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의 눈 문학인 산문선 1
서정 지음 / 소명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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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도 좋아하지 않는 주제에, 여행 에세이를 계속 사서 본다. 다른 세상의 이야기란 새롭고 설레고 즐겁기 때문인듯하다. 박노해 시인의 사진과 글은 하나의 잠언집을 읽는 느낌으로 본다. 이병률 시인의 에세이는 논바닥처럼 갈라진 감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읽는다. 그런데 이 책 '낙타의 눈'은 조금 달랐다. 여행기라고 하기엔 여러모로 독특한 에세이다. 단순히 즐기기 위한 에세이라기보다는 그곳에서 장기간 생활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묻어있기 때문이다. 이걸 여행기라 할 수 있을까?

짧은 기간 여행이라면 언어에서의 낯섦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조금 불편하지만 감수할 수 있다. 문화에서 오는 차이와 사고의 차이 역시 마찬가지다. 낙타의 눈은 타지에서 생활하는 한국인이 겪은 이방인에 대한 기록이다. 

한국처럼 민족이 단일화되어 있어 다름을 느끼기는 쉽지 않은 문화와 사회를 이루고 있다. 그런 곳에서 작가가 깨닫는 이방인의 기록은 뭐랄까 외롭고 고독하고 생각을 하게 하고 이해를 통해 세상을 넓어지게 한다. 한마디로 사유를 깊어지게 한다. '낙타의 눈'은 매우 사색적인 에세이다. 

정치, 종교, 역사, 문화, 그리고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300 페이지를 채운다.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차이를 깨닫게 하고, 세계를 넓어지게 하는 여행 에세이는 흔치 않다. 

여행지 역시 사람들이 즐기기 위해 방문하는 여행지와 다르다. 러시와와 남미, 노르웨이, 페테르부르크, 세상에 있는지도 몰랐던 카렐리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 속의 낙타는 중동 사막의 낙타가 아니다. 동유럽의 낙타에 대한 이야기다. 여러모로 범상치 않은 에세이다. 사색의 순간 읽어보기를 추천하는 에세이다.

우리는 또한 낯선 곳에서 낯선 '나'를 만나는 여행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선태 문학평론가 추천사 중에서

개인의 관점에 따라 에세이는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유명 관광지가 아닌 지역민들도 일상적으로 지나치는 상징물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시선. 누구나 알만한 장소가 위인이 아닌 해당 국가에서 존경받는 음악가와 화가, 예술가의 자취를 쫓는다. 궁궐 근처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의 일상과 중고시장을 이야기한다. 지극히 일상의 풍경들. 여행 에세이의 의미를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낙타의 눈에서 읽을 수 있는 가장 독특한 시선은 외국에서 만난 고려인의 이야기를 다룬 '자장가' 편이다. 담쟁이덩굴이 감긴 오래된 건물 사진과 그에 실린 나라의 익숙한 지명. 어색하지만 역사상 존재하는 우리의 이야기다. 우리의 역사, 국가가 잊었으나 우리와 피를 나눈 엄연히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낙타의 눈에서 떠오르는 하나의 단어는 디아스포라다. 유대인들이 전 세계에 군집을 형성하면서 만들어진 하나의 단어로 특정 민족이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형성된 하나의 집단을 의미한다. 파친코로 알려진 디아스포라의 컨텐츠는 보다 확산되고 있다. 책에서도 다룬 고려인의 이야기를 다룬 '헤로니모' 역시 디아스포라 영화였다.

저자는 서로 다른 국가와 문화를 떠도는 유목민이다. 그 문화를 이해하려 하지만 외지인은 외지인이다. 그런 저자의 시선에는 떠도는 민족들이 함께 와닿는다. 

내가 해외에 나가면 어떤 이야기를 다룰 수 있을까. 아마 여타의 여행객과 다르지 않지 않을까. 색다른 세계를 보여준 저자에게 감사하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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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가드
마윤제 지음 / 특별한서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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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3년 단편 소설을 안 읽었더니, 감이 떨어졌다. '라이프 가드'를 펼쳐드는 순간 부끄러웠다. 무언가 이야기하는 것은 알았으나 바다 위를 날아가는 나비의 꿈, 다양한 얼굴과 모습을 가진 바다, 제발트의 토성의 고리까지 책 속에 등장하는 상징의 의미를 엮는 것이 쉽지 않았다. 

