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큰 아이는 비교적 빨리 한글을 습득했지만, 맞춤법에 익숙하지 않고 글씨 쓰는 걸 싫어한다. 글씨도 바른 획순을 가르치지 않고 큰 아이가 쓰기 편한 대로 쓰게 놔뒀더니 이응(ㅇ)도 시계 반대 방향으로 쓰지 않고 시계 방향으로 쓴다. 지루하게 연습시키니 아이는 점점 더 지루해하고 재미없어 했다. 그런 아이가 이 책을 받자 마자 동시를 읽더니 따라 쓰는 칸에 자기도 열심히 따라쓰기 시작했다.
이 책이 우리 집에 오고 나서 아이는 최근 잘 쓰지 않던 한글을 스스로 쓰며 재밌어 했는데, 왜 아이가 이 책을 스스로 꺼내와서 즐겁게 공부하는지 그 이유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동시 한 편의 길이가 짧다. 예비초등~ 저학년 학생들의 입장에서 너무 심오하거나 긴 시는 적절치 않고 금방 흥미를 잃어버리는데 이 책의 동시들은 짧으면서도 한 권당 분량도 적절하다.
둘째, 동시이면서 동요인 것들이 많고 이미 아이들이 알고 있는 동시 혹은 동요가 많아서 따라 부르며, 흥얼거리며 쓰게 된다. <리자로 끝나는 말>, <개구리>, <나비야> 같은 곡도 있고, 요즘 음악책에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학창시절에 배웠던 게 떠오르는 <엄마야 누나야> 같은 고전 동시(동요)도 있다. 특히, <엄마 손은 약손>같은 경우는 음을 붙여 읊기도 했는데 아이가 아플 때 내가 자주 배를 쓸며 불러주었기에 더 즐거워했다. <두껍아 두껍아>, <장난감 기차>도 마찬가지다. 동요이면서 동시인 것의 경우 아이와 내가 같이 노래를 부르며 즐기며 썼다. 아이뿐만 아니라 엄마인 나도 같이 노래 부르며 즐거운 시간이고, 노래가 없는 경우 음을 적당히 갖다붙이며 둘이서 깔깔 즐거워했다.
셋째, 동시의 주제들이 친숙하다. 아이가 좋아하는 엄마, 아빠, 동생, 형, 누나 등 가족이 주제인 경우가 많아 아이가 쉽게 받아들이고 재미있어했다. 뿐만 아니라 웃음, 노래, 학교 등 아이 주변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 주제여서 아이가 흥미있어 하는 것 같다.
넷째, 짧고 단순하면서도 재미있는 동시를 보면서 자기도 시를 짓고 싶은 마음이 들고, 그런 부분을 해소할 수 있도록 4장에는 여러 주제로 아이가 직접 시를 지어볼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다소 말이 안되는 시라도 아이 입장에서는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고 글을 지어보는 연습을 하게 한다. 아이만의 감성을 마음껏 글로 표현해볼 수 있게 구성된 점이 좋다.
다섯째, 적절한 그림, 여백, 그리고 필사의 공간이 넓은 점이다. 아이들 책이 너무 빡빡하면 금방 질려한다. 시의 길이가 짧더라도 아이가 글을 쓰는 공간이 넓게 확 트여 있기 때문에 열린 마음으로 글을 따라 쓸 수 있고, 남은 여백에는 아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거나 같은 주제로 자기만의 글을 써보는 등 다양하게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시에 맞는 그림도 적절하게 그려져 있어 아이가 그림도 보고 시도 보며 천천히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된다.
또박또박 따라쓰고 동시쓰는 이 시리즈는 원래는 하나의 책이었던 것으로 알고있는데, 초급편으로 1권에서 5권까지 분리되면서 더 많은 동시들이 수록되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딱딱한 국어책으로 이것저것 공부할 것도 많을 것 같다. 그때 아이에게 쉬어가는 타임으로 마음에 여백과 휴식을 주는 시를 엄마랑 같이 읽어보고 시를 지어보고 써 보기도 하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인 것 같다. 덕분에 나도 학창시절에 교과서에서 읽었던, 혹은 문제집에서 봤던 시들을 다시 만나게 되어 기뻤다. 정지용의 <호수>나 한용운의 <사랑>과 같은 시는 길이는 짧지만 깊이는 여느 시보다 깊고 강렬하다. 강소천, 방정환 등 익숙한 이름들이 많이 등장하기도 한다. 요즘 가뜩이나 아이에게 화만 많이 냈던 엄마였는데, 나와 아이가 같이 시 읽고 쓰고 짓고 노래 부르면서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루에 하나씩 십분, 길면 오분씩이라도 함께 동시를 노래하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