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나폴리 4부작 3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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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성(Formation)과 변화(Transformation)를 위해


왜 제목이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일까? 책을 읽어가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600페이지(정확하게 603페이지)를 넘는 소설책을 이렇게 재미있게 읽을 수도 있구나! 레누와 릴라의 우정이면서도, 이탈리아 외곽 나폴리의 한 마을에 대한 이야기이며, 또한 이탈리아의 1960년대와 70년대 변화와 격동의 시절을 살아낸 두 중년의 이야기이자, 인류 역사의 큰 변화의 틈바구니 가운데 처절하게 반응하는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작가는 이러한 연결점에 대한 깨달음으로 3권을 시작한다.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나는 그때 내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현실은 길이가 길어질수록 고리가 커지는 사슬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향 동네는 나폴리와, 나폴리는 이탈리아와, 이탈리아는 유럽과 유럽은 전 세계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제 나는 생각한다. 병든 것은 우리 고향 동네가 아니라, 나폴리가 아니라 지구 전체다. 유일한 우주 또는 무수히 많은 우주가 모두 병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조차 사물의 본질을 숨길 줄 아는 능력이다."(22쪽) 그런 가운데 한 명은 고향인 나폴리를 떠나가고, 한 명은 끝까지 나폴리에 남는다. 왜 그랬을까? 이 책의 묘미는 끊임없는 반전의 깨달음 가운데 있는 듯하다. 그러한 깨달음들이 그 순간에는 참 대단한데… 더 큰 관점에서 보면 시원찮게 보이는 묘미. 


레누는 고향인 나폴리를 떠나가고, 릴라는 끝까지 고향 나폴리에 남는다! 릴라의 대답에서 실마리를 찾는다. “너는 강하잖아. 나는 그렇지 않아. 너는 고향에서 멀어질수록 네 자아를 되찾고 행복해하지. 하지만 나는 큰길 입구에 있는 터널만 지나도 두려워. 예전에 함께 바다를 향해 가는데 비가 왔었던 때를 기억해? 우리 중에 누가 계속 가려고 했고 누가 돌아가려고 했는지 기억해?”(241쪽) 둘은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너무 밀접하게, 또한 서로 의존적이면서도 서로 밀어내고, 또한 서로 사랑하면서도 서로 질투하며, 각자의 삶을 살지만 서로 돕는 관계로, 때론 또 다시 자신을 찾아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이들의 관계 속에는 인간 관계의 모든 역학이 똘똘 뭉쳐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그들은 다르다. 릴라는 2권에서 먼저 동네의 부자인 스테파노와 결혼했다. 그러나 그것은 가난은 떨쳐냈는지 몰라도 여성으로서의 존중도, 인간으로서의 자기 정체성도 없는 삶으로 인도했다. 끊임없는 스테파노의 폭력 가운데 그녀는 니노와의 일탈을 택했고, 결국 그것마저 수포로 돌아가면서 엔초랑 니노의 아이 젠나로를 데리고 더 가난하지만 존중과 신뢰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이는 또 다른 가난과 노동의 현장 속에서 변화를 맞이하고, 또 다시 고향마을로 돌아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 반면 3권에서의 주인공이라 할만한 레누는 고향을 떠나와 피사에서 공부 이후 책을 내고, 그 인기 가운데 피에트로와 결혼하면서 작가로서의 성공과 새로운 변화를 만끽한다. 그녀 역시 가난을, 고향집을, 과거를 떠나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레누의 삶 역시 두 자녀의 출생과 함께 반복되는 일상 속으로 한 어머니이자 아내라는 익명의 존재로 침몰해버린다. 그런 이후 니노를 다시 만나게 되고 새로운 변화가 생긴다. 릴라가 정해진 범주 안에서 익숙함 가운데 새로운 시도를 파격적으로 추구한다면, 레누는 정해진 범주를 넘어서서 익숙한 안정 가운데 새로운 변화를 추구한다. 그들은 다르지만 변화를 추구하고, 그 변화를 통해 자라가며 인생을 배워간다. 그래서 그들은 떠나가지만 남아있고, 남아있지만 떠나가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한 연결이 서로를 길들이며, 서로를 동경하고,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며 서로를 존중한다. 


