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사는 숲 낮은산 작은숲 21
임어진 지음, 홍선주 그림 / 낮은산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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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같은 분위기의 이 책은 영상매체에 설 자리를 잃어가는 종이책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아이들 눈높이 맞춰서 이야기를 의인화시킨 접근방식도 절묘하다. 작가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서 착안했다고 했지만, 동양적 신비스러움을 살린 신화적 요소를 강화해 색다른 분위기의 이야기로 창작해 낸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기존의 잘 알려진 이야기가 어떻게 거듭날 수 있는지 보여준 좋은 사례로 작가의 내공이 엿보인다. 이야기라는 소제를 잘 활용해 큰 줄기가 되는 서사와 곁가지가 되는 이야기들을 유기적으로 잘 엮어 내었다. 그런 면에서 쫓겨난 이야기들이 나무가 되어 숲을 이룬다는 설정은 아주 탁월한 발상이었다고 본다. 중심이야기가 구전되면서 살이 붙고 다양한 버전으로 발전해 나가는 이야기 특유의 특성을 잘 반영해 이미지화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과정이 마치 나무가 가지를 뻗어 큰 아름드리나무로 성장하는 과정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나무에 깃드는 들짐승과 날짐승, 그늘에 쉬어가는 사람들까지 골고루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렇듯 이 책은 이야기의 속성을 잘 파고든 발상과 구성 외에 깊이 있는 서사를 상징적이고 신비한 분위기로 녹여내어 정서적 여운을 크게 살렸다. 종이의 원료가 나무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얼마 전 한 작가가 인류사에 종이만큼 완벽한 발명품이 없다고 한 말이 생각난다. 종이는 보존만 잘하면 천년을 가는 데 비해 최근의 디지털 기기는 계정이 바뀌거나 모델만 바뀌어도 접근할 수가 없다. 말 그대로 저장되어 있던 데이터와 정보가 순식간에 증발할 수 있다는 거다. 현세에서도 그러니 천년 후의 후세는 말해 무엇하랴. 우리는 각종 스토리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책에 담겼던 이야기들은 빠르게 영상매체로 전환되면서 시각적 이미지로 변모하고 있다. 그 와중에 같은 이야기라도 독자 개개인이 누렸던 상상과 이미지는 증발해 버렸다. 획일화된 이미지에 갇혀 개별적 상상력은 뻗어 나갈 길을 잃은 이 시대에 종이책이 갖는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요즘 책이 잘 안 팔린다고 한다. 점점 더 안 팔릴 거라고도 한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이 책은 독서야말로 이야기를 지키는 길이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책을 가까이하는 어린이 독자야말로 이야기의 수호자라는 것을…….

책은 사람들이 자주 매만져 손때가 묻었다. 그럴수록 이야기는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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