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물었다 -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
아나 아란치스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죽음을 이야기하는 책의 대부분은 삶을 이야기한다. 죽음의 순간 남는 것이 삶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삶에 대한 회한이 드는 순간, 내가 잘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면 죽음의 순간을 떠올리게 된다. 나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

'죽음이 물었다'는 완화 병동, 우리나라에서는 호스피스 병동이라 불리는 곳에서 일하는 브라질 의사가 쓴 글이다. 완화 병동은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곳이다. 의학적 치료는 불가하기에 고통을 덜어주고 환자가 보다 인간적으로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다. 그러니까 들어오는 환자들이 생에 마지막을 보내고 삶을 정리하는 곳인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처럼 사는 삶을 택하지만 모두가 살아 있는 상태로 죽을 권리를 갖고 있다. 내 차례가 오면 나는 멋지게 삶을 마감하고 싶다. 그날, 나는 살아 있고 싶다.

죽음이 물었다 _ 어떤 길이든 같은 곳으로 이어진다 중에서

책날개에 실린 본문의 글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죽은 것처럼 존재감 없는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살아있는 상태로 죽을 권리. 이것도 하나의 권리다. 나에게 선택하라고 말하면 어떤 삶과 죽음을 택할 것인가. 그리고 나의 죽음의 순간은 어떤 모습일까. 

멋지게 삶을 마감하고 싶지만, 살고 싶은 마음. 이것이 죽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중적인 마음이 아닐까. 

죽음을 매일 바라보는 의사는 환자들을 바라보며 죽음과 삶을 반복해서 생각했을 것이다. 삶과 죽음의 카테고리까지 만들며 관련 서적을 읽고 포스팅해왔다. '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관하여''참 괜찮은 죽음''죽은 자 곁의 산 자들' 세 권의 책 모두 죽음을 통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죽음이 물었다' 이 책 역시 죽음을 통해 삶을 이야기하는 책으로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앞에 읽은 세 권의 책과는 다른 결이 읽히는 책이다. 

'죽음이 물었다'라는 책은 삶과 죽음이 끊임없이 대립하며 싸우는 느낌을 자아내는 책이다. 죽을 수밖에 없지만 죽고 싶지 않아. 이것이 죽음을 앞둔 이들의 공통된 심리가 아닐까. 그 기분이 어쩔 수 없이 책에 묻어나다 보니 묻어나는 모순적인 감정들이 슬프게 읽힌다. '죽음이 물었다'가 이야기하는 삶과 죽음의 시야와 사유는 무척이나 깊어서 몇 번을 눈물짓게 했다. 삶과 죽음의 양가감정과 그것을 초월한 아쉬움 없는 죽음의 길까지. 삶과 죽음의 순리를 여행하는 책이라 마음이 남았다.

사람들은 결국 살아온 대로 죽는다. 의미 있는 삶을 살지 못했다면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할 기회를 가질 가망도 없다.

죽음이 물었다 _완화의료와 안온한 엔딩 중에서

'죽음이 물었다'에선 반복적으로 말한다. 죽음은 리허설도 예고편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각본도 존재하지 않는 삶의 순리대로의 마지막 순간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살아온 대로 죽는다. 내가 살아온 궤적을 따라 죽는다고 말한다. 의미 있는 삶을 살지 못했다면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할 기회를 가질 가망도 없다는 말. 이 말이 무척이나 와닿았다.

매순간 당신은 최선을 다했다. 어쩌면 삶을 잘 사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일상 속에서 다음의 다섯 가지를 지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감정을 표현하기, 친구들과 함께하기,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스스로 선택하기, 일하는 동안만이 아니라 삶 전체에서 의미를 지니는 일 하기.

