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재벌 뒤의 재벌 - 대한민국 경제의 숨은 설계자들
강병욱 지음 / 영림카디널 / 2025년 6월
평점 :
대한민국 경제는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참 많은 분야 중 하나인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대한민국 역사와 그 숨겨진 경제 이야기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본다.
흔히 돈을 통해 흥하게 된 사람도 망하게 된 사람도 있는데,
세간에 주목을 받지 못한 인물들이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이 이 책의 가장 핵심이라고 본다.
수 많은 사람들이 좌지우지한 돈 그리고 이 책을 읽고나니 정말 부자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이 씁쓸해지는 이유인 것 같다.


여러 챕터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1. 현금왕 단사천의 외아들 해성산업 단재완
한국제지 회장이며 2000년을 기점으로 지배력 강화 작업 본격화 및 최대 주주
지주회사인 해성산업은 1954년 설립된 부동산 임대 사업 목적으로 하는 회사
해성산업은 총 10개의 종속 회사를 소유 및 2020년 11월 지주사로 전환
단사천은 명동 사채 업계를 주름잡던 인물로 하루에 수천억의 현금을 움직여 현금왕이라 불림
해성그룹 부동산은 명예회장 당시에 만들어진 재산으로 부친으로부터 그 아들에게 넘어간 것
해성산업이 수익을 올리는 원천은 투자 부동산들. 2023년 투자 부동산에 대한 임대 수입은 199억원
단재완은 3세인 두 아들에게 승계 작업을 진행 중
형제는 직위에 보조를 맞추며 경영 수업을 받음
아버지가 생존한 동안은 건설적인 경쟁 관계가 유지될 수 있겠지만, 그 이후에는 형제들 간에 무한 경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부분
2. 사채업자이자 은행 대주주가 된 일산실업 이상순 회장
96년 12월 시중 은행 주식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개인으로 밝혀짐
동화은행 비상임 이사도 맡고 있었음
이북도민회 중앙연합회 함경남도 도민회장 90년까지 6년간 재임
87년에는 이북도민회중앙연합회장 맡음
89년 1월 이북 5도 출신 실향민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은행 동화은행
80년대 들어서 사채에 의존했던 사금융업이 현격하게 쇠퇴(인플레율 급속히 하락)
일찍부터 사업 수완이 남달라 57년 천일곡산공업, 65년 원풍산업, 79년 일신실업 설립
74년 종합소득세 고액 납세자 명단에서 한국 납세자 중 4위를 기록
60~70년대 사채 업계의 큰손 원조격인 인물
80년대 중반 제조업을 모두 처분하고 재산을 주식, 채권 등 현금 자산으로 전환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풍수지리에 일가견이 있어서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서울에서 터를 잡을 때 긴밀한 논의를 나눔
3. 주식 시장 성장의 모멘텀 KOSPI200
한국 주식 시장의 체질을 완전히 바꾼 사건
우리 시장에 투자하려고 하는 기관 투자자들이 선물 옵션 등 파생 상품과 연계해서 차익 거래를 하려면 이 지수에 편입된 종목들을 사지 않을 수 없었음
그동안 소위 잡주들 위주의 매매에서 우량주 중심의 매매로 시장의 질이 바뀌었기 때문
94년 5월 10일 증권거래소는 주가 지수 선물 거래에 기초 자산으로 이용할 지수의 채용 종목 수를 200개로 확정하고 지수 명칭을 KOSPI200으로 정했다고 발표
채용 종목 수를 200개로 한 것은 유동성과 지수 조작 가능성 등을 고려
시장에서는 KOSPI200 채용 종목에 대한 관심이 커졌지만 초기 시장의 반응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못했던 것이 사실
94년 9월 16일에 대망의 1,000포인트를 넘어서 89년 4월 1일 이후 5년 반 만에 재차 네자리대 지수 고지 탈환 성공
차별화 장세가 나타나며 상대적으로 소외된 중소형주를 보유하고 있는 일반인들의 수익률이 좋을 수는 없었음
기관 투자자들은 투자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른 주식 시장의 대세라고 생각
한국 주식 시장은 92년 외국인에게 증시가 개방된 이후 일부 투자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심해짐
이런 기관화 장세에 제대로 편승한 사람들은 투자에 성공을 거둠

