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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아리차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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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좋아하는데~
맛이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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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나폴리 4부작 4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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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앨범을 펼치면 
-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 제4권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를 읽고서 

청년 시절 즐겨듣던 한 ccm 가수의 앨범에 적혀 있던 소개글이 생각난다. 한 사람의 앨범을 펼치면 그 사이로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다. 누구든 그 사람의 추억과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산다.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4부작의 제4권을 읽으면서 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나폴리를 동경하게 되었고, 이탈리아를 새롭게 보게 되었다. 또한 두 사람의 우정을 통해 벌어지는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의 우정과 커가면서 사랑하고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성공하고의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개인의 역사가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이야기에 몰입되었다. 엘레나 페란테의 이야기는 마치 누군가의 일기를 훔쳐 읽는 듯이, 또한 지난 시절을 회고하며 인생의 허무함과 그 속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나름의 소소한 깨달음을 섞어놓은 묵상집처럼 그렇게 밤새 들려주는 할머니의 옛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래서 좋았다. 

나의 인생을 돌아보게 해주는 이야기. 작가는 이를 그의 이름이 적힌 끈에 묶여있는 자루로 묘사했다. “이름 하나에 딸린 이야기가 너무 많아.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이름이란 결국 피와 살과 말과 똥과 하찮은 생각으로 가득 찬 자루를 묶고 있는 끈에 불과해.”(639쪽) 작가는 그러한 그 이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1권에서 사라진 늙은 할머니가 된 친구 릴라는 어딘가에 살아서 또 다른 일을 꾸미고 있다는 마치 미션 임파서블의 주인공 마냥 세계 어느 곳에서 있는 듯이 묘사하며 끝이 난다. 그 부분이 궁금해서 달려왔던 이야기는 레누의 인생을, 릴라의 인생을, 그리고 니노의 인생을, 그리고 엔초의 인생을… 일일이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여러 인물군상들의 삶의 굴곡과 비화들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우리네 인생은 어떠한지 생각해보게 한다. 한국보다는 훨씬 일찍 사상적인 부침을 겪은 이탈리아를 통해서 혁명과 정치의 문제를, 또한 페미니즘으로부터 동성애에 대한 사상의 문제를, 산업화와 지진과 컴퓨터와 글로벌화로 인한 변화를 이야기한다. 그런 역사를 살아낸 이야기를 결코 짧지 않은 4권의 책으로, 그러면서 그 중년의 이야기로부터 노년의 이야기를, 일부일처제의 일탈을, 이혼이 일상화되는 현실을, 성의 자유화를, 교육과 자녀문제를 보게 된다. 어떤 때는 놀라고 어떤 때는 작은 미소를 띄우면서 어느 덧 사춘기를 맞고 있는 우리집 첫째가 떠오르고, 우리 집안의 분위기가 상기되면서…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할머니까지 아우르는 나의 이야기가 겹쳐졌다. “글을 쓰려면 삶의 의미가 될 정도로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해.”(638쪽)라고 릴라의 입을 통해 말하는 작가의 말은 작은 울림으로 퍼졌다. 그래서 그런지 이야기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된다. 

