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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할미 스타 ㅣ 리틀씨앤톡 모두의 동화 29
이조은 지음, 홍연시 그림 / 리틀씨앤톡 / 2022년 6월
평점 :
색다른 할머니 캐릭터
이 책에 등장하는 할머니 캐릭터는 언뜻 보면 비호감에 가깝다. 특히 엄마들 입장에서 보면 더욱 그렇게 느껴질 것이다. 아이들에게 책을 선택해주는 사람이 엄마를 비롯한 어른들이라고 생각해 볼 때 작가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답은 책 뒤 작가의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이들은 칭찬과 꾸중을 통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고통을 통해 스스로 배우고 자란다는 동화작가 뇌스틀링거의 말을 인용한 것을 보면 작가가 아이들을 얼마나 독립된 주체로 보는지 알 수가 있다.
이준이의 할머니는 어른들이 금기시하는 거의 대부분을 허용해 준다. 전설적인 캐릭터 삐삐롱스타킹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한참 못 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할머니 캐릭터가 불편하다면 그만큼 우리 사회가 어린이의 본성을 외면해 온 탓이리라.
'어찌나 신나게 놀았던지 놀다가 죽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지요.'라고 말한 말괄양이 삐삐의 작가는 아이가 어떤 마음인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속속들이 알고 가려운 곳을 찾아 긁어 주고 다독여 주었던 캐릭터를 이미 반 세기전에 선보였고 인정받았는데 말이다.
아이들에게 어른이란?
아이들에게 행해지는 어른들의 과오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지나친 책임감(?) 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의 삶은 어른들이 책임져 주어야 하는 걸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른은 책임져 주는 존재라기보다 지켜봐 줘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특히 아이들 특유의 호기심과 시행착오를 묵묵히 응원하고 허용하면서 아이들 스스로 손을 내밀 때 할 수 있는 만큼의 역할만 해 주면 충분하다고 본다.
우리 주변엔 의외로 성인 아이가 많다. 그 원인의 대부분은 지나친 부모의 통제와 과보호 속에 자라온 아이들이 성장 동력을 잃은 채 자라 성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아이들의 본분
따지고 보면 아이들의 본분은 당연히 노는 거다. 생존에 필요한 사회성과 적응력은 암기식 교육이 아닌 놀이를 통해 배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 교육도 모자라 학원등 사교육을 당연시 여기는 풍토가 오래되다 보니 어느새 놀이는 시간 낭비며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나의 미래’ 라는 첫 문장과 멋진 할아버지가 되겠다는 주인공의 마지막 다짐은 책을 다 읽고 나면 꽤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아이들을 억압하는 어른들의 지나친 교육열과 책임감은 바로 미래의 삶을 준비시키기 위한 과정 때문이다. 과연 성공한 삶,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특히 주인공의 경우 사육사가 꿈이었지만 할머니를 통해 길고양이를 돌보게 되면서 자신의 꿈이 얼마나 추상적이고 단편적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동물원에서 본 아기 호랑이가 귀여워서 사육사가 되고 싶어하는 이준과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통제하고 보호 하려고만 하는 부모들의 교육렬은 언뜻 다른 듯 싶지만 같다고 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해서 자기 만족에 가까운 애정법인 것이다. 할머니는 그런 이준에게 사육이 아닌 고양이에 대한 보살핌에 눈뜨게 함으로서 어린이와 어른 독자에게 의미있는 메세지를 던진다.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은 나라 대한민국
학벌과 경쟁 위주의 풍토가 얼마나 우리 삶을 팍팍하게 내몰았는지는 OECD 최고의 출산률 저하로 이미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이준이 할머니 캐릭터는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은 나라 대한민국을 현주소를 통렬하게 비판하며 아주 솔직하게 다가선다. 인생 살아보면 별거 없다고. 그리고 이준이 엄마인 딸과의 갈등을 통해 보여주듯 어른도 아이처럼 시행착오를 겪는 불완전한 존재이며 서로를 향한 진심만이 갈등을 푸는 열쇠임을 말이다.
우연과 오해사이
놀기 좋아하고 집안일과 자식조차 등한시한 채 연락을 끊어버린 할머니를 원망한 이준의 엄마는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난 할머니가 실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음을 깨달으며 오랜 애정 결핍을 극복하게 된다. 자신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 있었기에 딸이 집을 잃을 위기 상황을 포착하고 나타나 전 재산을 털어 도울 수 있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자신이 생각한 어머니는 결코 그런 존재가 아니었기에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이준의 엄마는 비로소 할머니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에게 몰입하는 삶
이준의 할머니는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확실히 바람직한 어른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때론 고개를 갸웃하게 할 정도로 엉뚱한 철학을 펼쳐 어른들을 곤란하게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 중요한 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짚고 있다. 호기심과 즐거움을 충족하며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 것이 모든 것에 우선 되어야 함을 말이다. 때론 불량식품을 먹고 학원을 빠진 채 땡땡이 치고 숙제 대신 꾸지람 듣더라도 아이들은 결코 어른들의 일방적인 통제를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님을. 그리고 뭐 대단한 걸 이루지 않더라도 자신에게 몰입하고 즐겁게 사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게 삶이라는 걸 일깨워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