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사랑일지도 - 야마카와 마사오 소설선
야마카와 마사오 지음, 이현욱 외 옮김 / 위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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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야마카와 마사오의 소설을 처음 읽은 건 1~2년 전, 근대 일본 소설을 알리는 소설선에서였다. '상자 속의 그대'라는 제목의 표제 작은 야마카와 마사오의 작품이었다. 섬세한 묘사, 문장이 아름다웠고, 메마른 정서와 허무감이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소설이었다. 특히나 문장, 이 문장. 5~60년도 전에 쓰인 소설이라니 믿을 수 없이 세련된 소설이다. 9편의 소설이 실려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야마카와 마사오란 작가가 보여주는 존재감은 강했다. 저자의 다른 소설을 찾았으나 구할 수 없었고 아쉬워하던 차에 발행된 야마카와 마사오의 작품집 '아마 사랑일지도'는 선물 같은 작품이다.

아름다운 문장의 고전문학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면 첫 번째 자리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에게 내준지 오래다. 허나 잘 알려지지 보석을 찾는다면 야마카와 마사오를 추천하겠다. 한 편 한 편이 아름답다. 이 서늘한 미학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직접 읽어야 한다.

시시한 거짓말을 한다고 다시 생각했다. 사랑 없이도 남과 살 수 있다는 것과 같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그때는 분명 여자를 사랑하고 있었다. 바보 같다. 하지만 나는 이제 ‘자신’에게만 관심을 가지고는 살 수 없다.

아마 사랑일지도 중에서

표제작 아마 사랑일지도는 작가의 장점이 가장 잘 드러난 소설이다. '상자 속 그대'를 읽으면서 야마카와 마사오는 일본에서 만난 작가 중 단문을 가장 잘 쓰는 작가란 생각이 들었다. 일본과 우리의 문장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으니 틀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로맨스 소설에서 단문이라니. 읽는 호흡은 빨라지고, 수사와 비유가 줄어든 문장은 건조하게 전개된다. 로맨스 소설의 특징이 감정 과잉이라면, 소설에선 문체가 감정을 제어하는 쪽에 가깝다. 후반부에 저자는 자신이 쓴 일기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대리한다. 그 쏟아지는 감정들이 과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문장과 문체가 주는 힘이다.

사랑을 깨달은 자리,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시의 일기를 시시한 감정이라 표현하는 이유는 그것이 모두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깨닫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사랑을 안 이후 그는 전과 같을 수 없게 되었다. 여자는 사라지고, 그에겐 책임져야 할 가족만이 남았다. 그는 삶을 위해, 생계를 위해 글을 써야 한다. 여자와 추억이 덕지덕지 묻은 그 장소에서.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다. 하지만 주인공은 이곳을 떠난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고 말한다. 장소나 일의 문제가 아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사과도 애원도 할 수 없다. 그것이 가장 큰 절망이며 비극이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창밖으로 비쳐오는 피 같은 석양은 화자의 감정을 대변하는 듯하다.

그런 거의 의식적인 무감각이 바깥 세계에, 그리고 바깥 세계에 대한 무력감에 익숙해지게 만들었다. 다만 익숙해지려고 자신이 혼자만의 방을 만들었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는 그도 알 수 없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조개껍데기 안에 틀어박힌 조개처럼 뭔가를 회피하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1년 중에서

그 1년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일본에 대한 이야기다. 가까운 나라 한국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일본이란 나라에 주는 공포는 어떤 것일까?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에도 비슷한 두려움이 잘 드러나고 있다. 그들은 안전하다. 하지만 이야기 속 주인공은 그 안전을 의문하고 있다. 현재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내일. 전쟁의 그림자처럼 곳곳에 자리한 미군. 그런 그들을 통해 돈을 벌고 있는 나.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존재들(군인), 그들의 무례한 존재다. 그들이 있는 한 저자는 안전하다가 느끼진 못할 것이다. 그들이 복종하는 법과 복종시키는 법밖에 모르기 때문이라 말한다. 복종하는 순간 그들의 일부는 사라질 것이다. 전쟁에 대한 허무가 잘 드러난 소설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타인에게서, 보기만 해도 덜컹거릴 만큼의 행복 외에는 알고 싶지 않다. 불행을 아는 것이 싫다. 모든 타인이 내게 웃는 얼굴의 벽을 세우길 바란다. 나는 그 벽 너머를 파고드는 일이 없었다.