책 속에서 나온 문장처럼 나이가 드니 집중을 요하니 '단편'을 잘 읽지 않게 되나 보다. 예전처럼 내용 파악이 쉽지 않다. 머리가 굳어가는 걸까. 책을 읽으면서 여러 번 한숨을 쉬게 되었는데, 최근 서평이 늦어진 건 이 '라이프 가드' 때문이다.

단정한 문장과 단정치 않은 상징과 사유들. 쉽지 않지만, 단단하고 무시무시한 깊이를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깊이 있는 소설, 쉬지 읽히지는 않지만, 단단한 소설을 찾는다면 추천할 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21년에 '다른 세계에서도' 22년 '유령의 마음으로' 이후 맘에 드는 책을 만났다. 

작가의 작품들이 하나 같이 평이 좋았다. 마윤제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봐야겠다. 좋은 작품을 만나 기쁘다.

세상에는 자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다. 그들은 어떤 카테고리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도서관의 유령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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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제발트의 '토성의 고리'를 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과 연결시킨 '도서관의 유령들'의 의미를 이해하면 전혀 달라 보이는 소설이다. 제발트의 토성의 고리는 매우 독특한 소설이다. 소설이지만 에세이에 가깝고,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 하며 개인의 사유를 따라가기도 한다. 동시에 다큐멘터리적인 느낌도 담고 있는 책이다. 제발트는 이 작품을 통해 사후 천재라는 평을 받지만, 이 책을 아는 이는 극소수다. 소설과 에세이, 픽션과 논픽션을 가로지르는 독특한 책을 통해 세상 어느 기준에도 속하지 못한 채 떠도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자신의 자리를 찾아 떠돈다.

'도서관의 유령들'은 고맙게도 이 책을 읽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라이프 가드' 속 주인공들은 다들 자신의 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다. 그 안에서 펼쳐지는 진실들은 실제와 달라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흔들고 있다. 

'강' 속의 형은 동생을 끊임없이 질투한다. 동생은 형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리를 가진 이는 자리를 찾아 헤매는 이의 마음을 알리가 없다. 동생이 마주한 것은 자신을 집어삼킬 것만 같은 새까만 강.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을 마주할 뿐이다. 

거짓은 거짓이고 진실은 진실이었다. 천 번, 만 번이라도 거짓은 그냥 거짓일 뿐이었다.

라이프 가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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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가드'에서 진실과 거짓은 끝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 이는 누군가가 숨기도 싶은 진실이거나 혹은 동전의 양면 같아 개개인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또 어떤 거짓은 개인의 죄를 담고 있기에 숨겨야만 하는 것이기도 하다. 라이프 가드의 경우가 그랬다. 그렇지만 유지의 독백처럼 거짓은 거짓일 뿐이다. 

'조니워커 블루'처럼 어떤 진실은 진실임에도 거짓으로 매도 당하며 비난받는다. 사람들은 진실의 유무를 넘어 메신저를 공격하고 그를 죽음에 이르게도 한다.

과연 진실만이 가치 있는 것일까? '전망 좋은 방'은 진실의 가치를 되묻는 듯하다. 타인의 죽음이 나의 생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어떤 이는 타인을 죽음으로 내몰며 생을 이어가기도 한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전망 좋은 밤'의 가치는 한없이 쓰다. 

바다는 고요했다. 그러나 그 온유함에는 짐승의 발톱이 숨겨져 있었다.

버진 블루 라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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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거짓, 적자 생존의 치열한 삶, 이 안에 삶은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는가? 라이프 가드는 역설적으로 생의 가치를 되묻는 것만 같다.

책 마다 검푸른 바다를 묘사하고 있다. 바다는 아름답지만 그 안은 매섭고 사람의 생명조차 빼앗을 위험을 숨기고 있다. 그것은 사람의 속내와 닮아 있기도 하다. 이 책에서 형의 악의를 검은 강과 매치시킨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으나 알고 싶지 않은 사람 깊숙이 숨어 있는 어두운 내면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저자가 그리는 바다 같아서 매력적이지만 가까이하기 어려운 면도 함께 존재한다. 작가는 상징과 설정을 촘촘하게 엮어 인간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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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 숲속의 올빼미
고이케 마리코 지음, 정영희 옮김 / 시공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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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케 마리코라는 이름이 눈에 익은 이름은 아니여서 무심코 지나갈 책이었다. 책연이라는게 있긴 있는것인지. 책의 미리보기를 보게 되었고 '달밤 숲속의 올빼미' 이 책에 반해버렸다. 

