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은 한 겹으로 이루어진 게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에 여러 겹의 층이 있어요. 갓 태어난 아기의 눈에 비친 나의 근원적인 층과,
살아가면서 후천적으로 생기는 이런저런 층들, 누가 가르쳐줬다고 할까요, 교육으로 주입됐다고 할까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상식이니 뭐니 하는 것들, 스스로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도 모르게 받아들이게 된 처세 같은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겹겹이 두툼한 층을 이룬 거라, 결국은 지구의 지층과도 같은 것이 나의 마음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내가 요즘 절실히 느끼는 건, 뭐든 따로따로 하나씩 존재하진 않는다는 거예요. 반드시 유사 모방이 있기 마련이라, 지구와 나도 장대한 닮은꼴을 이루고 있습니다.  - P17

애초에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부모고, 자식인가. 부모 자식하면 아이가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걷는 장면이 떠오르는데, 인생은 자식이 성인이 되고 난 뒤가 훨씬 더 길다. 옛날 부모들은 막내가 성인이 될 무렵 세상을 떴다지만, 요즘 부모는 자신이 늙는 건 물론이요 자식이 늙는 것마저 본다. 그렇게 긴 세월이다 보니 언제까지고 부모 자식에 구애받지는 않게 됐다.
어느 한 시기를 함께 보내다 이윽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라져 헤어진다.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 P52

그 넓은 집에 엄마 혼자 남았다. 예전에 비해 한결 몸이 쪼그라든 엄마는 이제 아무 쓸모도 없는 사람이 됐다며 한탄을했지만, 웬걸, 모모코 씨는 이때 엄마로부터 인생에서 가장 큰용기를 얻었다. 그 뒤로도 엄마는 혼자 그 집에서 23년을 살았다. 엄마가 했으니 나도 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엄마에겐 역시 못 당하겠어. 하늘에 건배하고 다시 술을 마셨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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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서, 혹은 나치의 광기 속에서 살아남은 증인으로서 그는 전후 독일 사회에 만연했던 일회적이고 난폭한 과거 청산의 형식을 거부하고, 평생에 걸쳐 "불명예와 절룩이며 그 뒤를 따라오는 부끄러움에 대하여" 썼다. 끊임없이 돌을 굴려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기존의 모든 것들을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그라스의 친위대 복무 이력과 이후의 혼란스러운 정치적 행보 탓에 작가의 양심에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을 때, 『고양이와 쥐는 작가가 복원한 기억의 미로를 따라 그가 생각한 죄책감의 성질과 부끄러움의 시원에 다가설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필렌츠의 불안한 회상과 기억 안에, 비대한 후두를 가졌던 말케의 광적으로 분열된 자아 속에, 이들에게 자신을 조금씩 나눠주었을 그라스의 모습이 있었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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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독서의 생명이 있다면 그 이름은 자유다. 만일 인간의 역사를 자유가 진보해온 역사라고 볼 수 있다면, 그 - P243

것은 책을 쓰고 펴내고 유통시키며 읽을 자유가 진보해온 역사일 것이다. 우리가 나 또는 우리와 다른 타자(他者)를 이해하고 포용하며 환대해야 한다면, 나 또는 우리와 다른 생각을 담은 타서(他書)에 대해서도 그러해야 할 것이다.
- P244

많은 사람이 독서의 효용을 말하지만 책 버리는 것,
즉 기서(棄書)도 효용이 있다. 책을 버리면서 마음을 비워낼 수 있기 때문이다.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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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여성을 그린 그림의 상당수가 노동할 필요가없는 유한(有閑) 계급 여성을 묘사한 데 비해 이 그림에서는 그런 계급 여성이나 집안을 위해 일하는 여성이 책을 읽는다. 탁자 위 물건들은 하녀가 청소하고 관리해야 할 물건이되 하녀의 소유물이 아니다. 하녀는 집안 청소를 하다가 잠시 중단하고 책에 깊이 빠져 있다. 탁자 위에 놓인 책을 집어 든 것일까?
- P111

카사노바는 전통적 교회 신앙, 합리적 계몽주의, 세속의 향락을 추구하는 풍조, 비밀스러운 가르침과 신비적 마법, 고전적 전통과 낭만적 사조, 혁명의 기운과 구질서의 완고한 저항 등이 뒤섞여 소용돌이치는 시대를 살았다. 카사노바의 삶 자체가 바로 그런 소용돌이였다. 그가 곧 18세기유럽이었다. 말년의 그는 보헤미아의 둑스성의 발트슈타인백작의 도서관에서 사서(司書)로 일하다가 생을 마쳤다. 큐피드는 떠났어도 책만은 그의 곁에 끝까지 남은 셈이다.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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