죽음이 물었다 _행복을 위한 조언 중에서

절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아쉬움 없는 마지막을 위해서 오늘이 마지막 인듯 살아야 할 것이다.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왠지 거창한 일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하루하루 감사하고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매일이 무수히 쌓여 마지막이 남는다. 삶 전체에서의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 죽게 될 존재들의 신비한 삶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가 왔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삶과 죽음을 다룬 책의 이야기의 결말을 언제나 똑같다.지금의 삶에 충실하다 주변을 돌아보라. 오늘을 사랑하라. 각각 그 이유를 주변에서 찾는 사람들의 책이다. 그들은 지혜를 전수하는 랍비일 수도 있고, 죽음과 관련된 일을 하는 장례지도사, 무덤지기, 사후처리 청소부, 사형집행인, 호스피스 병동인 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죽음과 관련된 일을 하거나 죽음을 옆에서 지켜보는 이들이다. 그들은 죽음을 통해 삶을 들여댜 본다. 삶과 죽음이 싸움을 통해 남긴 무수한 흔적들을 보며 삶을 고찰한다. 그리고 죽고 싶지 않은 인간의 마음과 필멸할 수 없는 생, 그 합의할 수 없는 지점 어딘가의 합의점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반드시 죽는다. 그리고 그 끝은 내가 살아온 궤적을 통해 이어질 수도 그곳에서 멈춰설 수도 있다. 우리가 좀 더 의미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이유다. 

책을 덮는 순간 오늘이 매우 소중해졌다.



https://blog.naver.com/sayistory/2229589401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루하나 365일, 챌린지 인생 문장 - 1년은 사람이 바뀔 수 있는 충분한 시간
조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블로그에 다양한 일기 쓰는 방법을 모아두었다. 한 줄 일기, 질문 일기, 감사 일기 등 최근 다양한 방식으로 쓸 수 있는 일기 쓰기 방법이 있다. 내년에는 꼭 1년 일기 쓰기 목표를 달성하고 싶은데, 나는 어떤 방식으로 일기를 쓸 수 있을까. 신년을 기다리며 고민과 생각을 쌓아간다.

새해 목표는 감사하며 살기다. 자기 긍정 일기를 써 볼 생각이라, 이런저런 책들을 찾다가 선택한 책이 '하루 하나 365 챌린지 인생 문장'이다. 받기 전에는 명언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는 일기를 써볼 생각이었는데, 책을 보니 다양한 생각이 든다. 매일의 문장을 보고 느낀 감정들을 일기로 써볼까, 질문을 더해 볼까, 어떻게 활용을 하는 것이 좋을까. 일주일째 고민 중이다. 이것은 게으른 인간의 밭고랑 세기에 가깝다. 활용까지는 멀고 먼 시간이... 걸릴듯하다.

받아든 책은 손에 딱 들어오는 아담한 사이즈이다. 384페이지의 책은 적당히 두툼하다. 펼쳐서 읽기다 좋은 두께감이다. 핸드백에 들어가는 사이즈도 나쁘지 않다. 책만 봤을 때 자기 전에 읽을 만한 책인데, 사이즈나 디자인을 봤을 때 들고 다니면서 읽은 형태의 서적이다.

책을 펼쳐 든 뒤 그간 읽은 책들을 다시금 떠올린다. 그간 읽은 책들이 꽤 많이 등장하는데, 기억나는 문장이 없다.(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은 구매 소장 중이고 다섯 번을 넘게 읽었다. 붙여 놓은 포스트잇이 부끄러울 뿐이다.) 같은 책을 읽었는데 어떤 이는 좋은 문장들을 모아 한 권의 책을 만들고, 어떤 이는 그 책을 사서 읽고 감탄을 한다. 

우리는 '찍는 자'가 아니라 '선택자'가 되어야 한다

day154, 선택의 패러독스 _배리 슈워츠

도전과 열정, 인내와 이성, 네 가지의 주제 아래 365개의 명언들을 만날 수 있다. 이 문장들이 나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선택을 할 때는 찍는 것이 아니라, 의지와 근거를 가지고 선택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루하나 365 챌린지 인생 문장'은 일 년 동안 곱씹고 되새길 수 있는 삶의 문장들로 가득하다. 책의 상단에는 '읽기''결심하기''인생 문장' 세 개의 항목이 있다. 각각 체크를 하면서 자기 계발, 챌린지에 활용할 수 있는 책이다. 뒤에는 부록으로 20개의 인생 문장을 찾아보라는 조언이 있다. 이 부록 페이지를 보니, 내 마음을 치는 인생 문장은 어떤 문장이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같은 문장도 한 번 더 생각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큐알을 통해 챌린지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한다. 책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화가 없으면 인간은 왕과 같은 기분으로 살 수가 있습니다.

day13, 화를 다스리면 인생이 달라진다 _알루보물레 스마나사라

오늘 밤에 쓴 일기의 문장이 내일의 나를 바꾼다.

