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아픈 밤 호밀밭 소설선 소설의 바다 6
정인 지음 / 호밀밭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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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자마자 일러스트를 그린 이를 확인했다. 뭉크의 그림이 생각나는 표지. 표지부터 작품 하나하나가 서늘하게 아파지는 소설집. 소설의 화자들은 여성들이지만, 그들에게는 죽음의 잔상들이 풍경처럼 드리워져 있다. 표지 뿐만 아니라 이 소설 안에서 뭉크의 이미지가 더 짙어지는 이유다.

무엇보다 아픈 삶의 이야기. 그들을 아프게 하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그들 자신이 만든 업보가 느껴지기도 했고, 그 안에서 삶의 비애가 스미기도 했다. 삶에 대한 불안과 애증의 경계 안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집에 불이 난 것은 한낮이었다.

화마 첫 문장

갑작스러운 불과 조각난 일상.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경찰과 국과수, 누전일까 의도적인 방화일까. 방화라면 왜 누가 무엇 때문에 불을 지른 것일까. 화재보험과 생명보험, 남편이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작은 의심과 불신. 하나의 사건을 통해 속절없이 무너지는 한 가족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화마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화자의 마지막 말이 인상 깊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그가 코 고는 소리를 들었다. 한때는 나를 안심시켰던 그 소리가 오늘은 견디기 어려운 소음이었다. 어쩌면 그도 문밖에 앉은 내게 그런지 알 수 없었다. 어째서 우리는 흘러가는 세월 앞에서 오래된 나무처럼 굳세어지지 못하고 바람에 자꾸 흔들리는가. 나는 시려오는 어깨를 감싼 채 달빛 아래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폰의 벨이 울린 것은 새벽잠이 설핏 든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아픈 밤 첫 문장

요양보호사와 환자의 관계를 다루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다루고 있는 누군가가 아픈 밤. 살아있는 이들이 언제 가는 죽는 것처럼,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 역시 언젠가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죽게 되겠지. 요양보호사인 화자의 엄마부터 시작해서, 물레 여사가 죽어버린 딸들 산자와 죽은 자가 수건돌리기를 하는 듯한 작품이다.

나도 갓 이사 와서는 그랬는데 요샌 저 소리에 되려 덜 심심하다우. 가만히 들어보면 사람마다 발소리가 다 다르거든. 그걸 구분해보는 게 솔찮게 재밌어. 나중엔 그 사람이 보이는 거 같어. 그래서 저 손바닥만한 창구멍이 나한테는 숨구멍이나 마찬가지야.

애당초 잘못은 내게 있었다. 층간 소음이 사람을 얼마나 괴롭히는지 잘 안다고 생각한 게 화근이었다.

소리의 함정 첫 문장

층간 소음을 피해 꼭대기 층으로 이사 온 여자. 여우를 피하러 왔더니 호랑이를 만났다는 여자의 말처럼 아랫집에는 층간 소음 때문에 힘들다는 남자가 매일 찾아와 여자를 괴롭힌다. 여자 역시 못 견디겠는 것은 마찬가지다. 남자의 말과 절규는 작은 소리도 못 견뎌 했던 오빠를 떠올리게 했고, 오빠의 죽음을 연결 짓게 만든다. 여자는 이웃의 여자에게 남자를 말려달라고 요청하나 '남의 집'일에 간섭 말라는 핀잔을 듣게 된다. 그때의 한마디가 효과가 있었는지 더 이상 이웃집 남자는 찾아오지 않았다. 평화 속에서 여자는 드라마를 보던 여자는 또다시 벨을 누르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마주한 집 밖의 남자. 층간 소음과 이웃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나는 남자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바람을 맞은 창이 연신 쿨럭거렸다. 나는 현관문 손잡이를 놓지 못한 채 남자의 들썩이는 어깨를 우두커니 지켜보았다.



현실적이고 날카롭게 병든 일상을 파헤친 소설이란 생각이 든다. 소설의 화자는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다. 그는 누군가를 아프게 했지만, 동시에 타인에게 상처를 받고 실패하고 분노하지만 동시에 상대를 보듬고 감싸안을 공감과 연민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인간 아닐까.

소설의 배경에는 죽은 이들이 풍경처럼 둘러져 있다. 그 잔상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고 살아있는 이들의 삶을 위태롭게 만든다. 죽은 자의 잔상을 통해 살아 있는 잔상을 보게 만들고, 살아 있는 자들 역시 죽음과 무과하지 않다는 생의 거울을 계속해서 들여다보게 만드는 그 구조가 어딘가 아프다.



https://blog.naver.com/sayistory/222297756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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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란 무엇인가 - 삶을 바꾸는 문학의 힘, 명작을 통해 답을 얻다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구와바라 다케오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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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문학이란 무엇일까.