레누는 글로 삶을 살아가지만, 릴라는 행동으로 삶을 살아간다. 그들의 삶이 서로 얽히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우리 삶을 수놓는 글과 행동의 관계를 생각케한다. 글을 잘 쓴다고 삶이 좋은 건 아니다. 행동으로 구원을 이루려고 했던 릴라와 글로 구원을 이루려고 했던 레누.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는 어쩌면 발전과 개발로 커져가는 지구 문명에 대한 반추인지도 모르겠다. “지구라는 행성 자체는 거대한 석탄 웅덩이야.”(628쪽) 마지막 장에 펼쳐지는 나폴리 지역에 대한 설명은 내가 살아가는 지구 도시 부산을 새로이 반추하게 해주었다. 그 속에 담긴 역사… 삶… 그리고 글, 행동… 그러나 여전한 삶의 역설들. 그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반기고 또한 적절한 거리를 두고 멀리하며 그렇게 살아간다. 두 친구의 우정은 우리네 삶이 펼쳐내는 삶의 너저분한 불꽃들의 향연의 역설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순간 임마의 눈에서 불꽃을 보았다. 그 불꽃은 임마가 조금 전에 제 아빠에게서 본 것이었다.”(567쪽) 그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우리의 삶이 너저분할지라도 우리의 불꽃을 피우면서 말이다. 각자의 앨범을 펼치면 쏟아질 그 많은 이야기들을 간직한 채. 우리가 잃어버린 아이는 어쩌면 우리 속에 사그라드는 불꽃은 아닌지. 분주함과 헛된 욕망으로 다 피워내지 못한 불꽃의 이야기는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라진 아이 티나의 이야기는 또 다른 곳에서 불꽃을 피우고 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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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나폴리 4부작 3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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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성(Formation)과 변화(Transformation)를 위해


왜 제목이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일까? 책을 읽어가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600페이지(정확하게 603페이지)를 넘는 소설책을 이렇게 재미있게 읽을 수도 있구나! 레누와 릴라의 우정이면서도, 이탈리아 외곽 나폴리의 한 마을에 대한 이야기이며, 또한 이탈리아의 1960년대와 70년대 변화와 격동의 시절을 살아낸 두 중년의 이야기이자, 인류 역사의 큰 변화의 틈바구니 가운데 처절하게 반응하는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작가는 이러한 연결점에 대한 깨달음으로 3권을 시작한다.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나는 그때 내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현실은 길이가 길어질수록 고리가 커지는 사슬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향 동네는 나폴리와, 나폴리는 이탈리아와, 이탈리아는 유럽과 유럽은 전 세계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제 나는 생각한다. 병든 것은 우리 고향 동네가 아니라, 나폴리가 아니라 지구 전체다. 유일한 우주 또는 무수히 많은 우주가 모두 병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조차 사물의 본질을 숨길 줄 아는 능력이다."(22쪽) 그런 가운데 한 명은 고향인 나폴리를 떠나가고, 한 명은 끝까지 나폴리에 남는다. 왜 그랬을까? 이 책의 묘미는 끊임없는 반전의 깨달음 가운데 있는 듯하다. 그러한 깨달음들이 그 순간에는 참 대단한데… 더 큰 관점에서 보면 시원찮게 보이는 묘미. 


레누는 고향인 나폴리를 떠나가고, 릴라는 끝까지 고향 나폴리에 남는다! 릴라의 대답에서 실마리를 찾는다. “너는 강하잖아. 나는 그렇지 않아. 너는 고향에서 멀어질수록 네 자아를 되찾고 행복해하지. 하지만 나는 큰길 입구에 있는 터널만 지나도 두려워. 예전에 함께 바다를 향해 가는데 비가 왔었던 때를 기억해? 우리 중에 누가 계속 가려고 했고 누가 돌아가려고 했는지 기억해?”(241쪽) 둘은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너무 밀접하게, 또한 서로 의존적이면서도 서로 밀어내고, 또한 서로 사랑하면서도 서로 질투하며, 각자의 삶을 살지만 서로 돕는 관계로, 때론 또 다시 자신을 찾아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이들의 관계 속에는 인간 관계의 모든 역학이 똘똘 뭉쳐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그들은 다르다. 릴라는 2권에서 먼저 동네의 부자인 스테파노와 결혼했다. 그러나 그것은 가난은 떨쳐냈는지 몰라도 여성으로서의 존중도, 인간으로서의 자기 정체성도 없는 삶으로 인도했다. 끊임없는 스테파노의 폭력 가운데 그녀는 니노와의 일탈을 택했고, 결국 그것마저 수포로 돌아가면서 엔초랑 니노의 아이 젠나로를 데리고 더 가난하지만 존중과 신뢰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이는 또 다른 가난과 노동의 현장 속에서 변화를 맞이하고, 또 다시 고향마을로 돌아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 반면 3권에서의 주인공이라 할만한 레누는 고향을 떠나와 피사에서 공부 이후 책을 내고, 그 인기 가운데 피에트로와 결혼하면서 작가로서의 성공과 새로운 변화를 만끽한다. 그녀 역시 가난을, 고향집을, 과거를 떠나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레누의 삶 역시 두 자녀의 출생과 함께 반복되는 일상 속으로 한 어머니이자 아내라는 익명의 존재로 침몰해버린다. 그런 이후 니노를 다시 만나게 되고 새로운 변화가 생긴다. 릴라가 정해진 범주 안에서 익숙함 가운데 새로운 시도를 파격적으로 추구한다면, 레누는 정해진 범주를 넘어서서 익숙한 안정 가운데 새로운 변화를 추구한다. 그들은 다르지만 변화를 추구하고, 그 변화를 통해 자라가며 인생을 배워간다. 그래서 그들은 떠나가지만 남아있고, 남아있지만 떠나가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한 연결이 서로를 길들이며, 서로를 동경하고,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며 서로를 존중한다. 


