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나폴리 4부작 4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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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앨범을 펼치면 
-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 제4권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를 읽고서 

청년 시절 즐겨듣던 한 ccm 가수의 앨범에 적혀 있던 소개글이 생각난다. 한 사람의 앨범을 펼치면 그 사이로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다. 누구든 그 사람의 추억과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산다.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4부작의 제4권을 읽으면서 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나폴리를 동경하게 되었고, 이탈리아를 새롭게 보게 되었다. 또한 두 사람의 우정을 통해 벌어지는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의 우정과 커가면서 사랑하고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성공하고의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개인의 역사가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이야기에 몰입되었다. 엘레나 페란테의 이야기는 마치 누군가의 일기를 훔쳐 읽는 듯이, 또한 지난 시절을 회고하며 인생의 허무함과 그 속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나름의 소소한 깨달음을 섞어놓은 묵상집처럼 그렇게 밤새 들려주는 할머니의 옛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래서 좋았다. 

나의 인생을 돌아보게 해주는 이야기. 작가는 이를 그의 이름이 적힌 끈에 묶여있는 자루로 묘사했다. “이름 하나에 딸린 이야기가 너무 많아.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이름이란 결국 피와 살과 말과 똥과 하찮은 생각으로 가득 찬 자루를 묶고 있는 끈에 불과해.”(639쪽) 작가는 그러한 그 이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1권에서 사라진 늙은 할머니가 된 친구 릴라는 어딘가에 살아서 또 다른 일을 꾸미고 있다는 마치 미션 임파서블의 주인공 마냥 세계 어느 곳에서 있는 듯이 묘사하며 끝이 난다. 그 부분이 궁금해서 달려왔던 이야기는 레누의 인생을, 릴라의 인생을, 그리고 니노의 인생을, 그리고 엔초의 인생을… 일일이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여러 인물군상들의 삶의 굴곡과 비화들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우리네 인생은 어떠한지 생각해보게 한다. 한국보다는 훨씬 일찍 사상적인 부침을 겪은 이탈리아를 통해서 혁명과 정치의 문제를, 또한 페미니즘으로부터 동성애에 대한 사상의 문제를, 산업화와 지진과 컴퓨터와 글로벌화로 인한 변화를 이야기한다. 그런 역사를 살아낸 이야기를 결코 짧지 않은 4권의 책으로, 그러면서 그 중년의 이야기로부터 노년의 이야기를, 일부일처제의 일탈을, 이혼이 일상화되는 현실을, 성의 자유화를, 교육과 자녀문제를 보게 된다. 어떤 때는 놀라고 어떤 때는 작은 미소를 띄우면서 어느 덧 사춘기를 맞고 있는 우리집 첫째가 떠오르고, 우리 집안의 분위기가 상기되면서…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할머니까지 아우르는 나의 이야기가 겹쳐졌다. “글을 쓰려면 삶의 의미가 될 정도로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해.”(638쪽)라고 릴라의 입을 통해 말하는 작가의 말은 작은 울림으로 퍼졌다. 그래서 그런지 이야기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된다. 

레누는 글로 삶을 살아가지만, 릴라는 행동으로 삶을 살아간다. 그들의 삶이 서로 얽히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우리 삶을 수놓는 글과 행동의 관계를 생각케한다. 글을 잘 쓴다고 삶이 좋은 건 아니다. 행동으로 구원을 이루려고 했던 릴라와 글로 구원을 이루려고 했던 레누.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는 어쩌면 발전과 개발로 커져가는 지구 문명에 대한 반추인지도 모르겠다. “지구라는 행성 자체는 거대한 석탄 웅덩이야.”(628쪽) 마지막 장에 펼쳐지는 나폴리 지역에 대한 설명은 내가 살아가는 지구 도시 부산을 새로이 반추하게 해주었다. 그 속에 담긴 역사… 삶… 그리고 글, 행동… 그러나 여전한 삶의 역설들. 그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반기고 또한 적절한 거리를 두고 멀리하며 그렇게 살아간다. 두 친구의 우정은 우리네 삶이 펼쳐내는 삶의 너저분한 불꽃들의 향연의 역설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순간 임마의 눈에서 불꽃을 보았다. 그 불꽃은 임마가 조금 전에 제 아빠에게서 본 것이었다.”(567쪽) 그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우리의 삶이 너저분할지라도 우리의 불꽃을 피우면서 말이다. 각자의 앨범을 펼치면 쏟아질 그 많은 이야기들을 간직한 채. 우리가 잃어버린 아이는 어쩌면 우리 속에 사그라드는 불꽃은 아닌지. 분주함과 헛된 욕망으로 다 피워내지 못한 불꽃의 이야기는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라진 아이 티나의 이야기는 또 다른 곳에서 불꽃을 피우고 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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