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살아남기 - 우리가 몰랐던 신기한 전쟁의 과학
메리 로취 지음, 이한음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태극기 휘날리며'나 최근 개봉한 '덩케르크' 등 많은 전쟁 영화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적시곤 한다. 그것들은 주로 생사를 가르는 치열한 전투에서 발휘되는 인간의 생존 본능, 적군과 아군 사이에서 피어나는 휴머니즘, 악전고투 속에서 끝내 이기고야 마는 승리의 이야기들이다. 대부분의 장면들은 모두 '과거'의 것들로, 군인들은 열악하고 골동품 같은 무기들 때문에 애를 먹는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영화와 드라마 등을 볼 때, 마치 고대 유물을 감상할 때와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처연하고, 비극적이지만 지금과 동떨어진 낯선 느낌을 말이다. 그리곤 그 때 이미 존재했던 미군의 원자폭탄과, 독일군의 잠수함 등의 발명품들을 잊어버린다.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군인들을 위해, 그리고 그들이 무사히 본국으로 돌아오길 소망 하는 과학자들이 만든 발명품들을 말이다.




메리 로치의 '전쟁에서 살아남기'는 그런 과학자들을 다룬 이야기이다. 그들은 자국의 국민과 적은 물론 다른 나라 국민들에게까지 살상 무기를 만든다는 오명을 뒤집어 쓰곤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들이 연구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적을 죽일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군인들이 다치지 않을 수 있을까?'이다.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던 과학자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메리 로치가 따라간다.




워싱턴 포스트가 <미국에서 가장 유쾌한 과학 저술가>라고 칭송한 것 답게 이 책에서 작가는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비극은 최대한 배제하고 오직 과학에만 집중하려고 한다. 군사 과학이 단지 전략과 무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란 것을, 과학자들의 일상을 다큐멘터리 식으로 취재하는 방식으로 밝게 풀어 나간다. 



원래 제목이었던 'Grunt(사람이 아플 때 끙! 하고 앓는 소리)'도 작가의 이런 유쾌한 성격을 잘 드러낸다. 국내로 들어오면서 독자들이 좀 더 알기 쉽게 바뀌었다. 


역설적이게도 이 책을 계속 읽다 보면 냉철하고 이성적인 과학자들에 대해 '짠'한 느낌을 받게 된다. 시체를 하도 봐서 이제는 무뎌져 버린 과학자들의 생기 없는 표정과, 자신의 연구가 부디 한 사람의 목숨을 지킬 수 있길 기원하는 모습이 한순간 엄숙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다. 



엄청난 폭발음에서 청력을 보호하는 귀마개, 냄새 폭탄, 국가 안보 위협 요소로서의 설사 등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읽을 땐 참 흥미롭고 신기하다가도 이런 것들을 써야만 하는 군인들에게는 경외심과 안타까움이 들게 한다. 세계 유일의 휴전 국가에 살고 있지만 그 위험성을 잘 못 느꼈던 내게 지금 이 시간에도 이라크에서 총알과 싸우는 군인들의 이야기는 생생한 비극으로 다가온다.



특히 마지막 14장인 '사자로부터의 피드백'에선 이 책을 끝까지 경쾌하게 끌고 가려던 메리 로치의 일말의 슬픔을 느낄 수가 있다. 젊은 청춘들의 시신이 연구 대상이 되어서 또 다른 청춘들의 보호막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장면은 '전쟁이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막막한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메리 로치의 마지막 말이 이 답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


"천 개의 불빛(a thousnd ponit of light)"이라는 말을 흔히 한다. 뒤로 물러나서 전체를 볼 때에만, 그런 뒤에야 비로소 그중 어느 한 불빛의 가치를, 그것을 꺼뜨리는 행위의 정당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바로 그 순간에, 그 전체를 조망하기란 힘겹다. 사다리를 얼마나 높이 올라가야 할지 상상하기가 버겁다."


아마 이 책을 읽는다면, 처음에는 흥미로운 군사 과학 때문에 눈을 초롱초롱 빛내다가도

끝에 가선 눈가가 촉촉해 지는 경험을 할 지 모른다. 휴지 준비. 박수 준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