무엇으로부터 떠나감이며, 무엇에 머무름일까? 나는 격동의 이탈리아 역사 속에 지성과 노동운동, 파시스트와 공산당의 접전이라는 상황 속에서 이율배반적인 관계의 실타래를 본다. 파시스트이지만 결국 죽게되는 파스콸레, 한때 이스키아 섬에서 젊음을 함께 누렸지만 부당한 공장주인 브루노, 친구였지만 스테파노의 정부가 되어 릴라를 쫓아내게 하는 아다, 레누의 대학초 남자친구이자 노동운동가인 프랑코, 고등학교 선생님이지만 딸 나디아로 인해 레누를 질투하는 길리아니 선생님… 많은 인물들은 또한 한 공간을 떠나가며 한 공간에 머무른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떠나가며, 또한 머무르는가? 레누가 릴라를 책임지고, 햄공장에서의 일들을 도와주고 해결해주는 장면에서는 어떤 희열을 느꼈다. 릴라가 그의 아들 젠나로를 맡길 때, 레누가 두 아이로 힘들어하면서도 기꺼이 맡아주는 장면에서도 우리 관계의 역학, 우정 속에 깃든 미묘함과 복잡다단함을 느낀다. 그렇게 책임져주지만 그 속엔 말로 다 표현못할 부분들이 곁들여져 있다. 그렇게 살아간다. 그렇게 둘은 만났다가 헤어졌다를 반복하면서 얽혀있고, 서로를 궁금해하며, 서로를 동경하고, 서로를 돕지만 또한 각자의 삶에 고군분투하며 살아간다. 그러한 가운데 이들이 이루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그것은 그들의 삶이 어느덧 결혼 이후 성취와 공허, 만족과 불안 가운데 살아가고 있음을 본다. 그 삶은 자신들이 어릴 때부터 꿈꿔 왔던 자신됨의 형성(formation)에 있다. 자아의 형성, 삶의 형성, 관계의 형성 말이다. 그러나 그 형성 과정 속에는 끊임없는 변화(transformation)를 수반한다. 그 변화는 자신이 바랬던 것이기도 하지만, 관계의 역학도 있고, 그들이 지냈던 과거로부터 떠나고 싶어하는 격리, 부정의 욕구도 있다. 한편으로 시대적인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는 것과 내가 변화하는 만큼 내 옆의 사람들도 변화하기에 떠나지 않고 그 자리를 맴돌며 새로운 깊이의 추구와 개혁의 욕구도 있다. 전자로서 과거로부터 격리, 부정의 욕구가 레누의 감정이라면, 후자로서 깊이의 추구와 개혁의 감정은 릴라의 감정이다. 레누는 형성과 변화를 위해 고향을 떠난다면, 릴라는 변화와 형성을 위해 고향에 머문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는 나폴리의 역사가 된다. 밖으로 나도는 이야기는 외연을 확장하고, 안으로 맴도는 이야기는 내면으로 깊어져간다. 변화는 밖으로 나갈수록 안과 연결되며, 안의 변화는 결국 밖의 변화가 내부로 들어온다. 그러한 변화가 릴라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컴퓨터 언어를 배움으로 외부의 변화를 나폴리 안에서 경험하고, 레누는 소설을 쓰면서 내면으로 파고들지만 끊임없이 나폴리 밖으로 나돈다. 어쩌면 이러한 떠나감과 머무름은 어쩌면 우리 인생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배움의 과정은 아닐까! 인생을 배워가는 과정 속에 우리는 형성과 변화를 경험하는 것이다. 이 소설의 묘미가 끊임없이 자신의 관점을 뒤엎는 관점이 제시되는 데 있다. 그러한 가운데 새로운 형성이, 변화가 이루어지며, 또 다른 변화로 이어진다. 인생을 압축적으로 본다면 나의 형성과 변화는 어디쯤 있을까? 나는 어디를 떠나왔고,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가? 나폴리를 배경으로 한 대하서사극 속에서 괜스레 나폴리 그 동네로 여행을 가고 싶어지는 것은 이러한 머뭄과 떠나감 속에 일어나는 형성과 변화의 이야기가 펼쳐졌던 공간을 보고 싶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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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나폴리 4부작 2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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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동인은 무엇일까? 


