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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의 별 - 제4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4월
평점 :
이 소설은 SF소설의 무늬를 가지고 있지만 절대!! SF의 소설이 아니다.
리의별은 인간에 외로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리의별은 인생에서 우리가 만나야 할 어떤 순간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리의별은 결국 독자를 아무도 없는 행성 플랜 A의 대관람차에 탑승하게 하는 소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리가 우리에게 건네는 건 한잔의 위로이다.
1 첫 번째 잔(체스)-인생과 비슷한 건 인생뿐...
" 파도는 그렇게 흔적을 지우고 있었다. 공평하고. 무심하게. 그리고 손질한 듯 편평한 모래만 남겼는데 기무라가 보기엔 그건...구덩이를 파고 관을 집어 넣은 다음 그 위에 흙을 덮는 것 같았다."
모든 죽음의 끝은 쓸쓸하다. 그것이 시 두개 크기의 공장지대를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식상한 말이지만 그렇다. 작가는 인간의 마지막 종착지인 죽음을 첫잔으로 건네면서 이 소설은 SF 소설이 아닌 인생에 관한 이야기라고 독자에게 선언하고 있다. 죽음이란 개념을 인식하고 그것이 다가오는 순간을 알고 준비해야 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고독은 시작된 것이 아닐까? 우리는 기무라의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을 한자 한자 따라가면서 결국 우리는 내 생의 마지막 페이지에 대해 생각 할 수 밖에 된다. 리고 마침내 이 소설을 읽을 준비 운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2 두 번째 잔(플랜 A)
- 일 분 후 양은 좌석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플랜A 행성 대관람차는 여전히 운행 중이었고 그걸 확인하는데는 일 분 이면 충분했다. 누군가 거기 타고 있었다.
플랜 A의 탄생과 소멸에 관한 이야기였다. 표면적으로는 행성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그 속에서 또 한번 우리의 인생에 단면을 보게 된다. 얼마 전 한 토크쇼를 본 적이 있었다. 그 토크쇼의 게스트로는 한 때 인기 있었던, 그러나 지금 그 이름마저 가물가물 했던 연예인이 나왔는데 이 챕터를 읽으면서 나는 그를 떠올렸다. 시대는. 그리고 대중들은 열광할 것을 찾아 수 없이 두리번 거린다. 그리고 그 표적인 된 것들은 사람들의 시선으로 반짝반짝 빛나지만 결국은 사람들의 시선은 한 가지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사람들의 관심을 놓친 것들은 빛을 잃고 혼자 남아 운행되는대관람차가 되어 혼자 돌아갈 뿐이다. 그 누구의 이제는 다른 것들로 덮여 보이지 않는 기억속을 말이다.
3 세 번째 잔 (햄버거 먹는 여자)
-누가 누구를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는데, 바로 여기에 묻어두는 거라우.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성능이 좋은 냉장고 같으니까. 코드가 뽑히기 전에는 모든 걸 아주 신선하게 보관하니까.
리가 사랑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들은 서로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들의 사랑을 구성하는 것들은 목소리의 온도와 서로의 상처와 그리고 그리움이었다. 두번 째 챕터에서 플랜 A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는 쓸쓸함에 대해 다루었다면, 이 번 챕터에서는 잊혀지지 않은 것들에 대해, 마음 속에 단단히 뿌리 내려 흔들릴 때마다 나를 지탱해주는 기억의 힘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한번 씩, 설례임을 따라 혹은 단순히 외로움을 쫓기 위해 연애를 하는 사람들을 이야기를 접하곤 한다. 그걸 보고 있자면 예쁘고 알록달록한 캔디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든다. 나는 사람들이 예쁜 사탕의 모양이 아닌, 그것을 입에 물고 있었을 때 단 맛의 기억과 여운을 남기는 사랑을 하기를 바란다. 도리스 브라운과 리처럼...
4 네 번째 잔(일주일 간의 휴가)
- 자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 달라고 했네. 그리고 자네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고......아니야.사실 르드리세스 씨는 미안하다는 말만 했어. 하지만 로드리게스 씨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그 말이 아니었을 거야. 로드리게스 씨는 자네를 사랑했네. 이제 자네도 그걸 알 나이가 됐고, 충분히 알 거라고 생각하지만...뭐,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긴 해. 아무튼 잘있게. 옛 친구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 기뻤네.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이야기다. 존재라는 단어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우리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내 몸에 피가 흐르고 그리고 땅에 발을 딛고 걸어 갈수 있는 것, 그리고 생활방식을 결정하는 많은 요소들이 부모와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지만 앞에 언급한 것들은 머리로 생각한 것들이고 마음으로는 느껴지지 않는 것들이었다. 나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고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래서 부모가 자식을 바라 볼때의 마음에 대해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번 챕터를 보고 어렴풋이 그것에 대해 느낄 수 있었는데 그 마음을 생각하니 세포 하나 하나에 불이 밝혀지는 것 같았다.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는 마음은 이런 것들이 아닐까.
5 다섯번 째 잔(행성 심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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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 째 챕터를 읽고 있자면 경쾌한 음악을 듣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편의 블랙코메디를 작가 특유의 유쾌한 톤으로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소설의 결과 조금 다르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 읽고 나서 남는 자본주의의 냉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비치는 것 같아서 결국 다른 챕터와 그 내용을 함께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돈을 벌고, 카드결제를 하고 다시 카드 값을 갚고 이 되풀이 되는 삶속에서 우리가 잃고 있는 것들에 대해 행성에 떨어진 대원들을 통해 한번쯤 생각 할 수 있었다.
6 여섯번 째 잔( 술주정뱅이)
... 그리고 아는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원망하지 않네. 무덤에 들어갈 떄는 아무것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고 하더니만......아무튼 나는 이곳에 있는 모든 것들이 지금처럼 계속 이 곳에 있기를 바라네. 회전목마가 계속 돌아갔으면 좋겠고, 경쾌한 음악과 함께 퍼레이트가 계속 되었으면 좋겠어. 내가 죽은 뒤에도 아주 오랫동안 말이야. 하지만 내가 죽고 나면 모든 게 끝나고 말 걸세. 더 이상 폭죽을 쏘아 올리지도 않을 테고, 밤이 돼도 전구를 켜지 않을텐데 난 이 곳이 그렇게 되는 걸 견딜 자신이 없네 ... 나는 자네가 나 대신 이 곳에 와서 지냈으면해. 자네 생각은 어떤가 양?
흩어진 이야기 뭉쳐지면서 결국 하나의 그림이 완성이 되었다.
그리고 책을 덮으며 나는 생각했다. 리의 별이 끝나지 않기를, 처절할 정도로 외로웠던 한 남자의 그 빛이 꺼지지 않기를 말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 한 잔의 독한 술을 건네고 싶었다. 나와 지독히 닮은 리에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