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이빨과 말하는 발가락 돌개바람 39
정승희 지음, 김미경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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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리뷰를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 얼마 전까지 TV에서 자주 보던 한 탤런트의 교통사고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나하고 아무 연고도 없고 다만 드라마를 통해 가끔 접했을 뿐인 타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도 이렇게 먹먹한데…가족들은 얼마나 허망할까. 감히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가 이 책이 새삼 달리 보였다. 나도 모르게 책을 처음부터 다시 펼쳤다.

[괴물 이빨과 말 말하는 발가락] 책 제목만으로 보면 의인화 동화인가 싶은데 다 읽고 보면 용서와 화해에 관한 이야기이다. 동화 소재로 쉽지 않은 죽음을 다루고 있음에도 이 책은 어린이 독자를 썩 잘 배려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첫 장을 열면 마치 시 한 줄 한 줄을 옮겨놓은 듯한 소제목들을 만나게 된다. 앙상한 가지를 뻗고 있는 나무뿌리를 배경으로 세로줄로 나열된 글자들은 이 책이 어떤 정조로 독자들에게 다가가려 하는지 짐작하게 한다.

이야기는 괴물 이빨이라는 다소 엽기적 별명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의 일상적인 아침에서 시작해 어른의 관점에서 보면 심상치 않은 전조들을 비교적 담담하게 풀어간다. 일상에서 조금씩 어긋나고 있는 미묘한 균열들이 천진한 아이의 시점에서 다루어져 더 특별한 정서를 자아낸다. 긴장되고 심각한 상황을 어린이 독자에게 무겁지 않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예기치 않은 할아버지의 사고는 해소되지 않은 어른들 간의 갈등상황에서 갑작스레 일어나고 폭설로 묶인 초조한 마음은 그래서 더욱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주인공은 기차를 타게 된 것이 운 좋게 받아들여지는 아직은 철없고 천진한 아이다. 엄마의 다급한 상황은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처럼 한걸음 떨어져 있다. 이 책은 묘미는 바로 이 시점에 있다. 긴장의 끝에 닿아있는 어른들의 감정은 짧은 통화와 넋 놓고 있는 슬픈 표정으로 스케치 된다. 그런 가운데 동호는 무심하게 졸다가 괴물 이빨이라고 놀림 받는 상황이 투영된 짧은 꿈을 꾸다가 깨기도 하고 겨울나무와 실 거미에 시선이 머물기도 한다. 뜻하지 않게 동호가 겪게 되는 거미의 죽음은 할아버지의 위독한 상황에 복선처럼 깔리면서 어린 동호는 물론 독자들 마음에도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자책과 회한 때문에 더욱 간절할 수밖에 없는 엄마의 염원을 느낀 어린 동호는 어떻게든 할아버지가 엄마에게 응답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이답게 텔레파시를 보내는 발상을 한다. 그 간절함은 아무도 보지 못한 할아버지의 발가락 신호를 목격하게 한다. 뒤늦게 밝혀진 엄마와 할아버지의 갈등원인을 동호와 엄마와의 갈등요소이기도 한 괴물 이빨과 무관하지 않게 풀어간 점에서 상처와 결핍을 다루는 작가의 탁월한 솜씨를 엿볼 수 있다. 엄마에겐 결핍이 되었던 요소가 동호에겐 속박으로 작용하는 것을 통해 유전으로 대물림된 콤플렉스와 부모, 자식 간에 어긋난 애정표현을 절묘하게 잘 포착함으로써 정서적 여운을 증폭시킨다. 상처가 큰 만큼 원망도 크게 마련이고 뒤늦게 찾아온 자책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순환되기 마련이다. 이 이야기는 그 아프고 슬픈 연결고리가 동호의 천진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인해 기적처럼 용서와 화해로 전환 되는 이야기다.

  흔히들 죽음은 예기치 않게 순서 없이 온다고들 한다. 죽음을 앞에 두고, 가장 두려운 지점은 나의 죽음이 아닌 바로 너의 죽음에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자책, 공포 등의 감정은 온전히 남은 자의 몫이기 때문일 거다. 나의 죽음을 앞에 둔 사랑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과연 어떤 용서와 화해의 신호를 보낼 수 있을 것인가. 새삼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었다.

 

 

화 난 거 푸세요, 할아버지. 엄마가 발가락 움직여 보라고 하니까 한번만 움직여 주세요. 그래야 엄마 얼굴이 환해져요. 동호는 속으로 할아버지한테 텔레파시를 계속 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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