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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버 드림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조혜진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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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서평은 창비에서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 하였습니다*

 

1 책 소개

 

동시대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가장 빛나는 별

사만타 슈웨블린의 대표작 국내 첫 출간!!

 

★2021 공개 예정 오리지널 무비 원작소설

★2017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후보, 셜리잭슨상 중편 부분 수상

★2015 티그레후안상 수상

 

2 . 피버드림을 읽는 세 가지 키워드

 

[사만타 슈웨블린이라는 장르]

 

글을 쓰는 사람, 직업으로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은 한번 쯤 '나만의 글' 애 대해 고민을 해보았을 것이다. 그 글에 내 이름이 들어가지 않아도 내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 나만의 느낌이 나는 그런 글들 말이다. 글을 읽는 것만으로 그 작가를 떠올리 수 있는 작품들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다. 소소하지만 유쾌한 사건들과 함께 알파벳이름을 가진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윤성희 작가님과 단백하고 간결한 문체로 사회이 약자들의 모습을 그리는 황정은 작가님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글을 읽는 것만으로 작가를 떠올리 수 있는 것 또한 대단한데, 피버드림의 작가는 그 이름 자체가 하나의 장르라고 불리 정도로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방식으로 소설을 진행시켰다고 하니 호기심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 더 솔직히 고백을 하자면 소설을 읽기 전 마음속으로 단단한 각오를 했다. 기존에 소설이 진행하는 방식을 따르지 않은 탓인지, 피버드림을 먼저 읽은 다른 독자들의 반응이 어렵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소설의 첫 부분을 가볍게 소개해 보자면 이렇다.

-벌레 같은 거예요.

-무슨 벌레 인데?

-벌레 같은 거요. 어디에나 있는.

내 귀에대고 속삭이는 건 남자아이다. 질문하는 사람은 바로 나다.

첫 장면부터 훅 들어오는 벌레. 이 소설에서 벌레가 상징하는 것들과 그리고 그 벌레가 전달하는 의미를 찾아내하 하는 숙제를 던져 주며 이야기는 시작했다. 그리고 소설을 진행하는 방식 또한 독특했는데, 이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아만다와 영혼인지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소년 다비드의 대화로만 소설은 진행되고 있었다.

게다가 시간이 모호하다. 분명 아만다는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이야기 하고 있는데, 마치 전생체험을 하는 사람처럼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체면술사가 뭐가 보이나요? 하면 말이 보여요. 이런식으로 말이다. 확실히 낯설고 새로운 방식이었다.

그렇지만 작가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대단하다. 다비드가 알고 싶은 '벌레(병읜원인)는 정확히 언제 생겨 났는가?와 아만다의 '딸 니나는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서로 알고 싶은 것을 대화로서 찾아가는 방식이 흥미롭니다.

그리고 각각의 인물과 '녹색집' 같은 사물들이 상징하는 의미를 찾아보는 재미와, 또 소설 곳곳에 깔려 있는 강렬한 이미지와 공포를 느끼며 이야기를 따라가는 매력 또한 가지고 있다.

과연 그 동안 만나기 힘든 새로운 장르라는 말이 맞았다. 작가이름 작체가 새로운 장르라 불리는 이의 소설을 살펴보는 것만으로, 새로운 독서 재미를 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라는 것을 미리 언급한다.

[내 안의 공포를 발견하는 순간]

 

이 소설을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분위기는 '공포'이다.

다비드와 아만드의 대화 속에서 독자는 실체를 알 수 없는 공포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작가는 환경재앙을 염두해 두고 소설을 진행했다고 했지만 작가의 의도를 모르고 읽었던 나는 조금 다른 해석을 했다. 내 해석을 옮겨보다면 이렇다.

나는 소설을 읽는 동안, 여러가지 형태의 폭력으로부터 노출된 아이들을 떠올렸다. 피버드림의 사건이 시작은 카를라가 감염에 걸린 아들을 살리기 위해 녹색집의 여인에게 데려가면서 시작한다. 녹색집의 여인은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아이의 영혼을 다른 몸으로 이체 시켜야 한다는 처방을 내린다. 영혼이 이체되면서 병도 어느정도 넘어가게 되며, 한 몸에 한 영혼 밖에 존재 할 수 없으니 원래 아이의 몸에는 다른 사람의 영혼이 들어오게 된다고 했다.