책을 읽으면서 항상 궁금했던 이 질문. 특히나 책을 읽지 않는 현시점 문학이 주는 가치는 많은 것을 생각한다. 답을 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선택한 책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좋았다. 사람들이 문학에게 바라는 것, 문학이 왜 인생에 필요하며, 그러한 문학들이 가치와 뛰어남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읽으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문학은 인생에 왜 필요할까?

정말 훌륭한 작품을 만날 때, 저자는 가치를 논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냐고 묻게 되지만, 문학은 인생에 그다지 쓸모가 없는 사치품으로 간주되었다 말한다. 문학의 가치와 재미는 흥미로움으로 평가받는다. 그 흥미로움과 관심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인생, 삶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앞서 서평을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도 나왔던 내용이다. 같은 이야기가 빙글빙글 윤무를 추고 있다. 소설의 이야기는 곧 삶에서 나오고, 삶을 비추는 거울이기에 문학은 삶의 깊이를 재단하는 척도와 같다.

인생은 합리적으로 살아야 마땅하겠지만, 인생을 충만하고 더욱 바람직한 것으로 만들려면 이성과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 인생에는 감동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학이야말로 그런 것들을 양성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문학 이상으로 인생에 필요한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뛰어난 문학이란 어떤 것일까

참신함

소설은 관심은 1장에서도 흥미로움으로 평가받는다 저자는 적고 있다. 그렇다면 잘 쓴 작품의 흥미로움 작품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 흥미로움을 가져오는 것은 이야기의 참신함이다. 문학에서 필요한 참신함은 제재의 참신함이어도 좋다. 사회적 통념과 가치관에 의문을 가지게 만드는 것, 또한 발견을 통해 민중이 생각하는 바에 적확한 표현을 부여함으로써 이것을 한층 강하게 실감시키며, 민중을 새롭게 만들어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성실함

이것은 작가에게 가장 필요한 요소일 것이다. 꾸준히 써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 위에서 말한 것처럼 생각과 발견에게 적확한 표현을 부여하는 것.

명쾌함

명쾌하지 않은 작품은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없다. 이 명쾌함은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하나의 예술품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경우는 그 자체로 훌륭하다는 사실과 함께 '전달' 가능하다는 점을 포함하고 있다. 문학이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힘을 가진다고 평가받는 이유 역시 이 커뮤니케이션의 작용 때문이다.

자연스러움을 확보한 하나의 이야기가 하나의 열정 혹은 하나의 행동을 묘사할 때,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에서 그 이야기의 진실성, 즉 그런 것이 자신 안에 있으리라고는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어떤 진실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그 사실을 깨닫게 해준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본인 스스로 가지고 있던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던 바람직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팡세 14

문학의 도덕성

예술가로서의 문학가의 본질은 혁명가다. 참 이것은 어려운 문제라 논하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일부 소설 중 장애인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한 것을 사랑이라 미화하거나, 사회적으로 관념화된 어머니의 희생을 '선택'이라는 제목으로 소설 화해 비판을 받은 작품들이 있다. 문학의 도덕성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좀 어려웠지만, 상대적으로 읽기 편했던 문학 이해서. 문학이 필요한 이유와 좋은 작품의 조건, 달라진 세상과 대중문학의 가치, 그리고 그 모든 소설들을 읽고 토론하는 방법까지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우선 쉽고 읽기가 편하다. 고전 문학뿐만 아니라 대중문학을 이해하고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문학을 읽고 좋은 점에 대해 토론하고 이야기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독서모임을 구상하고 있다면 읽어보라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아쉬운 점은 왜 우리나라에는 이런 책들이 없는 것일까? 고전문학이 인기가 없기 때문일까? 좋은 작품에 대한 토론은 계속해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보면서 장 폴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보게 되었다. 아 다음엔 이 책을 봐야겠다.



https://blog.naver.com/sayistory/222293103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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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철학 - 네 마리 고양이와 함께하는 18가지 마음 수업
신승철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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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절반 이상을 졸고 있고 항상 여유 넘치는, 다른 말로 하면 게으른 거 갖은 동물 고양이. 지금의 순간에 최선을 하는 고양이의 삶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는지 '고양이처럼 살아보기' 이런 내용을 말하는 책들이 늘고 있다. 현실과 매 순간에 충실하면서 우리의 삶을 충실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 나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은 철학과 고양이를 함께 묶어 이야기한다. 한마디로 ~묘한 철학이다.

