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설교 룻기 읽는 설교 시리즈
조영민 지음 / 죠이선교회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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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은혜와 도전을 받았다. 무엇보다 은혜를 받은 것은 룻기설교를 이렇게 완성도 있게 풀어낸 말씀 때문이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지평의 확장 때문이다. 룻기를 풀어감에 있어 '빵집(베들레헴의 의미)에 빵이 없다'는 논리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것을 현재의 한국교회의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시켜서 현재의 옷을 입고 다시 복음 앞에, 빵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세우시는 귀한 설교자를 만나는 호광(!)을 누렸다. 그 호광은 빵집에 빵을 다시 들여놓는다는 빵집 문앞의 메모지 같은 이 작은 룻기를 통해서 실제로 빵이 들어오고 새로운 소망을 꿈꾸도록 하는 복음의 힘 앞에 서게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 짧은 본문에 흐르는 복음의 중심 메시지이자 룻기의 핵심인 '헤세드'의 하나님 사랑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책을 읽는 내내 너무 즐거웠다. 그래서 너무 빨리 읽어버리는게 아닌가 하는 기분 좋은 아쉬움의  마음이 자꾸 들었다. 더 아껴두고 찬찬히 곱씹어 읽고 싶었고, 은혜에 잠기고 싶었다. 룻기를 해석함에 있어 우리가 아는 익숙한 지점을 이야기하며 그 부분이 아니라고 정리해주며 다른 지평을 열어젖히는 저자의 탁견은 거기서부터 우리로 하여금 다시 복음 앞에, 그리스도 예수 앞에 서게 했다. 설교자가 전할 것은 복음이며, 예수 그리스도임을 다시 한번 인식케 해주었다. 그 복음이 우리로 하여금 다시 흥분케 하며, 생기를 돌게 하고, '텅빈 쓰라림'(마라)이 '꽉찬 기쁨'(나오미)이 되도록 해준다.

 

  주일학교 시절 고등부 총무로 섬긴 적이 있었다. 회장으로 섬긴 친구가 워낙 출중해서 나는 그를 보며 나도 모르게 2인자 의식을 지닌 적이 있었다. 그는 그렇게 서울의 공대로 나는 부산의 인문대로 진학을 했다. 그런데 이후 둘 다 목회자가 되었다. 나는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선교단쳬 간사를 거쳐 목사가 되었고, 그 친구 역시 자원공학 전공으로 석사를 끝내고는 신학으로 전향을 해서 목사가 되었다. 어느 순간 그 친구를 바라보는 내 속의 2인자 의식은 사라지고 그를 좋은 동기이자 도전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좋은 도전을 받은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그 친구 생각이 났다. 이 저자가 나와 비슷한 나이에 그가 내게 주는 도전 때문이다. 사역자로서 설교를 완성도 있게 잘 준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샘플이 될 정도로 좋은 도전을 준다. 샘이 날 정도다. 그런데 그것이 나도 이런 책을 내어야지 하는 시기의 마음보다는 언젠가 나 역시 내가 섬길 부분으로 한국 교회에 글로서 섬길 수 있기를 하는 마음의 도전을 준다. 이 책은  은혜와 도전이 함께 있는 참 좋은 강해집이다. 어렵지 않고 깊이가 있으며 차근차근 풀어내는 힘 역시 가열차다. 동시대적 관점으로 한국 교회에 주시는 메시지로서 룻기를 읽기 원한다면 일독을 권한다. 평신도든 사역자든 기쁜 마음으로 이 책을 읽고 나와 같은 은혜와 도전을 받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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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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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으면서도 정감이 느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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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카이퍼 - 리처드 마우가 개인적으로 간략하게 소개하는
리처드 마우 지음, 강성호 옮김 / SFC출판부(학생신앙운동출판부)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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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경하는 분을 만나는 일은 설렌다. 이 책이 그랬다. 대학시절 선교단체 동기들이랑 세계관 공부의 연장선상에서 읽었던 아브라함 카이퍼의 <삶의 체계로서의 기독교>는 신선했다. 분명하고 단호하면서도 풍부했다. 놀라움이었다. 이런 분이 있다는 것이. 네덜란드의 수상까지 지내신 신학자 출신의 정치가라니. 개혁주의 전통에 있는 복음주의권 신학자로서 현실문제에 반응하는 정치가. 그래서 나는 그를 내 마음 속에 담아두었다. 당대 아브라함 카이퍼로 인해 네덜란드는 놀라울 정도로 깊이를 갖춘 나라가 되었다는 얘길 들었다. 그러나 이후 그에 대해 더 공부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런데 그러한 아브라함 카이퍼에 대한 안내서를 만났다. 리처드 마우가 소개하는 <아브라함 카이퍼>, 소제목이 그렇다. 리처드 마우는 <버거킹에서 기도하기>, <무례한 기독교> 등으로 기독교 윤리의 사회적인 차원에 대한 태도의 문제를 잘 짚어내는 저자이자 전 풀러신학교 총장이다. 그러한 ‘리처드 마우가 개인적으로 간략하게 소개하는’ 안내서라고. 이 책은 거장 아브라함 카이퍼로 가는 오솔길을 내 준다. 그것도 지금 현장에서 영향력을 가진 식견 있으신 분이 가이드를 해준다니. 그 얼마나 감사하고 설레는 일인가! 이 책에는 그러한 설렘이 있다.