"우리가 제때 다비드의 정신을 다른 몸으로 옮기면 독성고 일부 같이 옮겨간 댔어요. 두 몸으로 나뉘면 중독을 이겨낼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확실한 방법은 아니지만 효과는 볼 수 있다고 했어요."

"여인은 자기가 가족을 선택할 순 없다고 했어요." 카틀라는 말을 이었어. "다비드가 어디를 갈지 알 수 없다고요. 그리고 이체에는 결과를 따르는 거라고 했어요" 하나의 몸에는 두 정신이 머물 자리가 없고, 정신이 없는 몸도 없으니까요. 이체가 이루어지면 다비드의 정신은 건강한 몸으로 옮겨가겠지만, 한편 낯선 정신이 아픈 몸으로 옮아오겠죠. 두 정신 모두 일부가 상대방에게 남아있을테고 다비드는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았죠. 그러니 나도 아이의 새로운 모습은 받아들여 할 테고요."

이 장면을 보고 나는 아이의 영혼을 그대로 키우기 보다는 사회적 시선과 조건에 맞추어 아이를 마음대로 바꾸는 이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는데. 내 마음 속에는 이런 현상으로 어릴 때부터 영혼을 잃고 키워진 사람들에 대한 공포심을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건 나 뿐만 아니라 이 소설을 읽는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마음 속에 공포에 맞추어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다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네 눈은 남편의 시선을 간절히 좇아. 하지만 너희 아빠는 안전벨트를 풀고 네 팔을 잡아 끌지. 남편은 화가 난 채 차에 올라타. 두 사람의 형체가 점점 멀어져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여. 두 사람은 멀찍이 떨어진 채 차례로 집에 들어가고, 안에서는 문이 잠기지. 그제야 남편은 시동을 걸고 내려가 시간을 허비했다고 느껴. 마을에서 차를 멈추지 않고 뒤를 돌아보지 않아. 콩밭도, 메마은 땅도 가로질러 흐르는 개천도 가축 한 마리 없이 몇킬로미터나 드넓게 펼쳐진 평원도, 별장도 쳐다 보지 않고 도시에 다다르지. 집에 가까워 질수록 점점 속도가 느껴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 하고. 수 많은 자동차가 갈수록 더 많은 차들이 아슬파트 위를 덮고 있다는것도, 교통이 정체되어 몇 시간 동안 오도가도 못 한채 뜨거운 배기가스를 내뿜고 있는 것도. 그이는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해. 어딘가에서 불 붙은 도화선처럼 나침내 느슨해진 실을, 이제 곧 분출되기 일보 직전인 움직이지 않는 재앙을.

작가는 환경오염을 외면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통해 경고를 하고자 하는 의도였겠지만 (아마도 맞겠지?) 나는 폭력에 노출 되어 있는 아이의 눈빛을 외면한 채 평온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봤다.

이래저래 오해는 했지만 이건 내 독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읽고 그가 전하는 메시지를 받아 들이는 것도 좋겠지만, 그 책을 읽는 독자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투영시켜 새로운 해석을 하는 것도, 나름의 독서의 매력이 아닐까.(라고 변명을 해 본다)

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독자가 자신 안의 공포를 발견하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매력이 아닐까.

 

 

[그럼 다시 작가의 의도로 돌아가서]

 

*

작가는 아리엔티나의 무분멸한 농약 살포와 그로 인한 환경 오염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이 소설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농약에 내성이 있는 유전자 변형, 조작 콩을 생산하면서 농약 남용의 부작용과 점박이 소녀까지 인간에게 실질적인 공포로 다가온 사건이 있었다. 환경문제가 심각해졌구나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크게 와닿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작 내 발 밑에 떨어진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적절한 예시인지 모르겠지만 영화 속에서 우리는 수 천면 수 만명이 죽는 재앙을 보면 제법 담담하게 볼 수 있지만, 단 한명이 죽거나 다치는 사건이라도 실제로 나나 내 주변 가족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이라고 인식하는 순간 그 상황에 더 공감하고 심각하게 받아 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환경문제는 어떻게든 우리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당장 내 옆에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책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작가는 우리의 무관심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경고를 한다.