명언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매력적인 문장들이 가득한 책이다. 알라딘 후기를 보니 책을 이들은 저마다 목표를 가지고 무언가를 해보려 한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문장들이 나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최근 미라클 모닝이 유행이다. 인생을 바꾸는 오 분, 한 시간, 변화할 미래를 그려보자. 생각만으로도 행복한 미래가 그려지는 책이다. 

이런 책은 가족, 친구들에게 선물을 하고 싶어진다. 많은 책들이 말한다. 미래를 바꾸는 힘, 인생을 바꾸는 힘은 내 안에 있다고. 이 책의 문장들을 통해 나를 다잡고 보다 밝은 미래를 그려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https://blog.naver.com/sayistory/22295703309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의 그림에 답할게요 - 8인의 시인, 8인의 화가 : 천진하게 들끓는 시절을 추억하며
김연덕 외 지음 / 미술문화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인이 쓴 에세이마다 주야장천 쓰는 말이 있다. 시인의 에세이는 실패할 일이 없다고. 취향의 차이는 있겠으나 아직까지 이 말을 무를 일은 없었다. 미술을 좋아하고 시인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나에게 선물 같은 책들이 나왔다. '당신의 그림에 답할게요' 목차의 첫 페이지는 안희연과 파울 클레가 장식하고 있다. 이건 정말 참을 수 없다. (읽은 책들이 꽤 되었음에도 이 책을 받는 순간 다른 책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하루 동안 단숨에 읽어 내리고 만다.)

'당신의 그림에 답할게요'에서는 김연덕 박세미 서윤후 신미나(싱고) 안희연 오은 이현호 최재원 8명의 시인과 시인들이 사랑한 화가가 함께 등장한다. 시인들은 화가에 대한 추억과 시인이 당시 그림에 영향을 받은 시와 글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몇몇 시인들은 그림을 통해 받은 영감을 시로 기술한 부분을 함께 수록하는데. 문장으로 그린 그림과 그림으로 쓰인 시의 차이를 비교하면서 본다면 무엇보다 매력적인 에세이다. 

항상 생각했던 것이지만, 에세이를 보면서 다시 한번 확인받은 느낌이다. 시와 회화는 닮았다. 아니, 시는 모든 예술과 치환이 가능하다. 음악을 표현하는 가사가, 그림을 그리는 문장으로, 예술은 무엇이든 시가 될 수 있다. 

이 에세이를 보면서 누군가 회화와 관련 시를 엮어서 책을 내줬으면 좋겠다. 그림에 한 번 설레고, 시인의 글에 한 번 더 설렐 수 있는 책. 이런 에세이를 내준 미술문화에 감사드린다.

제목과 주석만 초라하게 남은 저 광활한 실패를 보라. 아마 시를 쓰면서 처음으로 마주한 장벽이 아니었을까. 모든 자극이 다 시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 어떤 그림은 그 자체로 크고 넓어 언어가 되기를 거부한다는 것. 그리고 나는 다시 그림 앞에 선다. 같은 그림을 본다.

안희연, 파울 클레 외발로 하는 멀리뛰기 중에서

안희연 시인이 쓴 파울 클레의 글 중 그녀는 소리를 지르고 우리는 연주한다. 이 그림 소개를 읽으며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문장이... 문장이 미쳤어. 그런데 작가의 글에는 부끄러움과 아쉬움만이 가득하다. 제목과 주석만 초라하게 남은 저 광활한 실패는 시인이 글을 쓰면서 마주한 장벽이라니... 시인이 저렇게 비관하면 문단에 살아남을 시인이... 시인의 에세이를 읽는 동안 갑자기 시인의 시가 읽고 싶어졌다. '당신의 그림이 답할게요'에서 안희연 시인이 쓴 글 하나만으로도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생각한다. 한 문장 한 문장 끊어서 읽어보라. 또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우아하고 아름다운 울림이라니. 

건전하지 못한 상태가 병(病)이라면, 예술도 병이다. 나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세상에 적의를 품었다. 삐뚤어진 인정 욕구를 세상을 향한 비웃음과 조롱으로 드러냈다. 나 자신도 타인도 세상도 한낱 예술의 소재거리쯤으로 취급했다. 예술에서 눈을 돌리는 것이 배교(背敎)라도 된다는 듯 예술의 순교자를 자처했다. 예술을 멀리하는 것만으로도 내 영혼이 더러워지는 양 몸서리쳤다.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싶은 대로 보는 반편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다 안다고 착각하는 풋내기. 꿈만 꿀 줄 아는 무능력자. 그러면서 세상의 모든 슬픔을 품고 있는 표정을 짓는 머저리. 그게 나였다. 그때 나는 내 영혼을 지키고 싶었다. 무엇이 영혼을 해치는지도 모르면서.