 

  그 거장을 만나는 오솔길로 한번 들어서보자. 그 진입로에는 분명한 표지판이 있다. 이 책은 깊이있는 연구서나 전기가 아니라고. 짧고 개인적인 소개서이자 입문서라고. 그러하기에 감안하고 읽으라는 것이다. 거장을 소개하는 리처드 마우의 <아브라함 카이퍼>는 두 개의 길로 이어져있다. 한 길은 카이퍼의 신학과 문화를 알 수 있는 길로서 1장에서 제시한다. 그 길에는 여러 공원들이 조성되어 있다. 그러한 공원에는 각각의 키워드로 제목이 붙어있고, 이를 통해서 우리는 아브라함 카이퍼의 사상의 굵직굵직한 줄기를 알 수 있다. 칼빈주의, 문화사명, 다형성(pluriformity), 영역주권(sphere sovereignty), 중재하는 구조, 대립의 개념 등 각각의 공원에 조성된 이러한 아브라함 카이퍼의 사상의 층위는 다 이해하기에는 벅찰지 몰라도 그저 조금씩 맛을 보고 큰 그림을 그리기에는 좋다. 그리고 중반을 넘어서면 두번째 길이 나타난다. 그 길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브라함 카이퍼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보여주는 그림 전시관들이 놓여있다. 그와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보다 온건했던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 그리고 인종 문제에 있어서의 한계를 지적한 신카이퍼파들, 지금 시대에 있어서 새로운 종소리를 내어야하는 세계관 운동의 이미지, 그리고 하나님이 인내하시는 시간으로서의 지금의 정치와 다원주의의 흐름, 또한 이슬람에 대한 이해까지. 짧지만 깊이있고, 거장을 만나는 짧은 대화 속에 비타민이 있다. 아브라함 카이퍼에게 가는 이 오솔길에 한번 들어선다면 아브라함 카이퍼를 좀 더 알고 싶은 욕심이 들 것이다. 거장에게 가는 오솔길에 한걸음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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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적 제자도
존 하워드 요더 지음, 존 C. 누겐트.앤디 알렉시스-베이커.브랜슨 L. 팔러 엮음, 홍병 / 죠이선교회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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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편해진다. 색깔부터 빨간색이다(종이 커버를 배끼면...^^). 영어 원제가 “Radical Christian Discipleship”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제자도가 얼마나 급진적인지를 말하는 책이다. 존 하워드 요더의 설교와 아티클을 모아서 제자도라는 제목으로 엮은 책이다. 존 요더의 사상이 얼마나 예리하고 폭이 넓으며 구체적인지를 볼 수 있는 책이다. 그래서 불편한지도 모르겠다. 바른 이야기인데도 성경에서 그 논증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우리가 이미 익숙한 기독교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하나 하나 조목 조목 일러줄 때는 그 불편함에 대해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되지?” 혹은 “알고 있지~! 그런데 어떤 대안이 있지?”라고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부분에까지도 답을 제시한다. 그 답이 때로는 너무 이상적이다, 원론적이다 말할지 모르지만 부인하기 어려운 맞는 말이다. 그러해서 자연스러운 반응이 속이 더부룩해진다. 소화가 잘 안되는 것이다. 이게 맞는데 내 삶은 뭐지? 여러가지로 더부룩한 부분이 많으나 크게 두 부분만을 언급하자면 이렇다. 첫번째는 세상에서의 불순응이라는 것이 그리스도에 순응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서론에서 제시하듯 “우리의 사명은 세상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비슷해지는 것이다.”(22쪽), “그리스도인의 순종의 열쇠가 바로 불순응이 아니라 순응이라는 것”이다.(28쪽) 이 순응은 우리가 익숙한 미지근함이라는 순응주의를 타파하고 불편하고 불안정한 하나님께로의 의탁으로 나아가도록 한다. 이는 경제와 국가정치에 있어서까지도 해당된다. 돈에 대한 부분까지 세세하고 폭넓게 다루는 부분은 예리해서 읽다보면 어느새 내 마음에는 생채기를 낸다. “베풂이 우리의 생활 법칙이라면, 그리스도인은 남을 섬기지 못할 때마다, 일을 해서 보상을 바라지 않고 그저 주지 못할 때마다 이웃의 것을 훔치고 있는 셈이다.”(148쪽), “만일 재정적인 안정이나 이자율이 노동자의 학대, 불법이나 투기, 혹은 전쟁 물자나 사치품의 생산에 근거를 두고 있다면, 그리스도인은 “착한” 투자도 피해야 한다.”(157쪽) 그렇다. 그렇게 복음은 예리한 것이다. 저자는 그 길이 바로 십자가의 길이라고 결론적으로 말한다. “우리는 이미 세상을 이겼으나 그 승리가 밟는 길-그것이 확실해진 날부터 그것이 명백히 드러날 날까지-은 십자가의 길다.”(238쪽) 두번째는 사랑의 전략과 두려움의 전략은 다르다는 것이다. 자녀들이 신앙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 부모의 결정으로 침례를 결정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에서 두려움의 전략이며, 젊은이에게는 익숙함에 젖도록 하는 순응주의를 강요하는 것이 된다. “사랑의 전략은 성령의 사역과 진정한 제자도의 매력을 충분히 신뢰한다. 그래서 침례의 의미를 아는 성인의 유도를 받지 않은 채 스스로 침례를 요청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다. 이 태도는 "젊은이들이 교회에 머물기보다 교회를 떠나는 것을 더 쉽게 만들어 준다"는 책망에 열려 있는 데 반하여, 이 사랑의 전략이 아예 그 목적과 함께 시작하는 두려움의 전략보다 더 잘 작동할 확률이 높다.”(221쪽) 이 불편함은 복음에의 온전한 헌신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결과이며, 이 헌신조차도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는 헌신이어야 한다.

 