네 눈은 남편의 시선을 간절히 좇아. 하지만 너희 아빠는 안전벨트를 풀고 네 팔을 잡아 끌지. 남편은 화가 난 채 차에 올라타. 두 사람의 형체가 점점 멀어져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여. 두 사람은 멀찍이 떨어진 채 차례로 집에 들어가고, 안에서는 문이 잠기지. 그제야 남편은 시동을 걸고 내려가 시간을 허비했다고 느껴. 마을에서 차를 멈추지 않고 뒤를 돌아보지 않아. 콩밭도, 메마은 땅도 가로질러 흐르는 개천도 가축 한 마리 없이 몇킬로미터나 드넓게 펼쳐진 평원도, 별장도 쳐다 보지 않고 도시에 다다르지. 집에 가까워 질수록 점점 속도가 느껴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 하고. 수 많은 자동차가 갈수록 더 많은 차들이 아슬파트 위를 덮고 있다는것도, 교통이 정체되어 몇 시간 동안 오도가도 못 한채 뜨거운 배기가스를 내뿜고 있는 것도. 그이는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해. 어딘가에서 불 붙은 도화선처럼 나침내 느슨해진 실을, 이제 곧 분출되기 일보 직전인 움직이지 않는 재앙을.

*

소설에서 많이 언급되는 단어 중 구조거리라는 말이 나온다. 주인공 아만다는 딸 니나를 지키기 위해 구조거리를 유지하고자 한다.

카를라에게 일어난 일이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을지 궁금해. 나는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거든. 지금 당장은 니나가 느닷없이 수영장으로 달려가 뒤어든다면 내가 차에서 뛰쳐나가 그 애한테 이르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계산 중이야. 나는 그걸 구조거리 라고 불러. 딸 아이와 나를 갈라놓는 그 가면적인 거기를 그렇게 부르는 거지.

니나가 위험에 노출되는 순간을 방지하기 위해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아이가 위험에 빠질 때 구해내고자 한다. 이건 지구와 우리의 거리를 뜻할 것이다. 코로나가 발생하고 그로인해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멸종했던 동식물들이 발견 되고, 자연경관이 다시 아름다움을 찾고 있다는 기사를 종종 본다.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어쩌면 인간이 재앙 또는 오염물질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지구를 지킬 구조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고, 소설 중간중간 다비드가 하는 반복적인 말처럼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 요즘이다. 환경적 제앙이 실질적으로 느껴지지 않게 의식적이든, 제도적이든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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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365일 1
블란카 리핀스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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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을 읽는 두가지 키워드

 

이건 범죄 아니야? 그러나궁금해!!

실제로 365일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많은 사람들이 납치를 미화한 게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많았다고 들었다. 나 또한 '웹소설 스러운' 혹은 '야동' 의 소재로 나올 법한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 했다. 이게 넷플릭스에 나온다고? 하는.

"폴라드로 돌아가고 싶어요. 제발 나를 집에 보내줘요,"

마시모는 다시 소파에서 일어나 벽난로 쪽으로 다가갔다. 꺼져가는 불꽃의 은은한 빛은 방 안을 희미하게 비추었다. 그는 한 손으로 벽을 빛은 채 이탈리어로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깊은 한숨을 쉰 다음 다시 나에게 돌아와서 대갑했다.

"안탑깝게도 앞으로 365일 동안은 그럴 수 없어. 1년간 날 위해 희생해 줘야겠어. 네가 나를 사랑하도록 온 힘을 다해 뭐든 할 거야. 만약 네 다음 생일까지도 네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보내줄게. 오해하지 마. 이건 제안이 아니야. 넌 거부할 수 없어. 이건 통보야.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알려주는 것뿐이야. 물론 나는 너를 건드리지 않을거야. 네가 원치 않는 일은 안 해. 네 의사에 반하는 일은 시키지도 않을 거고. 혹시 무서워 할 까봐 말하자면 널 강간하지 않을 거라고. 넌 내 천사니까. 널 이 세상 누구보다 존중한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해. 너는 내 목숨만큼 소중하니까. 내 거주지 안의 모든 것은 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해주지. 개인 경호원도 붙여줄게. 통제 하려는 게 아니야. 안전을 위해서지. 경호원은 직접 고르게 해주겠어. 내 모든 재산을 쓸 수 있게 될 거야. 널 가둬 두지도 않을 거고. 만약 이 집을 나가서 클럽 같은 곳에 가고 싶다면 막지 않을-"

나는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설정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환상속에서 본 여자였다는 이유로 마피아 보스가 납치를 해서 365일안에 나에게 사랑에 빠지게 만들겠어, 그 뒤에도 내게 빠지지 않는다면 돌려 보내줄 게 라는 협박이나 하니까 말이다.

