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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조지 오웰 지음, 김그린 옮김 / 모모북스 / 2020년 4월
평점 :
학창시절 분명 읽은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 고전. 동물농장. 커서 조금은 세상을 더 알고 읽으니 와닿는 부분이 많았다. 더불어 소련 공산주의같은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이 된 역사 공부의 필요성도 느꼈다.
수퇘지 메이저가 죽기 전 설파하고 간 그의 지론에 감화를 받은 동물들은 그의 사후에 그의 가르침을 받들어 동물 세상을 바꾸려 한다. 그 중, 말재주는 없지만 한 번 마음 먹은 것은 끝까지 해내는 나폴레옹, 쾌활하고 말이 유창하며 생각이 기발한 스노우볼, 언변이 좋고 설득력있는 스퀼러 이렇게 세 마리 돼지들은 동물주의라는 사상체계를 정립하여 주인이 자러 가면 비밀 모임을 가지고 사상을 다른 동물들에게 설명한다.
동물들 중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투철하거나 지금 생활에 만족하는 암말 몰리, 거짓말쟁이 갈까마귀 모제스 등은 설득이 쉽지 않았고, 당나귀 복서나 클로버는 비밀 모임을 지지하는 훌륭한 조력자였다.
결국 주인 존스 씨가 먹을 걸 제때 안줘 배고픈 상황에서 동물들이 갑작스레 봉기를 일으켰고 생각보다 쉽게 동물들이 농장을 점령했다. 인간들은 모두 쫓겨났고 농장은 모두 동물의 세상이었으며 인간들 어깨너머로 문자를 독학한(?!) 돼지들이 동물농장이란 팻말도 붙였다. 그리고 나폴레옹과 스노우볼은 그간 공부하며 요약한 동물주의 원칙인 7계명을 공포했는데, 마지만 조항은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였다.
물론 동물들이 모두 7계명을 이해하고 글자를 아는 건 아니었다. 거의 대부분은 문자를 습득하지 못했으며 제일 똑똑한 건 돼지들이었다. 우유와 사과 등은 주로 돼지들이 힘든 정신 노동을 하고 동물 복리후생에 신경쓰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돼지들에게 거의 다 돌아갔다. 나폴레옹은 갓 태어난 강아지 등 어린 동물들의 교육이 중요하단 이유로 어미에게서 떼어내 교육을 시켰다. 사상교육의 중요성을 돼지들은 알았던거다. 현재의 북한과 더불어 익히 알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가 오버랩된다.
어쨌든 동물 집단 봉기사건은 순식간에 여기저기로 퍼지고 존스를 포함한 인간들의 습격도 스노우볼의 진두지휘로 물리쳤다. 그러나 이와중에도 꼭 반체제자들은 있어서 흰 암말 몰리는 이 체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른 마을로 도망쳐 새 주인의 사랑을 받으며 치장하고 산다. 그러던 중 스노우볼과 나폴레옹이 풍차건설 문제로 대립하다 나폴레옹이 스노우볼을 무력 축출한다. 이때 나폴레옹이 예전에 교육시킨 갓 태어난 강아지들이 성견이 되어 스노우볼 축출에 한몫 했다. 다른 동물들 중 이에 항변하고 싶었지만 언변이 부족해 말못하는 동물들이 있었고 말 복서는 나폴레옹이 언제나 옳으며 자신이 좀 더 일하면 된다며 지지의사를 밝혔다.
사실 복서는 이 책에서 가장 우직하고 성실하며 불쌍한 동물이다. 자신이 도살장에 끌려가는지도 모르고 나폴레옹을 덮어놓고 지지하던 복서가 꿈꾸던 장밋빛 미래는 공산주의에서 단지 이상일 뿐,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처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풍차건설에 반대하던 나폴레옹은 돌연 스노우볼이 얘기했던 풍차건설은 사실 자신의 계획이었다며 동물들에게 노동을 부가했고 급기야 부족해지는 자원으로 인해 인근 농장 인간들과 거래를 하기로 했다며 인간과의 접촉을 금지했던 계명을 스스로 깨버렸다. 우둔한 동물들은 계명을 읽을줄 몰랐으므로 그 말이 맞겠거니, 혹은 자신들의 기억이 잘못된거겠거니 했다. 돼지들은 급기야 농장 집안을 점거해 안락한 침대에서 자고 생활했는데 집은 사용하지 않는다던 계명 역시 어긴 것이었다.
복서 등 동물들의 고된 노동으로 반쯤 완성된 풍차가 바람에 전부 박살나버리는 일이 생겼고 나폴레옹은 이를 스노우볼의 짓이라며 사형선고를 내려 그를 잡아오면 훈장을 줄 것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존스와 결탁하고 있다고까지 했는데, 동물들은 모든 나쁜 일들이 스노우볼때문이라고 여겼다. 이 부분은 참... 왜인지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게 무조건적 조롱거리가 되었던 그분이 생각난다. 그러는 중에 일부 암탉들이 자신의 알 거래 중지를 위해 소규모봉기를 벌였지만 제압되고 나폴레옹은 더욱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모든 일을 스퀄러를 대변인삼아 처리하게 하고 개들을 앞세워 자신을 지킬 뿐이었다. 또, 나폴레옹에게 봉기하거나 반대의견을 내세운 동물들을 강제자백하게 한 뒤 곧바로 동물들 앞에서 처형시켰는데, 스노우볼과 결탁했다는 이유였다. 동물들은 그 피비린내 앞에서 얼어버렸지만 동물들은 다시금 자신들이 주인인 동물농장을 보며 존스 시절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일하기로 결심했다.