이현호 시인의 시를 처음 만난 시집은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 어쩜 이런 제목을 지을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시집을 들고 계산대를 향해 걷고 있었다. 이후 이현호 시인의 시에 반해 '라이터 좀 빌립시다'가 함께하게 되었다. 시인의 에세이는 처음이지만 시인의 다른 에세이를 읽고 싶어졌다. 그때 나는 내 영혼을 지키고 싶었다. 무엇이 영혼을 해치는지도 모르면서. 이 문장 그냥 왜 이리 좋은지 모르겠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얄궂기도 하지. 하루는 그 USB가 열어보고 싶어진 것이다. 시간의 침식을 거친 과거는 대체로 두 갈래 길에 놓인다. '역시 그렇군' 체념하거나 의외의 보석이었다며 놀라거나.

안희연, 파울 클레 외발로 하는 멀리뛰기 중에서

좋은 글과 그림이 많았다. 새로 소개받은 화가도 있었고, 내가 알던 것과 전혀 다른 글로 나를 놀라게 한 시인의 글도 있었다. 취향에 맞는 그림과 글을 만날 수 있는 선물 같은 책이다.

정말 취향은 어쩔 수 없다. 관심과 애정은 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는 것이다. 일전에도 시인들이 쓴 사물 에세이인 '당신의 사물들'에서도 안희연 시인이 쓴 침낭을 소개했다. 안희연 시인의 글은 사람의 눈을 잡아 끄는 힘이 있다. 무기력한 나야 어쩔 수 없이 끌려가고 마는 것이다.

클레에 대한 사랑은 어떻고, 지금은 숨겨진 글이나 과거의 글 중 '앙겔로스노부스'는 파울 클레의 그림을 보고 쓴 글이었다. 아름답고 숭고한 고전주의 천사가 사라진 자리. 다소 우수꽝스러운 기괴하고 장난꾸러기 같지만 조금은 슬퍼 보이기도 하는 낯선 천사를 내미는 화가. 그 그림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었다, 그림 속의 천사는 단순한 천사가 아니었다. 기존의 가치관을 무너뜨린 전환점에 가까웠다. 하여 시선은 어쩔 수 없이 클레에게 머문다. 그리고 안희연 시인은 내밀한 욕망을 무엇보다 아름답게 연주한다. 정말 보석 같은 글과 그림을 만났다.




https://blog.naver.com/sayistory/2229559480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쇼샤 페이지터너스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지음, 정영문 옮김 / 빛소굴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01_

노벨 문학상을 받은 저자가 인생 전반에 걸쳐 가장 애정 하는 책이라 하니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자전적 소설일 것이란 생각이었다. 가장 먼저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 떠오른다. 혹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거나... 조제 마우루 작가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작가가 쓴 자전적 소설은 언제나 옳다(물론 작품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니 쇼샤 이 책은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 책을 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표지는 예쁘고 적당히 슬림한 책은 들고 다니기도 좋을 것 같다.(들고 다니기에는 참으로 간지가 있는 책이다. 예쁘고 적당히 도톰하고 펼쳐보기도 좋다.) 펼쳐 본 10분, 아 이 책 호락호락하지 않다. 표지만 예쁠 뿐이다. 책의 문장은 매우 아름답다. 그런데 배경이 쉽지 않다. 저자 만지는 책, 저자는 배우는 글, 환경, 시대적 배경 그 모든 것이 낯설어서 그것들을 이해하는 게 쉽지 않은 책이다. 

읽는 내내 조르조 바사니의 '금테 안경'이 생각났다. 아무래도 비슷한 시대적 배경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두 책 모두 나치주의 아래 유대인싀 삶을 다루고 있다. 쇼사는 나치 침공 직전의 상황을 금테 안경은 홀로코스트를 다루고 있다. 두 책 모두 이념적 갈등 상황 속에선 다수에 속하지 못하는 한 개인의 삶과 이념적 갈등을 심오하게 잘 녹여냈다. 시대적 상황과 이념을 배제하면 아름다운 사랑과 상실의 이야기로 읽히기도 하는 점 역시 매력적이다. 이 점이 쇼사와 금테안경, 두 권의 책이 시대를 뛰어 넘어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두 책 모두 좋았지만, 미학적 취향은 '금테 안경'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한순간 살아 있었는데 그다음 순간 죽은 거죠. 슬프기도 하지만 그가 부럽기도 해요. 나와 같은 사람에게 죽음은 긴 과정이에요. 우리는 성숙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죽기 시작하죠.