  우리 삶에는 삶의 동인이 있다. 나름의 삶의 동기를 갖고 산다. 어떤 이는 두려움으로, 어떤 이는 성취를 위해. 어떤 이는 또한 불안을 떨치기 위해서, 그리고 어떤 이는 책임감으로. 다양한 삶의 동기가 있다. 책을 보면서 그러한 생각을 했다. 릴라의 결혼식 이후의 이야기를 펼쳐내는 2권은 릴라와 레누의 결혼 이야기이자, 그들의 청년기이기도 하다. 릴라는 임신을 했다가 유산, 식료품 가게를 새로 맡게 이야기, 레누는 릴라의 결혼식 이후 안토니아와 친밀해지지만 헤어지고, 소홀했던 공부에도 다시 열심을 내며 갈리아니 선생님의 파티에 초대받고서는 새로운 삶의 동인을 얻게 된다. 레누는 그런 그의 삶의 동인을 작가는 이렇게 표현한다. “릴라의 결혼식 이후에 시작된 기나긴 정체기가 끝났다는 것을 나는 갑자기 깨달았다.”(215) 레누의 삶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가난이라는 누더기는 그의 삶에 수시로 등장하지만, 그래도 그는 끊임없이 공부와 의식, 깨달음 등으로 나아간다. 반면 릴라는 결혼 이후 막다른 길로 접어든다. 그가 기대했던 결혼이 아니었음을, 깨고보니 자신이 여기까지 왔는지 스스로도 받아들이기 힘든 자신의 결정들을 보게 된다. 절정은 새롭게 오픈하는 구둣방에 전시되는 자신의 만삭이 사진에 저지르는 일종의 자해와 같은 퍼포먼스로 드러난다. “… 릴라는 커져만 가는 참을 없는 느낌과 갈수록 자신을 압박해오는 온몸을 으스러뜨릴 같은 엄청난 힘에 압도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느낌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고 지배적인 것이 되었다. 라파엘라 카라치는 제압당해 형체를 잃고 스테파노의 모습에 융해되어 그의 종속적인 존재인 카라치 부인이 것이다.”(168) 둘의 삶의 동인은 다르다. 릴라가 저항과 자기파괴, 행동주의라고 명명한다면, 레누는 순종과 깨달음을 통한 자기성숙, 묵상주의라고 이름 붙일만하다


