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자는 살아남는다 걷는사람 소설집 6
최은 지음 / 걷는사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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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_

십 년이 지나가도 못 잊는 영화의 한 장면이 있다.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호텔의 꼭대기에서 아래로 그리고 지하 레스토랑으로 도착하는 장면. 영화 달콤한 인생의 첫 장면이다. 영화는 배신을 통해 한 남자가 밑바닥으로 치닫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암흑가에 의리가 어디 있어. 그 끝은 저런 거지, 의리도 정도 없는 비정한 배신의 세계.

'젊은 여자는 살아남는다'와 앞서 소개한 '달콤한 인생' 두 작품은 결은 다르지만 밑바닥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서울이란 도시를 배경으로 그 아래 살아남기 위한 자본주의 누아르랄까. 다만 영화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배신을 알지 못했다. 그에 반해 '젊은 여자는 살아남는다'의 주인공 채유리는 매춘일을 선택하면서 이를 거래라 칭한다. 거래는 그녀의 몸과 자본. 그것으로 거래는 끝이 난다. 자신의 인생을 비하할 이유도 삶을 체념할 이유도 없다. 주인공은 무엇보다 자신의 처지와 현실을 파악하고 치열하게 계산하고 있다.

사대 보험도 안 되는 인턴이었을 때 잡지사도, 심지어 유흥업소에서도 내가 받게 될 돈은 일하기 전 오픈해 줬었다. 그런데 이 협회는, 그렇게 엄숙한 절차를 거쳐 뽑은 정식 직원에게도 알려 주지 않는 것이다, 내 값을. 자신을 파는 건 매춘만이 아니다. 일반 노동자도 시장에 자신을 판다. 더구나 몸뿐만 아니라, 시간과 두뇌와 텅 빈 미소를 모두 팔기로 결정한 내게 그들은 마땅히 내 등에 붙은 가격표를 말해 주어야 한다. 그게 룰 아냐?

디지털미디어시티-4 중에서

나는 거래를 했을 뿐이다. 신화와 진화생물학이 오랫동안 정의해 온 남성성을 공략한 결과, 어느 정도 유의미하고 운도 따른 성공을 거둔. 자본주의 사회 하 모든 거래의 본질은 감정을 배제하며 상호 이득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거래는 비인간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외압이 전혀 없는 합의와 동의를 거친 거래를 깔끔하고 클린하다.

테헤란로-2 중에서

02_

주인공은 이 매춘을 거래라 칭하고, 작품 안에선 매춘행위를 공정거래라 칭하는데 불법으로 이뤄지는 매춘이 어떻게 공정거래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다만 자본주의에서 더 큰돈을 쥐여 주는 일을 선택한 것은 도시라는, 자본주의라는 정글에서 살아남는 것에 탁월한 선택이라 볼 수 있다. 그렇게 주인공은 밤의 세계로 발을 디딘다.

'젊은 여자는 살아남는다' 이 책은 매우 독특하다. 제목부터 알 수 있듯이 이 책의 형태는 서바이벌, 생존이 목적이다. 다른 의미의 오징어 게임이고 무대는 취업시장이다. 그녀는 이 엇나간 취업시장에서 '자본'을 택하며 세상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매춘업에 뛰어든다. 자본의 가치로 판단되는 사회에서 그녀는 자신의 선택의 망설임이 없다. 그녀의 선택과 행위에 질문은 세상에 유효하다. 기를 쓰고 스펙을 쌓아도 얻을 수 있는 '인턴'이나 계약직이 고작이다. 그렇게 취업시장을 떠도는 사이 '나의 일은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얼마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사람들의 웃는 얼굴을 믿지 않는다. 눈동자 뒤에 있는 것만이 언제나 궁금하다. 자인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찡그렸던지. 싸구려 카페에서 꿈을 이야기했을 때, 지하 바에서 몇 안 되는 학생 관객들 앞에서 노래했을 때. 다채롭게 찡그리고, 웃고, 놀라고, 울상 짓는 얼굴. 난 그렇게 살아 있는 얼굴만을 믿고, 살아 있는 사람만을 사랑한다.