  속이 시원해진다. 현실과 관련하여 "할 수 없죠!"라는 변명을 없애준다. 복음 앞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떠해야하는지를 분명하게 알려준다. 그래서 속이 시원하다. 그렇다. 내가 따르는 길은 이 길이다. 그로인해 새 열정이 생긴다. 이 열정은 나 자신이 가진다고 해서 가져지는 것이 아닌 예수님이 이미 이루신 일에 근거를 둔 열정이다. “우리는 평화를 거의 성취할 수 없는 과업으로 생각하는 대신에 이미 얻은 승리에 뿌리를 두게 해야 한다. 그리스도가 주님이란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반영할 진리다.”(211쪽) 자아실현과 자아성취를 강조하는 세상 가운데 우리는 자신을 잊어버리고 “하나님 나라와 세상을 향한 하나님 목적의 인식”(40쪽)만 가지면 된다. 그래서 “나 자신을 뛰어 넘고(내 인생의 기준으로 삼는) 자아실현을 대체하는, 어느 나라에 헌신하는 일이 가능하려면 신약 성경이 "교회"(communion)라 부르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 요건은 하나님이 나에게 위임하신 목적들, 즉 나 자신을 뛰어넘는 목적들에 헌신한 일단의 사람들이다. 이를 우리는 교회라고 부른다.”(41쪽)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이러한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그러한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법을 배우려면 결코 완수될 수 없는 영적인 기어 변속이 필요하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 이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리스도인의 정의에 따라 살려고 애쓰는 과정임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이란, 정의상, 자기를 감추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복사판을 일컫는다.”(103쪽)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거짓이 있으면 다른 이들을 멀리하는 가운데 본인의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지만 정직하겠다는 다짐은 모든 방어 수단을 포기한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112쪽), 또한 “세상에서 부적응자가 되는 것이다. 교회의 삶, 불순응, 그리고 "더 큰 의로움"은 다름 아니라 교회의 하나님과 나누는 살아있는 교제다.”(136쪽) 그래서 이 열정 안에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소망으로 가득해진다. “우리의 관심사는 우리가 있는 곳에서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이다.”(152쪽) 그리고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소망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메시지를 선포하며 살도록 이끈다. “우리의 기독교적 불순응의 궁극적인 척도가 있다. 불순응은 소망에 근거를 두고 있고, 소망은 세상에 선포할 하나의 메시지다.”(165쪽) 이러한  삶으로의 소망으로 인해 새 열정이 생긴다. 그러한 열정을 삶으로 담아내는 것은 현실에서의 나의 숙제이다. 그 길은 예수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그는 현실 세계의 현실 생활에 새로운 패턴을 초래한다. 이 새로운 패턴은 내세 지향적이거나 반세상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 속에 있기 때문에 세상이 관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분은 사람들이 적을 사랑하기 원하지 않는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범법자를 용서하시는 것처럼 너희도 이 세상에서 그런 자를 용서하라"고 말씀하신다. 