연기의 끝 중에서

야마카와 마사오를 무라카미 하루키와 자주 비교하곤 한다. 나는 그 의견을 동의하지는 않는 쪽이었다. 하지만 '연기의 끝'을 보고 있자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가 떠오르는 건 사실이다. 화려한 삶 속 그 이면의 이야기. 내가 한때 아름답고 순수하다고 생각한 것들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일본 소설의 계보와 하나의 흐름이 보이는듯하다. 이 책의 소개 글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허나 나는 이 작가를 읽으면서 다자이 오사무가 읽혔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고민을 하다가 야마카와 마사오는 전체주의의 종말 이후를 개인을 얘기하는 작가이기 때문이 아닐까 란 생각이 들었다. 현대 일본 소설에는 특유의 허무감이 묻어있다. 개인은 외롭고, 허무하고, 곧 부서질 것 같이 나약한 존재들이다. 그 느낌을 가장 잘 보여준 작가 다자이 오사무이기에 나는 그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계보를 잇는 이가 야마카와 마사오일테고 그 바톤을 이어 받은 많은 작가들이 있을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토니 타키타니'등 초기작에서 보였던 허무감은 요시다 슈이치 등의 이후 작가에게서도 비슷한 분위기는 읽혀 온다. 우리에게 '한'의 정서가 있다면, 일본에는 '허무'의 정서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혼자 생각해 본다.

소설 속 위태로운 주인공은 하나같이 내일을 기대할 희망을 아직 찾지 못했다. 소설 속에서 자살하거나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이 많은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보면서 계속해서 '살아갈 이유'를 묻게 된다. 사랑이 부재한 자리 사랑을 찾게 된다. 비극만을 말하는 작가에게서 희망을 묻게 되는 이상한 소설이다. 마지막까지 손을 놓지 못하는 그 힘은 읽어보아야 알 수 있을 것이다.

https://blog.naver.com/sayistory/222600334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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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엘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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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선택하는 기준은 간단하다. 제목의 끌림, 목차와 홍보글을 통해 유추하는 주제의 애틋함, 작가에 대한 애정. 최신작이지만,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전 번역되어 출간된 '어떻게 지내요'는 매력적인 제목으로 시선을 끌었고, 죽음을 앞둔 친구와의 여행이라는 주제를 통해 그저 애틋해졌다. 문장은 아름다웠고 선택의 후회는 없었다. 이후 시그리드 누네즈라는 이름이 주는 신뢰에 책을 선택하는 망설임은 없었다. 저자의 이름만으로도 책은 가치가 있어 보였다.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라는 제목 역시 매력적이다. 어떻게 이런 제목을 지을 수 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으나 책을 받아든 후 심호흡을 하게 된다. 손가락 한 마디 반에 가까운 두께, 무려 600페이지다. 완독할 수 있을까. 이 책의 내용을 잘 소화할 수 있을까. 우정에 대한 서사로 600페이지 이상이 넘는 책을 쓸수있다니 시그리드 누네즈 호락호락한 작가가 아니었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 시그리드 누네즈가 적어 내려가는 문장은 아름다웠고 여성들의 서사는 눈이 시렸다. 그녀가 적어가는 여성서사는 마법 같은 무언가가 있다. 아직 읽지 않은 '우리가 사는 방식'이란 책이 기대 되는 이유다.


이 소설은 196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세상의 문제에 대응하여 세 여자의 조지, 솔랜지, 앤 세 사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대마초와 LSD 같은 마약이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하는데, 당시 히피문화에 대한 사회적 배경지식이 없다면 이 장면들은 조금 당황스러울 수 있다. 솔랜지는 1960년대 퍼져나간 히피정신을 투영한 캐릭터이며, 앤은 당시의 인권 운동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페미니즘의 확산으로 다양한 여성서사들을 보여주고 있으나 사회적 운동의 주류는 언제나 남자들이다. 시그리드 누네즈는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남자들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듯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가던 세 여성들의 족적을 선명하게 그리고 있다.

