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눈부신 친구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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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란 무엇일까?

- 나폴리 4부작 제1권  <나의 눈부신 친구>(엘레나 페렌테, 한길사, 2016년)를 보고



  관계는 오묘하다. 사람 관계라는 것이 참 다 알 수는 없다. 친구였다가 적이 되는 경우도 있고, 서로의 다름 때문에 다투기도 하지만 그래도 더 끈끈한 관계로 발전하기도 한다. 예전엔 친구였는데 안보면 멀어진다고 그렇게 멀어져간 친구가 있는가하면, 오랜동안 보지 못해도 오랜만에 본 친구가 다시 끈끈한 친구로 이어지기도 한다. 영화 <친구>가 어릴 적 그렇게 친밀했던 친구가 적이 되는 케이스라면, <나의 눈부신 친구>는 서로의 다름 때문에 오히려 더 끈끈한 관계로 발전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다. 친구로서 서로의 작업에 동기부여가 되었던 루이스나 톨킨 같은 관계가 있는가하면, 아마데우스와 살리에르와 같이 서로에게 경쟁심으로 질투와 시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전자가 다윗과 요나단에 비유된다면, 후자는 다윗과 사울에 비유될 수 있을까? 관계라는 것이 참 오묘해서 그 역동을 다 알기는 참 어려운 것 같다. 그런 면에서 관계는 신비다. 관계를 움직이는 힘, 관계를 좋게하는 말, 관계를 새롭게하는 무엇이 있다.  


  우정은 많다. 그런데 나의 한 친구와의 우정은 초등학교 6학년 크리스마스 연극 때 시작되었다. 천사역을 맡았던 그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 친구가 편도선이 부어서 대사를 잘 못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는 시간이 지났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에야 그가 새롭게 보였다. 그전까진 조용하게 있는 그여서 별로 맘이 동하지 않았는데… 고등학교 때 이 친구가 교회로 친구들을 한명씩 한명씩 데려왔다. 그리고 이 친구가 맺어가는 관계의 역동과 배려에 신기함을 느꼈다. 우째 이리 잘 반응할까? 잘 배려하고 잘 들어주고 자기 주장 세게 안하고… 그래서 그런지 주변 친구들이 이 친구를 참 좋아라 하는게 보였다. 이 친구랑 친해져서 옷도 같이 사러 다니고, 밤늦게 심야영화도 보고 그랬다. 그 영화가 장장 2시간 30분에 육박하는 <인도차이나>였던가! 이후 청년대학부에 올라가서는 죽(!)이 잘 맞다고 왠만한 레크레이션 진행을 같이 맡기도 했다. 고신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했던 그는 지금 부산대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고, 부산대 국문과에 입학했던 나는 지금 목사로 설교를 하고 있다. 간간이 만나서 회포도 풀고, 같이 독서모임도 하고 있다. 그 친구는 만나면 편하다. 다르기에 더 배우게 되는, 그래서 오래가는가!   


  릴라와 레누의 우정은 묘하다. 서로 달라서 매력을 느끼고, 그로 인해 서로의 길이 달라지지만… 끊임없이 관계맺는 두 사람. 이탈리아 나폴리를 배경으로 한 대하 서사극 같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토지>가 생각났던 건 어쩌면 두 사람의 우정 이야기에 그 동네의 복잡다단한 현대사가 같이 얽혀있기 때문일거다. 악마처럼 묘사되는 돈 아킬레는 마피아를 연상시킨다. 한 동네에 같이 살던 이들이 산업화 이후로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고, 자본의 힘 앞에 변화하는 관계들을 본다. 작가는 부에 대한 인식을 드러낸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어린 시절 꿈꿔왔던 부의 의미가 다신 한번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은 아씨들> 같은 책을 출판해 부와 명성을 얻고 제복을 입은 하인들이 금화로 가득 찬 보물 상자를 들고 행렬을 지어 우리가 살고 있는 성에 쌓아둘 것이라는 생각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지만 우리 존재를 확고하게 해주고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소중한 사람들의 ‘경계의 해체’를 막아줄 시멘트 같은 돈의 이미지는 아직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부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은 구체성과 일상적인 행동, 그리고 협상이었다.”(330쪽) 