03_

소설은 주인공 채유리가 멱살 잡고 끌고 간다. 그녀는 어떤 소설 주인공보다 파격적이고 소설 속에는 적나라하고 예측 못할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그녀의 일탈이 일으키는 파급력이 너무 커 처음에 정을 붙이기 힘들 것이라 여겨졌다. 많은 책을 읽었으나 주인공 채유리처럼 금기를 거리낌 없이 넘는 캐릭터도 없었다. 기존의 여성 캐릭터와 다르게 욕망에 적극적이다. 시크하고 센척해 보이지만 그녀는 서울이라는 정글 아래 생존 경쟁에서 무엇보다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무기와 약점을 나열한다. 여성, 젊음, 가난, 외모, 학벌... 그녀가 팔 수 있는 가장 값진 무기는 젊음과 여성이다. 그녀는 도시라는 정글을 살아남는 법을 알고 있다. 세상은 여성을 약한 존재라 여기지만 그녀는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젊은 여자가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다.

그녀가 이 사회를 대변하는 여성성은 아닐 것이다. 그녀는 일탈이고, 그녀의 반역적인 행동은 사회 밑바닥과 자본주의가 가리는 치부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책은 다른 어떤 책에서도 이야기하지 않는 다양한 어둠 속 이야기를 끌어올린다. 그 속에서 함께 떠오르는 수많은 질문과 생각들. 이 파문을, 그녀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한 번쯤 새겨볼 가치는 충분하다.

우리가 죽는다면 무엇이 남을까요?

04_

동성애와 매춘, 이야기가 노골적으로 나오는 소설에서 성은 양극단의 소재로 사용된다. 매춘은 주인공 유리에게 생존의 수단이고, 자인과의 성애는 구원의 방식이다.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만 같은 사회에서도 애정과 사랑은 필수라는 사소한 진리는 배우며 책을 덮는다. 그리고 구원을 처음부터 옆에 두었던 유리에겐 어쩌면 기회가 있지 않았을까, 순간순간을 짚어 보게 된다.

그래서 젊은 여자는 살아남았을까? 정글 속 싸움은 처음부터 예정되었고, 예상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힌트는 처음에 소개한 영화로 대체하겠다. 그 뻔한 결과가 조금 아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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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섬
쥴퓌 리바넬리 지음, 오진혁 옮김 / 호밀밭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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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_

좋은 소설의 메타포는 다양한 해석을 가져오고, 그 해석의 논리에 어긋남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마지막 섬은 매우 좋은 소설이다. 얼핏 본 마지막 섬은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면서 오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시각으로 본다면 마지막 섬은 환경 소설처럼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권위주의 정치인의 어리석은 판단과 이에 순응하는(혹은 무관심한) 존재들의 파멸을 이야기하는 책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떤 해석과 흐름으로 읽어도 읽는데 무리가 없다. 쉬운 전개와 이야기 구성은 동물농장을 떠오르기도 한다. 

마지막 섬이 다양한 흐름으로 읽힌다고 했지만, 그 안에 정치적 이야기는 지울 수 없을 것 같다. 사건이 원인이 된 계기도 대통령이 섬이 오게 되면서부터다. 그는 권위적이고 독재적인 형태의 세력을 만들고 사람들을 자신들의 뜻대로 회유하기 위해 가상의 적을 만들어 낸다. 소설 안에서는 갈매기와 뱀, 여우가 등장한다. 자연을 적으로 상정하며 싸움을 시작하지만 그 화는 인간이 입게 된다.

책 속의 시간은 가상의 사회 가상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나, 최근 읽은 어떤 소설보다 현대의 지금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마지막 섬은 사회에 대한 관심과 그른 것을 그르다 말하는 저항정신을 놓지 말라 이야기한다.

