도 잘 하고 좋은 대학에 진학했기에 오히려 그 말은 우리 속에 영향력이 더 커졌고, 때론 죄책감을 주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청년 시절을 보내면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주일 성수는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지 회의감이 들 때가 자주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일이 안식일이 되지 않고 더 많은 일들로 분주한 청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주일은 더 많은 일과 사역으로 안식할 수 없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때에 만났던 아브라함 헤셀의 <안식>과 마르바 던의 <안식>은 내게 안식일의 의미를 새롭게 또한 분명하게 되새기도록 도와주었다. 이를 통해 나는 꼭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지 않아도 괜찮았고, 오히려 예배가 갖는 의미를 멈춤이라는 의미 속에서 하나님께 맡김으로 되새김질 할 수 있었다. 또한 주중에 하나님과 함께하는 진짜 안식의 시간을 보냈다. 내가 속한 교회와 교단이 그렇게 강조했던 ‘주일 성수’는 사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그 십계명의 말씀의 현대편 해석인 셈인데, 이 계명이 내게 새롭게 와닿았던 것이다. 이런 것이었다면 왜 좀 더 우리가 알아듣도록 설명해주시지 않으셨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소위 말하는 온고이지신이 되지 않은 것이다. 옛 것이 무슨 의미이고, 왜 그렇게 의미가 있는지, 좋은 전통은 젊은이들에게 그들의 언어 감각으로 새로이 설명되어야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십계명의 명령을 ‘온고이지신'해주는 책이다. 지금의 문화에서 십계명은 어떻게 이해되어야하는지를, 그리고 그 십계명이 현대에도 아주 유용하며 필요하다는 것을 지금의 언어로, 특별히 ‘이야기'로 잘 풀어낸다. 이 책의 원제목이 <TEN: Words of Life for an Addicted, Compulsive, Cynical, Divided and Worn-out Culture>이다. 거칠게 번역해보자면 <십계명: 중독적이고 강박적이며, 냉소적이고 분열되어 지친 문화 속 삶을 위한 말씀들>! 책은 커피숍에서의 10주에 걸친 십계명을 두고 벌어지는 토론의 장이다. 이는 마치 존이라는 목사님의 설교를 위해 도와주는 커피 타임인 셈이다. 그 속에는 믿는 이도 있고,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반기독교적 성향을 가진 이도 있으며, 은퇴한 법학교수에서 집사, 알코올 중독 경력의 소유자, 중년 여성, 여고생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월요일 아침에 커피숍에서 만나 자유로운 이야기를 나누는 장이 된다. 이는 마치 교회 밖의 또 다른 교회,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영적인 나눔까지 이어지며, 삶의 고민들까지 상담이 되어지는 ‘일상교회’(팀 체스터와 스티브 티미스의 책 제목, IVP)의 한 모습처럼 보여진다. 그들이 토론하는 주제도 십계명을 순차적이 아닌 제10계명으로부터 역순으로 제1계명까지 전개된다. 이러한 주제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현대적 삶에서 십계명의 위치와 이에 대한 적용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챕터별 제목도 '시기에서 만족으로/ 제10계명', '기만에서 진실됨으로/ 제9계명', '절도에서 관대함으로/ 제8계명', '배신에서 신의로/ 제7계명' 등 읽고 싶게끔 너무나도 잘 조율된 현대적 번역을 이루어냈다. 그 구체적인 그 한 예를 제시하자면 '기만에서 진실됨으로/ 제9계명(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파트에 등장하는 SNS와 관련된 부분이다. “친구의 약점이나 실패담이 페이스북에 올라오면, 친구만이 함께 아파해 줄 수 있는 걱정거리가 아닌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는 것이 되니까요. 간단히 댓글을 남기거나 ‘좋아요’를 표시할 대상이 되는 겁니다. 세상에, 좋은 일도 아닌데 ‘좋아요’라니요!”(88쪽) 이처럼 읽다보면 좋은 인사이트들이 참 많다. 이야기를 읽어가다보면 자연스럽게 빨려들게 하는 힘이 있다. 반면에 일반 소설처럼 그렇게 속도가 잘 붙지는 않는 면 또한 있다. 십계명을 현대적 해석으로 잘 풀어내서 우리에게 이야기로 풀어주는 작가의 역량이 대단하다. 일독을 통해 십계명을 새로이 되새김질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 적용해보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겠다.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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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하나님은 어디 계셨는가 - 세월호와 기독교 신앙의 과제
