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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는 니체 - 지금 이 순간을 살기 위한 철학 수업 ㅣ 마흔에 읽는 서양 고전
장재형 지음 / 유노북스 / 2022년 9월
평점 :
부끄럽게도 마흔이 다 되어 가도록 니체를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다. '차라투스트라...'는 이해하기 몹시 어려웠다는 것 이외에는 기억이 거의 나지 않고 다른 니체 관련 책들도 핵심만 대강 기억이 날 뿐 파편처럼 흩어져 있다.
이 책은 그런 날 위한 책인 것 같다. 니체의 저서에 담긴 생각, 사상을 저자가 읽고 정리하여 우리가 어떻게 인생에 적용할 수 있을지를 알려주는 니체 철학 실용서다. 사실 '신은 죽었다'던 니체의 명언은 유명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알고 있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니체의 책은 유명하기도 하고 필독서도 많지만 이해하기가 어려워 금방 포기해버렸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트라...'의 경우는 메타포가 특히 많아 어떤 걸 의미하는지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니체의 사상을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니체의 생각 많은 부분에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대체 신은 죽었다는 뜻은 뭘까? 니체는 신이 오히려 인간을 병들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기독교에서 인간은 죄지은 자, 나약한 존재다. 그러나 니체에 의하면 "사람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극복해야 하는 그 무엇"이다. 그래서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했고, 삶을 극복하고 초인이 될 것 즉, 익숙한 과거와 결별하고 창조하는 자가 되어 내가 원하는 나로 살 것을 강조한다. 낯선 세계로 나아갈 때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지 내면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니힐리즘, 즉 허무주의는 목표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신이 죽고난 후 자신의 토대가 사라진 인간은 이제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니체는 욕망이 가라앉아 끝도 목적도 싫증도 욕구도 없는 휴식 시간이 얼어붙은 삶의 의지를 녹일 봄바람이며 이 시간을 견디며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쇼펜하우어 철학과의 차이점도 알 수 있었는데, 쇼펜하우어가 수동적 허무주의를 얘기한다면 니체는 능동적 허무주의자다.
힘에의 의지로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도달해야 할 목표는 초인이다. 니체는 "춤추는 별 하나를 탄생시키기 위해 혼돈을 자신 속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니체 철학 중 가장 내게 공감을 줬던 부분인데, 우리는 행복만을 바라보며 행복하지 않고 고통스런 순간을 떨쳐내려고 애쓴다. 수많은 자기계발서는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한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순간도 나의 삶이다. 그런 순간까지 모두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니체 하면 떠오르는 것이 영원회귀사상인데, 우리의 고통스러운 삶이 끝없이 반복되더라도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충실하면 삶을 긍정적으로 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이 늘 행복할 수는 없지만 삶을 바라보는 태도는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 니체는 그 부분을 이야기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낙타, 사자, 아이정신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도 많이 다루어졌던 부분인데 이 책을 통해 다시 확실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무거운 짐(전통 철학, 종교적 진리, 관습, 신에 대한 순종 등)을 지고 버텨 내는 낙타는 현실에 안주하고 정신은 일상에 매몰된 상태다. 그러다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사막의 주인이 되고자 자신의 짐을 부정하고 파괴하는 사자가 된다. 사자는 기존 가치를 파괴는 하지만 새로운 가치는 창조하지 못한다. 이제 놀이에 빠져 몰두하듯 자기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아이의 정신으로 나아가야 한다.
니체는 욕망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플라톤 주의에 맞서 이성보다 신체의 중요성을 크게 생각한다는 점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플라톤, 소크라테스 등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이성을 중시한다. 그러나 이성을 중시하는 것에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결여되었으며 비극은 삶에 대한 긍정에서 나온 최고의 예술이므로 지금까지 부정한 삶의 측면을 있는 그대로 긍정한다면 삶이 아무리 괴롭더라도 영원 회귀를 부정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니체의 저서 여러 권과 각 출판사에서 번역된 여러 문헌들을 참고해 철학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들도 니체의 철학을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썼다. 니체를 알고 싶었지만 솔직히 그동안 읽었던 니체의 저서들은 너무 심오하고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경지에 있다고 생각해서 쉽게 포기했었다. 그러나 이 책을 만나고 나서 니체를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해졌다.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한 '차라투스트라', 그리고 집 한쪽 구석에서 다시 읽히길 기다리고 있는 '르 살루메' 책까지 다시 읽어볼 힘과 용기를 얻었다. 니체가 말하고자 하는 사상이 내가 생각하는 삶의 지향점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최근 읽은 니체 관련 서적 중에 가장 쉽고 편안하게 읽히는 책이었다.
마흔은 에포케, 잠시 멈추는 시간이다. 판단을 중지하고 잠시 멈추는 시간이 있어야 또 새로운 삶의 동력을 얻을 수 있다. 마흔은 니체를 제대로 알기에 적절하게 무르익은 나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흔을 목전에 두고 이 책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