거대한 상실은 극복되지 않는다

매일의 삶과 함께하는 것이다

에세이는 짧고 간결하다. 조곤조곤한 말투는 할머니가 옛날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주는 듯 하다. 이야기는 하나같이 잔잔해서 그 안의 감정이 슬픈 것인지 알 수 없다. 마지막장을 덮은 뒤 웃으면서 오열한다는 장면이 상상되지 않았지만, 어쩐지 서글프고 표지의 문장이 계속해서 남는다.

예전에 남편이 내동댕이쳤던 말들. 억지를 부려 화를 솟구치게 하던 말들을 이것저것 떠올려 본다. 그때 그런 소리를 했었지, 이런 소리도 들었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두운 기억’이 몸집을 불려 나간다. 상실의 슬픔이, 흔들흔들 출렁이던 그 희미하고 부드러운 윤곽이 뾰족하고 예리한 무언가로 변해 가는 느낌이 든다. 됐다. 이렇게 하면 현실로 되돌아갈 수 있겠다. 편안해질 수 있겠다. 든든한 생각도 들지만 그것도 잠시뿐, 오래가지 않았다.

달밤 숲속의 올빼미_ 앓는다는 것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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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도서관의 일본문학란의 왠만한 소설을 다 읽었는데, 고이케 마리코의 책을 만난적이 없다고. 그녀의 책이 한국에 출간된 시기를 생각하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녀가 펴낸 책의 리스트를 살펴보니 나오키 상부터 수상작은 무엇하나 읽은 것이 없다. 

다만 그녀가 쓴 '괴담'을 읽은 기억이 있었다. 제목에 끌려 읽은 책이었으나 공포소설이라고 말하기엔 뭐한 소설이었다. 그렇다면 책이 별로였느나, 그것 역시 아니었다. 삶과 죽음 그 언저리를 묘한 분위기로 써내는 작가였다. 삶의 모순을 생의 스산함과 기묘하게 엮어내기도 했다. 별거 아닌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마주친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불안한 감정들, 별거 아닌 일들이 주는 묘한 공포감. 삶의 사소함 속에서 느껴지는 서늘함과 불안함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100자 평에 정성스럽게 쓴 문장이라는 글이 유난히 눈에 담겼다. 그 100자 평은 달밤 숲속의 올빼미 부터 시작해서 괴담까지 많이 읽지는 않았으나 그녀의 소설에서 느낀 감정에 적확하게 닿는다.

고이케 마리코는 글을 참 정성스럽게 쓰는 작가다.

표현하나 묘사하나하나를 신경써서 쓴다. 에세이를 잡문 취급하며 그냥저냥 넘기는 작가들도 많은데, 굉장히 정성들여 표현한다. 일본과 한국어가 주술구조라 번역시 문장의 구조가 크게 뒤틀리지 않음에 감사한다.

때로는 서로를 미치도록 미워했다. 그러면서도 용서했다. 그러다 결국 마지막에는, 이끼 낀 깊은 숲 어딘가에서 가만가만 살아가는 암수 한 쌍처럼, 서로에게 서로가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반쪽이 아니었다면 그리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달밤 숲속의 올빼미_ 반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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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 숲속의 올빼미'는 편집자의 요청으로 남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기술한 에세이다. 이런 내용을 기술한 편집자도, 작가도 얼핏 이해되지 않았지만, 책은 쓰였다. 매우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로 기술되어 있는데 묘하게도 참담하다. 앞서 말하지 않았는가 이 작가는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독특한 재주가 있다고. 별거 아닌데 슬프고, 별거 아닌데 공포스럽다고. 

에세이 안에서 흘러가는 문장을 뜯어보면 그 안에 슬픔이란 단어를 녹여 졸여낸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자국들은 눈물인데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 것도 같다. 책을 다 덮은뒤 '웃으면서 오열한다.'라는 문장이 남았다고 적었다. 이 책의 분위기가 그러하다. 웃으면서 오열한다라는 극적인 감정의 표현이라기 보다는 눌러담는. 미소를 짓고 있으나 눈물을 눌러담는 것에 가까운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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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유품정리
가키야 미우 지음, 강성욱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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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병동', '노후자금이 없습니다', '70세 사망 법안, 가결' 등 노년의 삶,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사회적 이슈를 즐겨 다루는 가키야 미우의 신작 '시어머니 유품정리'는 제목부터 눈길을 끄는 책이다. 

