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원 ㅣ 웅진책마을 135
이조은 지음, 김준하 그림 / 웅진주니어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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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첫 문장엔 많은 것이 담겨있다.

‘마누가 눈을 떴다.’는 단순히 물리적으로 눈을 뜬 것 뿐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즉 달라진 세계관도 의미한다.

로봇 마누를 깨운 하나는 말을 해 본 적이 없는 아이다. 인류가 사라진 지구에서 혼자서 떠돌다가 마누를 만나 이름을 얻게 되고 말을 배우게 되는 아이.

인류가 주관적 자의식을 갖게 된 것은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면서부터라고 한다.

명사(이름)을 갖게 되면서 타자와 자신을 구분하게 되었고 죽은 자를 기억하게 되면서

영혼의 개념이 싹텄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말을 모르던 하나가 로봇 마누로부터 말을 배우게 되고 변화되는 과정은 의미심장하다.


우월한 지능을 가졌지만, 머리만 있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 하는 로봇,

말도 할 줄 모르고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 주인을 간절히 원하는 인공지능 자동차. 그리고 기형 동물인 별.

이 이야기는 인간에 의해 창조된 존재들을 통해 인간의 실체에 접근하고자 한다.

마누와 하나의 소통은 언어가 아닌 불완전한 텔레파시(교감)를 통해 시작된다.

 

이들 앞에 펼쳐진 세상은 핵폭발로 황폐해진 환경과 방사능에 오염되거나 변종이 된 기형생명체뿐이다. 모든 게 비정상적이고 충격적으로만 보이는 마누. 하지만 하나와 떠버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다. 변종 생명체로부터의 공격을 견디며 간신히 찾아간 바이오 연구소에는 달기지에서 파견된 안드로이드 이오가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코드넘버 뒷자리 숫자 25에서 따온 이름, 이오는 마누, 하나, 떠버리, 별과는 결이 다른 이름이다. 인류가 인공진화 되면서 가족관계가 사라지고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던 세상에서 만들어진 존재들이 의미를 담아 지어 부르던 것과 달리 이오는 이름조차 그냥 번호로 남기를 희망한다. 좀비와 같은 모습의 이오 캐릭터 또한 지구에서는 이미 죽거나 떠난 존재인 인간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이오는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의 욕망을 담은 껍데기라고 할 수 있다. 달기지로 대피한 인류는 과학기술에 의지한 나머지 자연으로부터 스스로 격리하고 소외된 인류의 극단을 보여준다. 어쩌면 지구에 남겨진 로봇등 인간의 잔재들은 이오와 같은 운명이었을지 모른다.


마누는 이오로부터 <프로젝트 원>에 대해 듣게 되고 지구에 인류의 역사를 다시 시작되게 하는, 즉 인류를 지구로 돌아오게 하는 계획에 기꺼이 동참한다. 그 첫 번째 활동이 기형적으로 변질된 지구 생태계를 바로 잡고자 기형 동물을 없애는 일이다. 인류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둔 마누의 선택에서 우리는 악의 평범성과 딜레마를 엿볼 수 있다. 유대인들을 학살했던 독일인들, 팔레스타인을 공격하는 유대인들에서 볼 수 있듯이 인류의 역사에 상처를 남긴 학살의 주범들은 따지고 보면 평범한 이웃이었고 심지어 피해자였던 적도 있다. 그렇게 거창한 예가 아니더라고 이 책에서 다룬 것과 비슷한 예를 거론해 본다면 구제역 파동 등으로 인한 대규모 가축학살을 들 수 있다.  이렇듯 우선순위를 무엇에 두느냐에 따라 문명화된 인류는 마누처럼 본의 아니게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존재다.

자연을 이용가치로 대하는 마누의 시각은 문명화된 인간의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다. 바이오 캡슐을 섭취했을 때의 하나는 어찌 보면 로봇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다 기형 동물인 별이와 교감하고 바이오캡슐이 떨어진 것을 계기로 생존을 위해 과일을 따 먹고 동물을 사냥하게 되면서 하나는 자신이 생명체라는 자각을 하게 된다. 생명체의 희생을 통해 역설적으로 자신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우선순위를 인류의 생존에 둔 마누의 선택이나 생존을 위한 하나의 사냥은 언뜻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두려움이다.

 

마누는 기형생명체가 인류의 생존에 위협이 될 거라는 두려움을 받아들이지만, 정작 생존을 위해 사냥까지 했던 하나는 다 죽일 수 없다며 막아선다. 생명체로서의 자각과 동질감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것은 두려움을 넘어선 연민에서 비롯된 것이며 자연의 희생에 감사함과 경외감을 가졌던 원시 인류의 관점과 일맥상통한다. 반면 마누의 결정은 문명화된 시스템 속에서 자연을 이용하는 현대인의 합리성에 닿아 있다.

 

아무나 주인으로 섬기는 로봇이 아니라며 우월감을 느끼던 로봇과 하나와의 관계는 언뜻 어른과 아이의 관계(부모와 자식)와도 비슷해 보인다. 어른에게 의지하던 아이가 자라면서 자신의 경험과 자의식이 싹트고 어른을 통해 본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되듯 하나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자신의 세계관을 통해서 마누가 기성의 편협된 시각에서 벗어나도록 선도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하며 인간 중심으로 계획된 프로젝트원은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를 넘어 함께 성장하고 꿈꾸는 존재로 거듭나는 세계관을 담게 된다. 생명이 없는 존재들은 과연 영혼과 무관한 것인가 하는 묵직한 질문과 함께 범 우주적 관점에서 봤을 때 인류는 과연 지구에서 영혼을 가진 존재답게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한 걸음 떨어져서 생각해 보게 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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