  나는 어떤 삶의 동인으로 살고 있는가? 하루 하루를 사는거? 평범의 비범. 마치 전도서에 나오는 문구처럼 말이다. " 헛된 평생의 모든 하나님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몫이니라”(10:9) “‘일상의 소소한 일들이야말로 실은 가장 아름다운 일이라고 말해줘야겠어. 멋진 문장이야. 릴라가 좋아하겠는걸. 가질 것을 가진 릴라야말로 정말 운이 좋은 거지…’”(152) 루소의 말을 인용한 부분은 평범이 비범이 되는 순간을 말해준다. 우리 삶의 동인은 어쩌면 이러한 평범의 일상이 얼마나 귀한지를 새롭게 깨닫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 나의 또한 평범한 일상을 열심히 살아내는 어느 어염집 아낙처럼, 노동의 수고로 가장의 몫을 다하는 노동자의 하루처럼 그렇게 지나간다. 그렇지만 삶의 일상이 얼마나 귀한지를 소설은 놓치지 않는다. 그건 어쩌면 성숙인지도 모르겠다. “ 모습에서 갑자기 어머니의 모습이 나타날까봐 언제나 두려웠다. 그날은 우리 동네 모든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나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들은 신경질적이고 남편의 말에 무조건 복종하는 존재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놀랍게도 그때 당시 이들의 나이는 기껏해야 나보다 살에서 스무 정도 많은 정도였다. 그런데도 여성스러운 매력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였다. 소녀 시절에 옷이며 화장으로 그토록 뽐내고 싶어 했던 여성성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어머니들은 남편과 아버지와 남자 형제들의 육신에 잠식되어 날이 갈수록 외모까지도 그들을 닮아갔다. 그렇지 않더라도 노동으로 노쇠하거나 병을 얻어 여성성을 잃어갔다.”(137) 우리 삶의 동인, 어쩌면 이러한 아스라히 스러져감을 받아들이는 , 그것이 삶의 동인은 아닐까! 성숙함, 넉넉함을 갖추는 . 삶이 뜻대로 되지 않아도 받아들이는 과정. 실로 대단했던 가능성의 10대를 보내고 나서 20대를 맞이한 이들의 이야기가 한편으로 인생의 무게에 대한 깨우침으로 다가온다. 책에서 마이클 야코넬리의 <뒤엉킨 영성>(최근에는 <B 인생에 찾아오신 하나님>으로 개정되어 나왔다)에서 말하는엉망진창속에 드러나는 진가를 보게 된다.


  햇살 좋은 9월의 아침. 인생이란 어쩌면 타자의 존재됨과 인생이 뜻대로 되는 아닌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아닐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우리 인생의 성숙의 과정 속에 평범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드러내고 있다. 나의 초등 자녀들이 학교에 등교하고, 아내는 이제 중학교 자유학기제 수업을 위해 출근하고, 나는 인생의 의미를 되새김질하며 삶의 동인을 음미해본다. 인정과 두려움, 칭찬과 불안, 성취와 부르심 사이에서 나는 평범의 비범을 오늘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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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부신 친구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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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란 무엇일까?

