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 - 정신질환자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 그 혼돈의 연대기
론 파워스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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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대공원을 가기위해 버스를 탔다. 날씨도 기가막히게 좋은 탓에 가족단위 승객으로 꽉차 몇몇은 서서 가야했다. 그런데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않아 뒷좌석에 앉은 아이한테서 이상한 소리가 내기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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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윽.꽥.큭."
첨에는 뭔가를 잘못 눌러서 나는 건가싶었다. 그런데 그 소리는 그칠 줄 몰랐다. 알고보니 장애가 있어 자기도 모르게 내는 거였고 옆에 앉은 어머니로 추정되는 보호자분이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흘리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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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엔 다들 그냥 호기심에 약간 불편함 맘에 쳐다만 봤는데 꽤 오랜시간 지속되자 그게 힐난의 눈빛으로 혐오의 눈빛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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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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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보호자는 어느덧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나는 괜찮다고도 이해한다고도 하지못하고 그저 목적지에서 내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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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보니 그건 틱장애였다. 만약 그 사실을 인지했다면 좀 더 편한마음으로 아무렇지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가끔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장애가 있는 이 없는 이가 이렇게 딱 분리되어 사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좀 더 주어져야 한다고. 어쩌면 잘 몰르기에 이상하다고 불편하다고 여기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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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 잠깐 스친 풍경을 일상을 이리도 깊게 기억하는 건 그 아이의 어머니 표정이 잊히질 않아서 일거다. 아이는 모른다. 그저 자연스럽게 행동 한 것일 뿐. 그 자리가 너무나도 힘들고 어려웠던 건 그 엄마였으리라. 장애를 가진 이의 부모로 가족으로 사는 건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힘겨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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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는 그런 점에서 조금이나마 그 가족들의 아픔을 엿볼 수 있었다. 사실 제목이 주는 무게감만으로 쉬이 페이지를 넘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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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와 교수로 살아오던 부부는 딘과 케빈이라는 두 아들이 어느 순간 크나큰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로 인해 조현병이라는 병에 잠식되어가는 모습을 목도해야했다. -

이웃들은 피하고 지역에서조차 외면받았다. 그 와중에 음악과 문학에 재능이 탁월한 두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부모는 학교와 병원을 데리고 오가는 삶을 살아야했고 자정이 넘어 걸려오는 전화에 마음을 졸이며 지내야했다.
결국 비극은 이 가족을 재능이 충만한 아이를 피해가지 않았다. -