작가는 유품정리라는 행동을 통해 이번엔 어떤 이야기와 삶의 풍경을 전해 줄까.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은 결국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생 또는 삶의 가치를 알리는 일이다. 죽음에 관련된 책을 읽기 전, 이 책은 어떤 삶의 가치를 나에게 전해 줄지 상상해 본다.

시어머니의 방에 있던 수많은 유품은 시어머니의 인생을 응축시켜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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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갈색 토끼가 유난히 눈에 띄는 시어머니라는 유품 정리는 제목 그대로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는 이야기다. 표지만 보고 시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 나온 토끼를 키우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시어머니의 유품정리'는 기존에 읽어 온 죽음을 자의 짐을 정리하며 죽은 이의 혼을 기리며, 화해하는 이야기에 가깝다.

처음 시어머니의 유품정리라는 제목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유품정리란 가장 가까운 직계 가족이 할 텐데, 그걸 다른 사람도 아닌 며느리가 하다니. 그렇다면 두 사람은 친밀한 사이였나. 전혀 아니다. 어느 나라나 시어머니랑 존재의 거리감은 비슷한듯하다. 

주인공 모토코가 시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기로 한 이유는 단지 돈을 아끼기 위해서다. 20평의 집을 치우는 데 얼마나 걸리겠어라고 생각한 그녀의 예상과 달리 자그마한 공간에서 끊임없이 물건이 쏟아져 나온다. 맥시멀리스트 시어머니의 짐을 정리하면서 모토코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다. 

그녀가 당황한 가장 큰 이유는 친엄마의 죽음과 시어머니의 죽음의 형태가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모토코의 어머니는 오랜 시간 투병 끝 자신의 모든 짐을 깔끔하게 정리한 뒤 돌아가신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기 싫어 평생을 절제하며 자신의 죽음까지 정리한 미니멀리스트 엄마와 인생을 즐기며 주변을 돌보았던 맥시멀리스트 시어머니. 성향이 그대로 드러난 그들의 삶의 흔적을 보면서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시어머니를 원망하며 그녀의 삶을 부정하던 모토코는 집에 찾아온 주민들을 통해 시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들은 시어머니에게 받은 호의를 모토코에게 베푼다. 찾아온 이들은 하나같이 시어머니를 추억하고 그녀와 관련된 일화를 떠올린다. 반면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던 친엄마는 가족에게도 자신의 속마음을 내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딸인 모토코 조차 엄마를 추억할 기억이 많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대부분 사라진 그녀의 물건들처럼 말이다. 

전혀 다른 두 엄마의 삶. 모토코는 죽은 이의 짐을 정리하는 동안 두 사람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유품정리란 살아 있는 사람의 흔적을 그려보는 일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이들은 죽은 자에게 생의 소중함과 일상의 귀중함을 선물 받게 된다.

물건이 단순히 물건이 아니라고 여겨질 때가 있다. 영혼이 깃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영혼이 나에게 좋은 감정을 가진 사람의 것이라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으면 보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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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의 유품정리의 가장 큰 장점은 따뜻함이다. 근 일 년간 읽은 책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따스함이다. 강렬한 사건은 없지만 이야기는 부드럽게 흘러간다. 글자가 커서 쉬이 읽히는 책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 동안 흔적에 대해 생각했다. 주인공 모토코가 물건을 통해 두 어머니를 연상하는 장면이 매우 흥미로운데, 물건을 보면 사람을 안다는 말처럼 흔적들이 두 사람을 똑닮아 있었다. 책을 읽는 틈틈이 주변을 둘러보며 수시로 정리와 청소를 했다. 뭔가 찔리는 게 많은 책이다.

혼자인 노인이라고 우습게 봐서는 안된다. 타인은 결코 알 수 없는 인간이라는 우주. 그 안에는 거쳐간 수많은 인간들의 흔적과 세월이 맞닿아 있다. 모토코의 친어머니를 생각하며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시어머니를 생각하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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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문장들
강처중 외 지음, 윤작가 엮음 / 우시모북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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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처중 계용묵 고유섭 권덕규 김구 김교신 김남천 김동석 김사량 김소월 김우진 김진섭 나도향 나혜석 노자영 문세영 문일평 민태원 박인환 방정환 백석 백신애 변영로 석주명 송계월 신채호 심훈 안창호 오장환 윤동주 윤백남 윤심덕 이상 이상재 이선희 이육사 이윤재 이태준 임화 정인보 정지용 정태진 주시경 최서해 한용운 현덕건

불멸의 문장들은 한국에 유명한 명문장들, 첫 문장이나 누구나 아는 문장들을 기술한 책이라 생각했다. 펼쳐 본 불멸의 문장들은 이상 시인의 '행복' 또는 한용운 시인의 '명사십리'처럼 잘 안 알려졌지만 시처럼 아름다운 산문, 또는 김구 선생의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처럼 우리가 일부만 알고 있는 산문의 전문을 실은 책이다. 