조금은 고맙기도 한 책이다. 현대 철학에서 나오는 어려운 개념들. 미셸 푸코의 '자기통치'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 자크 데리다의 '환대' 등 이 어렵고도 고약하지만 알아두면 좋을 철학들을 고양이의 습성을 통해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주고 있다. 고양이를 통해 배우는 행복이 아니라 고양이의 삶을 통해 배우는 현대 철학에 가까운 책이다.

​현대 철학에 관심은 있지만 어렵다고 생각해서 책을 열기 쉽지 않았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도전만 하다 실패했거나 유명해서 이름만 들었던 철학자들의 다양한 사상을 전개하고 있다.

장 폴 사르트르는 실존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실존을 본질이 아니다'라고 간명하게 정의 내린 바 있습니다. 본질로서의 기능, 역할, 직분이 끝날 때, 그 군더더기이자 잉여 현실로서의 삶, 실존, 생명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실존은 생명의 유일무이성에 대한 개념이기도 합니다. 이번 수업에서는 실존의 특징인 전락성, 무상성, 유일무이성, 유한성 등에 대해서 다루겠습니다.

'지금, 여기, 내 곁'에 존재하는 아름다움 _실존 서문

장 폴 사르트르... 한 달도 채 안 되는 시간 나를 토하게 만든 작가. 구토의 저자이자 실존주의 철학자인 사르트르가 여기 있다. 어렵다. 그의 소설만큼이나 어려운 이야기다. 저자는 실존을 잃어버린 고양이 일화를 통해 설명한다. 고양이를 잃어버려 찾지 못한 채 비슷한 다른 고양이를 가져온다 해도 그 고양이는 잃어버린 고양이와 같은 고양이가 아니다. 생명은 유일무이하고 이러한 성질을 단독성, 특이성, 특기성, 일의성 혹은 실존이라 한다. 어렵다고 생각했던 실존이 이렇게 순식간에 정의되는 것이 이 책의 마법이다.

생명에게는 따뜻하고 부드럽고 엄청난 상냥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참 좋습니다. 유일무이한 존재가, 저 위대한 존재가 말입니다.

무의식은 의식한 것의 잔여 붐 붐으로서의 의미라기보다는 우리 마음의 깊이, 높이, 넓이를 알 수 있는 광대역적인 마음의 지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이러한 광야 무의식, 즉 기계, 사물, 생명의 배치에 서식하는 마음을 응시하였지만, 프로이트는 가족주의에 사로잡힌 옹졸한 마음만을 제기하였습니다. 무의식의 심연이 갖고 있는 광활함, 위대함 심오함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생명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마음의 비밀에 접근할 하나의 창이 열릴 테니까요.

헤아릴 수 없는 만큼 심원한 마음 _무의식 서문

펠릭스 가타리는 이 무의식을 장소, 인물, 사물, 자연, 생명의 배치에 서식하고 깃들여져 있는 생각들이라 칭한다. 우리가 의도와 지향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칭하는 것을 지칭하는 걸까. 반면 라캉은 의식의 나머지 잔여물과 잉여를 무의식이라 본다. 라캉은 동물에게는 무의식이 없다고 말한다. 본질을 설명할 수 없는 고양이의 마음, 즉 생명의 마음을 알 수 없기에 동물의 무의식은 '알 수 없다'라고 정의한다. 저자는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근대철학이 본질과 이유에 대한 답을 회피하면서 작동과 양상을 설명해 왔기 때문이라 말한다. 철학에서 말하는 개체적 시각에서 본다면 고양이는 실체가 있는 존재이다. 무의식이 생명이 가진 마음의 깊이와 잠재의식을 말한다면, 모성을 가진 생명의 행동은 무의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일까?

높이의 마음을 얘기할 때, 생명의 위대함에 대해서는 누락하고 인간의 희생정신에 대해 얘기하거나, 인간 사회가 이로부터 건설한 문명의 위대함에 대해서 얘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생명과 자연의 숭고함과 위대함은 어떤 높이의 마음보다 높은 영역에 있음이 분명합니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고양이의 삶과 일상을 통해 철학을 이해를 돕는 고마운 철학 입문서다. 반려동물을 통해 생에 대한 가치를 알게 하고,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보게 하는 것은 부가적 습득물이기도 하다. 그 안에 담기 고양이의 귀여운 일상은 부록에 가깝다.