이 책은 총 593페이지로 다른 단행본 두 권을 합친 두께로 개인의 이야기만 다루지않고 학술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정신질환에 대해서도 다룬다. 그러다 보니 심도깊고 다각적인 측면의 텍스트가 되었지만 다소 어렵고 쉽게 읽히지는 않는 점도 있다.
하지만 한 번 읽어봄직한 작품이다. 남의 아픔을 쉬이 읽어내려가는 건 어쩌면 미안한 일일지도 모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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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작은 가게 이야기 -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
정나영 지음 / 미래의창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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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마음이 심란하다. 그 이유는 최애단골카페가 문을 닫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때문이다. 세상에 널린 게 커피집인데 뭘 그리 슬퍼하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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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친정에서 차로 10분거리로 이사왔건만 동네적응이 쉽지않았다. 게다가 전직까지 한 터라 홀로 집에서 일을 하며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답답한 마음을 나눌 이웃의 부재도 낯선 동네도 내겐 또 다는 걱정거리였다. 그때 내게 손을 내밀어준 건 동네의 작은카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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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도 손님도 거의 단골뿐이어서 다들 커피만 사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인사를 나누고 근황을 묻다보면 어느새 자리에 앉아있는 거다. 남의 집 밥숟가락 갯수까지는 몰라도 최근의 관심사나 동네맛집 혹은 산책길 정도의 정보는 서로 꿰는 수준. 나도 어느새 거기에 슬쩍 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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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들어가면 주문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아메리카노를 내주셨다. 한 번도 내가 먹고싶은 음료가 아닌 적이 없었다. 나는 쿠폰을 찍기위해서가 아닌 나 살아있어요 라는 생존신고로 이곳을 매일 찾았다. 어쩔 땐 하루에 두 번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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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호시절은 늘 그렇듯 지나가버리고 2대사장님이 오시더니 이제 그분마저 경기가 안좋다며 다른 일과 병행하신단다. 얼굴뵙기 쉽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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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편하고 다정한 내 집같은 친구같은 단골카페 하나쯤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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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오래된 작은 가게 이야기'에는 유학생활을 하는 저자의 단골집들이 등장한다. 오래있어도 눈 찡긋하며 괜찮다는 카페도 간판은 없지만 늘 그자리를 지키는 케이크샵도 동네 커뮤니티가 되어주는 서점도 모두 그냥 가게 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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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이방인인 동양에서 온 저자를 늘 환대한다.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묻고 새로운 메뉴가 생기며 슬쩍 건네고 의견을 묻는다. 낯선 이에게 말을 건네지않는 게 불문율이 되어버린 요즘 함께해도 스마트폰에 얼굴 파묻기쉬운 요즘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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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느 날 사라진대도 모를 세상에 오래되고 작은 가게는 어쩌면 나를 알아주고 내가 기대고싶은 친구같은 존재가 아닐까. 그러니 그 문 닫지말길. 오래도록 남아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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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분 생활자 - 혼자서 잘 먹고 잘 사는 중입니다
김혜지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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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를 아는사람들은 조금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어릴적 나는 까칠한 아이였다.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는데다가 취향마저 뚜렷해 친구들은 나를 어려워했고 어른들은 특이하고 유별나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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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 꼭 더 좋은 아파트로 이사가세요."
잘은 기억안나지만 복도를 쿵쾅쿵쾅 뛰어다니는 게 시끄러워 한소리했더니 나중에 씩 웃으며 내가 그랬단다. (죄송합니다. 제가 철이 없었어요. 층간소음 얼마나 고통스러운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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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서도 비슷했다. 누가 뭐라하면 꼭 지지않고 한소리 했고 울고싶을 때는 울고 항의할 때는 항의하고 암튼 결코 참지않는 아이였다. 나는 나를 바꾸거나 고칠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순간 사람들과 부대끼며 성격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고 사회생활을 잘하는 친구가 부러워 그모습을 배우고 따라하며 조금은 둥글둥글한 사람이 되었다. (성격이 좋은 것과는 별개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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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다른사람은 싫어하기 보다는 그런사람으로 인정.
불편한사람은 싫어하기보다는 거리두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이득따지지않고 표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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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사람은 모두 다른 이야기를 가진 한 권의 책이라는 생각을 갖게되었다. 호불호는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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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찌보면 내가 그렇게 변할 수 있었던 건 운이 좋게도 사랑으로 품어준 가족과 학업을 마칠 수 있었던 평범한 집안사정 그리고 선량한 지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일인분 생활자'를 보며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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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올라와 나 홀로 벌어먹고 살아야하는 삶.
기댈 곳이 전혀없는 삶.
애초에 가정이 안락한 쉼터가 아니었던 삶.
정규직은 가져보지도 못한 삶 이라면 둥글둥글함은 커녕 세상에 분노를 터뜨리지 않은 것만 해도 장한 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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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이미 2.5인분 생활자가 되었고 제일 힘든 시기도 간신히 지나왔으니 100% 이해하고 공감하긴 힘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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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디선가 지옥고에 시달리는 일인분의 생활자라며 이 책으로 분노를 같이 터뜨리고 한 번 툭툭털고 다잡는 계기가 되었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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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일인분의 생활자라도 행복한 날이 오기를.
그 사회를 위해 어른이 된 내가 수수방관하지는 않기를.
간절히 빌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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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 세계 사랑으로 어둠을 밝힌 정치철학자의 삶, 국립중앙도서관 사서추천도서 누구나 인간 시리즈 1
알로이스 프린츠 지음, 김경연 옮김 / 이화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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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 때쯤 '나는 부정한다'라는 영화를 봤다. 줄거리도 잘 모르고 내가 좋아하는 배우인 레이첼 와이즈가 출연한대서 고른 건데 보는 내내 고구마를 백 개쯤 먹은 기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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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에 의한 유태인 학살은 사실이 아니며 날조 과장되었다는 말도 안되는 주장때문에 시작된 이 지난하고 어이없는 법정 다툼. 생존자와 증인 그리고 건물까지 남아있는데 그 진실을 입증하지 않으면 거짓이 된단다. 바보같지만 대담한 도발에 한 교수가 정면으로 반박하는 과정을 통해 사실을 법적으로 입증하는 것은 참으로 지난하다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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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작품을 보면서 유태인들의 뜨거운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한데 여기 정반대의 여인이 있다. 그 이름도 유명한 한나 아렌트가 그 주인공. 일명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로 잘알려진 철학자인데 실은 그녀도 유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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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태어났지만 탄압을 피해 프랑스로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정착했다. 그런 그녀를 기자신분으로 나치전범 재판에 보낸 것. 유태인사회는 이때 기대가 참으로 컸단다. 하지만 돌아와 한나 아렌트는 악이야 말로 무지한 평범한 인간들에 의해 저지러진 것이라며 전범들은 우리네와 다름없는 모습을 하고있었다고 소신을 밝혔다. 그후로 꽤 오래 그녀는 유태인커뮤니티로 부터 배척당했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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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분노와 차가운 분노.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두 시각. 온도 차는 참으로 흥미로운 것이었고 그렇게 한나 아렌트라는 한 개인이 궁금해져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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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부터 죽음까지 그녀의 행적을 정말 자세하게 기록해놨다. 위인전이나 전기형식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 한나 아렌트의 인생을 쭉 지켜보니 어느 순간 그녀의 차가운 분노에 공감이 가기 시작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일이 터진 뒤 미국으로 건너와 어느 정도의 심리적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고 또한 철학자이었기에 단순한 악이라는 개념보다는 인간에 좀 더 초점을 맞추었기에 냉철한 의견을 내놓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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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건이 벌어졌고 그걸 기록하고 말하는 자들의 인생이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구나 싶다. 인간에 의해 자행된 악은 단순히 정의되기 힘들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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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를 익히 들어 알고있다면
✔연대기 순으로 자세히 알고싶다면
✔디테일을 놓치지않는 찬찬한 호흡을 선호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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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짤리면 지구가 멸망할 줄 알았는데 - 회사에서 뒤통수 맞고 쓰러진 회사인간의 쉽지도 가볍지도 않았던 퇴사 적응기
민경주 지음 / 홍익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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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느닷없이 방구석 대탐험을 하던 그때가 떠올랐다. 친구들은 사원증을 차고 한강을 건너 출근하고 있을 때 인생의 제4춘기가 찾아와 꼼짝도 못했던 시기가 말이다.

