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자는 살아남는다 걷는사람 소설집 6
최은 지음 / 걷는사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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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이 지나가도 못 잊는 영화의 한 장면이 있다.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호텔의 꼭대기에서 아래로 그리고 지하 레스토랑으로 도착하는 장면. 영화 달콤한 인생의 첫 장면이다. 영화는 배신을 통해 한 남자가 밑바닥으로 치닫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암흑가에 의리가 어디 있어. 그 끝은 저런 거지, 의리도 정도 없는 비정한 배신의 세계.

'젊은 여자는 살아남는다'와 앞서 소개한 '달콤한 인생' 두 작품은 결은 다르지만 밑바닥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서울이란 도시를 배경으로 그 아래 살아남기 위한 자본주의 누아르랄까. 다만 영화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배신을 알지 못했다. 그에 반해 '젊은 여자는 살아남는다'의 주인공 채유리는 매춘일을 선택하면서 이를 거래라 칭한다. 거래는 그녀의 몸과 자본. 그것으로 거래는 끝이 난다. 자신의 인생을 비하할 이유도 삶을 체념할 이유도 없다. 주인공은 무엇보다 자신의 처지와 현실을 파악하고 치열하게 계산하고 있다.

사대 보험도 안 되는 인턴이었을 때 잡지사도, 심지어 유흥업소에서도 내가 받게 될 돈은 일하기 전 오픈해 줬었다. 그런데 이 협회는, 그렇게 엄숙한 절차를 거쳐 뽑은 정식 직원에게도 알려 주지 않는 것이다, 내 값을. 자신을 파는 건 매춘만이 아니다. 일반 노동자도 시장에 자신을 판다. 더구나 몸뿐만 아니라, 시간과 두뇌와 텅 빈 미소를 모두 팔기로 결정한 내게 그들은 마땅히 내 등에 붙은 가격표를 말해 주어야 한다. 그게 룰 아냐?

디지털미디어시티-4 중에서

나는 거래를 했을 뿐이다. 신화와 진화생물학이 오랫동안 정의해 온 남성성을 공략한 결과, 어느 정도 유의미하고 운도 따른 성공을 거둔. 자본주의 사회 하 모든 거래의 본질은 감정을 배제하며 상호 이득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거래는 비인간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외압이 전혀 없는 합의와 동의를 거친 거래를 깔끔하고 클린하다.

테헤란로-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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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이 매춘을 거래라 칭하고, 작품 안에선 매춘행위를 공정거래라 칭하는데 불법으로 이뤄지는 매춘이 어떻게 공정거래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다만 자본주의에서 더 큰돈을 쥐여 주는 일을 선택한 것은 도시라는, 자본주의라는 정글에서 살아남는 것에 탁월한 선택이라 볼 수 있다. 그렇게 주인공은 밤의 세계로 발을 디딘다.

'젊은 여자는 살아남는다' 이 책은 매우 독특하다. 제목부터 알 수 있듯이 이 책의 형태는 서바이벌, 생존이 목적이다. 다른 의미의 오징어 게임이고 무대는 취업시장이다. 그녀는 이 엇나간 취업시장에서 '자본'을 택하며 세상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매춘업에 뛰어든다. 자본의 가치로 판단되는 사회에서 그녀는 자신의 선택의 망설임이 없다. 그녀의 선택과 행위에 질문은 세상에 유효하다. 기를 쓰고 스펙을 쌓아도 얻을 수 있는 '인턴'이나 계약직이 고작이다. 그렇게 취업시장을 떠도는 사이 '나의 일은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얼마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사람들의 웃는 얼굴을 믿지 않는다. 눈동자 뒤에 있는 것만이 언제나 궁금하다. 자인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찡그렸던지. 싸구려 카페에서 꿈을 이야기했을 때, 지하 바에서 몇 안 되는 학생 관객들 앞에서 노래했을 때. 다채롭게 찡그리고, 웃고, 놀라고, 울상 짓는 얼굴. 난 그렇게 살아 있는 얼굴만을 믿고, 살아 있는 사람만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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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주인공 채유리가 멱살 잡고 끌고 간다. 그녀는 어떤 소설 주인공보다 파격적이고 소설 속에는 적나라하고 예측 못할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그녀의 일탈이 일으키는 파급력이 너무 커 처음에 정을 붙이기 힘들 것이라 여겨졌다. 많은 책을 읽었으나 주인공 채유리처럼 금기를 거리낌 없이 넘는 캐릭터도 없었다. 기존의 여성 캐릭터와 다르게 욕망에 적극적이다. 시크하고 센척해 보이지만 그녀는 서울이라는 정글 아래 생존 경쟁에서 무엇보다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무기와 약점을 나열한다. 여성, 젊음, 가난, 외모, 학벌... 그녀가 팔 수 있는 가장 값진 무기는 젊음과 여성이다. 그녀는 도시라는 정글을 살아남는 법을 알고 있다. 세상은 여성을 약한 존재라 여기지만 그녀는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젊은 여자가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다.

그녀가 이 사회를 대변하는 여성성은 아닐 것이다. 그녀는 일탈이고, 그녀의 반역적인 행동은 사회 밑바닥과 자본주의가 가리는 치부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책은 다른 어떤 책에서도 이야기하지 않는 다양한 어둠 속 이야기를 끌어올린다. 그 속에서 함께 떠오르는 수많은 질문과 생각들. 이 파문을, 그녀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한 번쯤 새겨볼 가치는 충분하다.

우리가 죽는다면 무엇이 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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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와 매춘, 이야기가 노골적으로 나오는 소설에서 성은 양극단의 소재로 사용된다. 매춘은 주인공 유리에게 생존의 수단이고, 자인과의 성애는 구원의 방식이다.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만 같은 사회에서도 애정과 사랑은 필수라는 사소한 진리는 배우며 책을 덮는다. 그리고 구원을 처음부터 옆에 두었던 유리에겐 어쩌면 기회가 있지 않았을까, 순간순간을 짚어 보게 된다.

그래서 젊은 여자는 살아남았을까? 정글 속 싸움은 처음부터 예정되었고, 예상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힌트는 처음에 소개한 영화로 대체하겠다. 그 뻔한 결과가 조금 아쉽기도 하다.



https://blog.naver.com/sayistory/222948227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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