이 책은 인간 위주의 사고보다는 생명과 함께 공존하는 삶을 지향하는 책이다. 동물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라면 인간이 살기 좋은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동시에 나와 함께 숨 쉬고 존재하는 존재들에게 감사하게 한다.

책을 읽고나니 많은 철학적 사유보다 왜 간디의 한마디가 생각나는 걸까.




https://blog.naver.com/sayistory/222291972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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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스 워튼의 환상 이야기
이디스 워튼 지음, 성소희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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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이디스 워튼. 워낙 유명한 고딕 소설가라 퓰리처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더 낯설다. 환상과 괴기의 기묘한 경계와 인간의 심리를 워낙 섬세하게 다뤘기에 100이 지났음에도 어색하거나 촌스러움이 없다.

그녀의 또 다른 소설 '올드 뉴욕'에서처럼 그녀가 가장 무섭고 괴이하게 다루는 것은 '인간'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도덕적 딜레마와 갈등, 선택을 하는 상황에 놓인다. 선택의 고뇌를 섬세하게 다룬 탁월한 묘사들이 특히나 매력적인 소설이며, 그 과정에 이루어지는 삶의 부조리와 위선 삶의 딜레마가 깊이를 더한다.


오, 하나 있어, 물론.

하지만 너희는 절대 모를걸

시간이 흐른 후에야 중에서

첫 작품 '시간이 흐른 후에야'는 시작부터 으스스한 분위기의 단편이다. 뭔가 나올 것 같은데 형체는 보이지 않는 으스스한 분위기, 환상인지 착각인지 모를 것을 보면서 우왕좌왕하는 부부의 모습이 긴장감을 더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이상한 것은 귀신뿐만이 아니다. 무언가를 숨기는 남편과 불안을 넘어서 신경과민, 정신병자 같은 모습을 보이는 아내. 뒤로 갈수록 예상치 못하던 방향으로 흐르던 이야기가 맺는 결말은 제목을 떠올리면 더욱 납득이 갈듯하다.

유령이 있긴 있는데, 아무도 그게 유령이라는 걸 모른다고?

글쎄, 어쨌든 나중에 가서야 한대

나중에 가서야?

한참,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내가 장티푸스를 앓고 난 가을이었다.

하녀를 부르는 종소리

장티푸스를 앓았다는 작가의 삶과 환상을 보는 주인공이 겹쳐 보였던 소설. 브림프턴 부인의 하녀로 가게 된 하틀리는 계속해서 환영을 보게 된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환상. 브림프턴 부인의 별장은 다른 곳과 다르고 이상한 점이 있었다. 종을 울려 하인을 부르지 않는 주인과 맞은편에 비어있는 방, 만연한 비밀 앞에 침묵하는 사람들.

그녀는 비밀을 풀기 위해 사람들을 미행하고 의심한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마주한 브림프턴 부인은... 몽환적이고 묘한 분위기와 어디까지를 의심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나열된 사실들.

남편이 움직였는데 소리를 듣지 못한 걸까? 그녀는 온몸을 가볍게 떨기 시작했다. 그 어떤 소리보다 침묵이 두려웠다. 남편이 소리를 전혀 내지 못한 게 아닐까? 지금 그녀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어쩌다가 이런 생각을 떨치지 못하게 된 걸까? 극도로 지친 마음은 상상할 수 있는 불길한 일 가운데 가장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서 천장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귀향길

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남편. 병원에서는 치료를 포기하고 남편에게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했다.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라는 뜻이었다. 병간호에 지친 아내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내심 기뻤다.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차에 올랐고, 그녀는 죽은 남편을 발견한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기차역의 승강장에 버려질 것을 두려워한 아내는 남편을 커튼으로 가린다. 그녀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죽은 남편을 두려워함과 동시에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 이중적인 그녀의 속 마음이 계속 부딪히는 것이 주요하다.

그녀는 겁에 질려서 웅크리고 앉았다. 기차의 속도가 느려진 것 같았다. 그렇다면... 기차가 역에 접근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승강장에 외로이 서 있던 부부의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남편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거칠게 블라인드를 내렸다.


현실과 부딪히는 인간의 모순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소설이다. 사람의 이중성과 부조리를 이렇게 우아하고 매력적이게 다룰 수 있다니, 이 정도 능력이었기에 퓰리처상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초기 고딕소설의 매력을 알고 싶다면 환상과 괴담의 경계에 선 서늘함을 느끼고 싶다면 '이디스 워튼의 환상 이야기'는 매력적인 추천작이다.


https://blog.naver.com/sayistory/22228625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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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시학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5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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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세만큼이나 나를 놀라게 했던 시학.