20대에 얼마나 안되는 일만 쏙쏙 골라했던지 눈물에 쓱쓱 밥을 말아먹을 지경이었다. 당시 나는 직장을 다니며 대학원준비를 했는데 진학 후 한 학기를 채우지 못하고 그만둬야 했다. 석사공부를 한다며 그 전 회사를 그만뒀는데 갑자기 갈 곳이 없어진 나는 매일 공중부양을 하는 기분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20대 초반까지는 되도 않는 아이돌댄스가수를 한답시고 젊음을 소진했고 중반까지는 영화일을 한답시고 체력을 거덜냈고 20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직장에 나를 잘라서 맞춘답시고 멘탈까지 냠냠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아 야속한 삼 무 인생이여.'

그때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술잔을 기울여 줄 이도 (술도 못마시면서) 함께 울어줄 이도 (실은 나도 그래본 적이) 피와 살이 되는 조언을 건네는 이도 (있었어도 못들었을 듯) 부재했다.

있을 곳은 있으나 갈 곳은 없고 눈물 흘릴 일은 있으나 땀 흘릴 일은 없는 참으로 애매하고 처량맞은 인생!

하지만 다 지나고 나니 그 경험으로 더 좋은 이가 되었...을리가 없잖은가!!
대신 남의 아픔에 크게 공감하는 사람이 되었다!!!
덕분에 지금까지 글을 쓰는 지도 모르겠고.

마감이 코 앞이라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이 마당에 안써도 상관없는 글을 쓰게 된 건 바로 오래전 내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한 사람때문이었다.

책 '회사에서 짤리면 지구가 멸망할 줄 알았는데'의 저자가 바로 그 주인공. 피는 마르지만 더럽게 안 가는 퇴사 후를 기록으로 남기며 참을 인자를 새겼다. 카페창업을 준비하다가 스콘을 굽다가 프로젝트를 하다 결국은 아무 것도 이루지 못 한 한 사람의 이야기. 솔직히 반쯤 보다 울뻔 했는데 그 속이 오죽 탔을까싶어 눈물도 쏙 들어가는 거다.

퇴사 이야기는 많겠지만
또 퇴사이야기
그래도 퇴사이야기다.

☑연거푸 실패해본 적이 있다면
☑퇴사 후 시간의 경과에 따른 심리변화를 알고싶다면
☑결국 이 모든 기록이 한 권의 책이 된 과정이 궁금하다면

추천해주고 싶다.

그리고 덧, 작가님 글 쓰신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죠? 그렇다면 너무 슬플 것 같아요. 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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