혁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명예와 영광으로 가득찼을 것 같지만, 그 안에는 희생과 피가 있고, 위험이 공존한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은 유대와 애정 보살핌으로 서로를 이어간다. 물론 그 관계가 한 없이 아름답고 낭만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해와 실수로 서로를 상처 입히기도 하지만, 시간은 이해와 용서를 선물하기에 그들은 서로를 구하고 위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라는 제목을 통해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았던 '앤'에 대한 이야기일거라 추측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자신의 부를 수치로 여긴 여인. 하여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워야 했고, 베풀어야 했던 사람. 그녀의 선행은 그녀의 배경으로 인해 진정성은 폄훼되고 빛이 바라기도 한다. 그가 사랑한 흑인들 조차 그녀의 운동을 '혁명 놀이'라 칭하고, 법정에 선 앤에게 판사는 부유한 응석받이, 내지는 철부지라 말하며 꾸짖는다. 판사는 앤이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는데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숭고함은 단순한 일탈로 치부된 이 문장이 무엇보다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판사의 말을 들은 변호사는 그(판사)가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일 수도 있다고 답하는데, 판사와 변호사가 말한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의 의미를 책을 덮은 뒤에도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까지 등장하는 그 부류, 사회의 문제아, 부잣집의 응석받이로 칭해지는 그들. 위태롭지만 무엇보다 숭고한 정신을 지닌 이들을.

조지처럼 나 역시 앤이란 존재에게 경의를 표한다. 동시에 앤이란 존재를 이해하기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진보적이고 똑똑한 여성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순종적인 아내이고자 한 모순. 인종 평등을 외치지만 성평등은 외면했던 앤의 모순은 흑인 인권운동 이후 전개된 페미니즘 운동을 떠올리게 한다. 무엇보다 똑똑한 그녀가 가진 모순은 인간의 한계일까, 당시 사회의 한계일까.

또한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상황속에서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상처를 주면서 다른 사람을 돕는 앤의 가치는 무엇일까? 동료 재소자는 앤을 이기적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희생은 자기자신을 죽이고 있었고, 그것을 최악의 이기심으로 본 것이다. 사회에 반발했던 앤과 솔랜지는 각각의 형태로 자신을 좀먹고 있었다. 한 쪽은 극단적인 희생으로 한 쪽은 약물에 의존한 방임으로.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모습들에는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는 잔인한 면들이 존재한다. 그렇게 세상은 진보하고 발전해왔는지 모른다.

한 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은 듯 한 캐릭터는 단지 소설에서 끝나진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들로 살아가고 있다. 세상의 무수한 조지와 솔랜지 그리고 앤들에게, 그리고 결코 마지막이 아닐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그들이 조금은 더 평안하기를, 그리고 조금 더 자신을 사랑하고 덜 상처입기를 기원한다.

https://blog.naver.com/sayistory/222593965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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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걷는 법에 대하여
변상욱 지음 / 멀리깊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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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언론인, 기자는 존경의 대사가 아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고 말하며 잘못된 권력을 비판하던 언론인의 모습도 찾기가 어렵다. 세상은 그들을 기레기라고 부르며 조롱한다. 라디오나 유튜브 영상에서는 기자들이 쓴 악의적인 기사들을 읽고 조롱하기도 한다. 글을 쓰는 직업군을 존중하는 사람으로 이러한 사회적 현상은 아쉽고, 조금은 충격적이기도 하다. 기자들은 이제 언론인이라기보다는 단순 직업군으로 분류되는 사회. 존경받는 지식인에서 조롱으로 점철된 세계. 평생을 기자로 살아온 저자는, 전두환 정권 시대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비판하는 보도를 한 저자는 이러한 시대를 지나며 생각을 할까. 작년에 나온 권석천 칼럼니스트의 '사람에 대한 예의'를 읽고 느꼈던 통렬한 자기반성과 성찰, 그리고 사회를 보는 시선에서 매력을 느꼈기에 변상욱 대기자(대기자란 연차가 차서 관리자가 되어야 할 직군이나 현장에서 기자로 뛰는 선배 기자를 대기자라 부른다 한다)의 에세이 '두 사람이 걷는 법에 대하여'를 선택하게 되었다.