자네가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알지만, 자네가 사는 세상을 이렇게까지 모른 척할 권리는 없어

마지막 섬 중에서

02_

최근 세계에서 다수의 국가가 권위적인 정부, 스트롱 맨이라 불리는 대통령을 선택했다.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왜 세계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가'에서 저성장 사회를 겪으며 발생한 '민주주의 위기'라는 칭하고 철학적 사유를 더한다.(그 원인으로 표상의 위기- 자극적인 이미지와 제목만을 쫓는 군중과 그로 인해 횡횡하게된 가짜 뉴스를 이야기한다.) 

대한민국 역시 이러한 흐름을 타고 보수적, 권위적인 정부를 선택했다. 이 정부의 특징은 다양한 적들과 싸울 거리로 시선을 돌린다. 가장 대표적인 흐름을 여성과 남성의 성별 갈등을 부추긴다. 대한민국의 경우 안보 싸움과 상대 정당의 현안과 비리를 들어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은 정치적 상황이라는 말이 여실하게 와닿는 나라이다. 분단국가라는 특수성과 위로는 중국, 러시아 아래로는 일본 등 주변국들과 역사 사회 정치적으로 갈등을 겪고 있다. 이런 외부적 요인과 내부적으로 보수와 민주가 대립하고 있다. 각 정당과 진영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다양한 뉴스와 말들을 쏟아낸다. 그 이야기들은 진실이거나 거짓일 수 있다. 그리고 교묘하게 혼재되어 있거나 시각을 비틀거나, 자신의 주장에 맞도록 자료를 교묘하게 비틀기도 한다. 오사 빅포르 '진실의 조건'에서는 이 안에서 옥석을 가리기 위해 철저하게 논증하고 근거들의 진위 여부를 따져야 한다 말했다. 민주주의 시민들은 정치에 고개를 돌려서는 안된다. 그리고 마지막 섬에서는 무관심과 무지의 파국이 어떤 것인지 이야기한다.

악은 더 조직적이고 더 계획적이지. 선의 내면에는 순진함이 있어. 그래서 세상 모든 곳에서 악이 순진함을 이기는 것이기도 하고.

마지막 섬 중에서

03_

마지막 섬은 자연 속 특정 동물을 '적'으로 간주한다. 하나의 개체가 줄이기 위한 결과로 다른 문제가 생겨난다. 갈매기가 줄자 뱀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래서 다음은 뱀을 잡기 위해 싸웠고, 다음은 여우를 잡기 위해 불을 놓게 된다. 여우를 잡기 위해 놓은 청산가리가 물을 오염시키고, 산에 놓은 불이 마을을 불태운다. 섬은 그렇게 망가졌다.

작가는 인터뷰를 통해 이 책이 '다수의 독재'라 표현한다. 전 대통령은 모든 절차는 지극히 민주적임을 주장한다. 다수가 동물을 죽이는 것을 긍정했다. 이 책이 가장 무서운 점은 섬이 무너지고 망가지는 과정이 지극히 민주적이었다는 것이다.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다양한 책들이 소환되었다. 국가 시스템의 무능과 맹점을 다룬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조지 오웰의'동물농장' 그리고 나치에 동조한 독일 국민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왜 그랬을까, 왜 그래야만 했을까.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정치와 사회를 대하는 관심과 시선, 책임을 한 번 더 상기시킨다.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싸움을 의견 차이로 인한 사람과 사람의 싸움으로 번져갔다. 마지막 섬에서 최종적 승자들은 의심하고 생각하고 싸운 자들이다. 책 안에서는 갈매기와 구멍가게 아들이 그러하다. 상황을 외면하고 방기한 대가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되었다.

읽는 내내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매력적인 책이다.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사회를 반추할 수 있는 매력적인 문장을 만날 수 있다. 책을 덮은 순간에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개개인의 책임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할 여지를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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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
김봉철 지음 / 문성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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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_감상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가 출판이 된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왔다. 가장 먼저 드는 기분은 걱정이었다.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가 내뿜는 기운이 가히 신묘하기 때문이다. 30대이고 백수며 쓰레기인 삶. 어떤 자존감이면 스스로를 그렇게 낮출 수 있을까. 내용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이들은 이를 불쾌하다 하고, 어떤 이들은 크게 공감하며, 어떤 이들은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말한다.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예상은 크게 다르지 않아 독립출판사에선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던 책은 출판사를 통해 출간이 되자 양극단의 평을 달리고 있다. 당연한 결과다. 이 책의 내용은 지극히 마이너적이다. 소수자의 삶을 다루는 책을 다수에게 공감하라는 건 쉽지 않다.