물론 위의 옮겨 놓은 소설 속 대사에서도 알 수 있지만, 365일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 마시모는 눈빛부터 몸, 하는 행동까지 섹시하다. 그리고 돈도 엄청나게 많아서 예전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재벌 2세들이 많이 하는 그 놀이. 착하고 가난한 여주한테 백화점 놀이 시켜주는 장면도 나온다.

그래도 납치인데? 이렇게 불편한 설정인데도 불구하고 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을까를 하다가, 웹소설 수업시간에 배웠던 내용이 생각이 났다.

웹소설 특히 로맨스 분야는 독자가 '대리만족' 을 할 수 있는 요건을 만들어 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금 내 옆에서 실제 남편이 다정하게 발 마사지를 해 주고 있어도, 핸드폰 안 웹소설 속 그 남자는 여자에게 까칠하고 도도하게 구는 나쁜남자를 원한다고. 그 나쁜 남자가 여자 주인공에게 사랑에 빠지고 위기를 겪고, 사랑의 결실을 이루는 모습에서 잠시 그 소설 속 여자가 되어 대리만족을 느끼는 거라는 내용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365'의 인기를 설명 할 수 있지 않을까. 현실 속 나는 마피아한테 납치 당해 강금당하는 위기에 속하고 싶지는 않지만 소설과 영화를 보며 매력적인 마피아 보스에 맹목적인 사랑을 받으며 그가 나에게 주는 부를 누리는 삶에 대한 호기심과, 잠시 여자 주인공이 되어 버린 대리만족을 체험하는 시간 말이다.

물론 나 또한 불편한 설정이었지만 궁금한 마음에 혹은 눈이 튀어나올 만큼의 야한 장면 때문에 영화를 끝까지 시청했고, 소설에서는 어떻게 이 장면이 묘사가 되었을까 하는 마음에 책을 집어 들었다.

욕망에 눈을 뜨는 시간

'여성의 인권을 무시하는 영화'라는 설정이라는 평이 있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이 작품의 관점 포인트는 '한 여성이 자신의 욕망에 눈을 떠 가는 과정' 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번씩 봤던 야동과는 다르게 이 소설은 철저히 여자 주인공인 라우라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라우라의 몸에 대한 묘사보다, 남자 주인공 마시모의 몸에 대한 묘사가 많았고, 또 잠자리를 좋아하지 않는 전 남친 때문에 혼자 자위를 하며 욕구를 풀던 그녀는, 마시모와의 잠자리에서는 대담하게 자신의 요구를 말하고 실현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잠자리에서 손만 까딱하면 사람 목숨쯤은 간단하게 없애버리는 포악한 마피아의 보스 마시모를 휘어잡고 리드한다.

납치되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그녀는 자신 속에 존재한 본능을 발결한 것이다.

 

[주의]

수위를 많이 낮추어 선택했지만, 소설 내용이 내용인 만큼 옮겨 놓은 내용이 야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위의 여자 주인공 라우라의 성적욕망에 대해서 표현하기 위해 옮겨 놓았습니다.

*

마시모 쪽으로 돌아서자 벽에 팔을 짚고 선 그의 모습이 보였다. 벗은 몸 위로 물줄기가 여러 갈래로 흘러 내렸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모습이었다. 잘 그을린 다리와 아름답고 늘씬한 엉덩이, 복근까지, 정말이지 완벽한 몸매였다. 이토록 완벽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엄청나게 운동을 했겠지. 이게 그 대단한 결과고.

이리저리 해매던 내 눈길은 결국 특정부위에 꽂히고 말았다....

중간 생략 (특정부위의 묘사가 혹시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하시기를. 일단 뭐 므흣합니다)

가슴이 미친 듯이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머릿속으로는 어쩌자고 같이 씻는 걸 승낙 했을까 후회하며 그 순간의 나를 마구 욕했지만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싫다고 해봤자 분명 소용없을 것이다. 내 몸은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였고, 온 몸의 세포가 그를 간정하게 만지고 싶어 했다. 나는 입술을 핥았다. 저 남자의 분신을 입에 머금으면 어떤 느낌이 들까.