떡을 나누고 싶어하지 않는 세상에서 그분은 "하나님이 당신의 떡을 우리 모두에게 주셨기 때문에 그것을 나누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위계 제도를 지키고 싶은 세상에서 그분은 "노예는 그 주인의 형제이고, 여성은 남성과 똑같은 위엄을 갖고 있으므로 위계 제도를 뒤집어엎어라"고 말씀하신다. 맨 윗사람이 결정을 내리게끔 되어 있는 세상에서 그분은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 모두와 함께하기 때문에 다 함께 결정을 내려라"고 말씀하신다. 종교와 정치 모두 강제력을 행사하는 세상에서 그분은 "하나님의 본성은 당신을 강제로 끌어들이지 않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모여라"고 말씀하신다. 대다수 사람이 큰 어려움 없이 법을 통과하기 위해 법을 재정의하려고 애쓰는 세상에서 그분은 "하나님께서 법을 성취할 능력을 당신에게 주실 것인즉 법을 성취하라. 내가 곧 율법의 성취다"라고 말씀하신다. 예수의 참신한 면모는 새로운 문화에 있다.”(199쪽) 빨간 책 표지가 내 가슴을 뛰게 한다. 원론적이면서 급진적인 제자도는 내게 허락하신 제자의 길이 얼마나 멋있는 삶인지를 설득한다. 불을 붙여 부채질하며 나로 하여금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 살도록 획책(?)한다. 미지근한 기독교 내에서 열정적으로 살도록 견인한다. 위험한 책이다. ^^ 빨간책의 열정에 사로잡혔다. 존 요더에 사로잡혔다. <예수의 정치학>을 새로이 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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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용서해야 하는가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지음, 원마루 옮김 / 포이에마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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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술꾼이셨다. 하루도 술을 안드시면 안되시는 줄 알았다.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오실 시간이 넘었는데도 돌아오시지 않으시면 어김없이 찾아나서야했다. 길가에 앉아계신 날들이 다반사였다. 나는 왜 이런 가정에 태어났을까 싶기도 했다. 싫었다. 고3때는 남들 다들 고3이라고 집에서 배려해주는 것까지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다만 아버지가 술을 좀 덜 드시기만을 바랬다. 바람은 바람으로만 끝났다. 대학생이 되고, 주님 앞에서 내가 용서되었을 때에야 나는 아버지가 용서가 되었다. 아버지의 그 설음의 시간이 새로이 보였고, 육체 노동의 한계와 관계 속에서의 치임을 새로이 보게 되었다. 그리고 형제 관계 속에서의 부침과 아버지 본인 스스로의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다짐했다. 할 수 있는 것이 “사랑합니다!”라고 안아드리는 것 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용서했던 그 길에 아버지를 세워놓고는 아버지 역시 용서했다. 나를 이 가정에 태어나게 한 것이 그저 한 번 고생하라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새로운 미래를, 희망을 써 내려가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예레미야의 말씀이 그때는 참으로 위로가 되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29:11)