사람들은 사실 여부를 궁금해하지만 사실 이 책의 내용들이 진위 여부는 중요치 않다. 이 책을 읽었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 이 책과 닮은 책을 생각하자면 '천재들은 파란색으로 기억된다'이다. 천재들의 비참하고 밑바닥에 가까운 삶. 그 안에 불탔던 예술혼. 누군가가 살아가기에 지구는 너무도 차갑고, 어떤 이들에게는 죽을 만큼 괴로울 수 있다. 

그렇다면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는 정말 불필요한 책일까? 

이 책의 이야기들 중 어떤 부분은 어떤 이들이 한때 겪었을 수 있는 일이다.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았던 친구를 만났다. 아버지의 허리띠로 맞았다는 이야기였다. 심지어 그 애는 여자였다. 그 아이는 피해망상증 증세도 보였는데, 주변 사람들 누구도 공감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 아이를 피했고, 결국 그 아이는 고립되었다. 

누군가는 외면하는 삶을 다루는 책. 메이저 출판사의 어떤 작가도 쓸 수 없는 밑바닥 중의 밑바닥에 대한 이야기다.(다른 의미로 황정은 작가가 떠올라 매우 괴로웠다.) 따라서 이 책은 메이저에 어울리지 않는다. 대신 이 책을 지지할 소수자은 열광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다룬 책은 흔하지 않다. 어쩌면 이 책이 유일할 수도 있다.

정말 이러한 삶과 거리가 멀다면 책의 내용이 불쾌한 것은 당연하다. 맘에 들지 않는다면 책을 덮어도 좋다. 이미 말하지 않았는가. 이 책은 다수의 삶을 다루고 있지 않다. 한마디로 당신을 위해 쓰인 책은 아니란 소리다.

‘사랑이나 가족, 친구 같은 말 들을 목적을 가지고 변명으로 사용하면 할수록 그 말의 가치는 점점 떨어져 가는 것이다.’라는 말을 노트에 써 놓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나이 서른여섯에 백수로 산다는 것 중에서

02_ 책 속으로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는 저자의 시간에 따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다양한 일을 하고,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백수가 되는 삶을 반복한다. 

책을 읽기 전 사전 지식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 사전 지식은 매우 잔인할 수도 있다.

-저자는 자기 비하가 심하다. 특히 외모 비하가 심하다.

-저자는 사회 부적응자다. 본인도 이점을 매우 잘 알고 있으며, 이로 인한 자기 비하가 반복된다.

-저자는 자신의 비굴함과 비겁함, 찌질한 면모를 숨기지 않는다.

그런데 이 솔직함이 맘에 드는 책이다. 동시에 책의 문장들은 무엇보다 매력적이다.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상처라는 이름으로 잠이 안 오는 새벽을 흘러가야 이 지겨운 반복이 끝이 날까.

20대 초반에 편의점에서 알바하던 때 이야기 중에서

03_총평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는 서평의 제목 그대로 글로 쓰는 한풀이에 가까운 책이다. 하소연과 푸념에 자기 비하를 더해 글을 문학적으로 풀었으니 편할 리가 없다. 그럼에도 책의 문장들은 꽤 매력적이다.

많은 예술가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형태이기도 하다. 팀 버튼은 자신의 불우한 어린 시절, 특히 크리스마스 혼자서 쓸쓸히 있던 기억을 반추해 크리스마스 3부작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감독은 과거를 떨쳐냈다고 말한다. 그리고 누구도 만들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세계를 만들어낸다. 

작가에게 묻고 싶다. 많은 책을 냈고 인지도를 얻었다. 지금도 자신을 불행하다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쓸모없다고 생각하냐고 말이다. 그렇다면 그건 정말 슬플 것 같다.