*

마시모는 달콤했다. 그의 피부는 부드러웠고, 온몸에서 뜨거운 밤의 향기가 뿜어져 나왔다. 나 역시 처음 봤을 때부터 마시모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나의 이상형인 니 남자자를 마음껏 맛보고 싶었다. 그게 바로 지금이야. 너무 즐거워. 그리고 내 마음 또 다른 구석은 마시모에게 뭔가 증명해 보이고 싶어했다. 그를 입안에 머금고서 꽉 잡아둘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나는 속도를 높였다. 그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었다. 난 그 점을 알았고, 마시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내가 천천히 하도록 막으려 했지만 난난, 그렇게 놔두지 않았다.

"너무 빨리 하지는 마."

그는 나지막하게 경고했지만 나는 무시했다.

*

"환상 속에서 널 봤을 때, 섹스장면은 없었나요?"

" 네가 잠자리에서 어떨까 상상한 적은 자주 있지. 하지만 하는 쪽은 언제나 나였어. 그 반대 상황은 없었다고."

나는 그에게 다가가 턱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손으로 그의 고환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뭐 이게 내 모습인 걸 어떡해요. 가끔 나도 주도권을 쥐고 싶을 때가 있단 말이예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요. 자주는 아니니까. 보통 나는 아래에서 우는 걸 좋아해요. 변태도 아니고요. 그냥 취향이 좀 괴팍할 뿐이지. 그 둘은엄연히 다르다고요."

"자주는 아니라면야 나도 할 만한 것도 같고. 그리고 네 생각은 틀렸어. 이비 걸."

그는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넌 변태가 맞아. 그것도 아주 문란하고 뼛속까지 타락한 변태야. 그리고 참으로 고맙게도 내 것

 

 

짧은 감상평

 

내가 사용하지 않으려는 말 중에 '여성스러움' '남성스러움'이라는 단어가 있다.

저 단어에 속해 있는 역할에 대한 강요와 고정된 이미지를 생각하면 쓴 웃음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에서나 실생활에서나 많이 듣는 말이기도 하고,

심지어 칭찬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니 문제다.

(심지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조차 알게 모르게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오늘 내가 읽은 '365'에 여주인공과 연결지어 생각해보면, 여성스러움이라는 이름 때문에

자연스러운 욕망을 누르며 혹은 애써 무시하며 살았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욕망에 대해 말하고 요구하는 것은 '여성스러운 행동'에 어긋나는 행동이라 여기며 했던 것들.

요즘은 넷플릭스나 왓챠 같은 곳에서 여성에 시선에서 그려지는 소프트(?)한 은유와 은근함

그리고 감각적인 드라마가 인기라고 한다. 그만큼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를 바라며.

29금 넷플릭스 드라마 365일을 좀 더 감각적이고 선명하게 느끼고 싶은 분이라면

365일 소설을 읽어 보기를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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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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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엄마와 딸의 이야기다.딸이 동성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기존 소설과는 조금 다른 성격을 가진 모녀 이이기!! 이 소설을 처음 펴 보는 나 조차도 그랬다. 특수항 상황에 놓인 딸과 엄마의 이야기 구나...어떤 특별한 이야기가 숨겨 있을까 같은 기대감...그런데 작가는 이런 내 생각을  가볍게 뒤집어 놓았다. 책장을 덮었을 때 내 마음에 남은 것은 네 명의 여성이 처한 상황에 대한 공감하는 마음과 그들을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다만 이 소설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감정을 너무 직접적으로 토해내듯 이야기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뒷 부분에 가서는 너무 노골적이라서 조금 민망할 정도였다.

 

(물론 내 개인 취향일 수 있겠다. 소설의 읽는 재미 중 가장 큰 부분은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보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읽는 이로 하여금 발견하게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일인으로서 아쉬웠다는 말이다)

 

 '딸에 대하여' 에서는 네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나는 그 네명의 등장인물을 분석을 하면서 이 소설에 대한 기록을 남겨볼까 한다.

