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딱이야 - 2022 어린이도서연구회 추천도서 I LOVE 그림책
민 레 지음, 댄 샌탯 그림,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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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한다는 핑계로 열심히 아이 둘을 우리 엄마, 아빠께 맡겨 놓고 있다. 아이들은 다행히도 나보다 할머니를 더 좋아했지만 점점 커가면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워주신 노고를 기억하지 못하고 엄마인 나를 더 찾는 느낌이다. 나는 내 딸들이 좀 더 오랜 시간동안 할머니, 할아버지를 나보다 더 사랑하고 아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커서 자기 생각이 뚜렷해지면 할아버지, 할머니를 더 이해하기 힘들어 질 수 있겠지만 그래도 내 딸들과 내 엄마, 아빠의 사이에 끈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듯한 할아버지와 손자가 바쁜 엄마의 출근으로 인해 어색한 생활을 함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늘 똑같은 반찬, 밥인가보다. 티비 프로그램도 할아버지가 보는 프로그램은 손자가 보는 것과 흥미가 다를 수 밖에 없다. 늘 뭔가 큰 벽이 있는 것 같고 침묵만 흐른다.

그러다가 손자의 숙제로 그림그리기가 있었나보다. 크레파스를 손에 쥐고 그림을 그리는 손자를 보던 할아버지는 스케치북을 들고 와서 손자와 함께 그림을 그리며 처음으로 서로를 그림 속에서 마주보게 된다.


서로 다른 언어로 말이 통하지 않는 손자와 할아버지는 그동안 서로 말로 설명할 수 없었던 새로운 세상을 그림을 통해 표현한다.(그림이 너무 다채롭고 아름답다)

물론 그림 하나만으로 해묵은 거리감이 싹 없어지는 것은 아닐터였다. 순간순간 엄습해오는 거리감은 어쩔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손자는 더 이상 할아버지가 두렵거나 그 거리감이 두렵지 않다. 어쩌면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대로, 손자는 손자 나름대로 나름의 해법을 찾기위해 노력했을 것이고 그 애쓴 결과 어쩌다보니 그림이라는 매개체로 하나가 된 그 순간, 그 자체 그대로 행복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그림으로 하나된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행복하게 품안에서 웃고 있다.


아무말 없이도 우리는 딱이라고 말이다.

엄마가 돌아오고 다시 할아버지와 헤어지는 시간이 와도 그들은 서로의 붓과 크레파스를 쥐고 함께 웃어보인다.



그림 색이 너무 예뻐서 아이와 함께 즐겁게 봤다. 딱 몇 세용 책이라고 말할 수 없다. 아주 어린 아이들은 그림 그 자체에 흥미를 가질 것 같고 조금 큰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언어 뿐만 아니라 나이 차이, 경험 차이로 인해 생기는 사람들간의 소통 부재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없이는 소통이 이루어질 수 없다. 조금 나와 다르지만 지금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함께 접점을 찾아가는 손자와 할아버지를 통해 나와 타인의 관계, 나와 아이의 관계를 돌아본다.

우리는 조금 각자 다르지만, 뭐 어때? 그건 너고 이건 나야. 그리고 우리는 다른 무언가를 통해 서로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어.

그림책을 통해 많이 배우는 요즘이다. 아이도 나도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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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빛나는 순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윤예지 그림, 박태옥 옮김 / 자음과모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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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빛나는 순간.

파울로 코엘료 이름 여섯자만 봐도 나는 가슴이 뛴다. 오래 전 읽었던 연금술사, 오 자히르는 내가 삶의 방향을 잃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마다 생각나는 책이다. 그래서인지 파울로 코엘료가 쓴 에세이를 더욱 보고 싶었다. 짧든 길든 그의 문장 안에 녹아 있는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따라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짧은 문장들이건 긴 문장들이건 분명 그의 문장 속에는 힘이 있다. 따뜻한 그림 배경과 어우러져 한 줄 한 줄 멈춰서 생각해보게 한다. 그의 문장에는 힘이 있고 울림이 있다. 지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청춘, 슬럼프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 지루한 일상에 자극이 필요한 사람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 지금 행복하지 않은 모든 사람들에게 인생을 살아감에 대해 슬며시 내던지는 작은 글귀들은 나를 반성하고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나는 요즘 슬럼프 아닌 슬럼프에 빠져 있다. 뭔가 변화를 원하면서도 뚜렷한 목표를 상실한 채 표류하는 느낌이다. 바쁜데 나를 위한 시간은 없다고 투덜대기 일쑤고 발전이 없는 느낌. 요즘 나는 행동하지 않는 불만투성이였던 것 같다.

