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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걸의 탄생 ㅣ 서유재 어린이문학선 두리번 5
이조은 지음, 홍지연 그림 / 서유재 / 2020년 12월
평점 :
색깔이 있다는 말엔 뭔가 개성이 뚜렷하고 특징이 분명하다는 뜻을 내포한다.
바로 이 책이 그렇다.
캐릭터도 내용도 기존의 이야기와는 다른 분명한 색깔이 보이기 때문이다.
까칠 손녀, 주인공 수아.
갑작스러운 사고로 부모를 잃고 보육원에 맡겨진 아이임에도
주눅 들거나 기죽은 기색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스스로 자신을 나쁜 아이라고 낙인찍고 벌 받아 마땅하다고 독백한다..
착한 아이가 되고 싶은 생각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을뿐더러
자발적 외톨이가 되기를 꿈꾸는 아이.
내용을 살펴보면 그렇다고 해서 나쁜 아이는 결코 아닌데 말이다.
무엇이 이 아이가 세상으로부터 또 타인들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자신과 세상을 냉소적으로 보게 했을까?
이상한 할아버지 샤를오!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라지만 화장을 하는 할아버지라니.
설정부터가 범상치 않다. 이 둘의 조합이 조마조마하기만 한데
까칠한 손녀와 여성스럽고 섬세한 할아버지와의 동거는 당연히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그런데 그 불협화음이 묘한 템포와 박자로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데
‘할아버지’라는 말이 거부감 든다며 ‘샤를’로 불러 달라는 우아하고 정중한 요청에
수아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실은 긍정의 뜻이 아니라 그런 샤를 오를 조롱하기에
아주 적합한 별명을 찾은 것에 대한 만족감을 표한 것이었다.
오여사!
기발하지 않는가. 남자임에도 섬세한 메이크업을 하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깔맞춤 차림새에
말끝마다 오!, 또는 오우! 하며 감탄사를 연발하며 한껏 혀를 굴린 특유의 말투로
자신의 이름 조수아를 조슈아~로 바꿔 버린 할아버지에게 이보다 절묘한 응수가 있을까?
그러나 이들의 좌충우돌은 단순히 삐그덕 대는 소동에 그치지 않는다.
샤를오의 서툴지만, 진심 어린 애정이 까칠한 어린 손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 때문이다.
오묘한 깔맞춤의 세계
자발적 외톨이가 되어 자신만의 견고한 세계에 은둔하려 했던 수아의 계획은
샤를오가 입혀준 깔맞춤옷으로 인해 어긋난다. 옷차림 하나로 졸지에 전교에서 제일
눈에 띄는 아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본의 아니게 세상에 노출됨으로써 수아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과 소통하게 된다.
깔맞춤 옷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아의 노력은 자아 찾기와 다름이 없으며 수아에게 과제를 내준
오여사 마저 수아로 인해 자신의 트라우마를 직시하게 되고 둘은 마치 거울처럼 상대에게서
자신의 내면을 보게된다. 이 지점에서 수아가 조롱한 ‘오여사’라는 별명은
샤를 오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의미로 전환된다.
보조 캐릭터들의 활약
그리하여 까칠 손녀와 이상한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흥미진진하게 이어지는데
말했듯이 이 책의 묘미는 독특한 캐릭터를 만나는데에 있다.
수아를 통제하려 들지만, 오히려 끌려다니는 빽여사, 우아하고 새침한 개 금달이,
정석대로 살 것 같지만 의외의 매력을 지닌 안정석,
또래와는 급이 다른 세련미를 갖춘 한세련등
네이밍과 기막히게 조화를 이룬 이들의 활약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더구나 시리즈로 기획된다니 좀 더 본격적으로 전개될 저들의 모습이 궁금하지 않는가?
앞으로 보여줄 다채로운 이야기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