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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파리행 - 조선 여자, 나혜석의 구미 유람기
나혜석 지음, 구선아 엮음 / 알비 / 2019년 6월
평점 :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은 사람은 현대 여성이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는 것이 얼마나 힘들게 얻어진 것인지 알 수 있다. 불과 몇 십년 전만 해도 여성의 존재는 순전히 남을 위한 것이었다. 가족을 위해 하루종일 일하는 존재일 뿐인 여성에게는 자신만의 공간이 없다. 현대 여성이 누리는 수 많은 것은 과거 여성이 때로는 목숨까지 바쳐가며 얻은 결실이다.
100년 전 일제 시대에 이를 거스른 여성이 조선에 있었다. 그녀는 나부잣집 4째 딸로 태어난 여류화가 나혜석이다. 조선의 여권 운동가이기도 하다. 자신의 요구사항을 내세우며 한 파격적인 결혼, 외도와 이혼으로 불행해진 삶으로 또한 유명하다. 이런 여성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한 것은 당연하다.
‘꽃의 파리행’은 나혜석의 1년 8개월간의 구미 여행기다. 우리가 생각하는 조선 여성의 삶과는 전혀 딴 판이었다. 일본, 중국, 러시아, 유럽 각국, 미국 등 세계 각국을 넘나들며 조선인, 외국인 등 아는 사람이 엄청 많다. 현대로 치면 핸드폰에 저장된 주소가 1000개는 넘을 듯하다. 세계 곳곳에 살면서 여유있는 삶을 누리는 조선인 지인도 많이 등장한다. 미국 콜럼비아 대학에는 유학 중인 조선인도 많다. 나혜석은 외국인들과도 친한 사람들이 많고 잘 지낸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일제시대 조선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나혜석의 1년 8개월간의 유람기만 하더라도 현대에 이렇게 생활을 하려면 1억이 넘게 들 듯 하다. 일제 시대 상류층 지식인들의 삶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나혜석은 자신의 말처럼 100년만 늦게 태어났다면 아주 행복한 삶을 살았을 사람이 시대를 잘못타고 난 것 같다. 유럽에 대한 그녀의 묘사는 화가라서 그런가 눈에 보이는 것처럼 그려낸다. 복잡한 묘사가 아니지만 멋진 건물과 푸르른 녹음이 눈에 그려지는 듯하다. 현대인처럼 그냥 관광만 한 것이 아니라 해당 지역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현대인들치 가지고 있는 백인이나 유럽에 대한 막연한 동경도 없다. 사고 방식도 현대인 독자에게 전혀 이격이 없다. 100년을 앞서가는 선구적인 지성을 갖추고, 글과 그림에 재능이 뛰어난 여성임을 알 수 있다. 현대에 태어났다면, 화가 겸 작가, 유투버, 블로거, 교수 등으로 재능을 인정받고 행복한 삶을 살았을 사람이다. 구미여행을 하고,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행려병자로 죽었다니 믿기지 않는다.
구미 여행을 마친 그녀의 글에는 조선으로 돌아온 통감한 심정이 그대로 녹아난다. ‘생활 정도를 낮추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것이 없는 것 같다. 이상을 품고 그것을 실현하지 못하는 것처럼 비애를 느낀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녀는 돌아온 고국에서 외계인이 되었다. 발달되고 자유로운 곳에서 살다가 전근대적인 조선에서 그녀는 몸과 마음이 갇힌 신세가 되었다. 시댁 식구들의 전근대적인 시선에 맞추어 살아야 하는 조선 여자로 돌아왔다. 그녀의 비극적인 말로는 갇힌 상태로 살아갈 수 없는 자유롭고 지적인 사람이 택할 만한 행보였을지도 모른다.
나혜석과 같은 여성이 자신에게는 불행을 자초했을 지도 모르는 행보, 희생이 오늘 날 많은 여성이 누리는 삶을 만들어냈다. 그녀가 남긴 글 속의 호방한 기질, 자유로운 지성과 재능 또한 아직도 살아 남아 후대인들에게 귀감이 되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