나폴레옹은 이제 그냥 나폴레옹으로 불리지 않았다. '우리의 지도자 나폴레옹 동지'라는 연호가 꼭 붙었고 미니무스는 그에 대한 충성심 가득한 시를 지었으며 그의 초상화와 함께 계명 옆에 붙였다.
그러는 동안 동물들의 스노우볼에 대한 의심과 그와 결탁한 동물들의 자백 및 자살 사건도 발생했으며 핀치필드 농장 소유주인 프레드릭에게 목재를 팔았다는 나폴레옹의 발표에 동물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간 겉으로는 필킹턴의 폭스우드 농장과 우호관계인듯 하며 안으로는 프레드릭과 내통하고 있었다는 것인데, 그와중에 목재를 팔고 얻은 지폐가 위조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프레드릭 측의 인간과 동물들의 전쟁이 벌어졌다. 그로 인해 풍차가 박살나고 많은 동물들이 죽었지만 인간들을 다시 후퇴시키고 승리했다. 복서는 그 전쟁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죽은 동물들의 장례가 거행되었다.
어쩐 일인지 돼지들은 갈수록 살이 찌고 점점 지위가 높아져 갔으며 다른 동물들은 먹는 양이 더 줄었다. 스퀼러는 존스 시절보다 먹는 양도 더 많고 자유도 더 많다고 소리 높여 동물들이 그 사실을 믿게 만들었다. 농장 유일 수퇘지인 나폴레옹은 수많은 암퇘지들가 새끼를 낳게 했으며 그 새끼 돼지들은 다른 동물들과 분리된 교육을 받았다. 동물농장은 자주 행진을 했고 대통령도 유일무이의 후보 나폴레옹으로 만장일치 선출했다. 복서는 풍차를 재건하다 쓰러졌는데 그를 치료해준다고 실어간 마차는 말 도살 문구가 적힌 마차였다. 글을 읽을 줄 아는 뮤리엘, 벤자민이 황급히 마차를 멈추려 했지만 늦었고, 스퀼러는 자신이 직접 복서가 병원에서 치료받다 죽었음을 확인했다고 했다. 그 마차는 수의사가 백정에게 사들인 후 페인트를 지우지 않아 생긴 오해라고 했다.
수년이 지나고 뮤리엘도 죽고, 존스도 죽고 봉기를 기억하거나 예전 생활을 기억하는 동물도 없어졌다. 다 늙어버린 클로버가 벤자민에게 계명을 읽어달라고 했을 때 그 계명에는 딱 하나만 적혀 있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돼지들은 이제 뒷다리로 서서 두 다리로 걸으며 존스 씨가 입던 옷을 입고 필킹턴 씨와 사이좋게 앉아 좌담을 나누고 카드놀이를 하며 축배를 들고 있고, 하층 계급의 적은 식량배급, 긴 노동, 자유 통제에 대해 치하했다. 돼지와 인간이 마지막에 카드 놀이를 하다 싸우는 장면에서 인간이 돼지인지 돼지가 인간인지 분간하기 힘든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스노우볼은 어디로 갔을까? 몰리는 동물농장을 떠나 더 행복해졌을까? 드문드문 나타났던 갈까마귀 모제스는 결국 누구의 편이었던걸까.
개인의 재산 소유를 인정하지 않고 공동의 재산 소유를 표방하는 공산주의는 빈부격차를 없애고 공동체의 재산이 곧 구성원의 재산이라는 아름다운 논리를 들이밀지만, 이런 체제는 일하기 싫어하는 꼼수쟁이들이나 개인의 탐욕같은 변수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상적인 사회일 뿐이다. 권력의 맛을 본 나폴레옹이 평등과 주인으로부터의 자유라는 허울 아래 우매한 동물들을 그럴듯하게 설득시키고 선동시키는 모습은 인간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회는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자본주의의 약점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각국에서 모색하고 있다. 결국 동물농장도 나폴레옹의 독재라는 치명적 단점과 함께 돼지들의 사유재산이 늘어나며 자본주의의 방향으로 어쩔 수없이 나아가게 된다. 인간의 욕망이 자본주의와 끊어질 수 없는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면 이 고리가 올바르게 작동할 수 있게 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이 책에는 대한민국도 들어있고 세계사도 들어있다. 동물에 투영된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과 당시의 스탈린주의 실상을 은유적인듯 직접적으로 파헤친 정치소설로 큰 의미가 있다. 더불어, 모든 나라는 그 나라 국민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는 말이 다시금 생각나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 속 동물농장이 그러하였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