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 집에 비밀은 없어요."
"비밀이 있는 곳에는 부끄러운 일이 있는 거야." 아주머니가 말한다. "우린 부끄러운 일 같은 거 없어도 돼."
"알겠어요." 나는 울지 않으려고 심호흡을 한다.
아주머니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른다. "넌 너무 어려서 아직 모를 뿐이야."
이 말을 듣자마자 나는 아주머니가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다는 사실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가서 언제나처럼 모르는 일은 모르는 채로 지내고 싶다고 생각한다. - P27

물은 정말 시원하고 깨끗하다.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도 없는 맛, 아빠가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맛이다.  - P30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오솔길을 따라 밭을 다시 지나올때 내가 아주머니의 균형을 잡아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없으면 아주머니는 분명 넘어질 것이다.  - P30

나는 아빠가 한 번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기분이들지 않게 아저씨가 손을 놔줬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힘든 기분이지만 걸어가다 보니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는 집에서의 내 삶과 여기에서의 내 삶의 차이를 가만히내버려 둔다. 아저씨는 내가 발을 맞춰 걸을 수 있도록 보폭을 줄인다. 나는 작은 주택에 사는 아주머니를, 그 여자가 어떻게 걷고 어떻게 말했는지를 생각하다가 사람들 사이에는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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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 언어화될 때 행복했고, 그 행복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던 종류의 감정이라는 걸 가만히 그곳에 앉아 깨닫곤 했다. 가끔은 뜻도 없이 눈물이 나기도 했다. 너무 오래 헤매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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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짧게 웃었다. 사거리에서 혜영은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좌회전 차선에 접어들며 왼쪽 방향지시등을 켰다.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동안 자매는 규칙적인 점멸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담배를 피웠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그 시간이 그날 하루 중가장 좋았다. - P168

어떻게든 미안하지가 않아.
너 어떻게 이러냐? 니가 어떻게 이래?
나 어떻게든 이래. 내가 어떻게든 이래.
전화를 끊은 경애는 내가 룸메이트 시절 자주 본 면벽의 자세로약간 돌출한 입을 오물거리며 오랫동안 자책의 기도를 했을까.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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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데 내게 미리 주어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내가 열정적으로 살 수 있게 해주는 시간과 자유일 것이다 - P27

글을 쓰는 시간은 열정의 시간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도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어떤 영화를 볼 것인지 선택하는 문제에서부터 립스틱을 고르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이 오로지 한 사람만을 향해 이루어졌던 그때에 머물고 싶었기 때문이다. 첫 페이지부터 계속해서 반과거 시제를 쓴 이유는, 끝내고 싶지 않았던 ‘삶이 가장 아름다웠던 그 시절‘
의 영원한 반복을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  - P52

지금 나는 내가 아니면 도저히 읽을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삭제와 교정으로 뒤덮인 원고를 앞에 놓고 있다. 나는 이것이 어떤 결론에도 이르지 않는, 철저히 개인적이고 유치한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의 고백이나 수업시간에 비밀노트 한쪽에 갈겨쓴 외설스러운 낙서처럼, 혹은 아무도 보지 않으리라 확신하면서 조용히 아무 탈 없이 써내려간 일기처럼. 그러나 이 원고를 타자로 치기 시작하고, 마침내 원고가 출판물의 형태로 내앞에 나타나게 되면 내 순진한 생각도 끝장나고 말 것이다. - P60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 P66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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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환경 관련 의사결정에서 환경 파괴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의 의견은 좀체 수렴되지 않는다. 이 사람은 자신들을 직접 고려하지 않은 정책에 가장 크게 휘둘린다. 그렇다 보니 환경 정책을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나 신경 쓰는 정책‘이라고 헐뜯는 그러한 비판이 옳은지 그른지는 차치하고ㅡ사람들에게 본의 아니게 근거를 만들어주는 꼴이 되기도 한다. - P22

이 책에서 내세우는 주장은 그 두 목표의 조화가 얼마든지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국가 건설의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사회국가란 실업, 질병, 빈 - P24

곤 같은 사회적 리스크를 다 함께 감당하는 조직이다. 공해에대한 노출, 에너지를 위시한 천연자원 가격 인상 등 환경 리스크를 전통적인 사회적 보호 조치와 유기적으로 연결하자면 사회국가란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세 개의 축을 따라 나아갈 수 있으며, 그렇게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 P25

마지막으로, 우리의 세 번째 축은 사회국가와 그 영토 사이에 새로운 협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이다. 오늘날 지역사회를 통해 연대를 계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있다.
도시에서, 현재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운동이 즐겨 쓰는용어를 빌리자면 ‘전환마을transition town ‘에서 특히 그래야 한다. 그러한 주장은 부분적으로 일리가 있다. 환경 문제는 주어진 장소에 특정한 문제일 때가 많다. 특정 지역의 토양이심각하게 오염됐다든가, 어느 동네는 건물의 단열이 형편없다든가, 외진 곳이어서 대중교통수단이 없다든가. 시민들의곁에서 이러한 문제를 잘 처리하려면 그 지역 활동가들이라는 인적 자원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지역사회에 일임하는 것도 위험하다. 지역사회 내에서 여러 가지불평등이 되풀이될 수도 있고, 지역사회는 수십 년 앞을 내다보아야 하는 장기적 관건을 처리할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 P27

‘불평등‘ 항목의 첫번째 하위목표는 지금부터 2030년까지 각 나라에서 소득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이21세기 초에 국제사회가 내건 공식 계획에서는, 경제적 불평등 감소가 지속 가능한 개발 계획의 중심에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하위 40퍼센트의 소득이 평균보다 훨씬 빨리 상승해야만 한다. 이 조치가 완벽하지는 않다. 어떤 사람은 빈곤지표를 보지만(하위 40퍼센트에 제한되어 있으므로) 빈곤 문제를 넘어서 일반적 성격의 불평등을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가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불평등은 ‘위에서부터‘ 커지기 시작해서 중산층을 짓누르는데 빈곤 지표로는 그러한 성격을 헤아리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적어도 소득격차 완화라는 목표는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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