 

삼푸투는 술에 마약쟁이였습니다. 그는 하루도 술없이는 지내지 못했습니다. 그의 친구 빈센트가 자신의 부모님을 죽였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었습니다. 르완다의 투치족이었던 삼푸투는 친구인 후투족 빈센트가 자신의 부모를 죽이는 일에 동참한 것으로 인해 삶은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그 일로 9년 동안 정신이 나간 채 지냈습니다. 그리고 태어난 아기 클라디아가 장애가 있는 것으로 인해 급기야 아내와도 헤어졌습니다. 그는 세계 최고의 뮤지션이었지만 술과 마약으로 감옥을 오갔고, 그의 삶은 재앙으로 점철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모세라는 한 전도자를 만남으로 인해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하라는 목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가 빈센트를 용서함으로 인해 빈센트는 자기 죄를 뉘우쳤고 자신을 용서하였습니다. 또한 그의 아내와 자녀들도 아버지를 용서했습니다. 용서의 힘은 그의 가족 또한 다시 하나되게 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당시을 용서한 게 아니야 당신을 용서한 건 하나님이야.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나님이 삼푸투를 통해 당신을 용서했다면, 나도 당신을 용서할 수 있어.”(243쪽)

 

용서는 우리를 세계로 연결시켜준다. 우리 자신의 감옥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감옥은 용서하지 않는 마음과 영혼”(38쪽)이다. “용서가 필요한 이유는 피해자와 가해자 둘 다 같은 어둠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어둠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탈출구는 용서뿐이다.”(163쪽) “용서는 새롭게 출발하는 데 필요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기폭제다.”(70쪽) 이 책 곳곳에 펼쳐져 있는 용서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은 용서가 우리 삶에 얼마나 필요한지, 또한 복수하는 삶이 우리 삶에 얼마나 편만한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세계의 문제이며, 현실이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로 하여금 나의 한계와 자신의 감옥에서 벗어나 세계와 화해하며 자신을 용서할 뿐 아니라 세계를 사랑하게 해주는 방법임을 힘주어 말한다. 폴 투르니에가 인격의학이라는 것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고 회복하려 했듯이, 저자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는 용서가 이 땅을 새롭게 하는 열쇠임을 전해준다. 저자의 세계 곳곳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나의 자리를 다시 돌아보게 해준다. “용서는 평화와 행복으로 가는 문이다.”(13쪽) 또한 “용서는 선물”이다. 그 선물을 받아 누리는 것은 우리의 결단이 필요하다. 이 책은 그러한 결단으로 이끌어주는 징검다리들을 잔뜩 놓아두고 있다. 읽다보면 눈시울이 시큰거린다. 그러면서 새롭게 다짐하게 된다. 읽다보면 언제 용서라는 은혜의 폭탄이 터질지 알 수 없다. 그 선물을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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