언론인들이 쓴 저서들은 하나같이 문장이 좋다. 추천 도서인 권선척 칼럼니스트의 '사람에 대한 예의'와 최근에 나와 베스트셀러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손석희 기자의 '장면들'까지 모두 매력적인 문장을 가지고 있다. '두 사람이 걷는 법에 대하여' 역시 문장에서는 지지 않는다. 한 가지 아쉽다고 해야 할까, 조금은 안타깝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개인의 선입관이라 해야 할까, 아쉬움과 소회는 있을지언정 언론과 사회 비판을 자제하고 있는 책이다. 문장이 섬세하고 일상에 대한 관찰과 사회적 현상을 잘 매치하고 있는 좋은 에세이라고 생각란다. 하지만 현 언론에 대하여 너무 거리 두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독자의 섣부른 생각은 저자가 소개하는 영상을 본 뒤 반성으로 바뀌게 된다. 책 제목을 '두 사람이 걷는 법에 대하여'라고 지은 이유는 기자 생활을 하면서 보았던 여러 가지 대립들. 좌와 우, 부와 빈부 그리고 이로 인한 배분의 문제, 종교나 이념의 대립 등. 이러한 사회적 갈등은 힘의 논리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 한다. 같이 공존하는 방법, 함께 걸어가는 길에 대해 생각하고 싶어서 '두 사람이 걷는 법'이라는 제목을 지었다는 것이다. 기자는 무조건 비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스스로의 선입견에 한 번 놀라고 반성하게 된다. 저자의 말처럼 '두 사람이 걷는 법에 대하여'에서는 다양한 사회적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모든 에세이가 답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를 위한 사유를 멈추지 않는 길' 한 챕터의 제목처럼 생각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걷기 위해선 생각을 멈춰 선 안되고 계속해서 대화하고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중요한 것을 이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이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현상에 대한 무관심에 대한 반성과 대립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한 소중한 책, 소중한 시간이었다.


한나 아렌트에게 묻고 답을 들어야 할 것들은 많다. 누구는 사유하는데 누구는 사유하지 못한다. 그 까닭은 무얼까? 그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같은 학교, 같은 학과를 나와 동시대를 살았는데도 선과 악으로 갈린다면 그 갈림길은 어디서부터 일까? 철저하고 교활한 변명을 사유의 부재로 잘못 해석한 건 아닌가? 명령과 지시를 받고 현장에서 벌였을 훨씬 더 치열한 자기변명도 사유에 해당하는 걸까?

‘사유 없이 행동하는 것이 악’ 중에서

기자가 책을 쓴다면 의무처럼 해야 하는 답이 있다. 요새 기자들은 '왜 기러기가 되었는가'일 것이다. 저자는 '사유'에서 답을 찾고 있는 듯하다. 생각하지 않는 기자들. 부여된 과제를 해결하는 기자들은 정치인의 말을 따옴표를 쳐서 옮기기에 바쁘다. 정준희 교수가 문제 삼던 따옴표 저널리즘이 여기서 나온다. 기자의 주관과 삶에 대한 해석이 없는 사회. 존경받던 언론인을 기레기로 만들었다.

하나님은 천지창조 이후 한 번도 사람 앞에 미스, 미스터를 붙여 부르지 않았다.