 

 

1 나(어머니)

 

" 어쨌든 지금은 좀 자야하니까, 자고 나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삶을 또 얼마간 받아들일 기운이 나겠지. 그러니까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건 아득한 내일이 아니다. 마주 서 있는 지금이다"

 

 이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어머니. 제목이 딸에 대하여라고 되어 있었지만 어머니에 대하여로 제목을 바꿔도 될 정도로 이 소설을 철저하게 어머니의 상황과 입장에서 쓰여졌다. 간병인이자 을의 삶을 익숙한 어머니는 동성을 사랑하는 딸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가족도 자식도 없이 요양원에 맡겨져 죽어가는 젠을 보며 두려움과 연민을 느끼는 평범한 사람이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딸의 입장과 가까운 사람이다. 사람은 저마다 각자의 삶이 있고,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누구를 사랑하 듯 상관없다는, 어른들의 입장에서 보면 철없고 세상물정 모르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입장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딸의 입장이 되어서 주인공의 논리와 싸우면서 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 소리없는  논쟁을 통해 문득, 어머니가 두려워 하는 실체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그 실체가 꽤 묵직하게 다가와 오래 남아있었다.

 주인공에 논리에 등장하는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다른이의 시선' 그리고 두번째는 '불안'이다. 다른이의 시선은 상관없이 나는 살테야라고 선언하고 살기에 이미 우리는 시선을 의식하면서 사는 삶에대해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그 시선을 무시했을 때 다가오는 불이익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딸(그린)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강의에 쫓겨나고 매를 맞은 것처럼. 생각해보면 이런 일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흔한일이다. '적오와 혐오, 멸시와 폭력, 분노와 무자비, 바로 그 한가운데 있다' 어머니는 그저... 그 세계에서 딸 아이를 꺼내 오고 싶은 것이다. 꺼내와서 그저 밥 한끼를 먹이고 싶은 것인데, 과연 누가 이 어머니의 그 마음에 그것은 인간으로 누릴 수 있는 권리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비난 할 수 있을까.그러니까 어머니의 삶은 논리적이라는 말로 들일 댈 수 없는 세계이다. 마음을 다해 사는 삶에 그런것들은 택도 없다.  

 글의 마지막에 어머니는 자신이 돌보았던 젠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그 마지막을 함께 해준다. 자신과 딸의 마지막이 젠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젠의 편에 서면서  그녀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싸우면서 결국은 딸과 같은 선택을 함으로서 어머니만의 방식으로 딸을 응원한것이 아닌가 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이들의 결론이 썩 마음에 들었다.

 

2 레인과 그린

 

 " 모른 척하지 마시고요! 힘을 보태 주세요!"

 " 엄마 그냥 부당하니까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 뿐이야. 잘못 된 걸 잘못했다고 이야기 하는게 왜 나빠? 그게 나쁜거야? 왜? 그게 왜 나쁜데?"

 " 그냥 우리는 여기 있어요. 여기 있다고요. 그래. 너희가 여기 있구나. 그렇게 알아 주는 것. 저희가 원하는 건 그 뿐이에요."

 

 그린은 주인공의 딸이다. 레인은 딸이 사랑하는 여자이다.

이 둘은 주인공의 어머니에 입장에서 보면 불안의 근원이자, 레인은 딸의 인생을 망치는 주범이다. 그런 어머니에게 그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둘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딸인 그린은 세상에 평번한 딸들처럼 소리치고 를 쓰면서, 레인은 침착하고 차분하게 어머니의 옆을 지켜주는 방법으로

침작하게 우리는 불안의 근원이 아니라고, 우리를 불안의 근원으로 만드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라고 어머니에께 끊임 없이 말한다. 사실 소설의 중심이 어머니쪽으로 가다보니 둘의 이야기는 다소 헐겁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메세지는 직구로 내게 다가와 와닿았다. 생각해 보자. 만일 레인이 동성이 아닌 이성이었다면...그냥 소설거리도 못 되는 평범한 이야기가 성이 동성으로 바뀌었다고 특별한 이야기가 되는 이 현실이 이상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나는 레인과 그린을 응원한다.

 

3 젠

 

" 훌륭한 삶요? 존경받는 인생요? 그런 건, 삶이 아주 짧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에요. 봐요. 삶은 징그럽도록 길어요. 살다보면 다 똑같아져요. 죽는 날만 기다리게 된다고요. 사무실에 가서 물어보세요."