그런 와중에 시간을 낭비하지말라는 글귀를 읽었는데 시간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돈을 낭비하라고 했다.(이 와중에 그럼 진짜 확 돈을 낭비해버려?하고 생각했으니 아직 정신 못차린거다) 시간의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 하루하루는 긴듯하지만 크게보면 벌써 여기까지 왔나,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었나 싶다.


성공하고 싶을때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말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내가 진짜 원하는게 뭔지 내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맹목적으로 나아가기만 했구나 깨달음도 얻었고, 감정에 충실하라는 부분에서는 내가 나이를 먹어가며 얼마나 주위의 불필요한 환경에 눈치를 보고 있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도 느긋하게 조금 쉬어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쉼이 없으면 나아감도 없는 법. 적절한 휴식과 전진이 성공과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책을 읽다보면 명상하는 느낌이다. 한 구절 한 구절 조금씩 마음속으로 되뇌이며 나에게 대입해서 읽다보면 어느새 나라는 사람과 나의 주변, 그리고 인생의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연금술사나 오자히르같은 소설이 파울로 코엘료의 그런 생각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면 이 책은 저자가 직접적이고 직설적으로 얘기한다. 지금 여기에 충실하고 끊임없이 전진하되 적절히 휴식하고 가장 소중한 것은 내 곁에 내 맘속에 있으니 놓치지 말라고 말이다.

그의 에세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축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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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조지 오웰 지음, 김그린 옮김 / 모모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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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분명 읽은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 고전. 동물농장. 커서 조금은 세상을 더 알고 읽으니 와닿는 부분이 많았다. 더불어 소련 공산주의같은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이 된 역사 공부의 필요성도 느꼈다.



수퇘지 메이저가 죽기 전 설파하고 간 그의 지론에 감화를 받은 동물들은 그의 사후에 그의 가르침을 받들어 동물 세상을 바꾸려 한다. 그 중, 말재주는 없지만 한 번 마음 먹은 것은 끝까지 해내는 나폴레옹, 쾌활하고 말이 유창하며 생각이 기발한 스노우볼, 언변이 좋고 설득력있는 스퀼러 이렇게 세 마리 돼지들은 동물주의라는 사상체계를 정립하여 주인이 자러 가면 비밀 모임을 가지고 사상을 다른 동물들에게 설명한다.

동물들 중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투철하거나 지금 생활에 만족하는 암말 몰리, 거짓말쟁이 갈까마귀 모제스 등은 설득이 쉽지 않았고, 당나귀 복서나 클로버는 비밀 모임을 지지하는 훌륭한 조력자였다.



결국 주인 존스 씨가 먹을 걸 제때 안줘 배고픈 상황에서 동물들이 갑작스레 봉기를 일으켰고 생각보다 쉽게 동물들이 농장을 점령했다. 인간들은 모두 쫓겨났고 농장은 모두 동물의 세상이었으며 인간들 어깨너머로 문자를 독학한(?!) 돼지들이 동물농장이란 팻말도 붙였다. 그리고 나폴레옹과 스노우볼은 그간 공부하며 요약한 동물주의 원칙인 7계명을 공포했는데, 마지만 조항은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였다.



물론 동물들이 모두 7계명을 이해하고 글자를 아는 건 아니었다. 거의 대부분은 문자를 습득하지 못했으며 제일 똑똑한 건 돼지들이었다. 우유와 사과 등은 주로 돼지들이 힘든 정신 노동을 하고 동물 복리후생에 신경쓰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돼지들에게 거의 다 돌아갔다. 나폴레옹은 갓 태어난 강아지 등 어린 동물들의 교육이 중요하단 이유로 어미에게서 떼어내 교육을 시켰다. 사상교육의 중요성을 돼지들은 알았던거다. 현재의 북한과 더불어 익히 알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가 오버랩된다.

어쨌든 동물 집단 봉기사건은 순식간에 여기저기로 퍼지고 존스를 포함한 인간들의 습격도 스노우볼의 진두지휘로 물리쳤다. 그러나 이와중에도 꼭 반체제자들은 있어서 흰 암말 몰리는 이 체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른 마을로 도망쳐 새 주인의 사랑을 받으며 치장하고 산다. 그러던 중 스노우볼과 나폴레옹이 풍차건설 문제로 대립하다 나폴레옹이 스노우볼을 무력 축출한다. 이때 나폴레옹이 예전에 교육시킨 갓 태어난 강아지들이 성견이 되어 스노우볼 축출에 한몫 했다. 다른 동물들 중 이에 항변하고 싶었지만 언변이 부족해 말못하는 동물들이 있었고 말 복서는 나폴레옹이 언제나 옳으며 자신이 좀 더 일하면 된다며 지지의사를 밝혔다.