내 말투가 어눌하고 바보 같아서, 내 표정이, 내 걸음걸이가, 어깨가 굽은 내 자세가, 어제의 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을까? 남들만큼은 아니어도 그래도 사람처럼은 보였을까? 이 말은 하지 말 걸, 이런 얘기는 내가 들어도 지루했을 텐데, 그런데도 웃어주던 사람들은 정말 좋은 사람들인 것만 같아서 그게 더 미안하고, 후회되고, 신경 쓰이고, 걱정되고, 불안하고.

사람을 만나고 나면 쓸쓸해진다 중에서

04_책이 나에게

책을 읽으면서 지난 삶을 반추하게 된다. 나의 과거는 어땠더라. 회사가 폐업하고 쫓겨나듯 회사를 나왔던 어느 시간이 떠올랐다. 퇴직금도 없었다. 당시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싫었다. 당시의 나 역시 백수 쓰레기 였구나. 당시에는 그것을 정의할 단어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때 그 단어를 몰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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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아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 물리학자 김범준이 바라본 나와 세계의 연결고리
김범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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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_감상

물리학자들은 왜이렇게 로맨틱 한걸까? 5도씩 궤도를 벗어난 방식으로 말이다. 꼰대를 좌표로 설명하고, 새해를 통해 관성을 설명하는 낭만. 세월을 엔트로피로 설명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고 있습니다'에는 범인의 눈으론 근접못할 물리학자의 낭만이 존재하는 책이다.

물리학자의 사고 체계를 다룬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물리이야기(왜 제목을 이렇게 지었을까?)' 천문학자의 눈으로 우주와 세상을 엿본 '우주 상상력 공장'을 읽은 뒤 과학자들이 1도 또는 5도 정도 엇갈린 시각의 로맨티스트인지 알게 되었다. 그들의 독특한 시각은 꽤나 매력적이다.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고 있습니다'를 추천하는 이유다.

모든 내용들이 과학과 물리학을 다루고 있진 않다. 어떤 부분은 꽤나 사회 운동가 같은 발언이라 놀라기도 했다. 과학자들은 연구만 하느라 세상에 대한 시각이 전무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생각보다 세상을 사랑하고,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있었다. 내 속에 있는 물리학자와 과학에 대한 편견이 부끄러워지는 책이다.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고 있습니다'는 물리학자의 에세이, 단상집에 가깝다. 이런 책을 추천하는 이유 중 하나는 물리학의 딱딱한 이론들을 쉽게 이야기하듯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니 누군가가 물어보면 그 이론을 답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읽는데 무리가 없다. 그것만으로 만족한다.

우주의 막막함과 그 안에 놓인 인간 존재의 사소함을 대할 때면 나는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글귀를 떠올린다. 허공으로 가득한 우주의 아름다움을 이성의 힘으로 스스로 깨달은, 우리가 아는 유일한 존재가 우리 자신이다.

원자에서 우주까지, 거의 모든 것을 이루는 중에서

02_ 책속으로

제목을 보면 물리학의 가장 작지만 중요한 존재 '원자'에 대한 이야기 인것 같지만, 마지막장까지 읽고 난 소감은 물리학 이론을 빌어 온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처럼 보인다.

1부는 '우리는 모두 우주에서 온 별의 먼지: 인간이라는 존재로 산다는 것' 편에서 '인간의 존재론','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다루고 있다. 지금의 나와 십 년의 나는 같은 존재인가. 같으면서 같지 않은 나에 대한 이야기는 양자역학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인간과 알파고의 경기를 소개하면서 인간이 정말 진 것인가를 묻는다. 알파고의 뇌는 딥러닝이라 불리는 알파고의 학습법은 인간의 진화론 학습과정을 따 온 것이다. 그 뒤에 나오는 영화 블레이드는 인간이라는 존재와 무엇보다 잘 어울린다.

세상 모든 것은 원자와 분자로 이루어진다. 여기저기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원자들이 서로를 잡아 끌고 때로는 밀어내어 세상 모든 것을 만든다.

