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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손잡고 갈래? ㅣ 문지아이들 150
이인호 지음, 윤미숙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11월
평점 :
이 책을 읽는 동안 오래전 들었던 인디언 아이들의 일화가 생각났다.
백인들이 인디언 아이들을 상대로 학교를 세우고 교육했는데,
첫 시험을 볼 때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
시험 보던 아이들이 자리를 이동해 한자리에 모여 서로 의논하면서 문제를 풀더라는 거다.
그래서 백인 선생님이 시험은 각자 혼자서 푸는 거라고 했더니 인디언 아이들이 우리는 어려운 문제일수록 함께 모여 문제를 해결하라고 배웠다고 답했다는 거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하고 명쾌한 삶의 지혜를 교육 현실에선 집요하게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아이들에게 이 책이 제시하는 삶의 방향성은 제목에서부터 명확하게 드러난다.
옴니버스식 단편 네 개에 담고 있는 이야기들은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문제들을 아이들의 시선으로 투영해 보여준다.
첫 번째 이야기, 계단을 보면 아빠의 사업실패로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이사 오게 된 주인공이 등장한다. 일상화된 아파트 엘리베이터뿐만 아니라 초고속 엘리베이터도 등장하는 이 시대의 계단이란 빈곤과 결핍의 상징이다. 이러한 현상을 성공 가도를 향해 질주하는 요즘 세태에 대입시켜보면 학원이니 과외니 해서 자본에 의해 잠식된 교육과정과 선발, 그로 인한 불공정한 경쟁 관계로 상징될 수 있어 초고속 엘리베이터가 단순한 주거환경에 국한되지 않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반면 계단이란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하는 것을 상징한다. 과거 세대가 고속성장의 그늘을 겪었다고는 하지만 계단을 오르듯 자신의 힘으로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것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세대였다면 요즘 아이들은 앞뒤 안 가리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무한 경쟁으로 내몰리는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계단’ 에 담긴 이야기가 주는 감동은 흔히 접해왔던 현실극복에 눈을 두고 있지 않다는 거다. 반대로 그동안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으로만 여겼던 환경이나 외면했던 삶의 방식을 직시하게 한다는 데 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창피하게만 여겼던 주인공은 나은이라는 아이를 통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된다. 다섯 개나 되는 학원을 끊게 된 자신의 삶이 정체된 것이 아니라 경쟁을 위해 치닫던 질주에서 멈춰서 비로소 주변을 살피고 보듬게 되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작가는 달라진 주인공의 가치관을 통해서 삶의 가치가 사회적 성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 이웃과 함께 하는 소소한 일상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야구에 빠진 주인공을 통해 삶의 아이러니를 통찰한 ‘3할3푼3리’뿐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또 다른 사랑을 찾아 극복해 가는 남매를 다룬 ‘내일의 할 일’. 소외된 일상에서 찾은 우정과 오해 그로 인한 배신감을 극복하게 되는 ‘비밀번호’까지. 작가는 어른들 못지않은 갈등과 딜레마를 겪게 되는 아이들의 삶을 섬세하게 포착해 낸다.
당면한 문제를 슬기롭게 헤쳐 가는 기특한 아이들을 보면서 문득 얼마 전부터 ‘옥탑방 한 달 살이’를 시작한 시장이 떠올랐다. 그가 깨달은 것이 제발 이 책의 주인공들과 같기를 기원해 본다.
맞다. 저 위에도 계단이 있었지. 나는 눈대중으로 대략 어림잡아 말했다. "아니, 그것보다 훨씬 많아, 같이 올라가 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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