사실 복서는 이 책에서 가장 우직하고 성실하며 불쌍한 동물이다. 자신이 도살장에 끌려가는지도 모르고 나폴레옹을 덮어놓고 지지하던 복서가 꿈꾸던 장밋빛 미래는 공산주의에서 단지 이상일 뿐,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처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풍차건설에 반대하던 나폴레옹은 돌연 스노우볼이 얘기했던 풍차건설은 사실 자신의 계획이었다며 동물들에게 노동을 부가했고 급기야 부족해지는 자원으로 인해 인근 농장 인간들과 거래를 하기로 했다며 인간과의 접촉을 금지했던 계명을 스스로 깨버렸다. 우둔한 동물들은 계명을 읽을줄 몰랐으므로 그 말이 맞겠거니, 혹은 자신들의 기억이 잘못된거겠거니 했다. 돼지들은 급기야 농장 집안을 점거해 안락한 침대에서 자고 생활했는데 집은 사용하지 않는다던 계명 역시 어긴 것이었다.

복서 등 동물들의 고된 노동으로 반쯤 완성된 풍차가 바람에 전부 박살나버리는 일이 생겼고 나폴레옹은 이를 스노우볼의 짓이라며 사형선고를 내려 그를 잡아오면 훈장을 줄 것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존스와 결탁하고 있다고까지 했는데, 동물들은 모든 나쁜 일들이 스노우볼때문이라고 여겼다. 이 부분은 참... 왜인지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게 무조건적 조롱거리가 되었던 그분이 생각난다. 그러는 중에 일부 암탉들이 자신의 알 거래 중지를 위해 소규모봉기를 벌였지만 제압되고 나폴레옹은 더욱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모든 일을 스퀄러를 대변인삼아 처리하게 하고 개들을 앞세워 자신을 지킬 뿐이었다. 또, 나폴레옹에게 봉기하거나 반대의견을 내세운 동물들을 강제자백하게 한 뒤 곧바로 동물들 앞에서 처형시켰는데, 스노우볼과 결탁했다는 이유였다. 동물들은 그 피비린내 앞에서 얼어버렸지만 동물들은 다시금 자신들이 주인인 동물농장을 보며 존스 시절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일하기로 결심했다.

나폴레옹은 이제 그냥 나폴레옹으로 불리지 않았다. '우리의 지도자 나폴레옹 동지'라는 연호가 꼭 붙었고 미니무스는 그에 대한 충성심 가득한 시를 지었으며 그의 초상화와 함께 계명 옆에 붙였다.

그러는 동안 동물들의 스노우볼에 대한 의심과 그와 결탁한 동물들의 자백 및 자살 사건도 발생했으며 핀치필드 농장 소유주인 프레드릭에게 목재를 팔았다는 나폴레옹의 발표에 동물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간 겉으로는 필킹턴의 폭스우드 농장과 우호관계인듯 하며 안으로는 프레드릭과 내통하고 있었다는 것인데, 그와중에 목재를 팔고 얻은 지폐가 위조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프레드릭 측의 인간과 동물들의 전쟁이 벌어졌다. 그로 인해 풍차가 박살나고 많은 동물들이 죽었지만 인간들을 다시 후퇴시키고 승리했다. 복서는 그 전쟁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죽은 동물들의 장례가 거행되었다.

어쩐 일인지 돼지들은 갈수록 살이 찌고 점점 지위가 높아져 갔으며 다른 동물들은 먹는 양이 더 줄었다. 스퀼러는 존스 시절보다 먹는 양도 더 많고 자유도 더 많다고 소리 높여 동물들이 그 사실을 믿게 만들었다. 농장 유일 수퇘지인 나폴레옹은 수많은 암퇘지들가 새끼를 낳게 했으며 그 새끼 돼지들은 다른 동물들과 분리된 교육을 받았다. 동물농장은 자주 행진을 했고 대통령도 유일무이의 후보 나폴레옹으로 만장일치 선출했다. 복서는 풍차를 재건하다 쓰러졌는데 그를 치료해준다고 실어간 마차는 말 도살 문구가 적힌 마차였다. 글을 읽을 줄 아는 뮤리엘, 벤자민이 황급히 마차를 멈추려 했지만 늦었고, 스퀼러는 자신이 직접 복서가 병원에서 치료받다 죽었음을 확인했다고 했다. 그 마차는 수의사가 백정에게 사들인 후 페인트를 지우지 않아 생긴 오해라고 했다.

