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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손이 두부 - 제1회 비룡소 역사동화상 수상작 ㅣ 일공일삼 107
모세영 지음, 강전희 그림 / 비룡소 / 2023년 3월
평점 :
우리가 일본에 전파한 문화는 수 없이 많지만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도자기일 것이다. 그 유래가 임진왜란 때 끌려간 도공들에서 비롯하였다는 건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이야기는 그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사실을 발굴해 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주인공 막손이의 고백이다.
“아재 배 위에서 아버지를 잃고 난 후, 저는 다른 아이가 되었습니다. 저는 조선인도 왜인도 아닌 도래인이 된 것입니다. 부모를 잃은 것처럼 나라도 잃었던 것입니다. 그저 살아남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외세의 침입이 잦았던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수많은 우리 선조들이 본의 아니게 북쪽 오랑캐나 왜구의 포로가 되어야 했다. 그런데도 그들의 삶을 조망한 이야기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단일민족에 대한 자부심 이면엔 나라가 지켜주지 못한 이들의 삶이 철저히 외면되고 있었던 거다. 설사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간다 해도 환영받지 못했던 이들. 이 책은 이렇듯 역사의 뒤안길에서 비극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 극복하고 낯선 이국땅에 뿌리를 내려 의미 있는 역할을 해낸 아이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욱 뭉클하게 다가왔다. 단일민족이란 자부심 뒤엔 그만큼 배타적이라는 역설 또한 작용하고 있었음을 어른이 되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대한 교육으로 그저 막연히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던 나는 처음 일본 여행을 갔을 때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일본인들이 정작 그들이 저지른 침략사에 대해 잘 모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를 침략사가 아닌 조선 근대화의 역사라고 망언하며 우기는 배경에는 그러한 무지가 한몫했을 터다. 따지고 보면 임진왜란은 조선 백성에게만 고통을 준 것이 아니다.
토요토미 정권의 야욕으로 남자들이 죄다 전쟁에 동원되면서 가세가 기울고 대가 끊길 위기에 처한 일본 백성의 삶 또한 처참하기는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오죽하면 명분 없는 싸움에 자신의 조총부대를 이끌고 조선에 귀화한 김충선 장군 같은 이도 있었으니 말이다.
조선은 또 어떤가.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하는 임금은 도성을 버리고 도망가기에 바빴고 오히려 이순신 같은 충신의 앞길을 가로막기에 이르렀으니 일본과 한국의 위정자들은 그저 제 욕심을 채우고 저 살기에 바빴던 거다. 그러한 현상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것 같아 씁쓸함마저 안겨준다. 이 책이 특히 눈에 띄는 지점이 바로 그런 관점이다.
역사를 전공한 저자답게 침략자에 대한 혐오와 적개심을 넘어 성숙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담담히 풀어간 막손이의 삶을 통해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은 같다는 것과 어떠한 어려움에 부닥치더라도 삶을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개인의 노력과 의지에 달렸다는 것을 말이다.
진정한 애국은 위정자들이 아닌 제 자리에서 묵묵히 삶을 감당해낸 민초들이 실천 하고 있었음을.
조선의 두부를 재현한 막손이에겐 돈을 벌겠다는 욕심도 그 어떠한 야욕도 개입되지 않았다. 단지 고향의 맛을 재현하겠다는 그리움과 간절함이 진정한 문화 교류의 물꼬를 튼 셈이다.
침략 야욕을 근대화의 치적으로 위장하는 뻔뻔함에 치를 떨며 참담함을 느껴야 하는 요즘, 새삼 와 닿은 이야기였다. 일본과 한국 위정자들의 몰염치와 무능은 어찌 이리도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지……. 위기감을 느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손이와 같이 묵묵히 자신의 삶을 개척해 가는 미래세대에 희망을 걸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