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 게 별로 없었지만 실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존자 씨와 병찬 씨. 그들의 생애는 서로를 살리며 흘러왔다.
한 고생이 끝나면 다음 고생이 있는 생이었다. 어떻게 자라야겠다고 다짐할 새도 없이 자라버리는 시간이었다.
고단한 생로병사 속에서 태어나고 만난 당신들, 내 엄마를 낳은 당신들, 해가 지면 저녁상을 차리고 이야기를 지어내는 당신들, 계속해서 서로를 살리는 당신들, 말로 다할수 없는 생명력이 그들에게서 엄마를 거쳐 나에게로 흘러왔다. 그들의 엄마, 그 엄마의 엄마, 그 엄마의 엄마의 엄마로부터 흘러내려온 생명력일 것이다. 어쨌거나 생을 낙관하며, 그리고 생을 감사해하며,
알 수 없는 이 흐름을 나는 그저 사랑의 무한 반복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들이 나의 수호신들 중 하나였음을 이제는 알겠다. 기쁨 곁에 따르는 공포와, 절망 옆에 깃드는 희망 사이에서 계속되는 사랑을 존자 씨와 병찬 씨를 통해본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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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헛소리라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다. 망해가는 시골 행성에서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팔 수 있는 것이 그런 이국적 경험 말고 달리 뭐가 있을까.
덕분에 이 서점의 책들은 읽히지 않음으로써 가치를 부여받았다. 세상에는 이해하기 힘든 취향을 가진 사람들도 조금씩은 있기 마련이라, 서점에 들어선 사람들 중 일부는 감탄하며, 신이 나서, 혹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책을 사서 돌아간다. 그런 고객들 덕분에 매출은 서점이 유지될 정도로는 꾸준했다.
하지만 나는 팔려나간 책들의 내용이 영원히 미지로 남으리라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슬펐다. 행성어를 아는 사람은 이제 은하계 전역에 수백 명밖에 남지 않은 데다, 행성어를 모어로쓰는 이곳 주민들은 이런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서점에는 관심이 없으니, 이 책의 독자들은 언젠가 멸종하고 말 것이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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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는 않지? 고맙다고 말을 한다고 해서 고생이 줄어드는 건 아니니까."

젊은 사람들은 못 믿겠지만, 인간은 60세가 넘어서 크게 성장하는 존재입니다. 그 나이가 되어야 비로소 인생을 내다볼 수 있으며, 젊었을 때부터 품었던 ‘뭐 때문에 사는가’ 하는 물음에도 대답을 찾게 됩니다.

그렇게 세분화되어 인터넷이나 편의점을 통해 한 구좌에 100엔씩 손쉽게 기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 시스템 덕분에 재정 악화로 예산이 삭감된 부문이 큰 도움을 받고 있다.

"우리의 일은 앞으로가 시작입니다. 오래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회를 반드시 실현해야 합니다.

하지만 죽음이란 것은 다루기가 참 힘들다. 왜냐, 타인의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죽음은 경험할 수 없다. 경험했을 때는 이미 죽어 있다.

저출산 고령화나 수명과 건강 수명의 격차, 젊은 사람들의 취직난과 악덕 기업, 노인 요양보호사들의 가혹한 직업 환경 등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모순의 여파가 주부에게 미치는 영향이야말로 이 소설의 포인트다

하지만 그래서 좋은 것이다. 남이기에 조심한다. 배려와 양보는 인간관계의 윤활유 같은 것이다. 그게 없으면 관계가 어그러진다.

자기 일은 가능한 한 스스로 한다.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은 주위에 도움을 청한다. 그러나 한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의지하지 않는다. 각자 자기 맡은 바를, 할 일을 한다. 이 소설에서 제시되는 것은 아주 단순하다. 단순하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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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보험을 부담하고 있는 현역 세대가 해마다 줄고 있다. 머잖아 장기 요양 기금도 바닥날 것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정부는 염치도 없이 ‘부모님 병 수발은 각 가정에서’라는 시대착오적인 방침을 내세웠다.

밥에, 구운 생선에, 간 무와 시금치무침, 그리고 건더기가 가득한 된장국.

영양을 두루 갖춘 메뉴……. 엄마의 기대를 느낀다. 역시 대기업에 취직해야 한다. 선술집 아르바이트는 안 된다.

도쿄 사람들은 남의 집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 이웃 간의 그런 매정한 관계를 두고 적당한 거리다, 품위 있는 사람들이다, 하면서 환영했던 것은 가족 모두가 건강했기 때문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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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한 소년이 있었고, 그의 집에서 들판을 건너면 더는 존재하지 않는 한 소녀가 살았다. 그들은 천 가지 놀이를 만들어냈다. 그녀는 왕비였고 그는 왕이었다. 가을빛에 그녀의 머리가 왕관처럼 빛났다. 그들은 조금씩 한줌 한줌 세상을 수집했다. 하늘이 어둑해지면 머리칼에 나뭇잎이 붙은 채로 헤어졌다.

옛날에 한 소년이 있었고, 그는 한 소녀를 사랑했으며, 그녀의 웃음은 소년이 평생에 걸쳐 답하고 싶은 질문이었다

옛날에 소년이었던 남자, 살아 있는 동안 절대로 다른 여자를 사랑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남자가 그 약속을 지킨 것은 고집스러워서도 심지어는 충실해서도 아니었다. 그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삼 년 반을 숨어 지내고 나니, 자신의 존재조차 모르는 아들에게 품은 사랑을 숨기는 것이 생각할 수도 없는 일 같지는 않았다. 앞으로도 하나뿐인 사랑일 여자를 위해 그래야 한다면. 어쨌거나, 완전히 사라져버린 남자에게 한 가지를 더 숨기는 게 무슨 대수겠는가?

어딘가에 말하고 싶다, 용서하려고 노력해왔다고. 그렇긴 하지만. 살면서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던 때가, 아니 여러 해가 있었다. 추함이 나를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원한을 품을 때 느끼는 어떤 만족감이 있었다. 원한을 자초했다. 바깥에 서 있는 그것을 안으로 불러들였다. 세상을 향해 인상을 썼다. 그러자 세상도 내게 인상을 썼다. 우리는 서로를 향한 혐오의 시선에 묶여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아주 오래전에 분노를 어딘가에 두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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