수년이 지나고 뮤리엘도 죽고, 존스도 죽고 봉기를 기억하거나 예전 생활을 기억하는 동물도 없어졌다. 다 늙어버린 클로버가 벤자민에게 계명을 읽어달라고 했을 때 그 계명에는 딱 하나만 적혀 있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돼지들은 이제 뒷다리로 서서 두 다리로 걸으며 존스 씨가 입던 옷을 입고 필킹턴 씨와 사이좋게 앉아 좌담을 나누고 카드놀이를 하며 축배를 들고 있고, 하층 계급의 적은 식량배급, 긴 노동, 자유 통제에 대해 치하했다. 돼지와 인간이 마지막에 카드 놀이를 하다 싸우는 장면에서 인간이 돼지인지 돼지가 인간인지 분간하기 힘든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스노우볼은 어디로 갔을까? 몰리는 동물농장을 떠나 더 행복해졌을까? 드문드문 나타났던 갈까마귀 모제스는 결국 누구의 편이었던걸까.



개인의 재산 소유를 인정하지 않고 공동의 재산 소유를 표방하는 공산주의는 빈부격차를 없애고 공동체의 재산이 곧 구성원의 재산이라는 아름다운 논리를 들이밀지만, 이런 체제는 일하기 싫어하는 꼼수쟁이들이나 개인의 탐욕같은 변수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상적인 사회일 뿐이다. 권력의 맛을 본 나폴레옹이 평등과 주인으로부터의 자유라는 허울 아래 우매한 동물들을 그럴듯하게 설득시키고 선동시키는 모습은 인간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회는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자본주의의 약점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각국에서 모색하고 있다. 결국 동물농장도 나폴레옹의 독재라는 치명적 단점과 함께 돼지들의 사유재산이 늘어나며 자본주의의 방향으로 어쩔 수없이 나아가게 된다. 인간의 욕망이 자본주의와 끊어질 수 없는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면 이 고리가 올바르게 작동할 수 있게 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이 책에는 대한민국도 들어있고 세계사도 들어있다. 동물에 투영된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과 당시의 스탈린주의 실상을 은유적인듯 직접적으로 파헤친 정치소설로 큰 의미가 있다. 더불어, 모든 나라는 그 나라 국민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는 말이 다시금 생각나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 속 동물농장이 그러하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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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휴식하라 - 회복과 치유를 위한 33일간의 철학 세러피
안광복 지음 / 사계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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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되어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은 철학을 어렵고 머리아픈 사변적 학문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인간과 세계, 우리 삶에 대해 이렇게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논하는 학문이 또 어디있을까. 뭔가 들여다보고 싶지만 높은 벽이 있는 것같은 철학. 이 책의 제목처럼 철학으로 휴식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때때로 삶이 힘들거나 지칠 때 내 영혼을 지탱해줄 수 있는 큰 힘이 될 것이다.
이 책은 33인의 철학자를 한 명씩 만나보면서 삶에 대한 깊은 사유와 동시에 마음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책이다. 위로가 필요할 때, 욕망과 집착으로 괴로울 때,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 용기가 필요할 때, 혜안이 필요한 순간 철학자들이 우리에게 주는 따뜻하고도 단호한 메시지는 큰 힘이 된다. 소크라테스, 공자,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이 이미 익히 알려진 철학자의 이야기도 있지만 한나 아렌트, 지그문트 바우만와 같은 비교적 최근의 인물이 들려주는 충고도 있고, 엘자 고다르나 데이비드나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브룩스처럼 현존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도 있다. 철학을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철학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매우 신선했으며, 고대 철학자부터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간을 초월한 철학자들의 지혜를 만나볼 수 있어서 읽는 내내 행복했다.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대목은 미국의 사회철학자 에릭 호퍼 관련 부분이다. 사회의 밑바닥을 경험했기에 더 세상을 냉정하게 볼 줄 알았던 그는 재산과 명예가 무대소품에 불과함을 느꼈고, 오로지 그 자신의 경험을 통해 용기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생기며 가진 것을 버릴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단 몇 장으로 그의 생각의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기에 추가적으로 관심가는 철학자나 그의 사상은 따로 찾아보게 된다. 또한, 데이비드 브룩스의 경우는 일전에 읽었던 '인간의 품격'과도 연결되어 더욱 그의 메시지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이 책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상을 소개하는 철학책같기도 하면서 인간 내면의 상태를 파고들어 도움이 필요한 심리상태에 대해 적절한 조언을 해준다는 측면에서 심리서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 철학자의 메시지를 풀어놓는 방식은 전혀 어렵지 않으며 간결하다. 매일 15분이면 충분히 한 철학자의 이야기를 읽고 현재 나의 마음이나 삶에 대해 사유할 수 있다. 각 철학 또는 철학자의 핵심을 살리면서 부드럽게 마음 상태에 접근하는 방식이 책의 가독성을 높인다. 철학이 사라지는 경쟁사회에서 마음의 휴식이 절실히 필요한 요즘과 같은 시대에 따뜻한 메시지와 더불어 지혜와 지식까지 함께 얻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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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율, 강의와 강연 하이데거 전집 10
마르틴 하이데거 지음, 김재철 옮김 / 파라아카데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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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던 지식은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현존재, 저서인 <존재와 시간>정도였다. 고등학교 때 공부했던 윤리 교과서에 단 몇 줄 소개되어있던 철학자이지만 불안, 존재 자체, 죽음 등 실존하는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로 현대 철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하이데거의 사상을 좀 더 깊이 공부해보고 싶었다.