 

 젠은 흔히 말하는 '훌륭한 삶' 을 살아간 존경받아야 마땅한 사람이다. 가족도 없이 남을 위해 봉사하며 살아갔던 사람. 그러나 그녀의 말년은 비참하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이 치매에 걸린채 죽는 날을 기다리는 삶.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훌륭한 삶을 살아봤자...혀를 차게 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녀를 돌보는 어머니의 심정은 복잡하다. 그녀에게서 딸과 자신의 미래를 보고 두려움에 몸을떤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젠의 삶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를 위해 싸워주는 유일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어린시절 부모님이 내게 해 준 말이 생각이 났다. 대학에 가서 데모를 하게 되면, 어쩔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이 오게되면 뒤에서 조금만 하는 척만 하라고. 앞에 나서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이상한 일이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특히 젠의 삶을 읽으면서 이 말이 계속 멤돌았다. 거봐라. 옳은 신념을 위해 살아간다고 해도 결국 나만 손해지 않느냐는 부모님이 예상한 결론의 삶.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이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니 속이 뒤틀렸다.

 그리고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나는 그에 대한 대답을 하고 싶다. 결국은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젠과 같은 삶이라고. 그럼 삶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어머니와 딸은 마침내 행복해 질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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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의 별 - 제4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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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SF소설의 무늬를 가지고 있지만 절대!! SF의 소설이 아니다.

리의별은 인간에 외로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리의별은 인생에서 우리가 만나야 할 어떤 순간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리의별은 결국 독자를 아무도 없는 행성 플랜 A의 대관람차에 탑승하게 하는 소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리가 우리에게 건네는 건 한잔의 위로이다.  

 

1 첫 번째 잔(체스)-인생과 비슷한 건 인생뿐...

 

" 파도는 그렇게 흔적을 지우고 있었다. 공평하고. 무심하게. 그리고 손질한 듯 편평한 모래만 남겼는데 기무라가 보기엔 그건...구덩이를 파고 관을 집어 넣은 다음 그 위에 흙을 덮는 것 같았다."

 

  모든 죽음의 끝은 쓸쓸하다. 그것이 시 두개 크기의 공장지대를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식상한 말이지만 그렇다. 작가는 인간의 마지막 종착지인 죽음을 첫잔으로 건네면서 이 소설은 SF 소설이 아닌 인생에 관한 이야기라고 독자에게 선언하고 있다. 죽음이란 개념을 인식하고 그것이 다가오는 순간을 알고 준비해야 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고독은 시작된 것이 아닐까? 우리는 기무라의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을 한자 한자 따라가면서 결국 우리는 내 생의  마지막 페이지에 대해 생각 할 수 밖에 된다. 리고 마침내 이 소설을 읽을 준비 운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2 두 번째 잔(플랜 A)

 

- 일 분 후 양은 좌석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플랜A 행성 대관람차는 여전히 운행 중이었고 그걸 확인하는데는 일 분 이면 충분했다. 누군가 거기 타고 있었다.

 

 플랜 A의  탄생과 소멸에 관한 이야기였다. 표면적으로는 행성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그 속에서 또 한번 우리의 인생에 단면을 보게 된다. 얼마 전 한 토크쇼를 본 적이 있었다. 그 토크쇼의 게스트로는 한 때 인기 있었던, 그러나 지금 그 이름마저 가물가물 했던 연예인이 나왔는데 이 챕터를 읽으면서 나는 그를 떠올렸다. 시대는. 그리고 대중들은 열광할 것을 찾아 수 없이 두리번 거린다. 그리고 그 표적인 된 것들은 사람들의 시선으로 반짝반짝 빛나지만 결국은 사람들의 시선은 한 가지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사람들의 관심을 놓친 것들은  빛을 잃고 혼자 남아 운행되는대관람차가 되어 혼자 돌아갈 뿐이다. 그 누구의 이제는 다른 것들로 덮여 보이지 않는 기억속을 말이다.

 

3 세 번째 잔 (햄버거 먹는 여자)

 

 -누가 누구를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는데, 바로 여기에 묻어두는 거라우.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성능이 좋은 냉장고 같으니까. 코드가 뽑히기 전에는 모든 걸 아주 신선하게 보관하니까.

