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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달 ㅣ 문학동네 청소년 38
최영희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9월
평점 :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흔전동은 언뜻 이상의 시 오감도에 등장하는 막다른 골목을 떠올리게 한다. 까마귀가 내려다보는 불길한 공간, 두려움에 사로잡힌 13인의 아해가 질주하는 막다른 골목은 연결도로 없음 표지로 가로막힌 흔전동 이미지와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책에서 만난 구달이라는 아이는 이름만큼이나 낯설고 생소한 캐릭터다. 이제는 한물간 것으로 취급하는 미국 TV 시리즈의 사이보그 캐릭터 소머즈처럼 특별한 청력을 얻게 된 목적성을 비교해봐도 능력자보다는 피해자에 가깝다. 소재가 된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해 보면 자칫 좀비물이 될 뻔한 이야기가 히어로물이 된 셈인데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소외된 이들과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연민과 긍정적인 시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어나자마자 엄마한테 버림받은 사생아. 졸지에 떠안은 아버지는 그 밤에 달이 보였다는 이유로 성의 없는 이름을 지어주고 노름 빛에 쫓기면서 방치하듯 키우더니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딸을 실험체로 떠넘긴 채 종적을 감춘다. 곳곳의 연결도로가 막힌 흔전동 재개발구역은 삶의 터전이라기보다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질 운명처럼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공간이다. 지금 당장 사라져도 아무도 찾아줄 사람이 없는 존재들. 이들은 단지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실험체로 이용된다. 다분히 공포의 소재가 될 법한 칙칙한 배경과 더불어 바이러스, 감염, 실험 부작용, 고립, 은둔의 이미지들을 작가는 불길한 전조가 아니라 연민과 탐색의 연결고리로 전환 시킨다. 불우이웃에 가까운 십 대 소녀 구달의 처지를 보면 아무리 봐도 주인공은커녕 좀비가 되는 것이 훨씬 설득력 있을법한데 이 절망적인 캐릭터에 인간애와 유머라는 실핏줄 같은 생명력을 불어넣어 상황을 반전시킨다. 공직구, 승률, 최주아, 홍세라등 주변 인물들이 처한 상황, 심지어 구달의 초능력조차도 실험의 부작용에서 비롯되어 어쩌면 혐오와 경계의 대상이 될 법한 요소들임에도 기존 서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꽤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전개시킨다. 그렇게 익숙한 공식과는 전혀 다른 새롭고 독특한 시각을 작가는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이 이야기는 언뜻 주인공 구달의 영웅기처럼 보이지만 치유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구달의 청력이 초능력에 가깝다고 해도 다르게 보면 실험 부작용에 의한 이상증세다. 이 병증이 단순한 증세에 그치지 않고 초능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구달의 내면에 있던 삶에 대한 강한 긍정, 이웃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자칫 좀비 내지는 괴물이 될뻔했던 존재들. 구달은 고립되어가는 그들의 소리를 통해 자신의 존재 의미와 연결고리를 찾아낸다. 그렇게 타인을 통해 자신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자기 안에 뿌리내린 괴생명체에도 잠식되지 않고 오히려 공존하고자 하는 과감한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하루가 멀다고 핵 공방을 일삼는 권력자들. 무자비한 자본과 권력의 횡포에 무심코 자기 결정권조차 잃어가는 사람들. 우리나라, 사회가 처한 현실은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흔전동 상황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주류에서 소외된 소시민들은 좀비와 다른 바 없는 삶에 내몰리는 현실에 처해있다. 구달은 우리에게 좀비가 될지 초능력자가 될지 선택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답고 자 하는 의지와 타인에 대한 연민을 놓지 않는 한 우리 안에 어떤 바이러스가 들어와도 자아를 굴복시킬 수 없다는 것을. 그리하여 막다른 골목만 있는 황량한 환경조차 제법 살아갈 만한 희망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이상의 시 오감도는 원래 제목이 조감도였으나 한자에 점 하나가 잘못 찍혀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해 불길함을 더한 제목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이 책 구달은 불길한 전조가 깔린 막다른 골목길의 질주가 공포를 극복한 아해들로 인해 소통을 향한 질주로 전환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원래의 제목 조감도의 의미처럼 높이 난 새가 넓게 내려다본 세상이 어떤 풍경이 될지는 결국 우리 각자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것을 묵직한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