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칼을 든 여자 -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도축장에서 찾은 인생의 맛!
캐머스 데이비스 지음, 황성원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6월
평점 :
난 일하는 날에는 저녁을 잘 못 먹는 날이 많아 쉬는 날에는 항상 고기를 먹는다. 마트에 가서 돈만 내면 고기를 바로 살 수 있다. 맛있다기 보다는 평일의 허기짐에 대한 보상으로 기계적으로 먹는다. **리아에서 내가 좋아하는 피규어가 나오면 좋아하지 않는 햄버거는 한 입 먹고 버린다. 이 고기들은 어느 동물의 생명에서 오는 것이다. 이 고기가 내 앞으로 오기까지 여러 사람들의 노고가 담겨 있다. 그런데 내가 돈을 지불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을 이렇게 대하는 것이 옳은 걸까?
‘칼을 든 여자’는 캐머스 데이비스라는 30대 미국 여성이 쓴 책이다. 이 여성은 고기가 윤리적으로 생산, 유통되게끔 하는 일을 한다. 포드차가 나온 나라, 대중 문화와 대량 생산이 잘 어울리는 나라에서 시작되기 적절한 운동이다. 이 책은 그녀가 누구도 쉽사리 발을 떼지 못한 미답지로 걸어들어가 개척하는 과정과 자신의 철학, 인생에 대해 쓴 책이다.
직장에서 해고 되고, 10여년 간의 도시와 직장 생활에서 일종의 번아웃을 겪은 그녀는 운명처럼 도축의 길로 끌려들어간다. 어렸을 적 부모님과 사냥을 하던 기억과 함께,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가듯 도축의 길로 걸어들어갔다. 그녀가 도축을 배우던 프랑스 시절의 이야기는 인상 깊다. 동물들은 자연적으로 길러지고, 고통없이 도축되며, 모든 부분이 사용된다. 방부제 없이 그날 그날 팔리고, 사람들은 고기를 조금씩 사가고, 많이 먹지 않는다. 고기의 풍미는 매우 풍부하다. 마트에서 1+1 세일을 하면 고기를 집어와 감흥없이 먹고, 남은 것들은 긴긴날 냉동실에 있는 광경보다 매우 적절하고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공장식 고기의 생산과 도시 생활은 닮은 점이 있다. 효율을 추구하다보니 진실이나 근본과는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 효율성이 극대화 되다 보니 내게 오는 것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없고,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진다.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진 뒤에는 교만과 과소비가 들어오는 것 같다. 먹지 않고 버리는 햄버거, 어떤 동물의 소중한 생명을 댓가로 얻은 고기를 먹고 싶은지 아닌지도 모른채 기계적으로 소비하기는 옳지 않다. 내가 먹는 것, 거기에 나아가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의 근본에 대해 생각해보고 더욱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삶은 그녀가 걸어가는 자연스럽고 적절한 도축이라는 길과 뗄 수 없이 닮은 모습을 보여 준다. 그녀는 타임스퀘어에 얼굴이 걸린 여자다. 마사스튜어트와 사진도 찍었다. 이쯤되면 자신이 쓴 책에서 스스로를 멋지게 포장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난 그녀의 책에서 솔직함을 느꼈다. 자신이 해나가는 일에 대한 갈등과 고민, 두려움, 금전적인 어려움, 다소 적절하지 못한 연애사로 혼란한 마음을 보여준다. 잡지사 기자로 근무하다 말도 통하지 않는 프랑스 시골로 도축을 배우러 가는 젊은 여자도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그녀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현재의 삶에서 반환점을 찾아 프랑스로 가서 칼을 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삶이 가로막힌 느낌이 들 때, 주저없이 마음의 소리를 듣고 그 길을 향해 가는 그녀의 모습은 내 기억 한 켠에서 삶의 진실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용기가 되어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