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대하여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은 엄마와 딸의 이야기다.딸이 동성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기존 소설과는 조금 다른 성격을 가진 모녀 이이기!! 이 소설을 처음 펴 보는 나 조차도 그랬다. 특수항 상황에 놓인 딸과 엄마의 이야기 구나...어떤 특별한 이야기가 숨겨 있을까 같은 기대감...그런데 작가는 이런 내 생각을  가볍게 뒤집어 놓았다. 책장을 덮었을 때 내 마음에 남은 것은 네 명의 여성이 처한 상황에 대한 공감하는 마음과 그들을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다만 이 소설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감정을 너무 직접적으로 토해내듯 이야기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뒷 부분에 가서는 너무 노골적이라서 조금 민망할 정도였다.

 

(물론 내 개인 취향일 수 있겠다. 소설의 읽는 재미 중 가장 큰 부분은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보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읽는 이로 하여금 발견하게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일인으로서 아쉬웠다는 말이다)

 

 '딸에 대하여' 에서는 네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나는 그 네명의 등장인물을 분석을 하면서 이 소설에 대한 기록을 남겨볼까 한다.

 

 

1 나(어머니)

 

" 어쨌든 지금은 좀 자야하니까, 자고 나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삶을 또 얼마간 받아들일 기운이 나겠지. 그러니까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건 아득한 내일이 아니다. 마주 서 있는 지금이다"

 

 이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어머니. 제목이 딸에 대하여라고 되어 있었지만 어머니에 대하여로 제목을 바꿔도 될 정도로 이 소설을 철저하게 어머니의 상황과 입장에서 쓰여졌다. 간병인이자 을의 삶을 익숙한 어머니는 동성을 사랑하는 딸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가족도 자식도 없이 요양원에 맡겨져 죽어가는 젠을 보며 두려움과 연민을 느끼는 평범한 사람이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딸의 입장과 가까운 사람이다. 사람은 저마다 각자의 삶이 있고,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누구를 사랑하 듯 상관없다는, 어른들의 입장에서 보면 철없고 세상물정 모르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입장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딸의 입장이 되어서 주인공의 논리와 싸우면서 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 소리없는  논쟁을 통해 문득, 어머니가 두려워 하는 실체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그 실체가 꽤 묵직하게 다가와 오래 남아있었다.

 주인공에 논리에 등장하는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다른이의 시선' 그리고 두번째는 '불안'이다. 다른이의 시선은 상관없이 나는 살테야라고 선언하고 살기에 이미 우리는 시선을 의식하면서 사는 삶에대해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그 시선을 무시했을 때 다가오는 불이익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딸(그린)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강의에 쫓겨나고 매를 맞은 것처럼. 생각해보면 이런 일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흔한일이다. '적오와 혐오, 멸시와 폭력, 분노와 무자비, 바로 그 한가운데 있다' 어머니는 그저... 그 세계에서 딸 아이를 꺼내 오고 싶은 것이다. 꺼내와서 그저 밥 한끼를 먹이고 싶은 것인데, 과연 누가 이 어머니의 그 마음에 그것은 인간으로 누릴 수 있는 권리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비난 할 수 있을까.그러니까 어머니의 삶은 논리적이라는 말로 들일 댈 수 없는 세계이다. 마음을 다해 사는 삶에 그런것들은 택도 없다.  

 글의 마지막에 어머니는 자신이 돌보았던 젠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그 마지막을 함께 해준다. 자신과 딸의 마지막이 젠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젠의 편에 서면서  그녀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싸우면서 결국은 딸과 같은 선택을 함으로서 어머니만의 방식으로 딸을 응원한것이 아닌가 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이들의 결론이 썩 마음에 들었다.

 

2 레인과 그린

 

 " 모른 척하지 마시고요! 힘을 보태 주세요!"

 " 엄마 그냥 부당하니까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 뿐이야. 잘못 된 걸 잘못했다고 이야기 하는게 왜 나빠? 그게 나쁜거야? 왜? 그게 왜 나쁜데?"

 " 그냥 우리는 여기 있어요. 여기 있다고요. 그래. 너희가 여기 있구나. 그렇게 알아 주는 것. 저희가 원하는 건 그 뿐이에요."

 

 그린은 주인공의 딸이다. 레인은 딸이 사랑하는 여자이다.

이 둘은 주인공의 어머니에 입장에서 보면 불안의 근원이자, 레인은 딸의 인생을 망치는 주범이다. 그런 어머니에게 그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둘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딸인 그린은 세상에 평번한 딸들처럼 소리치고 를 쓰면서, 레인은 침착하고 차분하게 어머니의 옆을 지켜주는 방법으로

침작하게 우리는 불안의 근원이 아니라고, 우리를 불안의 근원으로 만드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라고 어머니에께 끊임 없이 말한다. 사실 소설의 중심이 어머니쪽으로 가다보니 둘의 이야기는 다소 헐겁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메세지는 직구로 내게 다가와 와닿았다. 생각해 보자. 만일 레인이 동성이 아닌 이성이었다면...그냥 소설거리도 못 되는 평범한 이야기가 성이 동성으로 바뀌었다고 특별한 이야기가 되는 이 현실이 이상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나는 레인과 그린을 응원한다.

 

3 젠

 

" 훌륭한 삶요? 존경받는 인생요? 그런 건, 삶이 아주 짧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에요. 봐요. 삶은 징그럽도록 길어요. 살다보면 다 똑같아져요. 죽는 날만 기다리게 된다고요. 사무실에 가서 물어보세요."

 

 젠은 흔히 말하는 '훌륭한 삶' 을 살아간 존경받아야 마땅한 사람이다. 가족도 없이 남을 위해 봉사하며 살아갔던 사람. 그러나 그녀의 말년은 비참하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이 치매에 걸린채 죽는 날을 기다리는 삶.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훌륭한 삶을 살아봤자...혀를 차게 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녀를 돌보는 어머니의 심정은 복잡하다. 그녀에게서 딸과 자신의 미래를 보고 두려움에 몸을떤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젠의 삶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를 위해 싸워주는 유일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어린시절 부모님이 내게 해 준 말이 생각이 났다. 대학에 가서 데모를 하게 되면, 어쩔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이 오게되면 뒤에서 조금만 하는 척만 하라고. 앞에 나서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이상한 일이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특히 젠의 삶을 읽으면서 이 말이 계속 멤돌았다. 거봐라. 옳은 신념을 위해 살아간다고 해도 결국 나만 손해지 않느냐는 부모님이 예상한 결론의 삶.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이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니 속이 뒤틀렸다.

 그리고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나는 그에 대한 대답을 하고 싶다. 결국은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젠과 같은 삶이라고. 그럼 삶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어머니와 딸은 마침내 행복해 질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