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제니 그랑데 (천줄읽기) 지만지 천줄읽기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조명원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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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제니 그랑데*(오노네 드 발자크)

맑고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 외제니.
황금의 노예 이자 수전노 아버지 그랑데의 가부장 권력 속에 극심한 궁핍 생활을 그의 어머니와 함께 묵묵히 살고 있다.

소뮈르에서 최고의 값부로 모든 이들의 부러움의 대상 임에도 아침이면 빵과 하루 동안 필요한 생필품을 배분하는 수전노 이다.
11월1일이 되어야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3월 31일에는 어김없이 불을 끄도록 한다.
추위에 떨며 잠을 자고, 어두움 속에서도 하나의 등불로 생활 한다.

모녀는 종일 진짜 노동자처럼 성실하게 일했다. 외제니가 어머니의 옷깃에 수라도 조금 놓아드리려면 아버지를속이고 등불을 가져다가 잠자는 시간을 이용해야만 했다.

아무런 저항도 욕망도 없이 헌신과 희생, 체념으로 살던 그녀에게 처음으로 욕망하게 되는 대상이 나타난다.
파리에서 온 사촌 오빠 샤를 이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첫사랑 이다.
그 사랑은 돈이 무엇인지 모르던 그녀에게 그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녀는 돈이란 건 수단일 뿐 이라며 아버지의 부채를 떠안은 샤를에게 20년 동안 새해와 생일에 한 닙씩 그랑데에게 받은 금화를 아낌없이 주어버린다.

황금만능주의 시대를 사는 사람 중 유일하게 돈의 쓰임을 아는 사람이고 여자였다.
이러한 물질에 대한 그녀의 개념은 후일에 늙은 나농에게 유산으로 연금을 주고 물려받은 엄청난 유산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쓰면서 자신은 평생을 쓰러져 가는 낡은 집에서 검소하게 지낸다.

외제니도 그랑데와 같이 자신을 위해서 한 푼의 돈을 쓸줄 모른다.
그러나 외제니가 그랑데와 다른 것은 그녀는 모으는데만 집착하지 않고 주위의 소외된 이웃에게 나눌 줄 안다.
그랑데가 죽음의 순간에 외제니에게 유언과도 같이 한 말 '모든것을 잘 간수해야 한다. 저승에 와서 내게 보고해야 돼.' 이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그랑데의 물욕은 헛 웃음을 짖게한다.

외제니의 첫사랑이자 아낌없이 주었던 샤를 또한 그랑데 가문의 피를 이어받은 또 한 명의 허영과 방탕한 황금만능주의 노예일 뿐이었다.

처음 순간은 외제니의 순수한 사랑과 따뜻한 배려에 반해 사랑을 하게 되지만 아버지의 유언과 그랑데의 권유로 인도로 돈을 벌러가 큰 성공을 거두자 바로 물욕의 본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외제니와의 사랑을 저버리고 사회적 지위를 얻고자 몰락한 백작 딸과 정혼을 한다.
외제니의 존재는 그의 가슴에도 머릿속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6천프랑의 채무가 남아 있는 사업상의 존재로만 여겨질 뿐 이었다.
샤를은 갖은 변명과 위선과 술수로 외제니를 기만 한다.
외제니는 그런 그 마저도 사랑으로 감싼다.
한 때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 이기에 그의 명예를 지켜주고 싶어한다.
어떠한 의도도 없는 순수함 그 자체로 그가 백작 딸과 결혼할 수 있게 죽은 작은아버지의 부채를 모두 갚아 준다
샤를은 외제니가 엄청난 상속녀라는 걸 알지 못했다.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실수를 자책 해야만 했다.

외제니 그랑데는 나폴레옹 이후 복고 왕정시대의 신흥 부르주아가 탄생하는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당시의 황금만능 주의와 가부장적 남성주의를 실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등장 인물의 남성은 대부분 물질만능에 빠진 비 인간적이며 비열한 권모술수가인 반면 여성은 순종적이고 자기희생적 이다.
당시 사회의 통념이 여자는 남자의 울타리
안에 있어야 안전하고 여자를 지키 수 있는건 남자뿐 이라는 우월감을 발자크는 외제니와 나농을 통해 반기를 든다.
외제니는 누구하고든 정혼하지 않으면 않된다는 노신부의 강요아닌 강요에 크뤼쇼와의 '백색 결혼' 을 제의한다.
일생 동안 자신을자유롭게 해줄것과, 결혼이 부여하는 그 어떤 권리도 주장하지 말것을 요구한다.
황금만능과 가부장에 물든 남성에게 또다시 얽매여 무기력하고 의존적으로 살기를 거부한 것이다.
하녀 나동 또한 외제니와 그녀 어머니의 유일한 지원이자 이자 보호자로 나타내며 여성을 좀더 의리있고 강인하게 묘사하고 있다.

설레이고 두근거리는 순수한 첫사랑의 이야기와 속물로 가득한 남자들이의 욕망이 대조되어 보는 재미가 있다.

원전의 50%로 만을 발췌하여 발자크 특유의 장광설과 교훈적 내래이션을 대폭 줄였다고는 하지만 첫 장의 장광설에 살짝살짝 속도가 멈추기도 한다.
하지만 옮긴이의 노고가 느껴질 만큼 이내 내용에 집중하게 되고 발자크의 실랄한 사실주의에 빠져들게 된다.
책을 덮고나니 발췌분이 아니라 장광설과 교훈을 감내 하더라도 원전을 읽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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