2부는 관계의 물리학이라는 시집에서 따온 제목으로 관계와 과학을 다루고 있다. 물리학의 중력 끌어당기는 힘은 관계와 매우 닮아있다. 힘의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밀려나는 반작용의 법칙은 어떤가. 물리학의 많은 이론들이 관계와 닮았다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다. 물리학이 세상을 읽는 학문이라는 학자의 말을 부정하기 힘들다.

3부는 보이지 않는 힘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 힘은 공간이기도 하고, 신호이기도 하고, 미래이기도 하다. 영화 매트릭스가 나와서 흥미진진했지만, 개인적으로 매력적이진 않았다. 관심이 없어서 그런듯하다.

4부는 이성의 눈으로 세상을 읽는다 성명하는데 복잡한 세상사에서 자신만의 기준을 만드는 이야기이다. 기준과 법칙, 상식이라는 소제목을 통해 어떤 이야기인지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지식을 모두의 상식으로 만드는 과정'편을 즐겁게 읽었는데, '흔들려서 믿을 수 있는 것이 과학이다'라는 소제목은 과학자의 신념이 담겨있는 듯해서 더 멋지게 느껴졌다.

5부는 공존에 대한 이야기다. 2부와 비슷한 이야기가 다양하게 나온다. '자연은 공존하고 과학은 대칭이다' 그리고 물리학은 대칭이라 아름답다. 라는 정의를 얻을 수 있다. 개인적으론 숨은열을 설명하는 '평화, 연결의 구조를 바꿔 세상을 바꾸다' 편을 읽고 노력의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그 노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100도씨의 물을 끓이기까지 많은 열에너지 숨은열이 필요하듯 말이다.

우주에 처음이 있어서 내가 지금 이곳에 있듯, 내 삶의 모든 처음이 있어 지금의 내가 있다.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만 나아간다. 비가역성이 있어서 거꾸로 되돌릴 수 없다. 모든 처음은 다시 올 수 없는 우주적 사건이다.

시간의 화살 위에 점을 찍는 일 중에서

물리학을 연구하는 물리학자는 논증을 통해 세상을 엿본다고 했다. 굳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물리학 이야기를 가져오지 않더라도 물리학자의 말과 글을 통해, 그가 풀어놓은 과학이론과 엮는 세상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름답다. 무엇보다 매혹적이다. 물리학의 이론은 여전히 어렵고 알 수 없지만, 물리학자가 되고 싶다. 그 사고 체계를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꼰대란 무엇인지도 물리학의 상관함수로 생각해볼 수 있다. 판단 기준이 형성된 시간과 공간상의 위치를 원점 (0,0)으로 정의하자. 시공간 위치가 원점으로부터 (t,x)로 떨어진 지금 이곳의 상황을 (0,0)에서 형성된 기준으로 판단하려 하는 것이 꼰대다. 원점과 (t,x) 사이의 거리가 멀수록 상관관계가 줄어든다. 엉뚱하게 판단하면서도 스스로 옳다고 믿는 중증 꼰대가 된다.

꼰대, 지금 이곳의 좌표 중에서

03_읽고나서

최근에 읽은 과학서적은 무엇하나 뺄 것이 없다. 이렇게 아름다운 책들이 어떻게 내 손에 들어오게 됐을까? 이것이 무엇보다 큰 축복이자 아름다움이 아닌가 싶다.

이과, 과학적인 뇌가 없더라도 읽은 수 있는 과학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다. 학창시절 가장 힘들었던 과목이 수학과 과학이었는데, 사회에서 책으로 읽는 수학과 과학은 왜이리 재밌는지 모르겠다.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거대한 우주와 나를 둘러싼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원자의 세계를 상상하게 된다. 책 속의 이야기들은 일상을 다루고 있으나 하나 같이 과학적이며, 시와 같은 문장으로, 철학적인 사유를 다루고 있다. 정말 매력적인 책이다.

삶에도 잣대가 있다. 우리는 각자의 잣대를 가지고 세상을 본다. 남의 잣대가 나와 다르면, 다름을 틀림으로 오해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 내 잣대를 먼저 의심해보는 성찰적 회의도 중요하다.

