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_ 밤에는 모든 피가 검다 (원제 영혼의 형제)를 읽으면서
2021년은 부커상 후보에 대한 관심이 유난히도 뜨거웠습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한강 작가가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했고, 그 이후 두 명의 작가가 후보로 올랐기 때문입니다. 아쉽게도 수상에 이르지는 못했으나 결과에 관계없이 영광스러운 일이며 한국 문학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었던 해였습니다.
대한민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박상영과 저주 토끼로 주목받은 신예 정보라. 쟁쟁한 두 명의 작가를 물리치고 수상에 이른 '밤에는 모든 피가 검다'에는 여러모로 흥미가 갈 수밖에 없는 책입니다. 책을 받자마자 순식간에 책을 읽어간 소감은 '압도적'. '졌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책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과 인간성이라는 소재. 밤에는 모든 피가 검다는 것은 어둠이 피의 색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살생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버린 화자의 독백입니다. 동시에 어둠은 흑인과 백인의 피부색을 구분하지도 않지요. 흑인도 백인도 구분되지 않는 모든 인간이 평등해지기에 죽인다는 비극이 극대화되는 그 순간. 상실된 인간성을 '밤에는 모든 피가 검다'라고 표현하다니요. 읽는 순간 저도 모르게 혀를 차고 있더군요. 말 그대로 참혹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다음 페이지를 부르는 아름답고 매끄러운 문장과 전쟁의 참상을 무너지는 인간성으로 표현하는 깊이까지. 주제와 문학성을 동시에 갖춘 여러 가지 의미로 읽어볼만한 책입니다.(전쟁의 실상을 묘사하는 부분은 잔혹하기 때문에 잔혹한 묘사를 읽지 못하는 독자에게 추천하지 않습니다.)
'밤에는 모든 피가 검다'는 정말 매력적인 책이지만, 호불호가 갈릴만한 책으로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책을 읽어가는 동안 들었던 가장 큰 의문은 시작과 후반부의 호흡이 고르지 않은 점 입니다. 앞에서는 복수와 복수로 이어지는 무의미한 살상을 빠른 속도로 전개하고 있다면, 후반부에는 전쟁으로 인해 삶이 폐허가 된 화자의 주변 인물과 개인사에 대한 고찰을 느린 호흡으로 이어갑니다. 또한 앞부분의 전쟁에 대한 묘사는 사실적이고 참혹하다면, 후반부의 묘사는 지극히 사색적입니다.
전반부와 후반부를 좋아하는 독자의 성향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색을 좋아하는 독자는 초반의 이야기가 고통스러울 것이고, 빠른 속도감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후반부의 사색부분에서 페이지가 멈출 듯 합니다. 화자의 회상을 통해 사색과 참상에 대한 묘사를 적절히 배분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