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캐는 시간 서해문집 청소년문학 12
윤혜숙 지음 / 서해문집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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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을 쓰는 것이 불법인 시대가 있었다.

조선어 학회의 시골말 캐기 운동, 배재고보 문예부의 교지 복간,

춘천고보의 상록회 사건을 중심에 놓고 전개되는 사전원고 말 모이를

지켜내는 내용이라는 책 소개를 보면 자못 비장한 분위기가 도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아니면 그 시대에 유행했던 계몽소설의 클리셰를 접하게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주인공부터

반전이었다. 애국심은 고사하고 제 한 몸 건사하기에 바쁜, 요즘 입시생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주인공 캐릭터가 오히려 흥미를 끌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백년전이라는 시대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요즘 청소년들의 이야기처럼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선생님과 후원자나 다름없는 사람의 권유로 마지 못해 문예부에 들어가게 된 민위와

종로 경찰서 순사 부장의 아들로 순전히 연애편지를 쓰려는 목적밖에 없는 불량학생 규태의 조합, 거기에 백석의 시에 푹 빠진 일본 여학생 노리코. 이 소녀는 한발 더 나아가

조선문학을 공부하고 싶어하는 일본 소녀로 설정되어 있다. 이렇듯 전형성을 벗어난 캐릭터와

인물 구도로 암울한 시대 상황과 무거운 주제를 풋풋한 십대들의 이야기로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그래서 단지 민족의식에 기초한 우리말 보존이라는 명분에 머물지 않고 우리말이 가진

장점과 매력에 접근하게 하면서 흠뻑 빠져들게 한다.

우리말을 발굴하고 사전원고를 지키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말을 지키고자 했던 아이들의 노력과 열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영어 사대주의에 빠진 듯 자발적 국적 불명의 언어를 남발하는 요즘 세태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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