박영식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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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은 거짓말을 하거나 잠을 자거나 질병에 걸릴 수 있는가? 신은 죽을 수 있는가? 2) 또한 신은 네모난 삼각형을 만들 수 있는가? 아니면 신은 자신이 들 수 없는 무거운 돌을 만들 수 있는가?”(159쪽)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고는 왜 일어났는가?", "그 때 왜 다 구조하지 못했는가?"… "아니 다는 아니더라도 왜 최선을 다해 대처하지 못했는가?" … 질문은 질문을 낳고, 아니 끊임없이 쏟아지는 내 속의 회의는 이 땅 한국에 대한 회의이자, 한국 땅의 지도자들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질문의 날끝은 내게 다시 향한다. "너는 뭐했는가?"고… 할말이 없어진다. 그렇다면 "그날, 하나님은 뭐하셨나요?"라고 되묻는다. 회피이자 책임전가, 또 다른 희생양을 찾는 노력인가? 아니다. 정직한 질문일 따름이다. 삶에 대한 애정이 있기에 묻고 또 묻는 것이다. 그러한 질문의 대답으로 이 책이 나왔다.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삶의 고통, 고난과 악의 문제, 그리고 악한 자들의 형통함과 그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께 묻는다. 저자는 이 책을 그러한 관점에서 풀어낸다.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학살과 관련한 이야기,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한 이야기… 삶에는 무수한 고통과 악의 문제가 난무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을 요구한다. 그러한 부분에 우리는 쉽게 “하나님의 뜻이 있지~!”라는 대답에 벌써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던가! 그 쉬운 질문과 응답 과정 가운데 전통적인 신학의 답변에 문제가 있음을, 우리가 너무도 쉽게 대답하는 그 대답에 무리가 있음을 경험한다. 그래서 이에 대한 신학적 고찰과 응답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한 지난한 과정을 거치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이해하는 과정이자, 이 땅의 삶에 대해 겸허해질 수 밖에 없는 신학의 자리임을 이 책은 담담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하면서 우리 끊임없이 다시 묻게 된다.  

저자는 하나님의 전능을 약함의 신학으로 풀어내며, 전통적인 신학적 답변의 한계와 아쉬움을 대신한다. 그런 속에 하나님의 전능의 개념을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과 결부시킨다. “아들과 함께 즐겁게 놀기 위해 스스로 약해지고 무능해질 수 있는 아빠야말로 위대한 힘을 지닌 아빠가 아닐까?”(126쪽) 전능하시기에 오히려 약해지실 수 있으며,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빌2:5)를 입고 그 죄를 대신하신, 그리고 아들을 주시고 그 아들의 죽음을 묵묵히 지켜보신 그 분. 그러하기에 당신은 우리의 고통 가운데도 함께하실 수 있으심을… 그 약함의 신학은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하나님을 가까이 계시며 여기 계시고 또 위로받은 내가 또한 그들과 함께 있어줄 수 있음을, 그 능력을 덧입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그저 하나님의 전능과 신비에 맡겨드리는 ‘침묵'과 ‘공감'임을 말한다. “침묵이 하나님의 위로와 답변을 기다리는 시간이라면, 공감은 고통당하는 사람 앞에서 실제로 나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너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고 나아가 우리 자신의 고통이 되는 사건, 그 속에서 고통당하는 자는 홀로 남겨지거나 버려지는 더 지독한 고통에서 해방되어 우리라는 삶의 공간으로 나올 수 있다.”(118-119쪽) 그래서 신학의 위치는 다시 정립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이 땅의 신학은 대답의 신학이 아닌, 이 땅에서 신음하며 고통당하는 자들의 질문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질문하고, 또한 하나님께 묻는 질문의 신학이어야 한다.”(140쪽) 그리고 그 신학의 자리에 있어야할 것이 하나 더 있으니 ‘기도'이다. 책 속에 저며든 저자의 기도문을 또박또박 나의 기도로 되내어본다. 

“하나님의 영이시여, 세월호 안에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자들과 함께하셨고, 또한 그들을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셨던 성령이시여, 지금 여기서 고통당하는 자들을 위해 또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해주소서. 성장 예수 그리스도시여, 홀로 버려지는 아픔을 아시는 주님이시여, 십자가에서 버림받아 고난당하는 자의 모습으로 고통당하는 자들의 손을 꼭 잡아주소서. 성부 하나님이시여, 저항하고 항변하는 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소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실 하나님, 저들을 당신의 품에 고이 안아주소서. 저들을 기억하는 가족과 친지에게 무한한 위로와 용기를 주소서.”(1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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