04_책이 나에게

거대한 우주와 인간의 눈으론 읽히지 않는 미세한 존재를 생각하다 보면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고민거리가 생길 때마다 밤하늘과 그 뒤에 끝없는 우주를 떠올리며, 세상 그 큰 사고도 저 거대한 우주 아래선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던 말이 생각난다.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고 있습니다.'에서 소개하는 물리학과 과학 이론을 읽다보며 작고 작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이 한낱 작고 작은 미물이 지구라는 땅 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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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거짓말을 한다 - 구글 트렌드로 밝혀낸 충격적인 인간의 욕망, 개정판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 지음, 이영래 옮김 / 더퀘스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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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에서 보낸 아이 용품 카탈로그를 받은 부모는 상품 카탈로그가 잘못 왔다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그 집의 자녀가 임신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자녀는 임신과 관련된 정보와 상품을 검색했을 것이고, 관련 내용을 구글에 남았다. 이 검색이라는 행위를 통해 구글은 가장 가까운 가족, 친구들도 모르는 정보를 알고 있다. 어쩌면 내가 알지 못하는 정보, 혹은 내가 잊은 정보를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과학자들은 인터넷 서칭을 통해 남겨진 무의식의 기록들. 인간은 빅데이터라고 불리는 기록과 데이터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검색이라는 무의식적인 행동,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이 행위에는 거짓말이 담겨 있지 않다. 검색을 통해 입 밖으로 내놓지 못하는 내면과 인간의 욕망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 '모두 거짓말을 한다'에 담긴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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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트렌드가 담고 있는 진실을 충격적이며 때론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한다. 부모들은 아들과 딸을 다르게 대하며, 자신의 아들이 천재인지 묻는 질문은 자신의 딸이 천재인지 묻는 질문의 두 배가량 많다고 한다. 미국인들은 버락 오바마를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아닌 깜둥이 대통령으로 인식한다. 모두 인식하지 않으나 뿌리 깊은 인종차별에 대한 내용이 미국 전역에 팽배한다.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을 비웃었으나 구글트렌드는 트럼프의 승리를 예측하고 있었다. 

왜 트럼프의 승리는 선거전까지 드러나지 않았을까?

저자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 말한다. 사람들의 거짓말의 영역은 생각보다 폭넓다. 사람들은 친구, 연인, 의사, 설문조사뿐 아니라. 심지어 자기 자신도 속인다고 말한다. 드러나지 않는 거짓말과 욕망을 담고 있는 속마음. 구글 트렌드가 소중한 이유는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분석해 인간이 무엇을 원하고 바라는지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빅데이터를 통해 우리는 사람들이 원한다고 말하는 것,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정말로 원하고, 정말로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다. 솔직한 데이터 제공이 빅테이터의 두 번째 힘이다.

프로이트가 옳았을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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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트렌드의 데이터는 사람들의 다양한 행동양식과 속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맹신은 금물이다. 이것들이 모두 인과관계를 가진 결과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인과관계를 가지든 아니든 기업들은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빅데이터는 행동양식이라는 큰 힘을 가졌고, 기업은 그저 돈을 벌면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기업은 구글 트렌드의 데이터 지도를 통해 인간의 속마음과 욕망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실린 많은 이야기들은. 각 장마다 실린 내용들은 인식과 기술들을 가감 없이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당신의 목표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라면 당신의 모델이 어떻게 좋은 효과를 내는지 정확한 이유를 너무 궁금해할 필요는 없다. 정확한 수치만 얻으면 그만이다.

데이터를 보는 새로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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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옳고 그름을 어떻게 가릴 수 있을까. 구글 트렌드의 욕망은 옳지 않음이 다수의 경향을 가지는 경우도 존재한다. 통제가 가능하지 않은 정보는 공익적인 것일까, 아니면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무기인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 무서워졌다. 보수적인 시각으로 구글 트렌드의 검색에 차단 기능이나 통제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빅데이터를 통해 들여다보니 인간의 내면과 솔직한 욕망은 너무 적나라해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이제는 검색도 함부로 하면 안 되겠다.



https://blog.naver.com/sayistory/222941956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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