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교실 1 : 수상한 문 그래 책이야 31
소연 지음, 유준재 그림 / 잇츠북어린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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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교실이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어린이 독자라면 대뜸 손부터 뻗게 될 것 같았다.

아이들의 욕망을 이렇듯 절묘하게 포착한 제목이 있을까 싶다.

이야기는 언뜻 학창시절 한 번쯤 들어 봤을 법한 괴담을 변주한 것 같지만 읽다 보면

괴담의 형식을 가져왔을 뿐 전혀 다른 판타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동화에서 판타지는 동심 속에 자리한 내적 결핍과 욕망에 닿아 있게 마련이다.

바로라는 담임 선생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의 주인공 한이와 시우 역시

고압적이고 강압적인 학교생활에 짓눌려 있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할 수 있었던 유일한 돌파구는 땅을 파는 일이었다.

나는 이 장면에서 속칭 삽질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삽질하다는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쓸모없는 일을하다는 뜻으로 쓰이는

한국의 관용어라는 설명이 나온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운동장에 쪼그려 앉아 땅을 파는 아이들, 이 아이들이 파내는 것은

딱지나 구슬 동전들이다. 언뜻 아이들의 행위만큼이나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나

한때는 아이들의 소중한 놀잇감이었던 보물들이다.

바로 이 장면에서 작가는 독자들에게 전복된 시각을 제시한다.

공부하는 것이 과연 아이들의 본분인가? 하는 의문이다.

운동장에서 신나게괴담의 진원지인 동상 아래 씌여 있다는 말은

원래 아이들이 본분이 무엇이었는지를 항변하고 있다.

그렇다. 아이들의 본분은 원래 신나게 어울려 노는 것인데 괴담 속 동상들이

12시만 되면 신나게 뛰어 놀다가 새벽 4시만 되면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말에선

씁쓸한 여운마저 준다. 학교, 학원, 집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도는 아이들에게

돌파구가 될 공간과 시간이 밤 12시 이후의 운동장이라는 비현실적인 시간대와

공간뿐이라는 걸 풍자 하는 것 같아서다.

어른들이 어렸을 때 천지에 널렸던 공터는 개발이란 미명하에 자취를 감췄고 그나마

아파트를 중심으로 드문드문 있던 놀이터마저 출산률 저하로 아이들이 줄면서

주차장으로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

친구들과 경쟁하느라 밤늦은 시간까지 학원을 전전하는 아이들의 현실이야말로 괴담보다

더한 공포스러운 현실이 아닌가 말이다.

결국, 놀 권리를 박탈당한 아이들이 다른 곳도 아닌 학교 운동장을 삽질한 끝에

돌파구를 찾게 되는데 그곳 역시 교실이다.

아이들이 내적 결핍을 해소할 공간이 억압의 기재로 작동하던 학교라는 설정도

묘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억압의 틀은 아이들의 상상력에 의해 무장해제 되면서

폭발적인 카타르시스를 창출해 내는 장소로 뒤바뀐다.

비밀 교실에서 내적 억압을 해소하고 온 아이들은 현실에 훨씬 유연하게 대처하게 된다.

이렇듯 이 책의 작가는 유쾌한 전복을 통해 아이들에게 상상력의 힘을 길러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그러나 어찌 아이들 뿐이겠는가? 팍팍한 삶에 어른들 역시 돌파구가 필요한 현실이다,

비밀 교실의 키를 얻은 아이들의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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