- 나폴리 4부작 제1권  <나의 눈부신 친구>(엘레나 페렌테, 한길사, 2016년)를 보고



  관계는 오묘하다. 사람 관계라는 것이 참 다 알 수는 없다. 친구였다가 적이 되는 경우도 있고, 서로의 다름 때문에 다투기도 하지만 그래도 더 끈끈한 관계로 발전하기도 한다. 예전엔 친구였는데 안보면 멀어진다고 그렇게 멀어져간 친구가 있는가하면, 오랜동안 보지 못해도 오랜만에 본 친구가 다시 끈끈한 친구로 이어지기도 한다. 영화 <친구>가 어릴 적 그렇게 친밀했던 친구가 적이 되는 케이스라면, <나의 눈부신 친구>는 서로의 다름 때문에 오히려 더 끈끈한 관계로 발전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다. 친구로서 서로의 작업에 동기부여가 되었던 루이스나 톨킨 같은 관계가 있는가하면, 아마데우스와 살리에르와 같이 서로에게 경쟁심으로 질투와 시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전자가 다윗과 요나단에 비유된다면, 후자는 다윗과 사울에 비유될 수 있을까? 관계라는 것이 참 오묘해서 그 역동을 다 알기는 참 어려운 것 같다. 그런 면에서 관계는 신비다. 관계를 움직이는 힘, 관계를 좋게하는 말, 관계를 새롭게하는 무엇이 있다.  


  우정은 많다. 그런데 나의 한 친구와의 우정은 초등학교 6학년 크리스마스 연극 때 시작되었다. 천사역을 맡았던 그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 친구가 편도선이 부어서 대사를 잘 못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는 시간이 지났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에야 그가 새롭게 보였다. 그전까진 조용하게 있는 그여서 별로 맘이 동하지 않았는데… 고등학교 때 이 친구가 교회로 친구들을 한명씩 한명씩 데려왔다. 그리고 이 친구가 맺어가는 관계의 역동과 배려에 신기함을 느꼈다. 우째 이리 잘 반응할까? 잘 배려하고 잘 들어주고 자기 주장 세게 안하고… 그래서 그런지 주변 친구들이 이 친구를 참 좋아라 하는게 보였다. 이 친구랑 친해져서 옷도 같이 사러 다니고, 밤늦게 심야영화도 보고 그랬다. 그 영화가 장장 2시간 30분에 육박하는 <인도차이나>였던가! 이후 청년대학부에 올라가서는 죽(!)이 잘 맞다고 왠만한 레크레이션 진행을 같이 맡기도 했다. 고신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했던 그는 지금 부산대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고, 부산대 국문과에 입학했던 나는 지금 목사로 설교를 하고 있다. 간간이 만나서 회포도 풀고, 같이 독서모임도 하고 있다. 그 친구는 만나면 편하다. 다르기에 더 배우게 되는, 그래서 오래가는가!   


  릴라와 레누의 우정은 묘하다. 서로 달라서 매력을 느끼고, 그로 인해 서로의 길이 달라지지만… 끊임없이 관계맺는 두 사람. 이탈리아 나폴리를 배경으로 한 대하 서사극 같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토지>가 생각났던 건 어쩌면 두 사람의 우정 이야기에 그 동네의 복잡다단한 현대사가 같이 얽혀있기 때문일거다. 악마처럼 묘사되는 돈 아킬레는 마피아를 연상시킨다. 한 동네에 같이 살던 이들이 산업화 이후로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고, 자본의 힘 앞에 변화하는 관계들을 본다. 작가는 부에 대한 인식을 드러낸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어린 시절 꿈꿔왔던 부의 의미가 다신 한번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은 아씨들> 같은 책을 출판해 부와 명성을 얻고 제복을 입은 하인들이 금화로 가득 찬 보물 상자를 들고 행렬을 지어 우리가 살고 있는 성에 쌓아둘 것이라는 생각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지만 우리 존재를 확고하게 해주고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소중한 사람들의 ‘경계의 해체’를 막아줄 시멘트 같은 돈의 이미지는 아직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부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은 구체성과 일상적인 행동, 그리고 협상이었다.”(330쪽) 