36년간 국어 선생님이었던 저자는 경험을 살려 한국현대문학사에 명예의 전당에 기록될 책들을 꼽은 것이다. 총 6개의 주제로 나누어 48명의 작가의 글을 수록하였다.

아름다운 문장은 기본이고, 역사의 깊이를 담고 있는 문장들은 어떤 의미로도 소중하다. 책에 실린 문장들은 어디서도 만나기 쉽지 않은 문장들이다. 일부는 작가가 출처를 찾아가며 복원한 문장들도 있다고 한다. 묻혀 있던 글들이 작가의 노력에 따라 생명을 갖게 되었다. 이런 소중한 글들을 만나게 해준 작가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조금 아쉬운 점은 글마다 평론이 실려있지만, 왜 이 글들이 명예의 전당에 올라야 하는지 그 의미와 가치를 기재하지 않아 사람들로 하여금 의견이 분분할 글들이 있다. 이상 시인의 '행복'은 아름다운 산문이지만 취향에 따라 의견이 갈릴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상의 '권태'다. 그렇다고 어떤 글이 더 훌륭하다 말하기는 어렵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김구,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중에서

'불멸의 문장들'에는 눈에 띄는 많은 작품들이 보인다. 방정환 선생님의 '어린이 찬가', 윤동주 '달을 쏘다', 계용묵 소설가의 '손', 주시경 한글학자의 '한 나라말' 안창호 선생님의 '나의 아내 혜련에게' 등 다양한 소재를 이야기하는 산문들이 실려 있다. 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그중 눈에 띄는 작품은 김구 선생님의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다.

'불멸의 문장'을 보면 누구나 가장 먼저 꼽을 하나의 글.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는 한국인이라면 가슴이 뜨거워질만한 글이다. 김구 선생이 바라는 아름다운 나라는 문화적으로 강한 나라를 이야기한다. 문화강대국이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교육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마치 미래를 예견한 것 같다. 문화강대국 대한민국. 최근 넷플릭스 통해 한국에서 제작한 드라마가 인기를 끌게 된 것과 영화 기생충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게 된 일. BTS가 세계적 가수가 된 일 등등. 김구 선생님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며 후손들을 자랑스러워할까. 아니면 아직도 남북이 통일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실까. 미래를 내다본 작가의 혜안에 놀라며, 또 한편으론 지금의 현실이 안타까운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하는 글이다.

언어를 무시하고, 개성을 표현하고자 시, 가(歌), 극을 쓴다고 하면 그는 눈 없이 길을 걷고자 하는 것보다 무리한 일이외다.

김우진(희곡작가), 조선말 없는 조선문단에 일언 중에서

국어를 전공한 것은 아니니 현대문학 전부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겠으나. 한국 문학은 현대문학을 등한시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국권을 침탈당했기에 조국 수호, 대한 독립의 주제를 주로 다루고 있다. 문학이 추구하는 미학의 영역에서 다소 뒤떨어질지 모른다. 문학이 가진 가치 중 하나는 그 시대를 담아낸다는 것이다. 여기 실린 글들은 시대의 다양한 모습,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역시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대한민국의 역사이다. 책에 실린 산문들은 시대를 그리고 소중한 사료들에 가깝다. 그래서 이 책 '불멸의 문장들'이 더욱 소중하다. 

책을 읽던 중 생각하게 된다. 독립운동을 하던 위인들도 사랑을 이야기하고, 지나가는 계절을 이야기하고, 불행한 현실 속에서 행복을 꿈꾸고, 사별한 친구를 그리워한다. 뒤로 물러서 역사라는 흐름 속에 보면 일제 침략과 독립운동이라는 산이 보이고, 가까이 다가가면 사람의 삶이 보인다. 독립운동이라는 거창한 이야기로만 해석하다 보니, 그 기준과 잣대로만 보다 보니, 어쩌면 우리는 사람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소중한 가르침을 준 책에 감사하며, 앞으로 다양한 소재를 다룬 책들을 만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https://blog.naver.com/sayistory/222977188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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