 

  리가 사랑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들은 서로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들의 사랑을 구성하는 것들은 목소리의 온도와 서로의 상처와 그리고 그리움이었다. 두번 째 챕터에서 플랜 A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는 쓸쓸함에 대해 다루었다면, 이 번 챕터에서는 잊혀지지 않은 것들에 대해, 마음 속에 단단히 뿌리 내려 흔들릴 때마다 나를 지탱해주는 기억의 힘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한번 씩, 설례임을 따라 혹은 단순히 외로움을 쫓기 위해 연애를 하는 사람들을 이야기를 접하곤 한다. 그걸 보고 있자면 예쁘고 알록달록한 캔디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든다. 나는 사람들이 예쁜 사탕의 모양이 아닌, 그것을 입에 물고 있었을 때 단 맛의 기억과 여운을 남기는 사랑을 하기를 바란다. 도리스 브라운과 리처럼...

 

4 네 번째 잔(일주일 간의 휴가)

 

- 자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 달라고 했네. 그리고 자네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고......아니야.사실 르드리세스 씨는 미안하다는 말만 했어. 하지만 로드리게스 씨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그 말이 아니었을 거야. 로드리게스 씨는 자네를 사랑했네. 이제 자네도 그걸 알 나이가 됐고, 충분히 알 거라고 생각하지만...뭐,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긴 해. 아무튼 잘있게. 옛 친구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 기뻤네.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이야기다. 존재라는 단어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우리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내 몸에 피가 흐르고 그리고 땅에 발을 딛고 걸어 갈수 있는 것, 그리고 생활방식을 결정하는 많은 요소들이 부모와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지만 앞에 언급한 것들은 머리로 생각한 것들이고 마음으로는 느껴지지 않는 것들이었다.  나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고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래서 부모가 자식을 바라 볼때의 마음에 대해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번 챕터를 보고 어렴풋이 그것에 대해 느낄 수 있었는데 그 마음을 생각하니 세포 하나 하나에 불이 밝혀지는 것 같았다.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는 마음은 이런 것들이 아닐까.

 

5 다섯번 째 잔(행성 심사대) 

 

- 요금 결제가 필요한 시설입니다. 요금 결제한 뒤 이용해 주십시오.

 

 다섯번 째 챕터를 읽고 있자면 경쾌한 음악을 듣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편의 블랙코메디를 작가 특유의 유쾌한 톤으로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소설의 결과 조금 다르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 읽고 나서 남는 자본주의의 냉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비치는 것 같아서 결국 다른 챕터와 그 내용을 함께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돈을 벌고, 카드결제를 하고 다시 카드 값을 갚고 이 되풀이 되는 삶속에서 우리가 잃고 있는 것들에 대해 행성에 떨어진 대원들을 통해 한번쯤 생각 할 수 있었다.

 

6 여섯번 째 잔( 술주정뱅이)

 

... 그리고 아는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원망하지 않네. 무덤에 들어갈 떄는 아무것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고 하더니만......아무튼 나는 이곳에 있는 모든 것들이 지금처럼 계속 이 곳에 있기를 바라네. 회전목마가 계속 돌아갔으면 좋겠고, 경쾌한 음악과 함께 퍼레이트가 계속 되었으면 좋겠어. 내가 죽은 뒤에도 아주 오랫동안 말이야. 하지만 내가 죽고 나면 모든 게 끝나고 말 걸세. 더 이상 폭죽을 쏘아 올리지도 않을 테고, 밤이 돼도 전구를 켜지 않을텐데 난 이 곳이 그렇게 되는 걸 견딜 자신이 없네 ... 나는 자네가 나 대신 이 곳에 와서 지냈으면해. 자네 생각은 어떤가 양?  

 

흩어진 이야기 뭉쳐지면서 결국 하나의 그림이 완성이 되었다. 

그리고 책을 덮으며 나는 생각했다. 리의 별이 끝나지 않기를, 처절할 정도로 외로웠던 한 남자의 그 빛이 꺼지지 않기를 말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 한 잔의 독한 술을 건네고 싶었다. 나와 지독히 닮은 리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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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의 별 - 제4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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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SF소설이 아니다. 이 소설은 인간의 외로움과 리의 흔적을 찾는 사람들을 통해 인생에 대해 말하는 소설이다. 우리는 한번 쯤 모든 것이 지나가고 난 뒤 남은 공허함과 만난적이 있다. 책 속의 인물들을 통해 위로를 받아 보는 것은 어떨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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