무엇으로부터 떠나감이며, 무엇에 머무름일까? 나는 격동의 이탈리아 역사 속에 지성과 노동운동, 파시스트와 공산당의 접전이라는 상황 속에서 이율배반적인 관계의 실타래를 본다. 파시스트이지만 결국 죽게되는 파스콸레, 한때 이스키아 섬에서 젊음을 함께 누렸지만 부당한 공장주인 브루노, 친구였지만 스테파노의 정부가 되어 릴라를 쫓아내게 하는 아다, 레누의 대학초 남자친구이자 노동운동가인 프랑코, 고등학교 선생님이지만 딸 나디아로 인해 레누를 질투하는 길리아니 선생님… 많은 인물들은 또한 한 공간을 떠나가며 한 공간에 머무른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떠나가며, 또한 머무르는가? 레누가 릴라를 책임지고, 햄공장에서의 일들을 도와주고 해결해주는 장면에서는 어떤 희열을 느꼈다. 릴라가 그의 아들 젠나로를 맡길 때, 레누가 두 아이로 힘들어하면서도 기꺼이 맡아주는 장면에서도 우리 관계의 역학, 우정 속에 깃든 미묘함과 복잡다단함을 느낀다. 그렇게 책임져주지만 그 속엔 말로 다 표현못할 부분들이 곁들여져 있다. 그렇게 살아간다. 그렇게 둘은 만났다가 헤어졌다를 반복하면서 얽혀있고, 서로를 궁금해하며, 서로를 동경하고, 서로를 돕지만 또한 각자의 삶에 고군분투하며 살아간다. 그러한 가운데 이들이 이루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그것은 그들의 삶이 어느덧 결혼 이후 성취와 공허, 만족과 불안 가운데 살아가고 있음을 본다. 그 삶은 자신들이 어릴 때부터 꿈꿔 왔던 자신됨의 형성(formation)에 있다. 자아의 형성, 삶의 형성, 관계의 형성 말이다. 그러나 그 형성 과정 속에는 끊임없는 변화(transformation)를 수반한다. 그 변화는 자신이 바랬던 것이기도 하지만, 관계의 역학도 있고, 그들이 지냈던 과거로부터 떠나고 싶어하는 격리, 부정의 욕구도 있다. 한편으로 시대적인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는 것과 내가 변화하는 만큼 내 옆의 사람들도 변화하기에 떠나지 않고 그 자리를 맴돌며 새로운 깊이의 추구와 개혁의 욕구도 있다. 전자로서 과거로부터 격리, 부정의 욕구가 레누의 감정이라면, 후자로서 깊이의 추구와 개혁의 감정은 릴라의 감정이다. 레누는 형성과 변화를 위해 고향을 떠난다면, 릴라는 변화와 형성을 위해 고향에 머문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는 나폴리의 역사가 된다. 밖으로 나도는 이야기는 외연을 확장하고, 안으로 맴도는 이야기는 내면으로 깊어져간다. 변화는 밖으로 나갈수록 안과 연결되며, 안의 변화는 결국 밖의 변화가 내부로 들어온다. 그러한 변화가 릴라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컴퓨터 언어를 배움으로 외부의 변화를 나폴리 안에서 경험하고, 레누는 소설을 쓰면서 내면으로 파고들지만 끊임없이 나폴리 밖으로 나돈다. 어쩌면 이러한 떠나감과 머무름은 어쩌면 우리 인생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배움의 과정은 아닐까! 인생을 배워가는 과정 속에 우리는 형성과 변화를 경험하는 것이다. 이 소설의 묘미가 끊임없이 자신의 관점을 뒤엎는 관점이 제시되는 데 있다. 그러한 가운데 새로운 형성이, 변화가 이루어지며, 또 다른 변화로 이어진다. 인생을 압축적으로 본다면 나의 형성과 변화는 어디쯤 있을까? 나는 어디를 떠나왔고,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가? 나폴리를 배경으로 한 대하서사극 속에서 괜스레 나폴리 그 동네로 여행을 가고 싶어지는 것은 이러한 머뭄과 떠나감 속에 일어나는 형성과 변화의 이야기가 펼쳐졌던 공간을 보고 싶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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