시학이라더니 시에 대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플롯을 얘기하고 있는 책이다. 그건 소설의 영역이 아닌가? 소설이 나오기 전 서사시의 미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철학자가 옛날이야기를 이렇게 진지하고 심오하게 다루다니, 당시 그리스인의 삶에 자리 잡은 비극과 서사시가 단순한 유흥거리가 아닌 인간의 삶을 논하는 수단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 안에서 진리와 선의 실체를 찾아내고, 진정한 행복으로 가는 길을 모색하는 책이다.

현재 소설 작법에서 쓰이는 용어들(플롯, 스토리텔링, 모방, 에피소드, 카타르시스)의 개념 대부분이 그대로 드러난 책, 글을 쓰는 이들에게는 꼭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 중 하나이다.

비극은 양념을 친 온갖 언어를 곳곳에 배치해, 낭송이 아니라 배우의 연기를 통해, 훌륭하고 위대한 하나의 완결된 사건을 모방하여 연민과 공포를 느끼게 함으로써 그 감정의 정화를 이루어내는 방식이다.

“양념을 친 언어”는 리듬과 선율을 지닌 언어나 노래를 의미하고, “곳곳에 배치한다"라는 어느 부분에서는 운문만 사용하고, 다른 부분에서는 다시 노래를 사용한다는 의미다.

비극이라는 모방은 배우의 연기로 표현되기 때문에, 당연히 시각적 요소가 먼저 비극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다음이 노래와 대사인 까닭은, 비극에서 배우가 모방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수단이 대사와 노래이기 때문이다. 대사는 운율이 있는 말의 배열을 뜻하고, 노래의 뜻은 누구나 다 안다.

비극은 행위를 모방하는 것이기도 하다. 행위는 행위자가 행하는 것이고, 행위자는 자신의 성격과 사상에 따라 특정한 성질을 지닐 수밖에 없다. …

하지만 여섯 구성요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위나 사건을 구성하는 플롯이다. 비극은 사람이 아니라 행위와 삶을 모방하기 때문이다. (삶의 행복과 불행은 행위에 있고, 비극의 목적도 성격이 아니라 행위다. 어떤 사람의 특성은 성격이 결정하지만, 행복과 불행은 행위가 결정한다.) 따라서 비극은 성격을 모방하려고 행위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를 모방하기 위해 성격을 포함시킨다. 이렇게 비극의 목적은 행위와 플롯이고, 목적이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

비극의 정의와 구성요소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챕터는 바로 비극에 대한 설명. 독특하게도 아리스토텔레스는 운율보다는 플롯을 더 중요시한다. 그 이유는 시의 '모방'이 삶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모방의 대상이 우리에게 나왔기 때문에 이야기는 공감과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가장 훌륭한 비극은 플롯이 단순하지 않고 복합적이어야 하고,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킬 행위나 사건이 있어야 한다(이것이 비극이라는 모방의 고유한 특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귀한 사람이 행복했다가 불행해지는 것을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은 공포나 연민이 아니라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악인이 불행을 겪다가 행복해지는 것을 보여주어서도 안 된다. 그런 것은 비극적인 것과는 가장 거리가 멀고, 비극의 효과를 조금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수긍할 수도 없고, 연민이나 공포도 느끼지 못한다.

플롯의 필연성과 개연성 중에서

글이 공감과 감정을 불러일으키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플롯이 필요하다. 그것도 단순하지 않은 복잡한 플롯이. 단 그 요소들은 우리의 삶에서 납득이 되는 이야기여야 한다. 악인이 행복해진다면 가장 궁극적인 삶의 가치에 다다르지 못한다. 더불어 읽는 이들 누구도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이야기는 망가지고 가치 없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아... 최근에 읽은 책들이 매우 어려워 곤란해하고 있다. 그중에 단연 으뜸인 책이다. 내용이 어려운 건 아닌데, 아무래도 정리를 못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읽고 또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하다. 기원전에 쓰인 이 책은 시, 시학, 이야기의 본질과 원리를 알게 해주는 책이다.

우선 한 번의 책을 다 읽은 보람을 느끼고 다시금 이야기 속에 있는 구성들을 하나씩 새겨보아야겠다. 이 책의 서평은 여기서 끝이 아닌, 지금부터 시작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https://blog.naver.com/sayistory/22227879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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