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12 - 제4부 동트는 광야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다 깨어지는 때에 혼자 성키 바랄소냐
금이야 갔을망정 벼루는 벼루로다
무른 듯 단단한 속을 알 리 알까 하노라》

- 최남선 깨진 벼루의 명 -

 나의 분노는 두 가지 사실에 어찌 이렇게 뻔뻔스런 변명을 정는 두 가지 사실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첫째는 친일 한 자가번뻐스런 변명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어떻지조가 교과서에 실릴 수 있는가 하는 점 때문이었다. 꽤나 긴 게 이런 시조이 지난 뒤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그건 친일파들이 우리 사회의 저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를 속속들이 장악한 현실 속에서 벌이이었다. 그러니까 그 시조는 교육 분야를 장악한 친일파들이 교토해서 자기들의 입장을 변호함과 동시에 후대들을 최면시켜 비 파의식을 마비시키고, 또한 상황불가피론을 주입시켜 자기들의 편을 만들려는 주도면밀한 음모로 취해진 일이었다.
다시 최남선의 시조를 읽어보라. 그 시조 아닌 시조에 친일파들이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내세우는 <상황불가피론> 과 〈책임회피〉 〈책임전가〉가 얼마나 충실하고 뻔뻔하고 교묘하게 잘 나타나고 있는가. 이것은 바로 60년대를 풍미하고, 70년대에 절정을 이루었던 친일파들의 자기 변호를 넘어선 역습논리인 〈그때 조금씩이라도 친일 안한 놈이 어디 있느냐〉, 〈네가 그때 살았으면 별수있었을 것 같으냐〉, 〈너는 뭐가 잘났다고그러느냐〉, 〈이제 와서 친일이고 뭐고 따지는 건 다 촌놈들 짓이야〉이런 언행들이 횡행하게 만든 바탕을 이룬 것이었다.
나는최남전으로 대표되는 반역의 역사에 대한 분노와 실망을 안은 채 대학생이  문학에 일생을 걸기로 하고 대학에 가서 깨달은 것은〈대학은 문학을 가르쳐주는 곳이 아니다.는 단 한 가지 사실일 뿐이었다.~~ 그리고 작가가 되어 나는 그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면서 친일파의 문제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견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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