'한 번도 남자와 여자를 구분해 부르지 않은 하나님' 중에서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본 챕터. 이슬람의 페미니즘의 역사를 간략히 설명한다. 교회 목사의 말을 인용하여 차별에 대해 한 번더 생각할 거리를 주는 챕터였다. 왜 페미니즘의 혐오의 대상이 되었을까. 이 부분에 많은 공감을 하며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내가 나일 때, 나는 너이다

당신이 있으니 제가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사람을 통해서다

우분투, 누군가의 목마름은 우리 모두의 목마름 중에서

기자들이 쓴 서적을 보면, 다양한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언어적 지식의 방대함에 놀라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도 훌륭한 언론인이 쓴 책들을 읽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분투, 누군가의 목마름은 우리 모두의 목마름' 편에서는 리눅스 프로그램인 우분투란 어원을 통해서 인간성은 공감이라고 말한다. 타인의 공감에 감응하는 것. 사회적 목마름에 공감하는 것. 그것이 현 사회에서 필요하다고 대선배 기자는 온화하게 설명한다.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사회를 걱정하는 어른의 시선이 담긴 무엇보다 따뜻한 책이다.

훌륭한 기자와 언론인의 조건은 무엇일까.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려면 우리에겐 무엇이 필요할까. 방대한 지식과 이론일까? 분명한 한 가지는 지식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학벌과 지식은 개인의 영달에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사회적 존경과 문제의 합의로 우리를 이끌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기자로 평생을 살아오니 대립과 갈등을 경험하니 사회적 갈등은 힘의 논리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는 대기자의 말. 나와 의견이 다르다 해서 적이 될 수는 없다는 말. 저자는 사회에 대한 공감과 시선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 세상을 보는 따뜻한 시선과 끊임없는 사유가 현시대를 살아가는 언론인, 그리고 그런 기사를 읽는 독자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혼자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서로에게 속하고 의지하고 반응하는 것, 정말 그것이 우주였다.




블로그: https://blog.naver.com/sayistory/222591606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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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이야기하는 책 읽기 - 가짜 이야기, 진짜 이야기, 이야기의 순간
조서연 지음 / 아우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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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허구로 만들어진 이야기 '소설'을 읽는다. 왜 우리는 소설을 읽을까. 소설은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어 살아가는 캐릭터를 본 저자는 소설과 대화를 통하는 방식을 고민한다.

저자는 본인이 읽은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설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고 이를 일상으로 가져와 이야기를 시작한다. '삶을 이야기하는 책 읽기'라는 조금 복잡한 방식으로 소설과 대화를 시도하는 책이다. 원 이야기가 있고 독자가 만들어 낸 새로운 이야기가 있다.(이 과정을 통해 독자는 저자가 된다.) 저자는 이를 독자들과 다시금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야기는 확산된다. 이야기를 읽은 독자들은 주인공과 주제를 되새기며 자신의 일상과 경험을 나눈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이야기 속 주인공을 응원하거나 질책한다. 나의 삶과 일상이 이야기와 맞닿으며 생겨나는 파장으로 인해 독자의 삶은 보다 성숙해진다. 독자 내면의 깊이만큼 이야기는 확산되고 생명을 얻게 된다.

저자는 왜 이리 복잡한 방식으로 책을 써내려갔을까. 저자의 글을 통해 소설 속 주인공이 갖게 되는 인생과 독자들의 인생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보고 싶었던 듯하다. 이것은 저자가 자신이 쓴 글에 갖는 애정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저자가 기존의 작가들에게 갖는 경의와 글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알 수 있어 좋았다. 이 책은 글을 쓰고자 하는 이들이 읽는다면 더 크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삶을 듣는 것도 독서라면 독서지.

'삶을 이야기하는 책읽기'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과 독자의 관계를 실험하는 책처럼 보인다. 독자는 기존의 책을 통해 저자로 위치를 바꿀 수 있다. 독자는 삶의 경험을 통해 이야기 속 주인공에 공감하고 교훈을 얻는다. 이를 통해 개인의 삶은 보다 성숙해지고 깊어진다. 이 과정을 통해 소설은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것은 '삶'이다. 소설 속 주인공과 독자는 각자의 삶의 접점을 통해 교감한다. 또 독자는 그 교감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이 돌고 도는 미묘한 고리가 이 책을 읽는 동안 소중하고 사랑스러워졌다.

