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깡통 집 햇살어린이 48
김송순 지음, 유연경 그림 / 현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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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 상처받고 실망한 이 책의 주인공 찬우를 만나면서 어릴 적 한 단면이 떠올랐다. 어릴 때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은 뭐든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른들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것이 짜증 났고 말 잘 듣기를 은근히 강요받는 것도 부당하게 느껴졌다.

“엄마는 좋겠다. 어른이라서…….”

 나도 모르게 무심코 던진 말에 엄마는 한숨 쉬며 이렇게 답했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걱정이 많아진다는 거야.”

그러면서 엄마는 쓸쓸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었다. 가슴 한편을 슥 스치는 서늘함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이제 나는 엄마가 말한 걱정이라는 것이 삶의 무게라는 것과 성장해야 하는 것은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게 된 나이가 되었다.

 

찬우는 우울증에 빠진 엄마의 짜증과 방임 속에 또래 집단에서 소외되고 폭력에 노출된다. 결국, 심한 트라우마까지 얻게 된다. 일탈과 게임으로 돌파구를 찾다 보니 소위 골치 아픈 말썽꾸러기가 되어 버렸고 감당할 수 없게 된 엄마는 겨울방학을 맞아 찬우를 귀찮다는 듯 별거 중인 아빠에게 떠넘긴다. 결손가정 아이의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다 읽고 보니 한 가족의 성장통을 다룬 이야기였다. 찬우의 부모는 확실히 바람직한 부모상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섣불리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는다. 담담하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찬우의 좌충우돌 일상을 보여 준다. 그러면서 찬우 부모가 처한 각자의 입장차와 갈등을 자연스레 노출한다. 오리를 대하는 찬우의 심리적인 변화를 통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스스로 성장하는 삶에 관해 담담히 이야기한다. 사랑을 갈구했던 찬우의 내적 결핍과 상처는 자신보다 약한 존재였던 오리를 진심으로 보살피게 되면서 치유 된다.

내용과 결이 전혀 다르지만, 제목이 비슷한<깡통 소년>이란 책이 있다. 미숙한 어른과 조숙한 아이의 좌충우돌 성장을 다룬 그 책의 저자 뇌스틀링거는 ‘칭찬과 꾸중을 통해 아이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들이 겪은 고통과 경험을 통해 아이들 스스로 배우고 자란다.’라고 일침을 가했었다.

 

이 책 <아빠의 깡통집>은 섣불리 이해를 구하거나 아이들을 가르치려 들지 않아서 좋았다. 찬우가 봄이라고 이름 붙인 오리와 애착 관계를 형성해 가는 것을 보면 어딘지 찬우와 부모와의 관계를 연상케 하는 면이 있다. 준비 없이 시작된 부모 역할은 예측하지 못한 현실과 상황에 부딪혀 삐걱거리고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만다. 실은 어른들은 그런 존재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를 보호해주고 감싸 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제 삶이 버거워 의무를 망각하고 손 놓기도 하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엄마에 대한 애착의 끈을 놓지 않고 무작정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찬우를 변화시킨 것은 어른들이라기보다는 자신으로 인해 상처 입은 약한 존재를 떠맡게 되면서 느끼게 된 책임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무엇인가를 책임지는 존재가 되었을 때 찬우는 비로소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거다. 이 책 뒷부분에 언급되고 있는 ‘여전히 쌀쌀맞은 엄마였다. 그런데도 나는 그 문자를 몇 번이고 들여다보며 벙실대고 있었다. 엄마는 분명히 나에게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고 한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찬우는 이제 부모의 사랑을 무작정 갈구하는 나약한 아이가 아니라 여유 있게 부모를 기다려 줄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났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앞으로는 찬우가 어떠한 상황에서든 용기있게  단단한 삶을 살겠구나 하고 안심할 수 있었다. 더불어 어른과 아이의 삶을 동등하게 다루며 희망을 보여 준 작가의 시각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어른도 아이처럼 상처받고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성찰하고 성장해가는 존재임을 어린이 독자에게 솔직히 고백한다는 점에서 남다른 감동이 느껴지는 동화였다.

 

 

여전히 쌀쌀맞은 우리 엄마였다. 그런데도 나는 그 문자를 몇번이나 보며 벙실대고 있었다. 엄마는 분명히 나에게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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