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안드레아 - 열여덟 살 사람 아들과 편지를 주고받다
룽잉타이.안드레아 지음, 강영희 옮김 / 양철북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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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애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사랑한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과도.
그냥 아는 것과도 다르다.
사랑은 때로 좋아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할 때
핑곗거리가 되곤 한다.
사랑이 있으면 제대로 된 소통은 없어도
되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아니, 나는 이 함정에 빠져들지 않으려 한다.
남자아이 안안을 잃어버린 것은
어쩔수 없지만 성장한 안드레아를
알아갈 수는 있다.
나는 이 사람을 알아야 한다.
나는 열여덟 살의
이 사람을 알아야 한다."

50대 엄마 룽잉타이와 십대 아들 안드레아의 30년 문화와 세대차 극복 전격 프로젝트!

엄마들은 자녀의 나이와 상관없이 늘 걱정과 근심에 사로잡혀있다.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지는 않는지, 길 가다 사고 당하는 건 아닌지, 학교 생활은 잘 하고 있는지, 진로에 대한 계획은 잘 세우고 있는지
모든게 걱정 거리다.

룽잉타이는 타이완 출신의 유명한 사회문화 비평가이며, 베스트셀러작가, 타이완 문화부 장관을 지낸 엘리트 엄마다.
그런 그녀도 한국의 여느 엄마와 똑같은 고민과 걱정을 하고 있었다.

안드레아는 타이완 출신 엄마와 독일 출신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의 첫째 아들 이다.
독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고, 홍콩에서도 한 동안 학교를 다녔던 글로벌한 열여덟 남자 사람이다.

이 책은 룽이타이는 홍콩에, 안드레는 독일에서 생활하며 두 사람이 3년간 주고받은 편지 기록 이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땐 내 집에 사는 십대 사람 아들과 소통을 잘하기 위해서 였다.
그 십대 사람 아들은 활화산 같은 십대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중 이었다.
그땐 별반 생각이 없었던것 같다.
나만, 우리나라 엄마들만 고민하고 골머리를 섞고 있는게 아니구나, 대부분의 아시아권 나라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에 동지애가 생겼고 위로가 됐다.
동병상련의 마음이라 단숨에 읽었다.
십대 사람 아들과 소통을 잘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과 자신감이 생겼다.
그만큼 룽잉타이는 소통하려고 노력을 했고,
둘은 거침없고 솔직했다.

안드레아는 글로벌하게 생활하고 유럽 문화권에 속해 있어서 그런지 확실히 종화권에서 성장했던 룽이타이와는 문화적, 이념적, 가치관에 있어서 상당한 이견을 보이고 있다.

두 사람의 편지글은 국제정세 라든가, 문화, 예술의 취향, 자본의 개념, 동양과 유럽의 가치관 차이, 국가의 체제,이념적 성향,
인생관, 사회적 문제의식 등 여러 분야를 서로가 생각하고 지향하는 바를 얘기하고, 상대의 주장을 비판하여 토론의 형식을 띠고 있기도 하다.
어쨋거나 개인의 생각이다 보니 오류 라든가 잘못된 주장에 대해서는 이 편지가 매체에 기고되는 글이라 독자들이 반박한 독자의 편지를 기제하여 중립을 지켜준다.

"룽 선생.
푸치니의 투란도트 나 나비부인 이 동양의 문화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그려 동양권 문화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그런 식의 단순화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했는데 그건 선생님 한테 해당되는 이야기 같습니다.
지금 우리는 푸치니의 단순화를 좋아할 뿐 더러, 때로는 스스로 단순화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안드레아에게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방식을 결정할 자유를
어느 정도 누릴까요,
제 답은 이렇습니다.~~"

"룽잉타이 선생님과 안드레아 선생님께
죽치고 있지 않는데 어디서 문화가 나오겠니?
라는 글을 읽고 두분과 나누고 싶은 의견이
있어서요. 두 분이 반복해서 카페를
언급하면서 유럽의 카페에서는 적지않은 유명한 인사를 배출 했다고 하셨지요~~
동양의 문화가 현재까지 성취한 것을 인정받지 못하고 또 그 미래가 형편없는 것으로 생각되어야 할까요?
수준 미달의 문화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거죠? 왜 우리가 모두 이 기준을 따라야 하는 거죠?"

책 에는 두 사람의 편지 글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독자들이 보낸 편지도 실려있어 여러 나라 사람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다.

이 책은 솔직한 누구나의 이야기라 공감대가 형성되어 읽는 재미가 크다.
두 사람의 지적인 대화를 통해 여러 분야의
지식을 귀동냥 함으로 지적으로 얻어지는 부분도 많다.

십대의 아들과 서로가 생각하는 것을 스스럼 없이 얘기 할 수 있다는 건 큰 축복이다.
마주보고 하는 대화가 아닌 글로 주고받는 대화라 가능 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되었든 소통을 할 수 있어서 부럽다.
그 부러움에 이 책을 다시 꺼내 들었지만 내겐 이런 지적인 풍부함도 없거니와 내 집의 열여덟 사람 아들은 입시라는 지옥에 빠져있어 지적 허영은 허락되지 않는다.

특별히 뒷편에 실린 독자들의 편지 중 이십대에 관한 편지 글 들이 가슴에 와 닿는다.
활화산 같은 십대의 사람을 지나 곧 이 십대의사람 남자가 될 이 사람을 나는 또 이해해야 한다. 알아야 한다.

"당신 아이의 독립선언을 축하합니다.
아직 가정이 얼마나 무거운 짐인지 모를 때,
아직 복잡하고 무거운 사회적 책임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
우리는 그 아이가 아무걱정 근심이 없이
호방하고 과감하게 전장으로 뛰어들 수 있게
해줄 수 있어야 해요. 엄마는 그저 본분을
지키며 응원 단원으로서 지켜보고격려하고
지지하면 되지 않을 까요? 중간 휴식시간에
절제된 환호를 보낼 수는 있지만, 절대로 뛰어들어 간섭하거나 지휘해서는 안 되겠죠. 심지어 부모를 보지 않는다고 투덜대서는 안 될 거예요."

"엄마는 깨달았어 너와의 인연에서 앞으로
평생, 한 차례 또 한 차례 떠나는 네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말없이 손을 흔들어야 한다는
걸 말이야.
부모는 말이야, 끊임없이 자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기쁘 면서도 슬프고, 달려가 안고 싶으면서도 불러세우지 못하는 그런 존재란다.

집에 열여덟 사람 아들과 딸이 있다면 꼭 두 번 쯤은 읽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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