02_

우리는 성공을 꿈꾼다. 더 나은 삶과 미래를 이야기한다. 주인공 아론 그라이딩거는 어떤 이념에도 몰입되지 않은 채 순수한 작가로 살아간다. 그러던 그에게 찾아온 기회. 그 기회는 나치 침공이 임박한 바르샤바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 성공과 더 나은 삶, 미래를 가져다줄 수 있는 희망. 아론은 그렇기에 희곡 작가로의 성공과 미국인 여성과의 결혼을 선택한다. 성공과 안정된 삶은 모두가 선택할 올바른 길에 가깝다. 하지만 주인공 아론은 베티와의 결혼을 앞둔 시점에도 고민이 많다. 그의 시선에는 항상 쇼샤가 남는다. 결국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쇼샤의 손을 잡는다. 쇼샤와 결혼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불안하고 흔들리는 삶뿐이다. 아론 스스로도 옳지 못한 선택이라 말하면서 쇼샤에게 끌리는 자신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에게 남은 것은 순수 본연을 품고 있는 듯한 쇼샤뿐이다. (정작 결혼한 쇼샤는 불안함에 울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하여 그 선택은 행복이었는가. 그들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라는 동화 속 엔딩을 '쇼샤'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주인공 아론은 혼자가 되었다. 쇼샤는 바르샤바를 떠난 이튿날 죽었다고 말했다. 소설 상 결혼하고 불안에 떨던 그 시점일 것이다. 그들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리고 주인공은 긴 시간 혼자 떠돌게 되었다. 주인공은 쇼샤가 사라지듯 떠났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하이믈은 세상 그 무엇도 그냥 사라지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소개 글, 추천사 모두가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큰 깨달음을 얻고 이 책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 말한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어떠한 답도 내려주지 않는다. 허무하게 떠난 많은 이들의 근황이 이어진다. 주인공 아론의 말처럼 그들은 사라지듯 떠나간다. 그리고 하이믈의 말처럼 그들은 생각에 잠겼다. 어둠 속에 앉은 채, 해답을 기다리는 어린아이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저자는 생과 존재의 의미라는 큰 질문을 던진 뒤 이야기를 끝마쳤다. 

어쨌든 누군가가 그냥 사라지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나? 삶을 살았고, 사랑을 했고, 희망을 가졌고, 하느님과 그리고 자기 자신과 씨름한 사람이 그냥 사라지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나? 어떻게 된 노릇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점에서 그들이 여기 있는 것만 같네. 시간이 환영이라면 모든 것이 그대로 있지 말라는 법도 없지.

03_

쇼샤는 시대에 대한 조소와 지치지 않는 사유를 던지는 책이다. 아름다운 사랑의 서사라고 하기엔 많은 사유와 생각할 거리는 던지는 책이기도 하다. 무심한 듯 던지는 대사와 문장에는 양날의 칼 같은 사유가 있다. (최근 웹툰에서 보는 귀족들의 대화를 읽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냥 읽었을 때와 그 의미를 생각하고 읽었을 때 담고 있는 의미가 전혀 다르니 말이다.) 나는 이 책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까? 누구도 쉬이 답할 수 없을 것이다. 할 말을 잊은 채 어둠 속에서 다가올 해답을 기다리는 두 사람처럼 말이다. 그 답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답은 내 안에서 시간과 인생이 알려주지 않을까. 이 책의 엔딩은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가 던진 마지막은 읽은 이들의 가슴속에서 저마다의 엔딩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은 많은 이들은 이 책을 쉬이 놓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https://blog.naver.com/sayistory/22295394660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떻게 행복해질 것인가 - 마음을 다스리는 지혜
크리스토프 앙드레.알렉상드르 졸리앵.마티유 리카르 지음, 김수진 옮김 / 정민미디어 / 2022년 11월
평점 :
절판




