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은 한 겹으로 이루어진 게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에 여러 겹의 층이 있어요. 갓 태어난 아기의 눈에 비친 나의 근원적인 층과, 살아가면서 후천적으로 생기는 이런저런 층들, 누가 가르쳐줬다고 할까요, 교육으로 주입됐다고 할까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상식이니 뭐니 하는 것들, 스스로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도 모르게 받아들이게 된 처세 같은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겹겹이 두툼한 층을 이룬 거라, 결국은 지구의 지층과도 같은 것이 나의 마음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내가 요즘 절실히 느끼는 건, 뭐든 따로따로 하나씩 존재하진 않는다는 거예요. 반드시 유사 모방이 있기 마련이라, 지구와 나도 장대한 닮은꼴을 이루고 있습니다. - P17
애초에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부모고, 자식인가. 부모 자식하면 아이가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걷는 장면이 떠오르는데, 인생은 자식이 성인이 되고 난 뒤가 훨씬 더 길다. 옛날 부모들은 막내가 성인이 될 무렵 세상을 떴다지만, 요즘 부모는 자신이 늙는 건 물론이요 자식이 늙는 것마저 본다. 그렇게 긴 세월이다 보니 언제까지고 부모 자식에 구애받지는 않게 됐다. 어느 한 시기를 함께 보내다 이윽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라져 헤어진다.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 P52
그 넓은 집에 엄마 혼자 남았다. 예전에 비해 한결 몸이 쪼그라든 엄마는 이제 아무 쓸모도 없는 사람이 됐다며 한탄을했지만, 웬걸, 모모코 씨는 이때 엄마로부터 인생에서 가장 큰용기를 얻었다. 그 뒤로도 엄마는 혼자 그 집에서 23년을 살았다. 엄마가 했으니 나도 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엄마에겐 역시 못 당하겠어. 하늘에 건배하고 다시 술을 마셨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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