  그들의 관계도 변한다. 마냥 초등학교 아이로만 머물 것 같던 그들의 이야기는 금세 청소년기를 넘어 결혼에 이른다. 두꺼운 분량으로 인해 다 읽겠나, 도입부에서는 무슨 이야길 하려나 싶었는데… 이게 웬걸 읽다보니 엘레나 페란테의 툭툭 던지는 문체에, 그저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풀어내는 군더더기 없는 전개에 무슨 얘길 하려나 했던게, 아~ 이런 복잡다단한 관계의 역학을, 사람 사이의 복잡미묘함을, 그리고 그 속에서 변화하는 마음들 가운데 싹트는 우정을 그리고 있구나 싶었다. 너무 다른데, 그 다름 때문에 이끌리는 두 사람. 릴라는 뛰어나지만 버릇없고, 장난기가 많지만 도전적이며 삶의 이면을 꿰뚫어보는 직관이 있다. 반면 레누는 순둥이 범생이지만 느리고, 대기만성형에 노력파인 그는 변화하는 상황을 잘 관찰하고 꾸준하여 서서히 무언가를 이룬다. 그리고 이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관계들은 마치 우리의 일상을 보는 듯해서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이 소설은 서서히 빨려드는 매력이 있다. 첫 임팩트는 별로 없었는데… 그냥 읽어나가게 되고, 그 다음이 궁금해지게 하는 소설. 신기했다. 그 중심에 릴라와 레누의 차이, 그리고 그들의 복잡다단한 관계가 얽히면서 누군가의 삶의 이야기를 찬찬히 그러면서도 정밀하게 그리고 이면을 꿰뚫어보는 시선으로 보는 맛이 재미있었다. 릴라의 결혼식이 있는 3월 12일 레누가 릴라의 몸을 씻길 때, 릴라가 레누에게 하는 말, 이 책의 제목이 된 대사가 좋았다. 서로 신뢰하고 서로를 세워주는 말. “넌 아니야. 넌 내 눈부신 친구잖아. 너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해. 남녀를 통틀어서 말이야.”(416쪽)  


  나의 관계는 어떻게 보일까? 찬찬히 레누가 풀어가는 이야기 속에서, 그의 나폴리라는 지역에서의 일상이, 그리고 그의 성장과 변화 가운데 이루어지는 사랑까지… <나의 눈부신 친구>는 나 자신을 꿰뚫어보면 어떨까 싶게 만들었다. 나의 관계는 어떻게 기록되어질까? 마치 얼굴없는 작가 엘레나 페란테의 자서전을 읽는 듯한 느낌으로,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기 이야기를 하듯이 그렇게 레누의 이야기를 펼쳐가는 속에 빨려들게 되고, 그래서 그 다음은… 이 친구는 이렇구나, 그런데 다른 친구는 이렇구나 하면서 보다가 사람이 참 중간중간 마음이 잘 바뀌는구나! 그런데… 그렇게 마음이 바뀌는 것이… 그렇지, 사람 마음이 그렇지 하고 납득이 된다, 설득이 되었다. 개연성(蓋然性, Probability). 그래, 이 말이 생각났다. 그럴법함. 핍진성(逼眞性verismilitude)이라고도 표현되는데... 인생은 그렇지라고 말할 수 있는 복잡다단함, 그것을 표현해주는, 소설을 소설로 읽게 만드는, 소설을 더욱 나의 이야기처럼 나를 빗대어서 생각케되는 무엇. 그럴듯함(vraisemblanceplausibility)


  1권을 끝내면서 내 마음에 남는 한 단어는 우정이 아닌 용서였다. ““모르지. 이 동네에서는 아무도 하지 않을 법한 행동을 하려는 거야.” “용서?”… 릴라의 말로는 스테파노가 원하는 것은 그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일이었다. ‘우리 이전’에 일어난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이 했던 것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하며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가 한 일은 부정할 수 없지만 이제 아버지 자리에는 나와 내 가족이 있으니 그만 멈추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222쪽) 이 책에서 전해주는 관계의 오묘함은 우정의 대단함보다 어쩌면 용서의 대단함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우리 삶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복잡다단함을 끊어버리지 않는 그 무엇은 우정이 아닌 용서가 아닐까 하고! 용서는 우리 관계를 새롭게 하는 그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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