01_

최근 다양하게 출간되고 있는 심리학 책, 자기계발서적들은 삶에 대한 많은 지침을 준다. 이런 책들을 뒤적이다 드는 생각은 한 가지.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책을 읽고 살아가는가? '어떻게 행복해질 것인가?'는 제목 그대로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는 과정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정신과 전문의, 철학자, 승려라는 직업을 가진 세 명의 저자는 행복은 하나의 결과로 결과에 다다르기까지 다양한 방법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많은 방법 중 '어떻게 행복해질 것인가?' 이 책이 추천하는 방법은 '지혜'로워지는 것이다. 지혜로워진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혜가 주는 마음의 회복력과 다스림은 다른 어떠한 행복으로 가는 방법보다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굳이 지혜를 통해 행복을 얻지 않는다 해도 지혜가 주는 가치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책이다.

많은 이들이 제목을 통해 '행복'이 책의 주인공이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이 책의 주인공은 '지혜'이다. 지혜를 통해 감정의 다스리고, 삶의 올바른 답을 찾는 과정과 조언을 담은 책에 가깝다. 

'어떻게 행복해질 것인가'에선 지혜를 더할 수 있는 감정과 철학들이 A부터 Z까지 목차별로 나열되어 있다. 목차는 가장 간결한 명사로 의미가 설명되어 있다. 질투에는 질투의 정의와 관련된 철학자의 말, 그리고 그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한 저자의 조언이 기술되어 있다. 설명이 길지 않고, 내용이 어렵지 않아 쉽게 읽어 갈 수 있는 책이다.

삶은 우리에게 수많은 교훈을 주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좋은 학생이라고 항상 말할 수는 없다. 복습하고 공부하는 것을 자주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불안 중에서

02_

목적은 행복인데, 다스려야 할 감정이 매우 다양하다. 사랑과 번민, 불안, 질투, 이기심 등 다양한 감정이 행복으로 가는 길을 막고 서 있다. 그 때마다 우리는 어떤 판단과 결정을 내리고,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을까? '어떻게 행복해질 것인가'는 선택에 앞서 우리가 있고 있던 가장 기본적인 지혜를 간결하게 정리해 준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물질적 가치에 연연한다. 그중 대표적인 가치라면 '돈'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돈을 가지면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돈은 삶에서 발생하는 많은 스트레스를 감소시켜 주지만 사람 사이의 연대를 멀어지게 한다. 

'어떻게 행복해질 것인가'에 실려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읽으면서 지난한 삶들을 반추하게 된다. 질투와 분노 등 마이너스한 감정들을 읽을 때, 스스로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관련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사람들은 타인의 불행을 질투하지 않지만, 미움이나 상처 등이 감정의 골이 더 깊게 패어서인지 모른다. 책의 저자들은 현명하게도 이런 감정의 골에 매여있는 이들에게 아래와 같은 조언을 더한다.

중요한 건 강박적인 방식으로 자아를 떼어내버리는 게 아니라, 자아에 집착하지 않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폴 발레리(Paul Valery)가 남긴 유명한 문구처럼 말이다.

‘나는 나 자신을 미워했고 나 자신을 좋아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늙어갔다.’

03_

살면서 이미 겪어 본 다양한 감정들을 글자로 만나는 것은 익숙하지만 생소한 일이다. 그리고 단어, 문장으로 정리된 감정들은 매우 함축되어 있다. 그것은 과거의 경험과 실수를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하고, 미처 간과한 지식을 더해주는 조언가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배우고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익힌다. 하지만 모든 사건에서 배움을 얻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자주 경험한 것들을 잊곤 한다. 이 책은 잊고 있던 것, 삶에서 놓친 것들, 중요하다 생각했으나 간과한 것들을 일깨워주는 하나의 지침이 될 것이다. 

책을 손에 든 뒤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게 된다. 한 권을 전부 읽은 뒤, 목차를 통해 관심 가는 항목들을 먼저 읽을 수도 있다.(이 책의 머리말에는 세 명의 저자가 말하는 행복과 지혜에 대한 정의가 나온다. 책 만큼이나 유용하니 꼭 읽으라 말해주고 싶다.) 오랫동안 책꽂이에 두고 여러 번 다시 읽을 책이 아닌가 싶다. 

이런 책연이 고맙기만 하다. 덕분에 우울하거나 불안에 나아가기를 꺼릴 때, 마이너스한 감정에 대해 이야기해 줄 좋은 조언가를 만나게 되어 무엇보다 고맙다.



https://blog.naver.com/sayistory/22295134800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