이 책은 원형이 되는 소설에서 파생된 소설(저자는 가짜 소설이라 칭하지만, 이 역시 소설이다)과 파생 소설을 읽은 독자가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구조로 되어 있다. 기존의 에세이와 다른 이런 독특하고 실험적인 구성이 굉장히 매력적인 책이다.이런 시도를 통해 문화는 보다 확산되고 다양해지며 건강하고 단단해 지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 더욱 더 새로운 시도를 하는 책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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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서기 연습
레몬심리 지음, 박영란 옮김 / 정민미디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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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심리와 관련된 유튜브 채널을 보던 중이었다. '차라리 반항을 하는 것이 정신적으로 건강했을 텐데요'라는 심리학자의 지나가는 말에 당황한 기억이 있다. 포기와 반항이 모범적인 아이보다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니 곱씹고 곱씹어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반항, 포기 > 모범, 순응' 이것은 하나의 공식처럼 머릿속에 오랜 시간 들러붙어 있었다.

사례 속 아이를 떠올리며 문득 나는 어떤 어른이 되었을지 견주어본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제멋대로인 어른이 되었을까. 아니면 순응하고 참는 어른이 되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후자인 것처럼 보인다. 나이를 먹을수록 눈치만 늘어 자기주장이란 처음부터 없는 것처럼 말이다. 타인에 대한 평가는 다시 스스로에 대한 질문으로 들어온다. 그럼 나는...?? 어떤 어른이 되었는가?

'감정이 태도가 되지 않게'의 저자 레몬심리가 '홀로서기 연습'으로 돌아왔다. 이 책은 살면서 겪은 좌절과 상처로 인해 꽁꽁 마음을 감싼 우리에게 괜찮냐고 안부를 물어오는 책이다. 위장과 위선으로 테두리를 둘러싼다 해도 그 안에 있는 연약한 우리, 내면의 나는 전혀 괜찮지 않다. 항상 불안하고 막막하기만 하다. 완벽을 추구하지만 사실 우리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걱정이 하늘을 찌른다. 몸만 커버린 나. 내 속의 어리숙한 아이. 이제 나를 어떻게 해야 할까.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로 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주었던 '레몬심리'에서 이번에는 내면의 미숙한 나에게 홀로서기를 권한다. 조금 더 당당하고 조금 더 자신을 사랑하는 길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다.

열등감에 빠져 우울한 나날을 보내는 삶의 패턴을 끊어버리자. 이제 ‘부정적 자아’를 받아들이자.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당연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또한 자신의 장점을 발견한다면 비로소 우리는 자신감 있게 당당히 살아갈 수 있다.

인생에는 항상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많을뿐더러 원하는 그 모든 것을 얻을 수 없다. 사과가 먹고 싶은데 바나나가 주어지는 경우는 인생에서 허다하다. 당신에게 정말로 변화할 힘이 없다면, 당신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나나의 장점을 찾아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눈에 보이는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책은 미숙한 자신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조금은 포기하기를 권한다. 심지어 한 파트는 제목이 "완벽을 추구하니 피곤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조금 어리숙해도 미숙하다 해도 나는 충분히 훌륭하다. 더 이상은 비교로 스트레스 받지 말고 자신을 위해 살아가자고 말한다.

우리는 흔히 잘하지 못하면 실패라 생각하지만 '삶에서 실패란 중도에 포기하는 것' 그러니 목표로 한 것이 있다면 멈추지 말라고 말한다. 종착지의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직접 가서 자신의 눈으로 봐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나를 잘 알고 있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고, 무엇을 원하는가. 이어지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는 일이 잘 안돼서 자신이 싫어지는 순간. 자존감이 떨어지는 시간들. 스스로를 비하하기보다는 이 책을 읽으며 진짜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

​하나같이 좋은 글과 말로 가득한 서적이라. 이 책 역시 전작에 이어 화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좋은 글과 말들로 자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라 좋았다.



https://blog.naver.com/sayistory/222574601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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