  그들의 관계도 변한다. 마냥 초등학교 아이로만 머물 것 같던 그들의 이야기는 금세 청소년기를 넘어 결혼에 이른다. 두꺼운 분량으로 인해 다 읽겠나, 도입부에서는 무슨 이야길 하려나 싶었는데… 이게 웬걸 읽다보니 엘레나 페란테의 툭툭 던지는 문체에, 그저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풀어내는 군더더기 없는 전개에 무슨 얘길 하려나 했던게, 아~ 이런 복잡다단한 관계의 역학을, 사람 사이의 복잡미묘함을, 그리고 그 속에서 변화하는 마음들 가운데 싹트는 우정을 그리고 있구나 싶었다. 너무 다른데, 그 다름 때문에 이끌리는 두 사람. 릴라는 뛰어나지만 버릇없고, 장난기가 많지만 도전적이며 삶의 이면을 꿰뚫어보는 직관이 있다. 반면 레누는 순둥이 범생이지만 느리고, 대기만성형에 노력파인 그는 변화하는 상황을 잘 관찰하고 꾸준하여 서서히 무언가를 이룬다. 그리고 이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관계들은 마치 우리의 일상을 보는 듯해서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이 소설은 서서히 빨려드는 매력이 있다. 첫 임팩트는 별로 없었는데… 그냥 읽어나가게 되고, 그 다음이 궁금해지게 하는 소설. 신기했다. 그 중심에 릴라와 레누의 차이, 그리고 그들의 복잡다단한 관계가 얽히면서 누군가의 삶의 이야기를 찬찬히 그러면서도 정밀하게 그리고 이면을 꿰뚫어보는 시선으로 보는 맛이 재미있었다. 릴라의 결혼식이 있는 3월 12일 레누가 릴라의 몸을 씻길 때, 릴라가 레누에게 하는 말, 이 책의 제목이 된 대사가 좋았다. 서로 신뢰하고 서로를 세워주는 말. “넌 아니야. 넌 내 눈부신 친구잖아. 너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해. 남녀를 통틀어서 말이야.”(416쪽)  


  나의 관계는 어떻게 보일까? 찬찬히 레누가 풀어가는 이야기 속에서, 그의 나폴리라는 지역에서의 일상이, 그리고 그의 성장과 변화 가운데 이루어지는 사랑까지… <나의 눈부신 친구>는 나 자신을 꿰뚫어보면 어떨까 싶게 만들었다. 나의 관계는 어떻게 기록되어질까? 마치 얼굴없는 작가 엘레나 페란테의 자서전을 읽는 듯한 느낌으로,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기 이야기를 하듯이 그렇게 레누의 이야기를 펼쳐가는 속에 빨려들게 되고, 그래서 그 다음은… 이 친구는 이렇구나, 그런데 다른 친구는 이렇구나 하면서 보다가 사람이 참 중간중간 마음이 잘 바뀌는구나! 그런데… 그렇게 마음이 바뀌는 것이… 그렇지, 사람 마음이 그렇지 하고 납득이 된다, 설득이 되었다. 개연성(蓋然性, Probability). 그래, 이 말이 생각났다. 그럴법함. 핍진성(逼眞性verismilitude)이라고도 표현되는데... 인생은 그렇지라고 말할 수 있는 복잡다단함, 그것을 표현해주는, 소설을 소설로 읽게 만드는, 소설을 더욱 나의 이야기처럼 나를 빗대어서 생각케되는 무엇. 그럴듯함(vraisemblanceplausibility)


  1권을 끝내면서 내 마음에 남는 한 단어는 우정이 아닌 용서였다. ““모르지. 이 동네에서는 아무도 하지 않을 법한 행동을 하려는 거야.” “용서?”… 릴라의 말로는 스테파노가 원하는 것은 그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일이었다. ‘우리 이전’에 일어난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이 했던 것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하며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가 한 일은 부정할 수 없지만 이제 아버지 자리에는 나와 내 가족이 있으니 그만 멈추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222쪽) 이 책에서 전해주는 관계의 오묘함은 우정의 대단함보다 어쩌면 용서의 대단함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우리 삶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복잡다단함을 끊어버리지 않는 그 무엇은 우정이 아닌 용서가 아닐까 하고! 용서는 우리 관계를 새롭게 하는 그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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