이미 잘 알려진 <존재의 시간>이란 책은 하이데거의 전반부 철학 사상을 서술하였고, '근거 없이는 아무것도 없다'는 뜻의 <근거율>은 하이데거의 후반부 철학 사상이 집약되어 있다. 이 책은 살아있는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아름다운 말의 철학적 근거를 조목조목 따져보며 근거율이 하나의 명제로 존재하는 방식은 다른 모든 명제들과 비교될 수 없는, 즉 근거율은 모든 근거명제들 중의 근거명제임을 말하고 있다. 마치 수학에서의 공리와 같은 느낌을 준다. 수학도 결국 철학의 하나라는 것을 뒷받침하듯 이 책에서는 라이프니츠가 자주 언급된다. 라이프니츠는 데카르트가 너무 많이 의심하고 너무 쉽게 의심하는 것과 거리를 둠으로써 실수를 범했다고 말하며 사유의 대담함과 절제함이 각기 적합한 장소에 있어야 하며 아리스토텔레스의 파이데이아와도 연결된다. 라이프니츠는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인과성의 원리를 근거의 원리와 동등하게 보며 증명과정을 위한 두 가지 최상의 원리로 모순의 원리와 이유 보충의 원리를 내세웠는데, 여기서 이유 보충의 원리가 근거율의 강력함을 나타내준다.

근거율은 근거에 관한 진술이 아니라 존재자에 관한 진술이다. 존재는 더 이상 존재하는 어떤 것을 위해 설명될 수 없다. 이를 부연하기 위해 칸트의 '선험적 가능성의 조건'과 순수이성비판, 헤겔의 철학도 연동된다. 결국 사유의 자유로운 가능성인 도약을 통해 '존재의 역운'이라는 표현이 뜻하는 것에까지 접근해본다.

더불어 괴테는 '때문에'에 머물고 '왜?'를 묻지 말라고 했다. '때문에' 는 '왜' 에 대한, 즉 근거 정립에 대해 탐구하는 것을 막는다. '때문에'는 그 자체로 근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철학에 상당한 조예가 깊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술술 읽어지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열세번의 강의와 근거율에 대한 맺음 강연을 통해 끊임 없이 던져지는 인간의 존재 자체의 사유는 하이데거의 후기철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배경을 쌓게 해줌과 동시에 지금 살아 있는 나의 존재에 대한 근거가 어디에서 오는지 고민하게 한다. 그리고 그냥 되는대로 살지 말라고, 내 삶의 이유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또 탐구하라고, 헛되이 살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실제로 그러한 감성적인 말은 이 책에 단한번도 없다. 철저히 이성적으로 근거율에 대해 파헤치면서 하이데거의 철학을 미약하나마 조금이라도 느껴보면서 나의 철학적 감성을 건드린다. 어쩌면 그것이 철학의 지향점인지도 모르겠다. 존재와 실존의 그 미세한 차이, 내재된 불안, 그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 그 날것에 대한 사유가 인간을 더욱 성숙한 주체로 만든다. 나는 이 책을 힘겹게 읽으며 한층 내면적으로 성숙해진 느낌을 받았다. 인간은 사유하는 만큼 성장함을 느끼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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