4. 선물 시장의 40%를 장악한 대통령 후배 목포 세발낙지 장기철
김대중 대통령을 배출한 목포상업고등학교를 1985년에 졸업
대신증권에 입사하고 본사 전산실에서 근무하다가 1989년부터 주식 영업을 시작
1996년 주가 지수 선물이 거래되기 시작한 직후 선물 시장에 뛰어듬
상대적으로 허술했던 당시 파생 상품 시장에서 그는 시장 조성자들과 교감하는 수준을 넘어 자신이 시장 조성자 역할까지하며 많은 수익을 올림
그는 선물 시장 초기의 지배자
증권 업계에 종사하던 일가친척과 연계해 투자하며 선물 시장에서 힘을 발휘
1998년 대신증권에 따르면 4~5월 두 달 동안 성과급과 배당금을 합쳐 한 달 평균 5억원씩 모두 10억 원의 월급을 받음
조용히 살아보려고도 했지만 과거의 명성이 그를 놓아주지 않음
2008년 한 증권사의 이사로 복귀
2012년 2월 지인의 후배로부터 파생 상품에 투자하고 싶다는 제의를 받음
그가 말한 투자자는 사채업자였으며, 수익을 내지 못하면 사채업자의 돈을 우선 보전하고 투자자의 돈은 날리는 구조
결국 투자금을 모두 날렸고, 투자했던 사람은 고소하여,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그에게 징역 1년을 선고

5. 코스닥 시장의 개설과 IT 버블
코스닥 시장은 당초 장외 거래 시장을 통해 매매가 이루어지던 중소기업 중심의 종목들에 대해 유동성을 부여하고 이에 따라 자본 조달 기회를 확대해 주기 위해 시작
1999년 이후 한국 시작에는 거래소 유가 증권 시장보다는 코스닥 시장을 더 선호하는 코스닥 버블이 발생
코스닥 시장은 1996년 7월1일에 개장
개설 당시 코스닥 시장의 매매를 위해서는 100%의 증거금을 납부해야 했고, 신용 융자 등은 제공되지 않았으며 수수료는 0.4%, 증권거래서는 0.5%를 납부
출범 이후 코스닥 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역시 지분 분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유통 물량이 극히 부족했다는 점
일부 첨단 기술을 보유한 우량 기업들의 경우 시장의 가수요에 의해 주가가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어 투자 매력도 많이 떨어졌음
1997년 외환 위기는 코스닥 시장에도 찬바람을 불고 옴
1998년에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코스닥 기업에 매수 강도를 높였음
1999년에 들어서는 외국 자본이 한국 투자 회사의 지분을 매입하거나 펀드를 공동 설립하면서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섬
1999년에 들러서면서 벤처 갑부의 성공 신화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미래산업의 정문술 사장
또한 벤처 기업 직원들도 대박의 기회를 터트림. 비트컴퓨터는 1999년 초 4만 원대였던 주가가 20만 원대로 급등하면서 사내 갑부가 출현
1999년 3월 말에 들어서면서 코스닥 시장에서 주문 폭주 현상이 나타남
정부는 집 안에 숨어 있는 돈을 집 밖으로 끌어낼 필요성에 따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사람들에게 대박 신드롬을 심어 주는 것

돈과 관련해서 젊은 시절 거둔 성공을 끝까지 제대로 이어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이다.
일단 돈을 벌었을 때 그것을 지키는 전략으로 들어가면 모를까 더 큰돈을 벌려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위에 나열한 내용들을 보면 재벌 뒤에 진정한 재벌들이 있었고, 물론 성공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실패한 사람들은 대다수가 모르는 것도 현실인 것 같다.
돈이라는게 무언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겠지만
언젠가 뒤에 어둠의 공간에서 성공하는 재벌들도 지금 눈에 안보이지만 있을 것이고,
대한민국 경제를 죄지우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는 처음에 말한대로 돈과 부자가 되지 않으면 대한민국에서의 삶이란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영림카디널 #재벌뒤의재벌 #강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